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갈무리
Galmuri Publisher
Since 1994

도서출판 갈무리 소개


갈무리는 1991년 소련 사회주의의 해체가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질서’가 선포된 때부터 준비되어 멕시코 라깡도나 정글에서 사빠띠스따 원주민들이 그 ‘새로운 세계질서’인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인류를 옹호하는 특이한 봉기를 일으킨 1994년에 공식적으로 출범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이 해는 거의 10여 년에 걸친 항쟁과 혁명의 시간이 개혁과 제도화의 시간에 길을 비켜주기 시작하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유혈탄압 이후 잠복했던 저항운동은, 이른바 ‘유화국면’을 이용하여 1984년 학생층으로부터 재기했고 1985년의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기층 민중으로까지 확산되었고 1986년의 정치적 조직화를 거쳐 1987년 노동자-시민의 거대한 항쟁을 불러일으킨 후 1991년 5월까지 공세적 운동을 지속했지만, 1992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빠른 확산이 보여주듯이 후퇴, 방황, 청산, 변신 등 혁명의 연착륙인가 경착륙인가가 문제로 제기되는 때가 1994년이었습니다. 이 문제적 상황이 이후에 신자유주의의 본격화, 확산, 심화, 보편화로 귀착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신자유주의는 물론이고 자본주의 자체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이 분명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그것을 대체할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과 그 이후의 경과가 단적으로 증명하듯이,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함축한 글자 그대로의 ‘위기’ 상황은 희망보다는 죽음, 불행, 고통을 일반화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위험을 기회로, 운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진실을 한 점의 의혹도 남김없이 낱낱이 규명하고 재출발의 도약대를 찾는 진실규명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합니다. 이 진실규명을 위한 ‘수사’ 는 우리 모두의 지성과 감성의 전면적 동원을 요구하고 있고, 대안은 낡고 썩은 체제에 대한 가차 없는 아래로부터의 집합적 ‘기소’ 없이는 도래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합니다. 요컨대 2014년은 아래로부터의 제헌이 당면한 문제로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한 세월호 진상규명특별법”이라는 방식으로 다중 자신의 직접적 요구로서 제기된 해입니다. 


우리는 <갈무리>라는 단어를, 독일어 지양(aufheben)이 그렇듯이, 폐지, 보존, 창조의 세 가지 계기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20년 동안, 우리가 무엇을 폐지하고 무엇을 보존했으며 무엇을 창조했을까?’, 첫 번째 <세렌디피티>를 내면서 나직이 자문해 봅니다. 이것은 아마도 20년간 독자 여러분들 앞에 제출된 200여 종의 책들이 활자들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증언하고 있는 바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물음과 관련해서 우리로서는, 갈무리와 함께해온 독자 여러분들께서 지금까지 우리의 작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시는지 묻고 싶고 독자 여러분들의 냉정한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걸음은 모색에서 모색으로 점철된 것이었습니다. 호에이스 월폴의 동화 『세렌디프의 세 왕자』의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우리는 우리가 찾지 않던 것을 늘 우연 속에서 발견해 왔고 끊임없이 발견의 행복을 누려왔습니다. 이 과정은 이미 정해진 목적의 실현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 폐지, 보존, 창조의 계기를 말해 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사회(민주)주의로 재현되었던 20세기의 다양한 운동들은 새로운 조건을 맞아 붕괴하고 해체되고 있지만 어떤 역사적 조건에서도 다른 세상을 가능케 할 잠재력은 영원하다. 

둘째 그 잠재력은 오늘날, 더 이상 과거의 눈으로는 식별되지 않는 새로운 주체적 형상으로 이미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사유, 정동, 감각의 새로운 문법, 새로운 양식을 다듬어 가고 있다. 

셋째 그 실재하는 움직임을 증언하고 그 이름 부르기 힘든 내재적 경향을 토론의 광장으로 불러내어 그 옹알이를 목소리로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갈무리의 모든 책들은, 우리가 걸으면서 묻고 또 발견한 이 세 가지 계기들과 어떤 형태로든 조우하게 된 물질화된 사유들입니다. 그 계기들과 때로는 합치하고 때로는 긴장하며 때로는 균열하는 그 사유들의 활자 바다가 독자 여러분들의 행복한 발견의 섬, 세렌디프가 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우리는 ‘물으면서 걷고 걸으면서 묻는’ 길, 사빠띠스따들이 시작한 저 행복한 발견의 길, 세렌디피티의 진실여정을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해 나갈 것임을 조심스럽게 약속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지난 20년 동안 갈무리와 짧게 혹은 길게 함께했던, 이름을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동지, 동료활동가, 친구, 선-후배, 저자, 역자, 기고자, 프리뷰어, 후원자, 지지자, 독자 여러분들께 존재(Esse), 활력(Posse), 지성(Nosse)의 이름으로 인사와 감사를 전합니다. 갈무리의 친구들인(이었던) 다중문화공간 왑, 자율평론, 공간 새로운 천사, 다중네트워크센터, 호코모코노, 아우또노마 M, 다중지성의 정원 등에서 기쁨만이 아니라 아픔도 함께했던 여러 만사/회원 여러분들께도 사랑의 인사와 감사를 전합니다. 


2015년 9월 29일 

도서출판 갈무리 대표 조정환

도서출판 갈무리 창립 취지문 


도서출판 갈무리는 1994년 3월 3일 창립된 독립(independent) 출판사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독립 출판사의 이념은 1980년대 후반 대중 운동과 발맞추어 자라난 인문사회과학 출판운동의 전통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의 독립 출판운동은 외국의 급진적 이론의 소개, 국내 운동의 언어적 반영, 그리고 새로운 실천 이론의 모색을 통해 대중의 자기조직화를 간접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의 해체와 북한의 위기를 계기로 80년대의 독립 출판운동은 위기에 빠졌습니다.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보수적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면서 독립 출판활동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급격한 판매고 축소를 필두로 해서 전망 상실, 재정난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당국의 탄압이 가속화되고 저작권 법이 시행되면서 독립 출판운동의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많은 경우에 출판활동을 포기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윤 추구적인 상업적 출판사업으로 전환했습니다. 90년대 후반 현재 전통적인 독립 출판운동은 거의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80년대 독립 출판운동의 패배가 독립 출판활동 그 자체의 불가능성을 입증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어려운 요소들이 엄존하는 한편, 자율적인 대중 투쟁의 성장, 컴퓨터 출판 테크놀로지의 향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본에서 독립적인 출판활동의 가능성을 높혀 주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독립적인 출판사들의 생성, 그리고 독립적인 잡지 창간의 활성화 등은 이러한 현실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같은 역사적/기술적 가능성을 살려 가면서 어려운 여건에서나마 독립 출판활동의 전통을 새롭게 재창조해 나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1994년의 창립에서부터 1995년까지 약 1년여 동안 지구상에 존재한 사회주의 사회들이 그 본질에서는 인간에 대한 착취를 재생산하는 국가자본주의 사회임을 밝히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소련과 동유럽의 국가들-그리고 북한-에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우리는 자본의 객관적 운동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새롭게 성장하는 자율적인 대중의 삶과 운동, 즉 새로운 사회적 주체에 눈을 돌려, 서구에서의 1968년 혁명이 인류의 삶에 가져온 성과와 그 한계를 분석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1917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1968년의 성과와 한계를 철저히 이해하는 것이 1989년 이후 새로운 순환을 맞이하고 있는 노동자 계급 운동 및 좌파 운동의 능동적 재구성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금세기의 철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미학, 역사학, 정치학 등의 인간과학 및 사회과학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제 분야를 포함하는 인간적 사유 전체를 이 주체적 계급 재구성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성의 어떤 특정한 정치 노선에 우리 자신을 옭아 매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능동적 재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견해라도 경청하고 또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서 사고해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이 어느 누구를 대신해서 사고해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출간하는 책들에 대한 옳고/그름, 타당성/부당성, 유익/무익의 판단은 전적으로 읽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출판적 표현활동은 지금 이곳에서의 우리의 자율적 사색의 표현이자 이땅의 사회적 노동자의 한 구성인자로서의 우리의 발성(voice)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서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율적인 삶을 살고자 하고 또 그 어떤 외부적 권위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가슴과 두뇌로 사고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우리의 벗이자 동지일 수 있으며 우리 출판 활동의 기획자, 편집자, 기고자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네트워크의 발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노조나 당과 같은 전통적인 노동자 조직들이 경제적/정치적 이익집단으로 변화해 가면서 지금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네트워크가 대중의 자율적인 조직화에 중요한 수단들 중의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 현실 공간에서의 우리들의 목소리를 옮겨 놓는 한편, 또 그 공간을 자기가치화의 독특한 장으로 활용함으로써 전지구적 대중 네트워크의 한 고리 혹은 인터페이스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네트워크에의 이러한 참여가 현실 공간에서의 출판활동이 갖는 여러 가지 제약을 깨뜨려 주면서 지구상의 다중(multitude)과의 접속을 보다 활발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법적 제약(저작권)과 경제적 제약 때문에 출판되는 책들의 모든 내용을 동시에 홈페이지에 올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자료들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또한 독자 여러분들의 견해를 경청하고 그것을 우리의 출판활동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갈무리의 상징, 히드라


헤라클레스가 정의와 질서와 선의 상징으로, 히드라가 무질서와 불의의 상징으로 알려진 것은 전적으로 역사적 권력자들의 필요이자 이데올로기였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중앙집권, 위계, 질서부과를 상징합니다. 헤라클레스적 권력자의 시선에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인 히드라가 무질서와 위기로 보일 것입니다. 


히드라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짐으로써 하나의 머리를 가진 헤라클레스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잘린 머리에서 부단히 새로운 머리가 생겨나 움직임으로써 헤라클레스를 당황케하고 헤라클레스의 행동을 규정합니다.


히드라는 다양성과 생성을 상징하며 그 흐름들의 연합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창조적 힘들이 존재하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히드라는 21세기에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갈 주체성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저항의 주체성이며 생성과 구성의 주체성이고 동시에 연합의 주체성입니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를 죽일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커다란 바위로 히드라를 눌러 놓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히드라는 역사 속에서 꿈틀거리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의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민중적, 대중적, 다중적 잠재력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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