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근대 군주론

비판이론, 좌파전략, 그리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형성
The Postmodern Prince : 
Critical Theory, Left Strategy, And The Making Of A New Political Subject

존 산본마쓰 지음
신기섭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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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서 근대 이후로의 이행기에 적합한 새로운 집단적 정치 행동 주체인 탈근대 군주를 모색하다.

 

주체의 소멸을 초래한 푸코와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마르크스, 그람시, 마르쿠제의 정신을 이어 21세기에 적합한 정치이론과 인문주의(휴머니즘)의 한계를 넘어서는 메타인문주의(메타휴머니즘) 철학을 탐구한 미국 신진 좌파 철학자의 ‘실천을 위한 이론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통렬하고 정밀한 비판과, 진보운동의 윤리적‧정치적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통찰력 있고 현실적인 설명을 결합한 책이다. 훌륭하고 도발적인 이 책은, 맑스와 그람시, 마르쿠제를 잇는 최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좌파 이론의 임무는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로저 고틀리브, 『맑스주의 1844-1990』의 저자

 

처음부터 끝까지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이 책은, 정치학의 언어가 그람시의 맑스주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여성주의, 급진적 생태주의, 종교 같은 전통들과 복잡하고 어려운 다양한 접촉을 거치면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연구서다. ― 칼 보그스, 로스앤젤레스 내셔널대학, 『제국의 기만: 미국 군사주의와 끝없는 전쟁』의 저자

 

이 책은 최근 몇 십 년 동안의 좌파 실천에 대한 놀라운 고찰과 비판을 담고 있다. 산본마쓰는, 좌파가 통일성과 전략적 행동을 희생하면서 차이와 자기표현을 추구함으로써 스스로의 기반을 허물어뜨렸다고 논한다. 또 포스트모던 이론은 좌파와 밀착하기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임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지적한다. 그는 모든 생물체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급진적 정신의 형성을 촉구한다. 좌파의 활성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읽어야 할 책이다. ― 바버라 엡스타인,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탈근대 군주란 무엇인가?

 

탈근대 군주라는 말은 형용 모순처럼 느껴진다. 합리적 이성과 계몽사상을 뼈대로 하는 근대의 확실성을 거부하는 탈근대 또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시대에, 근대 정신이 성공리에 제거한 정치 주체인 군주를 논한다는 건 시대착오적이거나 역설이다. 저자 존 산본마쓰는 확실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요즘이야말로 군주를 탐구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역설적 상황임을 보여준다. 또 이 과정에서 1960년대 신좌파의 등장,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꼼꼼하게 읽고 이 이론들의 인식론적 오류와 실천적 결함을 철저하게 비판함으로써, 이 논의가 수십년의 사상 변화를 외면하는 시대착오적 논의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헤겔과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엥겔스부터 루카치, 그람시, 마르쿠제, 푸코, 메를로퐁티, 알튀세까지, 그리고 20세기 후반부의 여성주의 이론가 메리 데일리와 다나 해러웨이, 탈식민주의 연구자 호미 바바와 가야트리 스피박, 그리고 최근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하트와 네그리까지 서구 학계 전반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학자들의 이론과 저서를 꼼꼼하게 분석한다.

 

잘 알다시피 『군주론』은 15-16세기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논쟁적인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은 정치에서는 도덕도 양심도 없는 권모술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유쾌하지 못한’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의 진면목은 어쩔 수 없는 ‘운명’(포르투나)에 맞서기 위한 ‘능력’(비르투)을 어떻게 형성할 것이가를 논하는 데 있다. 운명은 거역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미리 대비하면 피할 수 있거나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군주의 능력이다. 그리고 군주의 능력은, 때로는 도덕적으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인민 대중에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대중들을 역사의 흐름에 맞서는 집단으로 키우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구체적으로 군주와 대중이 합심함으로써 이탈리아를 통일된 강대국으로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로부터 400년 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정치혁명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 책의 진정한 의미에 주목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현실 정치론을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과 종합해 20세기 초 자본주의 상황 속에서 재해석함으로써 군주론을 집단적 주체인 인민 대중의 혁명론으로 발전시켰다. 그에게 있어서 근대 군주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정당인데, 선거를 위한 구체적인 조직체뿐 아니라 정치적 목표를 위한 사회 단체를 포괄하는 의미에서 정치 결사체이다. 근대 군주라는 이 결사체는 핵심 지도부, 인민 대중, 그리고 인민 대중에서 배출된 유기적 지식인의 세 요소로 이뤄진다. 각성한 전위적 인자와 이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인민 대중이라는 레닌식 전위 정당과의 가장 큰 차이가 유기적 지식인의 기능에 있다. 유기적 지식인은 지도부와 인민 대중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핵심 고리 역할을 함으로써, 관료주의와 독재를 배제하는 민주적인 정당의 바탕을 이룬다.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그람시의 근대 군주론은, 그의 대표작인 『옥중 수고』의 곳곳에 조각조각 숨어 있다. 그람시는 이를 별도의 작품으로 출판하려고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파시스트의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미국의 신진 좌파 철학자인 존 산본마쓰의 『탈근대 군주론』은 그 바탕을 마키아벨리를 계승한 그람시의 근대 군주론에 두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시대나 그람시의 시대는 기존 질서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새로운 질서가 아직 확립되지 않던 때다. 운명(포르투나)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능력(비르투)을 발휘할 새로운 형식의 주체 형성이 시급했던 것이다. 세계체제론자 이매뉴얼 월러슈틴은 지금을 500년을 존속했던 자유주의 체제가 해체되는 때로 규정한다. 그리고 “인간의 개입이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때는 상대적인 질서의 시기가 아니라 혼돈의 시기이다.”라면서 새로운 질서 확립을 위한 실천을 촉구한다. 산본마쓰 또한 지금을 체제 위기에 직면한 이행기로 규정하고, 지금의 역사적 조건에 적합한 구체적인 형식 곧 탈근대 군주의 건설을 주장한다. 그의 탈근대 군주는 뿔뿔이 나뉘어 있는 다양한 저항 운동과 문화 운동들을 단일한 운동으로 모으는 주체이다. 하지만 이 단일한 운동이라는 형식은 구성원들의 개별적 정체성을 모두 배제하는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차이와 정체성을 인정한 가운데 그들의 공통점을 찾고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결합을 이루는 형식이다.

 

탈근대 군주의 형성 필요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비유가 어둠 속에서 코끼리 만지기의 비유다. 중세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교의 시인 루미는 어둠 속에서 여러 사람이 코끼리의 일부를 만진 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를 들려준 뒤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 각자는 한 부분씩을 만졌도다/ 그리고 전체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도다. /손바닥과 어둠 속의 느낌은 /감각이 코끼리의 실체를 어떻게 탐색하는지 보여주도다. /우리 각자가 촛불을 들고 있었다면 /그리고 함께 갔다면 /우리는 그걸 볼 수 있었으리라.”

 

이 촛불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동성애운동, 반인종차별운동, 동물권 보호운동 등 수많은 사회 운동들의 고유한 세계관,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촛불들이 모이면 이 세계의 진짜 문제가 코끼리의 전체 모습처럼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주의자들은 여성의 대상화가 노동자의 대상화와 같다는 걸 보게 된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은 노동자의 굴욕과 불명예가 동성애자 폄하와 같다는 걸 보게 된다. 유대인들과 유색인들은 동물을 노예처럼 다루고 때리고 학대하는 것이 바로 자신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행동의 논리적 지평이자 전형적인 실습 행위임을 보게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흩어진 저항 세력들이 자신들 앞에 놓인 현실 문제와 정신적 도전 과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각자의 관점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근대 군주라는 구체적인 형식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인 세계관 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도 역시 저자는 마르크스와 그람시의 전통을 따르되,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고 한다. 19, 20세기 좌파 사상의 핵심에는 자본의 인간 상품화에 맞서는 인문주의(휴머니즘)가 자리잡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메타인문주의(메타휴머니즘)로 확장하려 한다. 메타인문주의는 인문주의, 계몽 등 진보적 전통을 계승하되 인간 중심주의로서의 인문주의를 넘어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그는 ‘인간’(human) 개념을 동물까지 확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곧 감각이 있고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에 대한 공감과 그 존재들에 주목하는 세계관인 것이다. 저자는 동물(animal)이라는 말의 기원이 영혼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니마(anima)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동물의 문제에 주목하자는 주장은 최근 서구에서 점차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제 전통에서 여성은 동물과 다름없이 취급당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 생태여성주의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날 때, 존재론적 오류로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회주의가 새로운 활력을 얻고 진정한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메타인문주의를 통해서, 탈근대 군주는 제 자신의 바탕이 단지 역사적이거나 ‘유물론적’인 게 아니라, 예컨대 자본주의 구조 내 모순들의 명백한 드러냄 같은 것에 국한하지 않고, 존재론적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탈근대 군주의 바탕은 자유와 사랑을 추구하는 모든 생명 있는 유기체들의 텔로스(궁극의 목적)에 있다. 실존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탈근대 군주는 존재의 완성을 향한 세계내존재의 무의식적 노력, 자율성과 연대간의 그리고 자아와 타자간의 영구적인 윤리적 변증법 속에서 드러나는 노력의 현상적 형식이다. (중략) 탈근대 군주의 궁극적인 영적 또는 ‘종교적’ 목표는 이 에로스, 삶의 원칙을 타나토스 또는 죽음의 본능에 뿌리를 둔 모든 사회적 훼손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기존 사회 운동들이 에로스, 삶의 의지의 차별적이고 부분적인 표현이 아니면 무엇인가?) 존재 곧 절대자로서가 아니라 이 세계내존재로서의, 고통을 겪는 이 동물로서의 ‘존재’를 옹호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 타도를 위해 투쟁하고 여성들이 남성의 특권과 권력에 도전하기 위해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메타인문주의는 단지 감각 있는 존재의 경이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이는 생활세계를 지키기 위한 열정적인 윤리학이고 정열적인 정치론이다. “오늘날 삶을 위한 투쟁, 에로스를 위한 투쟁은 정치적인 투쟁이다.”

 

한마디로 산본마쓰의 탈근대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마르크스의 철학을 결합한 그람시의 사상을 21세기 현실에 맞게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도에는 인간 주체와 대상의 상호 관계성을 강조하는 후설과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그리고 여성주의(페미니즘)의 최신 경향에서 가장 잘 구체화한 ‘동물을 포함한 타자에 대한 공감의 윤리학’이 중요하게 개입하고 있다. 그래서 산본마쓰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섬세한 감수성과 윤리를 바탕으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철학을 자본의 횡포가 극에 달한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대안 철학으로 발전시키려는 현상학자로 평가할 수 있다.

 

 

탈근대 군주론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의미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의미는, 저자가 한국어판을 위해 지난 5월 따로 쓴 서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오늘날 미국 좌파가 직면한 전략적 도전들은 남한 좌파들이 직면한 도전과 많이 다르지 않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남한 좌파들은 이쪽저쪽으로 끌려다니면서 혼란에 빠져 있다. 노동계급의 정체성이 약해지고 노조가 약화되며 수많은 소규모의 항의 집단과 쟁점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의 좌파들은 분명한 구심점을 잃은 상태다. (중략) 이른바 ‘신사회운동’ 곧 여성주의운동, (환경운동연합 같은) 환경‧생태운동, 동성애운동, 동물보호운동 같은 운동들은 거대한 젊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과거의 노동 지향적 운동들보다 일반 대중의 관심 및 가치와 더 ‘통하는’ 도덕적 전망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운동들 또한 효과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응집하지 못했다.(중략)

 

그런데 남한의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적 좌파들은 어떤가? 1990년대 이후 정부에 의한 노동운동 억압 및 체제 내 흡수 시도가 노조 조직화와 사회주의적 행동주의에 많은 손실을 끼쳤다. (중략) 나는, 현재 한국 좌파의 위기의 깊이가 바로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전략 행동 패러다임이 더 이상 한국 상황에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중략)

 

1993년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전 한국 상황에서, 레닌주의는 어떤 면에서 일리가 있었다. 볼셰비즘이 번성한 혁명 전 러시아에서처럼, 한국의 저항세력들은 부패하고 무능하며 억압적인 정부 기구에 맞섰다. 또 마오주의가 번성한 혁명 전 중국에서처럼, 제국주의와 외세의 지배 문제가 중대하게 보였다. 그래서 남한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아시아의 혁명 전통 곧 반제국주의적이고 레닌주의적인 전투성에서 많은 걸 빌려온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중략)

 

반어적으로,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면서 한국의 좌파는 서방의 저항 세력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대중적 에너지를 집중할 구체적인 기구 또는 기구들이 없는 선진자본주의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중략) 게다가 미국식 상품 물신주의가 전 세계에서 거둔 승리는, 삶의 본능의 좌절을 유발하는 동시에 이를 헤픈 씀씀이를 통해 승화시킴으로써 대중적 저항의 본능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경향을 띤다. 오늘날 대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소비주의다. 그리고 이는 집단행동에 심각한 걸림돌들을 만들어낸다. 한국의 좌파는 ‘가톨릭’ 곧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맞서 싸우는 법을 알지만, 새로운 ‘개신교’ 곧 개인주의와 사유화와 값싼 소비재 상품의 이념에 맞서 싸우는 법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복잡한 시민사회를 특징으로 하는 남한과 같은 ‘선진’ 자본주의적 상황에서는, 내가 이 책에서 정교하게 다듬으려 시도한 정치이론을 제기했던 20세기 초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이 레닌이나 트로츠키의 사상보다 훨씬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어서 산본마쓰는 이렇게 결론 맺고 있다.

 

전 세계 좌파가 직면한 도전은 낡은 맑스주의적 패러다임을 새로운 총체성 개념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총체성은 여성주의, 생태학을 비롯한 많은 해방 기획들을 일체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고 이중적인 종합이 시급하다. 그건 새로운 실천철학을 개발하는 이론 영역의 종합과 우리의 뿔뿔이 나뉜 사회 운동들을 통일시키는 실천 차원의 종합이다. 아시아에서건, 라틴아메리카에서건, 아프리카에서건, 유럽에서건,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탈근대 군주론의 구성

 

이 책의 주요 내용은 크게

1) 1960년대 신좌파의 등장 이후부터 2000년대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비판적 이론의 변천 분석과 비판

2)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집단적 실천 주체 형성을 꾀한 안토니오 그람시와 모든 종류의 전략적 정치 사상을 거부하고 인간 주체를 해체시킴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을 촉발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 비교 분석

3) 그람시의 근대 군주를 확장한 탈근대 군주론과 메타인문주의 제시

이렇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1960년대 신좌파부터 『제국』에 이르기까지의 비판적 이론 분석(1-4장)

1장은 1960년대 초반 미국 청년운동에서 시작된 신좌파의 낭만적 저항 의식을 분석한다. 또 전략을 거부하고 단일한 정치 구조를 형성하는 대신 각자의 내적 욕구를 표현하는 데 치중한 신좌파 운동의 한계를 지적한다. 특히 신좌파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 구실을 한 노먼 O. 브라운과 허버트 마르쿠제의 논쟁을 통해서 이 한계를 이론적으로 분석한다. 브라운은 끝까지 전략을 거부한 반면 초기에 브라운과 비슷한 관점을 제시하던 마르쿠제는 후기로 갈수록 전략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점차로 그람시의 사상에 가까워진다.

2장은 60년대의 반 전략주의와 표현 강조가 70년대 여성주의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강화됐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흐름은 한마디로 ‘방언으로 말하기’로 표현될 수 있다. ‘방언으로 말하기’는 공통의 언어 속에 억압되어 있던 여성의 독자성, 여성 각자의 구체적인 경험을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하는 걸 상징한다. 특히 이 장에서는 여성주의 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메리 데일리와 데일리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여성주의를 운동이 아니라 담론의 영역으로 바꿔 놓은 다나 해러웨이를 대비하고 있다.

3장은 80년대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학문 영역까지 자본의 상품화 논리가 철저하게 침투하면서 실천과 괴리된 이론이 상품으로 전락하는 양상을 분석한다. 대학이 자본의 논리를 충실하게 따르면서 여성주의, 인문학 등 이른바 ‘비판적’ 이론들은 사용가치는 물론 교환가치마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위기를 느낀 학자들은 현란한 문체, 난해한 문장, 내용보다는 겉치장에 몰두하는 장식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론이라는 틈새시장에서 교환가치를 높이는 데 몰두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탈식민주의 연구자로 꼽히는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이다. 이들에게는 이제 이론은 실천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론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실천 행위로 여겨진다.

4장은 푸코를 필두로 한 프랑스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미국 이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분석한다. 푸코는 경험이 지식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주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담론 구조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지배체제에 억압당하던 지역적 기억, 하위계층의 목소리들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푸코의 가르침을 따라서 주체를 완전히 말살함으로써 실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2) ‘군주’ 그람시와 ‘고고학자’ 푸코의 비교(5장)

5장은 선진 자본주의의 복잡한 사회 구조에서 대항 헤게모니 블록 형성을 고민한 그람시와 차이를 강조하고 전략을 거부한 푸코를 대비한다. 그람시는 저항을 위해서는 헤게모니 형성과 연합이 필요하다고 지도력이 요구되며 진리는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지지만 실천에서 증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푸코는 저항은 차이와 분산을 통해서 전개되어야 하고 지도력은 필요 없으며 진리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면 권력의 형식이자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푸코의 논리를 따르게 되면 전지구적인 위기 국면인 현 단계에서 저항적 실천의 전망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3) 탈근대 군주론과 메타인문주의(6-7장)

6장은 레닌의 전위당 전략의 문제점을 그람시의 당 지도부-유기적 지식인-인민 대중의 유기적 관계와 대비해 지적한다. 또 탈근대 군주의 구체적인 모습을 멕시코 출신 이주 노동자 운동을 묘사한 미술 작품 「세사르 차베스」에 비유해서 구체화한다. 그림 속 차베스의 얼굴, 어깨, 가슴은 수많은 농부와 노동자, 여성과 남성, 백인과 갈색인이 함께 행진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그림의 배경에는 가난과 농약 중독으로 희생된 여성과 아이들의 두개골이 줄지어 있다. 이 그림이 묘사한 대중 대항권력의 복합적 구조야 말로 저자가 생각하는 탈근대 군주 상이다.

7장은 탈근대 군주의 철학이라고 할 메타인문주의의 제시를 시도한다. 메타인문주의는 다름과 같음을 소통시키기 위해 그리고 당위적인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철학적(존재론적) 그리고 정신적(도덕적) 바탕을 제공하는 이론이다. 그리고 저자는 타인의 고통에 주목하는 데서 비롯되는 윤리적 실천을 강조한다.

 

 

지은이

 

존 산본마쓰 John Sanbonmatsu, 1962~

 

일본계 미국 이민 2세인 아버지와 유대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자랐다. 1984년 햄프셔 칼리지를 졸업했고 2000년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의식의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워스터폴리테크닉대학 철학과 조교수로 있으면서, 정치 이론, 윤리학, 현상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반전운동, 동물 권리운동, 환경운동 등 많은 정치 활동에 참여해왔다. 이 책이 본격적인 첫 저서다.

 

 

옮긴이

 

신기섭 Shin Ki Sup, 1964~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 초 대학을 졸업하고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했다. 현재는 이 신문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이제는 미국이 대답하라』(당대, 2000), 『복권의 역사』(필맥, 2003), 『싸이버타리아트』(갈무리, 2004)가 있고, 『게릴라의 전설을 넘어』(생각의 나무, 2004)의 일부 번역을 맡았다.

 

 

한국어판 서문

 

『탈근대 군주론』의 한국어판 서문을 특별히 써줄 것을 부탁받은 것은 나에겐 영광이다. 세계체제의 ‘반(半)주변부’ 지역의 운동들 가운데 남한 좌파 운동처럼 지역 정치에 꾸준한 영향력을 끼친 것은 아주 드물다. 20세기 후반, 남한 좌파 운동은 전체 아시아 대륙에서 민주적 사회 평등을 가장 전투적으로 옹호하는 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대 광주항쟁과 학생-노동운동의 역사적 연대 활동은 미국의 뒷받침을 받던 독재 정권을 종식시켰으며, 지금까지도 집단 행동과 연대의 감동적인 전범이 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이 최근 좌절을 겪기는 했지만, 오늘날 남한 내 시민운동의 다양성과 폭넓음은 새롭고 더 유망한 저항과 혁명의 형식들이 미래에 한반도에서 등장할 것이라는 희망을 지니게 한다. 그래서 내가 한국 좌파들에게 직접 발언할 작은 지면을 제공받은 게 특히 기쁘다.

 

이 책이 주로 미국 내 사회 운동의 유효성 감소 추세와 비판적 이론 내부의 ‘장식적인’ 포스트모던 경향이 서구 저항 운동에 끼친 해악을 주로 다루기는 하지만, 상당 부분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관심있는 내용일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미국 좌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문제들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은 전 세계 저항 운동들과 공히 관련되는 중대한 역사적 위기의 징후이다. 세계체제의 병적인 현상들이 모든 문화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남한은 명백히 고유의 역학과 독특한 병리현상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 영역의 재벌 문제 같은 것이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의 위기 국면이 독특한 것은, 지구의 문화, 경제적 통합이 모든 차원 곧 지구적·지역적·국가적·국지적·생태적 차원에서 동시에 위기를 느끼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미국식 소비자 자본주의라는 단일한 발전 모델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반주변부 지역의 문화적 조건이 이른바 ‘중심부’의 조건들과 ‘가족적’ 유사성을 띠고 있음을 보게 되더라도 놀랄 게 없다. 자본주의가 어떤 궁극 목표를 지니고 있다면 결국 그건 보편적인 혁명이 아니라 보편적인 타락일 것이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보편주의는 모든 곳의 역사적 경험에 어떤 규격화를 강요한다. 성 매매가 됐든 아니면 학교 내 살인이 됐든, 부패와 타락의 형식들이 날로 서울, 도쿄, 카라카스, 로스앤젤레스에서 서로 닮아가고 있다. 한 국가의 정당성 위기가 모든 국가에 악영향을 끼치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계체제 내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정치적 조건들이 나타나는 걸 점점 더 자주 목격하게 된다.

 

세계화는 동과 서의 좌파를 단결시키는데, 이 단결의 방식이 언제나 적절한 것은 아니다. (이 서문에서 내가 주장하는 것과 특히 잘 연관되는) 예를 한 가지만 들자면, 저항적 지식 그 자체가 상품과 화폐의 유통을 통해 형성된 전 세계 무역망을 따라 주로 유통되고 있다. 현실에 있어서 이것이 뜻하는 바는, 중심지의 운동에 타격을 준 이론 형식들이 이제는 주변부와 반주변부의 운동에도 똑같이 피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중심지 곧 북부와 서방의 일류 대학과 문화 중심에서 생산된 최신 유행의 지식 상품들이, 태평양 연안과 남아메리카, 인도, 방글라데시의 해변에 밀려든다. 마치 흠이 있는 나이키의 스니커스 신발처럼 말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포스트구조주의 서사시, 『제국』이 떠오른다. 『제국』은 미국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외국 시장에 덤핑 수출됐다. 그리고 이 때문에 현지에서 생산된, 그리고 아마도 더 정직한 지식 상품들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간단히 말해, 한국과 여타 ‘중심부’가 아닌 지역에서 포스트구조주의 규범이 지니는 유혹은, 아마도 이 규범 자체의 독특하거나 명백한 매력보다는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의 놀라운 폭과 깊이와 더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미국 좌파가 직면한 전략적 도전들은 남한 좌파들이 직면한 도전과 많이 다르지 않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남한 좌파들은 이쪽저쪽으로 끌려다니면서 혼란에 빠져 있다. 노동계급의 정체성이 약해지고 노조가 약화되며 수많은 소규모의 항의 집단과 쟁점들이 등장하면서, 한국의 좌파들은 분명한 구심점을 잃은 상태다. 많은 운동들이 있지만 서로 흩어져 있고, 방향성도 없다. 물론, <자유무역협정 세계무역기구 반대 국민행동> 같은 반세계화 운동들이 저항을 집중하고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와 기타 유사한 자본가 조직들의 신제국주의 정책을 부각시키는 데 기여해왔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의 반세계화 운동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내 반세계화 운동은 지금까지 브뤼셀과 워싱턴의 신제국주의 구조에 대한 비판세력으로 유효성을 발휘한 만큼 국가 차원과 초국가 차원의 제도적 구조들을 바꿀 잠재력을 지닌 대중운동 주도세력으로서도 유효성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이른바 ‘신사회운동’ 곧 여성주의운동, (환경운동연합 같은) 환경·생태운동, 동성애운동, 동물보호운동 같은 운동들도 비슷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운동들은 거대한 젊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과거의 노동 지향적 운동들보다 일반 대중의 관심 및 가치와 더 ‘통하는’ 도덕적 전망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운동들 또한 효과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응집하지 못했다. 이는 부분적으론 만연한 편향 때문이다. 이 편향은 이론과 실천적 풀뿌리 조직화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데, 세계적인 것을 희생하고 ‘지역적인 것’에 우위를 두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생산을 조정하기 위한 주례 원격 화상회의를 진행하며, 은행가들은 매일 수조 달러의 돈을 국제적으로 주고받는다. 그런데, 진보 세력들은 지역주의적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에 묶여 있다. 심지어 유사 국가주의적 방식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남한의 맑스주의와 사회주의적 좌파들은 어떤가? 1990년대 이후 정부에 의한 노동운동 억압 및 체제 내 흡수 시도가 노조 조직화와 사회주의적 행동주의에 많은 손실을 끼쳤다. 특히 더 전투적인 맑스레닌주의 조직들과 이념 집단이 입은 피해는 훨씬 컸다. 남한에서 언제나 도전 과제였던, 노동계급의 대중적 기반 형성의 어려움이 아마도 맑스주의적 좌파의 전위적 경향을 더욱 강화시킨 듯 하다. 나는, 현재 한국 좌파의 위기의 깊이가 바로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전략 행동 패러다임이 더 이상 한국 상황에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레닌주의는 본래 제정 러시아의 총체적으로 불평등한 개발이라는 상황과 절대주의 왕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레닌이 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한다는 정치적인 문제를 강조한 것은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와 문화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만들었다. (혁명 전 러시아에서 사실상 시민사회라고 할 게 전혀 없었다. 기껏 있다면 다방, 귀족과 지식인 계층의 여름 별장 정도였다.) 그래서 1993년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전 한국 상황에서, 레닌주의는 어떤 면에서 일리가 있었다. 볼셰비즘이 번성한 혁명 전 러시아에서처럼, 한국의 저항세력들은 부패하고 무능하며 억압적인 정부 기구에 맞섰다. 또 마오주의가 번성한 혁명 전 중국에서처럼, 제국주의와 외세의 지배 문제가 중대하게 보였다. 그래서 남한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와 인권 측면에서는 의심스럽지만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전략적 성공을 거둔 아시아의 혁명 전통 곧 반제국주의적이고 레닌주의적인 전투성에서 많은 걸 빌려온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냉전 시기 동안 한국의 저항세력들은 부정적으로 곧 명백하게 불공평하고 비민주적인 정치질서에 대한 거부로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었다. 정치, 사회 생활은 먼저 남북한의 전쟁에 의해서, 그리고 다시 미국 지배에 의해서 과잉 결정됐다.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세력들이 권위주의적 정부에 맞서 결집하는 한,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 곧 한국의 사회주의적 대안의 성격 문제 또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문제 같은 것들은 뒷전으로 미뤄둘 수 있었다. 그렇지만 냉전 종식은 정치 상황을 명료하게 해주기는커녕 도리어 모호하게 만들었다. 반어적으로,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하면서 한국의 좌파는 서방의 저항 세력들과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 걸 깨닫게 됐다. 대중적 에너지를 집중할 구체적인 기구 또는 기구들이 없는 선진자본주의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역설 한 가지는, 새로운 시민적 자유가 장기적인 급진적 또는 혁명적 사회 운동 발전에 반드시 기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미국식 상품 물신주의가 전 세계에서 거둔 승리는, 삶의 본능의 좌절을 유발하는 동시에 이를 헤픈 씀씀이를 통해 승화시킴으로써 대중적 저항의 본능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경향을 띤다. 오늘날 대중의 아편은 종교가 아니라 소비주의다. 그리고 이는 집단행동에 심각한 걸림돌들을 만들어낸다. 한국의 좌파는 ‘가톨릭’ 곧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맞서 싸우는 법을 알지만, 새로운 ‘개신교’ 곧 개인주의와 사유화와 값싼 소비재 상품의 이념에 맞서 싸우는 법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복잡한 시민사회를 특징으로 하는 남한과 같은 ‘선진’자본주의적 상황에서는, 내가 이 책에서 정교하게 다듬으려 시도한 정치이론을 제기했던 20세기 초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이 레닌이나 트로츠키의 사상보다 훨씬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윤리적으로도 더 바람직하며, 전략적으로 더 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그람시는 자본주의 아래서 시민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새로운 종류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치는, 전면적 공세(‘기동전’)를 통해 국가를 장악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곧 문화적·경제적·정치적·윤리적 차원에서 섬세하고 유연한 투쟁을 벌이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그람시가 참호 속 전투에 비유한 이른바 ‘진지전’ 상태에서, 좌파는 끊임없는 전투성보다는 ‘도덕적이고 지적인 지도력’을 제시하게 된다. 끈기있고 부지런하게 통일적인 정치운동을 건설하는 걸 통해서, 다시 말해 서로 다른 분야와 이해관계들을 하나로 뭉친 헤게모니 블록을 형성함으로써, 혁명적 운동은 새로운 질서(l'ordine nuovo)를 만드는 데 충분한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그람시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남한 시민사회의 활력과 동력은 좌파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시한다. 한편으론, 대중 의식의 분열적 성질 곧 복합적인 사회적 기능과 소외된 삶의 양식은 어떤 종류건 정치 운동을 조직해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시 한번, 마르쿠제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에로스 또는 리비도적 삶-본능은 “억압적 탈승화” 곧 창조적 가능성과 실존적 실현을 지체시키는 구실을 하는 거짓 표현 방식의 등장에 의해 왜곡된다. 다른 한편, 이념적 영역의 개방성과 사회 내 소외의 폭과 넓이는, 완전히 다르고 더 급진적인 잠재력을 지닌 ‘총체성’ 개념을 씨 뿌릴 비옥한 토양을 창출한다. 기본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킴으로써 대중 소비사회는, 누구나 목격하듯이, 인간 개인의 충족되지 않은 진정한 심리-사회적, 영적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해방은 단순한 물질적 필요의 충족 이상의 어떤 것, 예를 들면 (자본의) 경제적 독재를 (프롤레타리아트의) 다른 독재로 대체하는 것 등으로 해석되기 시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 개념 그 자체가 이제 자유 곧 세계 내 인간 및 인간 아닌 존재의 정신적·감각적·성적·사회적 실현과 공존하게 된다. 사회주의의 과제는 더 이상 단순히 자본주의 거부가 아니다. 자유로운 의식과 경험의 새로운 방식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거부되어야 하는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기획은 자본에 대한 투쟁을 초월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또는 보편적인 해방을 위해서는, 모든 형식의 지배를, 그것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건, 이성애자의 동성애자 지배건 아니면 인간에 의한 동물의 지배건 그 어떤 지배도 없애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세계 좌파가 직면한 도전은 낡은 맑스주의적 패러다임을 새로운 총체성 개념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총체성은 여성주의, 생태학을 비롯한 많은 해방 기획들을 일체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고 이중적인 종합이 시급하다. 그건 새로운 실천철학을 개발하는 이론 영역의 종합과 우리의 뿔뿔이 나뉜 사회 운동들을 통일시키는 실천 차원의 종합이다. 아시아에서건, 라틴아메리카에서건, 아프리카에서건, 유럽에서건,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목차

 

감사의 말씀

한국어판 서문

서문

 

1장 좌파를 낭만화하기

감정의 낭만적 구조

믿음 대 행함

노먼 O. 브라운의 오순절 신비주의

병적인 증상이 등장하다

표현주의적 유산

 

2장 방언으로 말하기

사이보그가 방언으로 말하다

‘침묵 깨기’: 포스트모던 정체성 정치

말은 계속된다?(La Lingua Continua?)

표현주의 대 사물화

 

3장 장식적인 이론

‘사용 가치’와 이론의 장식적인 무기

상품 미학

이론의 ‘추세 혁신’

이론의 자율성에 반하여

실천으로서의 이론

 

4장 프랑스 이데올로기

알튀세, 푸코, 그리고 경험의 청산

“둘, 셋… 많은 정신들”: 사물화와 자동인형 제국

실천의 교리문답

 

5장 군주와 고고학자

모범적 삶들

근대 군주의 능력

전략과 근대 군주

푸코의 전략에 대한 ‘위대한 거부’

권력 독해력 가르치기

페다고지(교육학)에 반해서

운명(포르투나)의 반전

 

6장 탈근대 군주

근대 정치 사상에서 형식

레닌의 리바이어던

입장하다, 왼쪽 무대로: 근대 군주

단결과 차이: 번역의 도전

탈근대 군주

총체성과 지각

새로운 총체성 이론을 향하여

 

7장 메타인문주의

타자에 대한 공감과 주목

인문주의, 고통, 그리고 사랑

새로운 영적 지식

에로스를 위한 투쟁

 

맺음말

 

옮긴이 후기

인명 찾아보기

용어 찾아보기

 

 

책 정보

 

2005.8.25 출간 l 145×215mm, 무선제본 l 카이로스총서6, Virtus

정가 16,000원 | 쪽수 432쪽 | ISBN 9788986114812

 

 

구입처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미디어 기사

 

[한겨레] 포스트모더니즘의 공세 방언으로 소통막힌 저항운동

[대전일보] 신간소개 / 탈근대 군주론

[경인일보] 눈길끄는 볼만한 책 / 탈근대 군주론

[중앙일보] 이 시대 좌파는 무엇으로 사는가

[조선일보] 한줄읽기 / 탈근대 군주론

[시사저널] 포스트모던 시대에 군주를 부르는 뜻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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