우리 시대는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연 변혁의 역사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문명은 생태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은데, 요컨대 그것이 바로 생태체제다.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관계들의 모자이크가 자연을 통해서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책이면서 자연이 더 한정된 영역인 자본주의를 통해서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책이다. ... 나는 ‘자연’을 외부적인 것으로 여기는 관점이 자본축적의 기본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상상이 자본주의의 이항적 실재 구조에 사로잡힌 한, 평등주의적이고 대체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초월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은 좌절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오늘날 자본주의의 한계를 판별하고자 하는 노력은 실재를 자본주의적 발전에 내재하는 이원론에 집어넣음으로써 그다지 진척될 수 없다. ― 서론 : 이중 내부성, 19~20쪽
간략한 소개
‘세계생태론’(World-Ecology)의 주창자 제이슨 W. 무어의 대표작이 출간되었다. 근대성 비판이자 자본주의 비판으로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대단히 논쟁적인 책”이다. 저자가 비근대적인 생태적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관념들을 부각하기 위해 고안한 수사법의 덤불을 헤쳐나간 독자는 21세기 자본세의 현실을 조금 더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현행 위기의 본성과 더불어 미래에 관해 생각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
금융위기. 기후위기. 식량 위기. 일자리 위기. 21세기 위기들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저자는 오늘날 지구적 격변의 원천들은 한 가지 공통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 자연을 비롯한 자연을 조직하는 방법으로서의 자본주의다. 무어는 환경주의와 페미니즘, 맑스주의 사상에 의지하여 획기적인 새로운 종합, 즉 부와 권력, 자연을 통합한 ‘세계생태’로서의 자본주의를 제시한다. 자본주의의 최대 강점 ― 그리고 문제들의 원천 ― 은 ‘저렴한 자연’, 이를테면 노동과 식량, 에너지, 원료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무어는 자연-속-인류의 율동적이고 재생적인 변증법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재고함으로써 독자를 자본주의의 발흥에서 근대 위기의 모자이크까지 이어지는 여행으로 이끈다.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및 자연보다는 오히려 자연-속-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하여 우리의 곤경을 이해하고 앞으로 이 세기에 해방의 정치를 추구하기 위한 열쇠인지를 보여준다.
상세한 소개
코로나19는 자연 재난인가 경제 문제인가?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현상은 사실상 우리 시대의 두 가지 근본 위기를 표상하는 거대 증상인 ‘기후변화’의 가속과 ‘부의 불평등’의 심화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하나의 삽화적 참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부의 불평등’은 흔히 인간 사회의 경제적 병폐의 일종으로 여겨지고 ‘기후변화’는 거의 어김없이 일종의 자연적 재난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작금의 미생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양상이 각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균열을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팬데믹 사태가 단순히 생명과학적인 자연 현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른바 자연과 사회의 혼성물, 물질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의 혼성물임이 틀림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의 불평등’과 ‘기후변화’ 역시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의 혼성물이다.
인간-비인간 세계의 근본적인 접착제가 자본주의다
이 책의 저자 제이슨 W. 무어는 사회와 자연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게 얽혀서 하나의 관계적 전체, 무어의 표현을 빌리면 ‘생명의 그물’을 형성한다는 관계주의적인 전체론적 시각을 견지한다. 이로써 그는 데카르트에게서 비롯되는 사회/자연 혹은 인간/자연이라는 서양의 근대적 이항 구조를 전면적으로 거부면서 비근대적이고 생태적인 세계상을 제시한다.
최근 들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근대성 비판에서 이 책의 저자 제이슨 W. 무어가 기여하는 독특한 공헌은, 저자 자신이 이 책을 “냉정한 정치경제학에 철학이 약간 섞여 있는” 책으로 규정하는 대로, 세계역사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고찰을 통해서 현행 인간-비인간 세계의 근본적인 접착제가 자본주의임을 부각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무어는 현행 ‘기후변화’와 ‘부의 불평등’ 문제가 모두 1450년 이후로 개시된 자본 축적 과정의 필연적인 누적적 결과임을 실증하면서 우리 시대는 인류세보다는 오히려 자본세로 불려야 함이 마땅하다고 단언한다.
우리 시대는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다!
이 시대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규정하는 관념으로서의 인류세라는 용어는 “인간이 기성의 자연력에 못지않게 지구 생태의 변화를 추동하는 또 다른 자연력이 되어버렸다”라는 현실을 표상하는 한편으로,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인류 전체에 무차별적으로 귀속시킴으로써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고 종종 비판받는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정치경제학적 통찰과 함의가 부족하다. 2019년 「가디언」의 한 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0개의 화석연료 회사가 1965년 이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1 이상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2020년 「네이처」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환경에 대하여 최상위 10%의 부자는 25~43%에까지 이르는 영향을 미치고 최하위 10%의 빈자는 겨우 3~5%의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우리의 환경 문제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대체로 일부 사람들, 특히 자본과 부자에 의해 유발된다. 그리하여 무어는 우리 시대를 자본세라고 단연코 일컫는다. 이런 점에서 자본세라는 관념은 자본과 자본주의 권력에 현행 기후변화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묻는 ‘기후정의’ 운동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사회/자연이라는 데카르트적 이항 구조의 세계관을 넘어서야 한다
근대성을 특징짓고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사고방식은 사회/자연이라는 데카르트적 이항 구조의 세계관이다. 이런 세계상에 따르면, 자연은 인간 사회와 자본의 외부에 존재하면서 자원의 원천으로서 ‘수도꼭지’와 쓰레기 처리장으로서 ‘개수대’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게 해서 자연은 근대 문명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자기 재생산 비용을 끊임없이 외부화하는 수단이 된다. 결국 21세기의 문명적 위기는 자본의 무한한 축적 욕망과 유한한 자연 사이의 모순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대로, “우리가 문제를 초래하는 데 사용한 그 사고방식으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의 사고방식은 언어로 표명되는 관념들로 구축되기에 데카르트적 대립쌍 관념들로 특징지어지는 근대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무어는 신조어를 고안하고 기존 어휘를 새롭게 조합하거나 하이픈으로 연결한다. 예를 들면, 접속사 ‘및’과 ‘사이’는 이항적 실재 구조를 반영한다는 이유로 지양하면서 변증법적 통일성을 내포하는 전치사 ‘속’과 ‘통해서’를 강박적으로 사용한다. 그리하여 ‘자연 및 인류’는 ‘자연-속-인류/인류-속-자연’이 되고 ‘자연과 자본주의 사이의 운동’은 ‘자연을 통한 자본주의의 운동/자본주의를 통한 자연의 운동’이 되는데, 무어는 이것들을 ‘이중 내부성’이라고 일컫는다.
결국 무어가 보기에, 세계는 대립하는 두 개의 개별 실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중 내부성으로 구축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또한 자본주의 속 생명의 그물)라는 이 책의 제목이 함축하는 바다. 여기서 우리는 무어의 존재론적 관점이 실체의 존재론이 아니라 과정의 존재론임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자연을 조직하는 방법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관념은 그리스어로 ‘호의적인 장소’를 뜻하는 오이케이오스 토포스의 줄임말인 오이케이오스로 표현된다. 무어가 맑스의 내재적 관계의 철학에 근거하여 정립한 오이케이오스(oikeios)라는 관념은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 사이에 맺어지는, 그리고 언제나 이들 자연에 내재하는, 창조적이고 역사적이며 변증법적인 관계를 명명하는 방식”을 가리키는데, 요컨대 오이케이오스는 사회와 자연의 일의적 전체를 표상한다. 그리하여 오이케이오스로서의 자연, 즉 생명의 그물은 “그 속에서 인간 활동이 전개되는 매트릭스이자 그 위에서 역사적 행위주체성이 작동하는 장이 된다.” 이 책에서 무어는 일종의 관계주의적이고 생태적인 전체론에 의거하여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계생태론’으로 일컫는다.
세계생태론적 시각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자본-권력-자연을 역동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통일체, 즉 세계생태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경제적 체제도 아니고 사회적 체계도 아니며 오히려 “자연을 조직하는 방법”이다. 자본주의는 자기 재생산 비용을 외부화하기 위해 이른바 ‘저렴한 자연’, 이를테면 저렴한 노동과 식량, 에너지, 원료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부와 권력, 자연의 세계생태가 된다. 이 책에서 무어는 자본주의가 ‘저렴한 자연’을 창출하는 방법과 과정의 역사를 꼼꼼히 추적한다.
자본주의의 가치 법칙은 ‘저렴한 자연’의 법칙이다
모든 문명은 나름의 가치 체계를 정립함으로써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변별한다. 맑스의 통찰에 의거하여 무어는, 장기 16세기(1450~1640)에 일어난 자본주의의 발흥은 가치 체계가 토지생산성에서 노동생산성으로 전환된 획기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리하여 자본 축적은 노동생산성의 향상에 따라 창출되는 잉여자본을 확보하는 것이고,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을 위한 ‘신의 책략’은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이 수행하는 대다수 일을 가치 없게 만듦으로써 유상 일=임금노동, 즉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의 생산성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는 무상 일을 전유함으로써 자신의 재생산 비용을 외부로 떠넘기면서 임금노동을 효과적으로 착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가치 법칙은 ‘저렴한 자연’의 법칙이 된다. 여기서 무상 일의 원천인 ‘저렴한 자연’ 프런티어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축되어야 하는데, 요컨대 무어는 이렇게 구축되어 전유되는 자연을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으로 일컫는다. 페미니즘과 생태주의의 통찰을 갖춘 맑스주의자들이 밝힌 대로, “여성, 자연, 식민지”가 바로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의 전형적인 실례이고, 따라서 자본주의는 가부장제와 개발주의, 제국주의를 당연히 연행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과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 자본 축적이라는 삼위가 어우러져 연출하는 착취와 전유의 파노라마가 된다.
자본세 이후에 등장할 포스트자본주의 체제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생태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1450년 무렵에 개시되어 지금까지 지속하는 자본주의의 본원적 축적 과정과 축적 위기의 해소 과정, 즉 자본주의의 축적순환 과정은 미상품화된 ‘저렴한 자연’ 프런티어가 소진되고 새로 구축되는 과정과 연계되어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세계 자본주의 헤게모니는 세계생태적 프로젝트다. 이를테면, 네덜란드 헤게모니는 향신료 제도를 확보함으로써 출현하였고, 영국 헤게모니는 석탄/증기력과 플랜테이션의 혁명을 통해 출현했으며, 미합중국 헤게모니는 석유 프런티어와 농업의 산업화를 통해서 출현했다.
그런데 전유할 수 있는 ‘저렴한 자연’ 프런티어가 더는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자본주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말해서, 자본이 자기 재생산 비용을 더는 외부화할 수 없다면 우리의 미래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심화하는 ‘부의 불평등’과 가속하는 ‘기후변화’라는 21세기의 두 가지 난제는 ‘저렴한 자연의 종언’을 나타내는 징후다. 부의 불평등의 심화는 자본 축적의 비용을 외부화할 수 없기에 부득이 ‘탈취에 의한 전유’를 통해서 내부화함으로써 초래되는 결과이고, 기후변화의 가속은 ‘가이아의 복수’로 표현되는 자연의 반격, 즉 ‘부정적 가치’의 생성에서 기인한다.
만약에 현행 자본주의가 체제가 이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붕괴된다면, 자본세 이후에 등장할 포스트자본주의 체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미래 세계는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가치 법칙이 아닌 새로운 가치 법칙의 지구적 합의에 달려 있을 것이다. 현 상황에서 바람직한 사고방식은 단순한 녹색 사상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적 통찰이 가미된 녹색 사상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 책에서 무어는 생태적 맑스주의에 기반을 둔 대안적 가치평가 체계를 통한 사회주의적 세계생태에의 전환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바람을 간략히 언급한다.
책의 구성
이 책은 서론, 네 개의 부로 이루어진 본문,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론은 이 책을 총괄적으로 관통하는 패러다임으로서 생태적 맑스주의의 일종인 세계생태론을 개괄한다. 여기서 무어는 자연 및 사회라는 데카르트적 이항 구조로 특징지어지는 이원론적 근대성을 넘어서고자 시도하면서 자연을 이중 내부성이라는 변증법적 과정으로 특징지어지는 오이케이오스로 여기는 생태적인 비근대적 사고방식을 제시한다. 애초에 ‘수도꼭지’와 ‘개수대’로서 작동하는 외부적 자연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와 자연은 공동생산하는 생산자이자 생산물이다.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1부에서 무어는, ‘이원론에서 변증법적으로: 세계생태로서의 자본주의’라는 부제목이 밝히는 대로, 이원론적 근대성을 넘어서고자 하는 세계생태론의 두 가지 핵심 개념인 오이케이오스와 이중 내부성에 의거하여 세계생태로서의 자본주의의 변증법적 실상을 분석한다. 요컨대 무어는 자본주의와 자연이 별개의 실체로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이원론적 신진대사가 아니라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자본주의 속 생명의 그물’이라는 단일한 신진대사를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다시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2부에서 무어는, ‘역사적 자본주의, 역사적 자연’이라는 부제목이 시사하듯이, 추상적인 자본주의 일반과 추상적인 자연 일반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특정 상황에 따라 구체적으로 전개된 역사적 자본주의와 역사적 자연의 발전 과정을 ‘저렴한 자연’의 법칙이라는 자본주의 가치 법칙에 기반을 두고서 면밀히 조사한다. 여기서 무어는 자본주의가 재생산하기 위해 자연을 조직하고 저렴화하면서 자본-권력-자연의 세계생태가 되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한다.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3부 ‘역사적 자연과 자본의 기원’에서 무어는, 현행 생태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본주의의 가치 법칙, 즉 자본이 전유하기 위한 ‘저렴한 자연’ 프런티어의 구축 전략에서 비롯됨을 체계적으로 고찰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로 명명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다시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4부 ‘저렴한 자연의 발흥과 죽음’에서는 21세기에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 즉 저렴한 자연 프런티어의 지구적 종언의 가능성을 ‘식량’이라는 저렴한 자연의 견지에서 살펴본다. 예를 들면, 저렴한 식량의 확보 전략으로서 생명공학은 오히려 슈퍼잡초를 생성하는 ‘부정적 가치’를 낳음으로써 현재까지 성공적이지 못한 책략으로 밝혀진다. 여기서 오이케이오스로서의 생명의 그물에 가장 거대한 ‘부정적 가치’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기후변화가 제시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 무어는 저렴한 자연 프런티어가 지구적으로 빠르게 폐쇄되면서 축적 위기에 처한 현행 자본주의가 더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저자 인터뷰
아래 인터뷰의 원문 출처 및 전문 번역은 옮긴이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blog.daum.net/nanomat/1441, http://blog.daum.net/nanomat/1324
질문자 : 당신은 근대 역사와 더불어 비인간 자연과 인간 자연의 미래를 이해하고자 하는 세계생태적 접근법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접근법의 주요 특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어 : 세계생태론은 협동, 대화입니다. 이것은 지구적 정의에 관한 지구적 대화 ― 학자들의, 예술가들의, 활동가들의 대화 ― 입니다. …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2015)에서 저는 지배와 착취, 환경사의 관계들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페미니즘 비판과 환경주의 비판, 맑스주의 비판이 어떻게 새로운 종합으로 재편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생성적 종합―즉, 후속 탐구, 서사, 표상, 연구, 대화를 생성하는 종합―은 어떤 모습일까요?
… 세계생태론의 요점은 올바른 노선에 다다른 다음에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협동적 야망은 지구적 정의를 위한 해방적 지식을 생성하는 대화를 개시하고 유지하며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과거 지식에 대한 확신을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과거 지식은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동시에, 오늘날의 지구적 위기를 창출한 사고방식은 우리를 지구적 정의로 이끌지 않을 것입니다. 해방적 실천은 모든 해법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지구적 위기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반응은 본질적으로 집단적이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질문자 : 당신은 자연/사회라는 이항 구조에 직접 반대하면서 새로운 종합, ‘오이케이오스’를 제기합니다. 그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더 심층적인 분석을 가능하게 합니까?
무어 : 급진 사상의 핵심에는 인간과 생명의 그물 사이의 역사와 관계를 강조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일어난 일은 역사 없는 자연처럼, 인간관계의 바깥에 순수한 상태로 있는 대문자 ‘자연’이라는 핵심 관념입니다. ‘자연’은 저쪽에 있고 우리가 그것을 보호해야 이유는 우리가 그러하지 않는다면 파국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감각을 낳습니다. 그것은 진행 중인 상황의 일부를 바로 잡지만, 급진주의자들이 언제나 능숙한 일, 즉 시스템을 잘못 명명하는 일을 행합니다.
급진주의자들은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상호작용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환경과 종을 모두 생산하는 생명형성의 관계를 명명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풍경뿐만 아니라 인간 생물학도 전환하는 일련의 환경형성 활동을 통해서 진화합니다. 예를 들면, 인간 조상은 불을 이용함으로써 더 작은 소화계를 발달시킬 수 있었고, 그리하여 불을 일종의 외부 위장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시된 빅 아이디어 중 하나는 ‘자연’ 일반이 비교적 일정한 다양한 패턴 ― 태양 주위를 궤도 형태로 공전하는 지구 ― 을 나타내지만 ‘자연’ 역시 역사적이라는 것입니다.
‘오이케이오스’라는 용어로, 우리는 생명형성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고, 인간을 포함하는 다수의 생태계가 생겨나게 하는 이 관계를 명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환경을 형성하고, 도중에 타인 및 자신의 생물학과 관계를 맺습니다. 권력구조와 생산구조, 그리고 특히 재생산구조는 우리가 풍경과 환경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이들 환경이 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어휘와 개념들은 이런 이원론에 배선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원론을 파괴하고 어떤 새로운 개념들을 제시해야 합니다.
질문자 : 인류세에 대한 당신의 비판은 무엇이고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실제적인 역사적 분석을 어떻게 호도한다고 느끼십니까?
무어 : 우리는 인류세라는 용어의 두 가지 용법을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는 문화적 대화, 식당이나 휴게실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그런 종류의 대화로서의 인류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인류세는 한 가지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는 미덕이 있습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 안에서 어떻게 어울리는가? 하지만 인류세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 개념의 바로 그 견지가 이원론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인류세: 이제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을 압도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유명한 논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당신이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대단한 질문이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배적인 형태의 인류세 논증은 터무니없는 역사적 모형입니다. 그것은 1800년에 증기기관과 석탄과 더불어 영국에서 모든 것이 시작한다고 대개 말합니다. 우리가 언급한 대로, 그 주장과 관련하여 온갖 종류의 역사적 문제가 있습니다. 증기기관이 등장하기 오래전에 규모와 속도, 범위의 척도에서 환경을 전환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능력이 10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저는 인류세가 자본가들에 의해 초래된 문제가 인류 전체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오래된 부르주아 수법을 연출하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합니다. 그것은 일련의 매우 실제적인 문제를 인류 전체의 책임으로 제시하는 대단히 인종주의적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이며 가부장주의적인 견해입니다. 인류세가 보기에, 깊은 철학적 층위에서 우리는 모두 동일합니다. 역사적 의미에서, 그것은 당신이 가할 수 있는 최악의 개념적 폭력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미합중국에서 인종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비웃음을 받고서 무대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세 관념이 빠져나가는 것의 일부는 ‘자연’/‘사회’ 이원론입니다.
지은이
제이슨 W. 무어 Jason W. Moore, 1971~
미합중국의 환경사학자이자 역사지리학자이며, 2013년부터 빙엄턴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7년에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2010~2년에 걸쳐 스웨덴의 우메오 대학교에서 지성사를 가르쳤다. 생태적 맑스주의의 한 갈래이면서 생명의 그물 속 인간 역사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계생태론을 선도하는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세계생태 연구 네트워크>(World-Ecology Research Network)를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저서인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자본의 축적과 세계생태론』(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Ecology and the Accumulation of Capital, 2015; 갈무리, 2020)으로 <미국사회학협회> 세계체계 정치경제학 분과의 석학 학술상을 받았다. 편저로는 『인류세인가 자본세인가?: 자연, 역사,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Anthropocene or Capitalocene?: Nature, History, and the Crisis of Capitalism, 2016)가 있고, 공저로는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 2017; 북돋음, 2020)가 있다. 편집자로 참여한 『자본주의의 생태들: 21세기의 문화, 권력, 그리고 위기』(Capitalism’s Ecologies: Culture, Power, and Crisis in the 21st Century, 2020)가 PM Press에서 곧 출간될 예정이다.
옮긴이
김효진 Kim Hyojin, 1962~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인류세 기후변화와 세계관의 변천사에 관심이 많으며, 블로그 <사물의 풍경>에 관련 글을 올리고 있다. 옮긴 책으로 『네트워크의 군주: 브뤼노 라투르와 객체지향 철학』(갈무리, 2019)과 『비유물론: 객체와 사회 이론』(갈무리, 2020)이 있다.
책 속에서
나는 ‘자연’/‘사회’의 이원론이 근원적으로 근대성의 폭력에 가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40년에 걸쳐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 유럽중심주의의 이원론들을 극복하기를 배워 온 바로 지금이 그 모든 이원론의 원인, 즉 ‘자연’/‘사회’ 이항 구조를 다룰 적기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발생한 16세기에서 자본주의의 황혼까지, ‘자연’/‘사회’ 이원론에는 여타의 것과 전적으로 마찬가지로 피와 오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기 때문이다. ― 서론 : 이중 내부성, 24쪽
오이케이오스는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 사이에 맺어지는, 그리고 언제나 이들 자연에 내재하는, 창조적이고 역사적이며 변증법적인 관계를 명명하는 방식이다. ― 1장 대상에서 오이케이오스로, 72쪽
착취당하는 일보다 더 나쁜 단 하나의 일은 … 전유되는 일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무상 일/에너지의 대양 안에서 상품생산의 섬들을 거쳐 흐르면서 전개된다. 이런 전유 운동은 자본(운동-중인-가치)의 끝없는 축적을 위한 필요조건을 산출한다. 다시 말해서, 가치는 대부분의 일이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 2장 생명의 그물 속 가치, 101쪽
자본주의 프로젝트의 핵심에는, 16세기에 그 프로젝트가 개시된 이후로, 근대적 형태의 자연, 즉 지도로 제작될 수 있고, 추상화될 수 있고, 수량화될 수 있으며, 그밖에 선형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자연을 과학적이고 상징적으로 창출한 행위가 놓여 있었다. ― 3장 단일한 신진대사를 향하여, 151쪽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연 변혁의 역사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문명은 생태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은데, 요컨대 그것이 바로 생태체제다. 자본주의는 오이케이오스의 항들을 형성하고 전달하며 협상하는 방법이다. ... 자본주의의 독특함은 끝없는 축적을 위해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준안정적인 관계를 조직하는 방법에 놓여 있다. ― 5장 자연의 자본화 또는 역사적 자연의 한계, 187쪽
모든 사회적 한계와 자연적 한계는 환원 불가능하게도 사회생태적이다. 이런 한계들은 국가 규제와 반체제운동에서 삼림 벌채와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요점 ― 그리고 맑스가 자본의 한계는 자본 자체라고 주장할 때 강조하는 바로 그것인 이 요점 ― 은, 모든 한계는 오이케이오스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의 ‘분리’가 아니고, 오히려 그 둘을 꼭 끼워 맞추는 방법이다. ― 6장 세계생태혁명들, 267쪽
비인간 자연 역시 경제적 등가성의 가차 없는 강제에 저항하는데, 이를테면 슈퍼잡초가 유전자조작 농업을 좌절시키고, 동물이 생산 대상과 생산력으로 할당된 자신의 역할에 저항한다.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의 대응 사업은 온갖 종류의 경쟁적이고 논란이 많은 시각과 저항을 맞닥뜨려서 모순적인 역사적 과정을 창출한다. ― 8장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과 자본의 한계, 328쪽
21세기의 계급투쟁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대답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적잖게 진전될 것이다. 식량이란 무엇인가? 자연이란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10장 장기 녹색혁명, 451쪽
추천사
자연은 토대나 용기, 자원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다. 무어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대로, 우리는 자연을 중시하는 역사를 살아야 한다. ― 도나 해러웨이, 산타크루즈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세계생태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흥미롭고 주요한 저작. ― 이매뉴얼 월러스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의 저자
적어도,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철저히 ‘환경’의 역사임을 예증한다. 활기를 북돋워 주는 이 책은 그런 과거를 이해하는 데 사용될 뿐 아니라 미래를 바꾸려는 과업에 착수하면서 자기 위치도 알아내는 데 사용될 창의적인 틀을 제시한다. ―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쇼크 독트린』의 저자
포토시에서 상투메까지, 아프리카의 노예 매매 프런티어에서 유럽의 습지 유역까지, 노르웨이의 대대적인 삼림 벌채에서 비스와강 하구 곡창지대의 수면 상승에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여행. 세계 환경사에 관한 엄연한 재고. ― 마이클 와츠,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만약 첨단 생태사상에 관심이 있다면,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는 필독서다. 무어가 다루는 범위는 방대하고, 여기서 그가 이룬 만큼 엄청난 분석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모든 페이지의 여백에 메모를 남길 만큼 학식과 기지, 통찰이 넘쳐나고, 게다가 평생 검토할 만한 관념들도 있다. 기념비적인 저작. ― 라즈 파텔, 『식량전쟁』의 저자
무어의 급진적이고 엄밀한 작업은 의제 설정으로 불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 차이나 미에빌, SF 작가
뛰어나고 절실히 필요한 책. 엄밀하고 획기적이지만 이해하기 쉬운 책. ― 크리스천 퍼렌티,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의 저자
목차
한국어판 옮긴이 서문 8
감사의 글 12
서론 이중 내부성 : 자연을 중시하는 역사 17
1부 이원론에서 변증법으로 : 세계생태로서의 자본주의
1장 대상에서 오이케이오스로 : 자본주의적 세계생태에서의 환경형성 68
2장 생명의 그물 속 가치 95
3장 단일한 신진대사를 향하여 : 이원론에서 자본주의적 세계생태의 변증법으로 133
2부 역사적 자본주의, 역사적 자연
4장 생태잉여의 저하 경향 155
5장 자연의 자본화 또는 역사적 자연의 한계 185
6장 세계생태혁명들 : 혁명에서 체제로 232
3부 역사적 자연과 자본의 기원
7장 인류세인가 자본세인가? : 현행 생태위기의 본성과 기원에 관하여 273
8장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과 자본의 한계 309
4부 저렴한 자연의 발흥과 죽음
9장 저렴한 노동? : 시간, 자본, 그리고 인간 자연의 재생산 348
10장 장기 녹색혁명 : 장기 20세기 저렴한 식량의 삶과 시대 378
결론 저렴한 자연의 종언? : 자본의 세계생태적 한계는 자본 자체다 457
참고문헌 481
인명 찾아보기 512
용어 찾아보기 515
책 정보
2020.06.26 출간 l 145×210mm, 무선제본 l 아우또노미아총서70, Mens
정가 27,000원 | 쪽수 528쪽 | ISBN 978-89-6195-241-5 93300
도서분류 1. 사회과학 2. 정치경제 3. 경제정책 4. 경제발전 5. 환경정책 6. 철학 7. 역사
구입처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미디어 기사
[한겨레] 7월 3일 학술 새 책 /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세계일보] 새로 나온 책 /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새전북신문] 코로나19는 자연 재난인가 경제 문제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추천도서
[대자보] 양극화 보다 더 무서운 세계적 기후변와 전염병
[일상비평 웹진 쪽] 페미니즘적 세계생태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참세상] 자본의 ‘가치’는 자연의 ‘무가치화’를 통해 만들어진다
[함석헌평화연구소 블로그] “이 세계가 ‘호의적인 장소’(oikeios topos)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