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 선 세상에서 어린이와 어른, 여성과 남성, 노동과 삶이 엮어짜는 행복한 교감!
작가 김하경이 길어 올린 희망과 사랑의 이야기!
간략한 소개
1992년에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작가 김하경이 짧은 소설집 『숭어의 꿈』을 펴냈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15편의 짧은 소설과 ‘해동이네’를 무대로 펼쳐지는 짧은 소설 연작 13편을 묶어 냈다. 이 작품집에서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비정규직, 정규직, 생산직, 사무직 등 다양한 일터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사랑, 혹은 회사 내 또는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노동과 자본의 힘 관계와 싸움, 가족 관계 내에서의 갈등과 화해 등 노동자들의 삶의 단면들이 따뜻하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펼쳐진다.
상세한 소개
1.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물구나무 선 세상
1991년 김하경은 『전국노동자신문』에 ‘해동이네 집’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때 작가에 의해 ‘태어난’ 해동이는 7살이었다. 곧 스무 살이 될 해동이가 마주칠 세상은 10여 년 전 풍경과 얼마나 다를까? 해동이가 ‘해동이네’를 벗어나 맞닥뜨릴 세상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1991년 박창수 위원장이 전노협 연대회의 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전 조합원이 집단조퇴를 하고 규탄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회사는 노조간부 46명에게 1억 2천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박창수 위원장은 억울하게 의문의 죽음을 당했으나, 손배청구는 죽기는커녕 시퍼렇게 살아 있었고, 그 여파로 조합은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 <어떤 법정> 中에서
2003년 1월, 창원 두산중공업에서 배달호 씨가 손배 가압류에 항의하며 분신한 이래로 부산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과 곽재규 씨,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전남본부장, 금속노조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 등이 목숨을 내놓고 이에 항거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목숨을 내 건 노동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 수직으로 도약하는 노동자의 꿈, 숭어의 꿈
숭어는 연안에 서식하지만 강 하구나 민물까지도 들어온다. 물속 어딘가에 있어 우리 눈에는 마치 죽은 것처럼, 사라진 것처럼, 혹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지만, 이따금씩 수면 위로 도약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숭어. 꼬리로 수면을 치면서 수직으로 상승하는 숭어의 도약은 노동자의 힘과 꿈을 상징한다. 작가 김하경은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와 함께 숨쉬고 느끼며 노동자들과 함께 도약한다.
“숭어는 낚시로 잡는 게 아냐. 그물이나 훌치기로 잡는 기다. 가덕도에서 숭어 잡는 얘기도 몬 들었나? 사람이 높은 언덕에 올라가 숭어 떼가 몰려오나 지켜보고 있다가 깃발로 신호를 보내는 기라. 그라마 배 두 척이 양쪽에서 그물을 던져 삥 둘러싸고 막대기로 막 휘젓고 억수루 시끄럽게 소리를 내마 숭어가 겁이 나 소리 나는 반대쪽으로 몰려다니다 그물 안으로 걸려든다 이기라.”
길동의 박학다식에 하명은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길동은 어깨를 좍 펴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에 힘을 준다.
“원래 뛰는 고기는 미끼를 물지 않는 법이다. 알긋나?”
- <뛰는 고기는 낚시를 물지 않는다> 中에서
3. 변방에서 쏘아올린 우리 문학의 아름다운 알리바이
너도 나도 노동문학을 하겠다던 한 시절이 마감된 이래 수많은 노동문학 작가들이 제 갈 길을 찾아 떠나갔다. 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일터에서 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며 싸우고 있는데 그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작품은 드물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견뎌내고 참을 것’만을 일관되게 요구하는 ‘느낌표’ 류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남루한 삶을 찬양하는 것과 같으며, 미래로 꿈을 계속적으로 유보시키려는 요구일 따름이다. 반면, 문학이 현실을 외면하거나 또는 지배적 현실만을 옹호할 때, 고통스러운 ‘인간 문제’를 껴안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내는 작가들이 있다. 김하경도 그중 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마산·창원에 터를 잡고 묵묵히 노동 현장의 삶에 천착해 온 김하경의 작품에는 ‘싸우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노동문학과 다르다. 어찌 보면 별스러울 것도 없는 노동자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는 섬세한 눈이 기존 노동문학이 지니고 있던 도식적인 그것과는 다르다.
4. 민주노조운동의 주역들과 87년 세대, 그리고 우리 시대에 사랑과 희망의 꿈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인간 존엄의 초대장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당시 2~30대였던 민주노조운동의 주역들이 중년이 되었고 그 주역들의 아내도,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한 세월을 지나쳐 왔다. 삶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했고, 그 세월의 더께만큼 고통, 회한, 추억, 기억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때의 꿈과 의지를 잃어버리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관성과 습관처럼 ‘운동’하지만 활력을 잃어버린 채 그저 직업으로, 생계의 수단으로 운동하고 있기도 하다.
『숭어의 꿈』은 그때의 꿈을 찾고 싶어 하는 그 모든 이들에게 바다에서 힘차게 솟구쳐 오르던 그때로 데려가 준다. 아직도 현장에서 소중한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 삶의 현장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싸워가는 이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책이다.
지은이
김하경, 1945~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인일여고, 봉천여중, 신림여중 등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주간시민』에 칼럼을 연재했고 1978년에 교육평론집 『여교사일기』를 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는 동아방송, 한국방송공사에서 방송 작가로 일했다.
1985년부터 서울 사당3동 세입자대책위원회에 참여했고 1988년까지 서울시 철거민협의회, 전국 빈민협의회 등에서 빈민운동을 했다. 1988년 계간 『실천문학』 봄호에 단편 「전령」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1989년부터는 월간 『노동해방문학』 5·1 문예창작단에 참여했다. 1990년 11월 『합포만의 8월』로 제3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이듬해 『그해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꽁트집 『호루라기』(과학과 사상사, 1992)와 장편소설 『눈 뜨는 사람』(일터와 사람, 1994)을 냈고, 마창지역 노동소설 모음집 『그래! 다시 하는 거야』(1994)를 엮었다.
1999년 한국 민주노동사 연구의 소중한 모범이자 치열한 보고문학인 『내 사랑 마창노련』(갈무리) 상·하권을 출간했다. 경남도민일보 상임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보르헤스와 마르께스의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들과 아라비안 나이트를 정독하고 분석한 후 2003년 7월부터 진보네트워크(www.jinbo.net) 참세상에 <김하경이 들려주는 천일야화>를 연재중에 있다.
저자 머리말
비상구가 없다
2003년 10월 17일 부산의 한진중공업노조 김주익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9일 동안 35미터의 크레인 위에서 사상 초유의 초특급 태풍 ‘매미’에도 끄떡 않고 버틴, 마흔 살 사나이가 세 아이와 아내를 남겨 두고 차디찬 시신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아직도 크레인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시신을 떠나지 못한 그의 영혼 역시 크레인 상공에 매달린 채 구천을 헤매고 있다. 깃발로 상징으로 펄럭이고 있다.
6일 후 2003년 10월 23일이다. 이번엔 대구에서 세원 테크 이해남 노조지회장이 마흔 한 살의 목숨을 불살랐다. 또 사흘 뒤 2003년 10월 26일 서울에서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지역본부장이 서른 한 살 아까운 목숨을 뜨거운 불 속에 던졌다.
대기업노동자, 중소기업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가 똑같이 죽음을 택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30년 넘게 노동자의 죽음이 계속되는 나라 대한민국. 카드 빚에 몰린 도시 서민들, 농가부채에 허덕이는 농민들과 황폐화된 어장에 한숨짓는 어민들 모두가 벼랑 끝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2003년 지금, 이 나라 대한민국에는 비상구가 없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1990년부터 수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제3자 개입금지를 철회하기 위해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피를 철철 흘리고, 정문에서 쫓겨나고, 철창에 갇히고, 심지어 하나뿐인 목숨까지 제단에 바쳤다. 그러나 세상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던 1996년 12월, 엄동설한의 매서운 추위를 뚫고 뜨거운 총파업의 열기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1997년 5월 노동법개정이 이루어져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스르르 제 풀에 사라져 버렸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제도가 시행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손에 피를 안 묻히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칼이다. 칼날도 보이지 않는 이 칼에 목이 베인 사람들이 그 얼마던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운명은 또 얼마나 참담하게 뒤바뀌었던가.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가 죽었을 때 정부는 가압류의 남용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입에 침도 마르기 전에 정부는 철도 노동자들에게 가압류를 남용했다. 그리고 이제 줄줄이 노동자들이 피를 바쳤음에도 가압류는 풀리지 않고 있다.
이 책은 10년 동안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쓴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장의 시계는 멈춘 지 오래다.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다.
아니다. 더 나빠졌다. 점점 더 넓게, 모든 일터로 확대되고 있다.
하기야 삶의 현실뿐인가. 역사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태풍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던 100년 전의 우리 역사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똑같다. 보수와 진보의 날선 대립은 여전하고, 미 일 중 러 등 열강에 포획된 채 북 핵과 이라크 파병 등 나라 안팎이 전쟁의 위협 속에 떨고 있다. 지구제국 전체가 길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다. “어제의 불행은 끝! 오늘의 행복은 시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현실의 이야기를 끝낼 수가 없다. 멈출 수가 없다.
강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그러나 오늘의 강물은 어제의 강물이 아니다.
역사도 똑같이 되풀이 되어 계속된다. 그러나 과연 오늘의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제의 우리보다 오늘의 우리는 더 지혜롭고 더 깊고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동소설
노동현장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린다. 표정이 굳어진다.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긴장한다. 주눅이 들어 몸을 움츠리기도 한다. 불편해하며 도망가거나 피하기도 한다. 가해자처럼 부채의식을 느낀다. 동참하여 함께 싸우든가, 하다못해 위로나 용기를 주는 말 한 마디, 물질적 도움이라도 줘야한다는 부담을 갖는다. 좋을 리가 없다. 안 보고 싶고, 안 듣고 싶어 한다. 알고 싶지 않아 도리질하고 외면한다.
나도 그랬다. 살림살이가 다 부서진 스산한 철거현장을 찾아가기 전에도 그랬고, 구사대에게 두들겨 맞은 조합원들을 방문하기 전에도, 열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전에도 그랬다.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참 묘하다. 막상 현장을 찾아가보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참담한 비극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붕대 감은 손으로 여전히 먹고 마신다. 다리를 절룩이며 웃고 떠들고 농담까지 나눈다. 슬픔, 분노, 절규만이 가득 차 있을 거라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다. 심지어 시신을 옆에 놓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도 간다. 사람이 참 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사랑하는 동지가 다치고, 죽었는데…….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인생이 뭔지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한 병원 안에도 산부인과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영안실에서는 죽은 시신이 누워있다. 살다보면 기쁨과 슬픔이, 행복과 불행이, 믿음과 배신이, 희망과 절망이 어울려 찾아오지 않던가. 한 인간 속에도 사랑과 미움이, 용기와 비겁이, 장점과 단점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어울려있지 않던가.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때로 가증스럽게 남의 불행과 절망을 보면서 나의 행복과 희망을 확인한 적도 있다. 그런 나 자신을 혐오하면서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 나는 이것이 사람의 진짜 참 모습이란 걸 알았다.
그러니 도망쳐 봤자다. 좋은 것만 보고 살고 싶겠지. 하지만 그건 진실을 피해 가짜에게 도망치는 것과 같다. 일시적 도피일 뿐 언젠가는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진실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내가 주로 치열한 투쟁현장을 다루는 것은 그곳이 긴장과 갈등이 폭발하는 마지막 극점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는 진실과 허위가 가장 잘 보인다. 인간의 참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한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건 쉽지 않다. 복잡하게 뒤엉킨 삶의 미로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애매하게 흐려지고, 전형으로 단순화하면 도식적이 된다. 정말 어렵다.
이야기의 재미, 표현의 미학, 문학적 감동, 새로운 형식의 창조 등 모든 문학이 요구하는 것은 노동소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럼에도 다른 소설에 없는 특별한 요구가 또 하나 추가된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주제의식이다. 노동소설을 노동소설이게 하는 차별성이 이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한계를 드러내는 노동소설의 치명적 약점이기도 하다.
사상과 윤리가 아닌 현실로, 교육과 계몽이 아닌 감동으로, 이 한계와 약점을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예술의 다의성, 미학적 탄력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예술과 사회의 절묘한 결합을 이루라고 주문한다. 그것도 불완전한 언어를 가지고서 말이다.
허공에서 가느다란 외줄을 타고 있는 기분이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균형감각을 잃는 순간 그대로 땅으로 추락한다. 진땀이 난다. 피가 마른다. 하긴 글 쓰는 것뿐인가. 산다는 것 자체가 그렇긴 하다.
숭어의 꿈
잠시 눈을 돌려 시원한 바다를 바라본다. 숭어 한마리가 파란 바다 위를 솟구쳐 오른다. 그 역동적인 힘찬 몸짓에 가슴이 설렌다.
사진을 찍듯이 숭어가 바다 위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을 포착하여 글 속에 영원히 담아둘 수는 없을까. 인간과 삶의 몸짓으로 흉내 낼 수는 없을까.
힘찬 도약을 꿈꾸며 한때나마 그 솟구침 속에서 삶의 황홀함과 환희를 맛볼 수만 있다면, 마지막 죽음의 그물을 흔쾌히 맞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모두가 죽음이라는 그물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불멸의 삶을 욕망하는 건지도 모른다.
비록 자신의 존재를 위험에 노출하면서도 숭어는 힘차게 물 위로 솟구쳐 오른다. 이 도약이 숭어를 숭어답게 하는, 벗어날 수 없는 숭어의 운명이다. 인간도 마찬가지 아닌가. 수평의 바다 위를 수직으로 힘차게 솟구쳐 오르고 싶은 인간의 꿈, 그 솟구침을 위해 인간은 스스로 위험한 모험 속으로 온 몸을 던져 뛰어든다.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숭어처럼 힘차게 뛰어오르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그 몸짓들을 여기 실은 건 이 때문이다. 빛나는 삶의 한 순간들을 멈추게 하여 영원히 살아있는 불멸의 삶으로 지속시키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오늘도 모든 숭어들의 꿈, 모든 평범한 인간들의 꿈이, 욕망의 바다 위로 꿈틀대며 솟구친다. 그리고는 다시 미끄러진다. 나는 숨 죽여 기다린다. 다시 한번 황홀한 솟구침의 그 순간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어느새 나는 숭어가 된다. 숭어의 꿈을 꾼다.
2003년 10월 진동에서
추천사
내 기억에 김하경 선생을 만난 것은 살벌하던 1990년대 초 전노협 기관지 <전국노동자신문>에 노동자 이야기를 꽁트로 엮어 연재하던 지면에서였다. 군부정권의 모진 탄압에 맞서느라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꿈꾸는지 다룬 글을 일찍이 보지 못했던 터라 솔직히 신기했다. 그 뒤 마산에 머물면서 전노협 운동의 지역사라 할 마창노련사를 펴내려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 수고를 실감한 것은 두 권으로 묶어낸 『내 사랑 마창노련』을 보고 나서였다. 참된 뜻을 좇는 글은 아름답구나 싶었다. 노동자 뿐 아니라 지식인들에게도 우리 편과 상대 편이 분명하던 시절을 보내고 없는 사람들 속에서 뜻을 펴려던 사람들이 갈 길 찾아간 뒤에도, 김하경 선생은 변함 없이 노동자 속에서 숨쉬고 있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누가 뭐래도 이 시대는 자본에 맞선 노동의 시대요 노동의 숨결이 역사의 물줄기이기에, 함께 분투하며 노동의 숨결과 역사의 물줄기를 따뜻한 눈으로 읽기 쉬운 투로 엮어낸 이 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소중한 결실이다. ― 단병호(민주노총 위원장)
작가를 시대의 감각기관이라고 말한다. 예민한 더듬이로 한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인간문제를 포착하고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가장 밑바닥에서 포획해낸 인간의 기쁨과 슬픔, 비애와 희망을 그 시대가 도달한 가장 높은 정신적 지평에서 다시 노래하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이 옹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인간적 진실이 화려하게 떠도는 소문의 중심에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치 있는 것들은 언제나 변방의 버려진 것들 속에 있다. 김하경의 소설은 이중의 변방에서 쏘아 올린 우리문학의 아름다운 알리바이다. 현실에 대한 접근이 문학적 자살행위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김하경은 민중생활의 가장 밑바닥에서 인간이 지닌 감동의 실체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것도 서울에서 가장 먼 노동자의 도시에서 말이다. 노동하는 삶, 지방이라고 하는 이중의 변방에서 쏘아올린 김하경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다시 역사의 진정한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방현석(소설가)
나는 작가 김하경을 잘 안다. 지난 십 수 년 동안의 교우 속에서 나는 그가 나를 알기 이전부터 겪었던 기막힌 삶의 역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인 『그해 여름』을 쓰기 위해 내가 살던 마산, 창원 지역을 넘나들다가 기여 그 삶의 터전을 아예 마산으로 옮긴 이후, 그는 단 한번도 ‘딴 짓’을 한 적이 없이 오로지 ‘노동문학’의 화두만을 껴안고 조용히 몸부림치며 살았다. 그가 혼자서만 감당해야 했던 온갖 시련과 고통, 그리고 고달픈 사랑의 격정과 회한의 모든 흔적들이 그 동안 그가 해왔던 고독한 문학 작업 속에 배어 있음을 나는 안다. 노동문학, 민중문학을 앞서 주창하고 실천했던 그 많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노동문학을 부정하고 노동자를 부정하고 심지어 노동 그 자체를 부정하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화두를 찾아 너무도 가볍게 돌아오지 못할 먼 여행을 떠났을 때, 그는 그들이 잊어버린 그들의 고통조차도 자기 것으로 껴안고 부대끼며 살아왔다. ― 임영일(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목차
1부 뛰는 고기는 미끼를 물지 않는다
뛰는 고기는 미끼를 물지 않는다 │ 21
어떤 법정 │ 37
부메랑 │ 48
의견일치 │ 59
됐나? 됐다! │ 67
슬픈 첫사랑 │ 78
우루사 두 알과 박카스 한 병 │ 87
꿈이여 다시 한번 │ 95
하늘이 내린 큰 복 │ 102
우리 사랑 더 큰 힘으로 │ 109
2부 부시와 부시맨
유치원과 놀이방 │ 129
손배청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 134
원진 사람들 │ 140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146
꿈보다 해몽 │ 151
남자가 여자를 만났을 때 │ 157
나폴레옹이 아닌가벼 │ 162
괜찮아유 │ 170
호루라기 │ 177
부시와 부시맨 │ 182
피투성이 논 │ 189
가을 남자 │ 195
최후에 웃는 자 │ 204
3부 우리 아빠는 정비사!
천재와 바보 │ 213
붕어와 김 대리 │ 221
장미전쟁 │ 225
클랙슨이 세 번 울릴 때 │ 230
우리 아빠는 정비사! │ 235
책 정보
2003.11.25 출간 l 152×210mm, 무선제본 l 피닉스문예2 Cupiditas
정가 8,000원 | 쪽수 248쪽 | ISBN 9788986114607
구입처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미디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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