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

The Mountain Village

예쥔젠 지음
장정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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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90여년 전인 1927년경 중국 중부 후베이성 다볘산맥 부근 한 산촌의 가난한 농민들이 겪은 극적 체험을 통해 보여주는 현대 중국 형성사

 

한 폭의 서정적 그림으로 그려낸 중국 혁명의 핵심!

 

 

저녁이 될 때, 역사의 수레바퀴가 회전하기를 멈출 때, 마을이 잠들 때, 달이 하늘에 떠 있을 때, 사람들과 대지가 쉬고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무엇이 사람들의 정신으로 들어가는가? 만일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는 시인에게로 몸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작가 예쥔젠 선생이 바로 그 시인이다. 그는 현대 중국의 그 시기를 장편소설 『산촌』을 통해 거대한 예술로 그린 유일한 작가이다. ― 노르웨이어판 서문에서, 노르웨이작가협회 회장 한스 하인베르그(Hans Heinberg)

 

 

간략한 소개

 

1920년대 중국 중부 후베이성 작은 산골 마을의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상과, 혁명으로 인한 그들 삶의 극적 변화를 담은 역사 소설이다. 번역가이자 에스페란티스토, 잡지 편집자, 항일 투사였던 중국 작가 예쥔젠이 서방 세계에 중국 혁명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1947년에 영어로 쓴 책이다. 『산촌』은 중국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었다. 출간 후 20개국의 언어로 번역된 바 있다.

 

한적한 산골 마을에 변화가 몰아친다. 대기근에 이어 민란이, 혁명이, 패전 군인들의 약탈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낯선 청년들이 마을로 숨어든다. 혁명은 마을 사람들의 삶에 남아 있는 모든 전통적인 것을 부순다. 혁명은 대지주의 착취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반혁명 세력의 반동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산촌』은 ‘춘성’이라는 한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극적인 변화 속에 놓인 중국 농부들의 삶을 자세히 묘사한다. 묵묵히 고향을 지키는 어머니, 천연두에 걸린 고아 알란, 도시로 떠난 젊은 남편을 기다리며 실을 짜는 국화 아줌마, 소프라노와 테너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마을의 이야기꾼(설서인) 라우리우, 교사로서 존경 받는 뻬이후 삼촌, 암송아지를 자식처럼 아끼던 판 삼촌 등 매력적이고 선량한 등장인물들은 정겨운 산골 마을의 모습에 독자가 어느새 빠져들게 만든다. 

 

『산촌』은 중국 혁명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만났는지를 자세하게 그려 내기 때문에 중국 혁명의 핵심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관심이 있고 중국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재미있게 또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책은 역사를 의미 있게 기억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면서,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만연한 부패와 착취, 양극화 같은 문제들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책은 지은이 예쥔젠과 옮긴이 장정렬의 에스페란토 활동의 결과물이다. 옮긴이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저자와 그의 아들 예녠셴을 만났다. 또 옮긴이는 에스페란토로 그들에게 질문하고 그들과 대화하여 이 책의 번역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상세한 소개

 

중국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중국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어떤 화두인가? 방대한 인구와 영토를 가진,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 “반도” 사람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나는 나라, 값싼 노동력의 나라, 사업가들이 진출하려고 침을 흘리는 나라, 제주도를 집어삼키고 있는 나라, 단체 관광객의 나라.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중국에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적다.

중국 혁명은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가? 당시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가난한 농민들은 신해혁명, 5․4 운동, 국공합작, 국공내전, 중일전쟁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어떤 모습이었나? 20세기 초 중국은 경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와 그 연관성이 아주 긴밀하다. 그렇기 때문에 『산촌』은 중국에 관심이 있고 중국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재미있게 또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1927년경, 중국 산골 마을의 가난한 농민들의 이야기

『산촌』의 저자 예쥔젠은 1911년 신해혁명 3년 뒤인 1914년에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중국 중부 후베이성 홍안이다. 『산촌』의 배경이 되는 산골 마을도 예쥔젠의 고향 근처 다볘산맥 부근의 마을인 것으로 추정된다. 쑨원이 주도한 신해혁명은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을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혁명 이후 중국을 찾아온 것은 제국을 복고시키려는 세력들의 분투와, 군벌들 간의 내전이었다. 1925년 총통이 된 장제스(蔣介石)는 실질적인 중국 통합에는 실패하고 있었다. 내전은 수많은 중국의 농민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중국 사회를 연구하면서 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장면 1 : “근데, 삼촌. 은하수는 무슨 강인데?” “그건 하늘에 난 강이지.” 

이야기는 격변이 몰아치기 전 산골 마을의 정겨운 활력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날씨가 좋을 때는 이른 아침이든 해거름이든 산골에 노래가 들려왔다.” 해가 질 무렵이면 농부들은 하나 둘 강둑길에 나타났다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숲으로 하나 둘 사라진다. 강가에 넓게 펼쳐진 풀밭에서는 마을의 암소, 송아지, 수소가 풀을 뜯는다. 판 삼촌은 소년 춘성과 강을 바라보며, 이 강이 은하수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는 세상에서 제일 긴 강이라고 설명한다. 소년 춘성이 그러면 은하수는 무슨 강이냐고 판 삼촌에게 묻자, 판 삼촌은 은하수는 하늘에 난 강이라고 답한다. 

장정렬 역자는 옮긴이 후기에서, 산골 마을에 대한 소설의 묘사가 역자가 태어난 창원 북면 고향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고 쓰고 있다. 

 

"역자가 소년 시절을 보낸 창원시 의창구 북면의 고향 마을에서는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면, 산꼭대기에서 저 길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본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1960년대~70년대 초의 고향은 아직 전기와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전기 대신에 석유를 이용한 호롱불, 상수도 대신 마을 공동 우물을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 저 먼 들판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리어카를 앞세우고 하늘에 뜬 달을 보며 그 달빛으로 사람들이나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고르지 않은 신작로를 터벅터벅 걸으며 소년의 발걸음엔 정말 멀었던 4킬로미터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와 어머니와 소년."

 

장면 2 : “그래, 기어이 내가 우리 마을에 들어온 망령을 쫓아버릴 테다. 기필코!"

혁명을 새 왕조의 출현으로 알고 있던 이 마을에는 라오쯔(老子)를 스승으로 모시는 도사가 있었다. 도사 벤친은 “한때 떠도는 망령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이미 마을에서 웃음거리였다. 도사가 천연두에 걸린 환자를 앞에 두고 망령을 쫓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비웃는다. 혁명 세력이 마을에 온 뒤로 그는 “봉건 시대의 악마”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혁명 지도자는 마을 지주가 소유했던 땅을 도사에게 주면서, 앞으로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세가 역전되어 반혁명 세력이 마을에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혁명 세력으로부터 땅을 받았었다는 이유로 끌려간다. 1920년대의 중국 산촌은 옛 것, 익숙한 것이 급속하게 파괴되고, 정의와 부정의, 법과 불법이 하루아침에 뒤집히는 시공간이었다. 도사의 삶은 산촌의 기구한 운명을 보여 준다. 

 

“내 수첩에는 우리 당의 연구 위원회가 써 놓은 동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직업은 도사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그 직업을 그만두시오! 그 직업은 봉건시대 직업으로, 지배 계급에게는 호의적이었지만, 인민들을 속이는 데 써온 것입니다. 더구나 그런 방식으로 미신을 유포시키기도 합니다. 지역 당국은 당신에게도 세 무의 토지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동무는 산골짜기에 있는 추민 지주의 땅 중에 선택할 권한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농사짓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벤친 동무?”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다구요 … … .”

“하지만 이제부터 배워야 됩니다. 공동체의 모든 쓸모 있는 사람은 생산적인 일에 종사해야 합니다.”

 

장면 3 : “판 삼촌이야말로 착취계급에 본능적인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진정한 무산자입니다.”

어느 날 낯선 도망자 청년이 춘성의 집에 찾아온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초라한 행색의 청년에게 어머니는 차와 국수를 대접한다. 그는 몇 년 전 마을을 떠난 뒤 소식이 없는 청년 민툰을 알고 있고, 도시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는 춘성의 형도 알고 있다. 청년은 중국이 근대 국가가 되어야 한다, 외국을 본받아야 한다, 판 삼촌은 진정한 무산자다 같은 낯선 말을 늘어놓는다. 깊은 밤 현청 헌병대가 문을 두드리고 청년은 겁에 질려 자신을 숨겨 달라고 요청한다. 판 삼촌은 그를 짚더미에 숨긴다. 헌병대가 떠나자 그는 다시 도망친다. 1920년대는 중국에서 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혁명에 뛰어들던 시기이다. 

 

“자네는 정말 도둑인가?”“제가 도둑 같아 보입니까?” 

젊은이가 응수했다.

“아니, 그렇지 않은 것 같네.”

“그럼요.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그럼 자네는 뭘 하는 사람인가?”

“아주머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학생이었지만, 이제는 나라를 위해 운동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공화국을 새롭고 복된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 나라는 너무 오래, 너무 오래되어, 너무 무기력해요.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무기력하지요 …… .”

 

영어로 소설을 쓴 최초의 중국인, 예쥔젠

중국 작가 예쥔젠(叶君健, 1914~1999)은 Ye Junjian, Yeh Chun-chan, Cicio Mar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글을 썼다. 그중 많이 알려진 것이 그의 에스페란토 이름인 찌찌오 마르(Cicio Mar)이다. 1933년 우한대학교 외국어학부에 입학하여 영어를 전공한 그는 일생을 작가, 번역가, 편집장, 국회의원, 항일운동가로 살았다. 대표작으로는 『산촌』 이외에 『대지』 3부작이 있다. 중국 내에서는 안데르센 동화의 권위 있는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번역이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고 한다. 

『산촌』의 원제는 The Mountain Village로 예쥔젠은 이 책을 영어로 썼다. 1944년 영국 정부의 초청으로 예쥔젠은 중국에서의 항일 저항 전쟁 상황을 알리는 순회강연을 영국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문학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유럽 사람들이 중국 혁명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장편 소설을 쓰기로 한다. 그 결과물이 1947년에 출간된, 중국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산촌』이었다. 이 책은 출간 후 2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희망의 언어, 에스페란토의 가능성

『산촌』이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것은 에스페란토를 통해서이다. 영국의 유명 시인이자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인 윌리엄 올드가 1984년에 『산촌』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했다. 예쥔젠 자신도 17세에 에스페란토를 처음 배운 뒤로, 평생 에스페란토 활동을 했다. 『잊혀진 사람들』(Forgesitaj homoj)라는 제목의 에스페란토 소설을 썼고, 일제시대 조선인 작가 장혁주의 작품 「쫓겨 가는 사람들」(Forpelataj Homoj)를 에스페란토본에서 중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 책의 옮긴이 장정렬 역시 에스페란티스토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지은이 예쥔젠과 옮긴이 장정렬의 에스페란토 활동의 결과물이다. 옮긴이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저자 예쥔젠과 그의 아들 예녠셴을 만났다. 또 옮긴이는 에스페란토로 그들에게 질문하고 그들과 대화하여 이 책의 번역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에스페란토란 무엇인가?

에스페란토는 1887년에 폴란드의 안과 의사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Ludoviko Lazaro Zamenhof, 1859~1917) 박사가 창안한 국제 공용어이다. 자멘호프는 유럽의 아홉 개 언어에서 공통점과 장점만을 뽑아내 예외와 불규칙이 없는 문법을 만들어 에스페란토를 창안했다. 에스페란토는 에스페란토 운동이 시작된 초기에 사용했던 자멘호프의 필명으로 ‘희망하는 사람’을 뜻하며, 후일 이 언어의 이름이 되었다. ‘1민족 2언어 원칙’에 입각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의 교류에서는 ‘에스페란토’의 사용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 바티칸, 폴란드, 오스트리아, 쿠바 등 11개국에서 단파 및 위성방송을 통해 매일 수차례씩 에스페란토 국제 방송을 하고 있다. 또 매년 유럽과 다른 지역을 번갈아 가면서 세계에스페란토대회가 개최되고 있는데, 언어와 인종이 다른 1천 5백~2천여 명의 사람들이 에스페란토로 다양한 주제에 관해 토론하면서 대안을 찾고 있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의 기관지인 『에스페란토』를 비롯해 <세계무민족성협회>의 『무민족주의자』(Sennaciulo)를 비롯해 국가별 분야별로 소식지가 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매년 10월 <한국 에스페란토협회> 주최로 한국에스페란토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며, 외국어대학교, 단국대학교, 원광대학교에서는 제2외국어 과목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산촌』이 보여주는 에스페란토의 가능성

지구화 시대에 사람들은 인종, 민족, 국가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자세히 알고 싶은 사회적 욕구도 이미 충분히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언어 장벽이 즉각적인 소통을 어렵게 한다. 중국어를 배워 중국어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인류 보편의 언어적 소통에 대한 꿈, 즉 보편어 구상은 매우 오래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공용어는 국가와 기업 및 자본에 의해 강제된 언어, 즉 패권어로 점차 사용되고 있다. 특히 영어는 미국 중심의 자본화를 이루기 위한 주요 언어가 되고 있다. 오늘날 영어는 국제 경제에서 패권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달러’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다. 반면 에스페란토는 민족, 국가, 자본의 틀에 갇히지 않고 인류가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준다. 에스페란토가 갖는 이러한 장점에 애정을 갖고 에스페란토 보급과 활용에 애써 온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 존재했다. 예쥔젠도 그들 중 하나였다. 이 언어의 역사는 국가의 틀을 벗어나기에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고, 공식 기록에도 잘 남지 않았다. 에스페란토의 역사를 다룬 『위험한 언어』(갈무리, 2014)가 자세히 서술했듯이 오히려 이 언어는 역사 속에서 패권어 지향을 고수했던 좌우파로부터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1920년대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다룬 『산촌』이 수십 년이 흐른 끝에 에스페란토를 거쳐 이렇게 한국어 독자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희망의 언어 에스페란토의 효용성, 독특한 힘,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이다. 

 

 

책 속에서

 

추민에게서 새로 이 논의 경작권을 얻어, 새로 소작농을 하게 된 건장하고 검게 탄 얼굴의 청년이 말을 걸어 왔다. 이 청년은 알란 아버지보다 좀 더 나은 소작 조건을 제시해, 이 논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논임자는 추민 지주이십니다.”

“이 논은 내 땅이네!”

알란의 아버지가 말했다.

“평생 이 땅을 갈아 왔어!”

“쌀 삼백 근과 이 논을 바꾼 거래를 기억 못하니 멍청한 사람이군요. 내가 이 논을 쓰기로 추민과 계약한 걸 몰라요?”

젊은 사람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네놈이 감히 뭐라고! 이건 내 땅이야! 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야.”

― 「2. 천연두에 걸린 알란」

 

판 삼촌은 자신의 구부린 손가락으로 하얗게 센 머리를 긁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난 이해할 수 없어.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군.”

“나이 드신 삼촌도 직접 이 투쟁에 참여하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청년은 벌써 조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하면 삼촌은 철저한 무산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판 삼촌은 여전히 그의 말을 미심쩍어하면서 혼란스러운 눈길을 그에게 돌렸다. 

“그래, 그래, 국화 아줌마에게 이야기하지 않겠어.” 

― 「6. 혁명 사상을 전하는 청년의 방문」

 

“아저씨, 부자들이 이 큰 가뭄에 소작료를 올린 것에 할 말이 없나요?”

“그들이 아주 나쁘다고 생각해요.”

판 삼촌이 대답했다.

“그들의 양심이 고약하긴 해요.”

“벌써 이해하고 계시네요, 아저씨.”

여자는 판 삼촌에게 곁눈질하며 웃었다.

“그래서 가난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런 보안대에서 부자를 위해 봉사한다는 건 적절치 않지요! 여담인데, 이 마을에서 누가 그 보안대에 들어갔나요?”

― 「8. 낯선 여자와 도둑」

 

“같이 갑시다. 우리는 새 지역 정부에서 나왔소. 우리는 오늘 아침 당신이 처형대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소. 당신도 같은 부류의 사람이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머니는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물어보았다.

“이자를 체포해!” 

제복을 입지 않은 형사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무슨 이유로요?”

“재판에 넘겨야지요. 아주머니는 이자가 혁명도당이라는 것을 몰랐어요?”

“하지만 이 사람은 새 왕조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구요.” 

어머니가 말했다. 

“이 사람은 며칠간 그 점을 누누이 말하였다구요.”

― 「12. “우리는 돌아온다”」

 

 

추천사

 

『산촌』은 유럽에서 주목을 받은 첫 중국 장편소설이다. 고요한 산촌, 그곳에서 혁명이 시작되었다. 작가 예쥔젠은 지난 날 혼돈의 시대에 중국 농촌이 겪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한 소박한 가정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춘성’이라는 소년의 눈으로 중국 농부들의 삶의 모습을 상세하게 서술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인간적인 영혼과 그 영혼의 편향성을 과장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작가 예쥔젠이 처음으로 쓴 이 영어 작품에는 명료한 열정이 빚는 성숙된 문화와, 우울한 그늘 아래에서도 여전히 유머가 살아 있다. 작가는 인간애의 영혼과 근원에 충분히 다가서 있다. ― 1947년 영국 잡지 『새터데이 리뷰』(Saturday Review)의 서평

 

내가 이전에 여러 권의 중국 관련 서적들을 읽어 보았으나, 중국 혁명의 핵심을 이처럼 한 폭의 그림으로 명확하게 그려낸 책은 바로 이 『산촌』뿐이다. 중국을 소재로 하면서, 중국의 마을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해도, 이 책의 의미가 전혀 축소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세계 초강대국인 중국에서 일어난 혁명의 근본적 변화의 시기와 방식을 자세히 알 수 있다. ― 아이슬란드어판 서문에서, 195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할도르 락스네스(Haalldor Laxness)

 

이 책이야말로, 동양과 서양 사이에서, 새로움과 옛것 사이에서, 언어들 사이에서, 문화들 사이에서 갈림길인 바로 그곳이 배경인 작품이다. ― 에스페란토판 서문에서, 세계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험프리 톤킨(Humphrey Tonkin)

 

 

프리뷰어 추천사

 

1920년대 중국 농촌 마을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느낄 수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봉건 왕조인 청 제국이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세워졌다. 하지만 혁명 세력은 무기력하였고, 위안스카이의 집권 이후 군벌 정치가 계속되었다. 1920년대는 그야말로 열강의 간섭과 지배로 중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던 시대였다. 이런 때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설립되고, 계몽된 중국의 청년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반제국주의 반봉건 투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산촌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중화민국이라는 새 공화국의 수립이 새로운 왕조의 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따라서 청년 지식인들의 활동은 산촌 사람들에게 무척 생경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최인훈 선생이 소설 『화두』에서 다룬 것처럼, 한반도 북쪽에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봉건적인 습성, 관계, 사고방식에 젖어 있던 사람들의 의식에 주입되었을 때 그것이 삶의 언어가 아니라 생경한 구호가 될 수밖에 없었듯이. 게다가 지주와 마름의 횡포는 여전했으며, 군벌들 간의 세력 다툼은 평범한 중국 사람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았다. 1920년대 중국의 한 산골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 ― 판 삼촌, 마우마우, 뻬이후 삼촌 등의 죽음과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주인공과 어머니 ― 은 단지 한 개인이나 특정 지역의 불행은 아니다. 낡은 왕조 시대의 쓸쓸한 몰락, 외세의 침략과 지배층의 횡포, 게다가 ‘사회주의 혁명’이 산골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되돌아오는 반혁명 세력의 끔찍한 토벌(혁명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학살)까지. 이 모든 것은 일제의 지배와 분단, 한국 전쟁을 겪어야 했던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도 맞닿아 있다. ― 프리뷰어 정현수(파즈)

 

격변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소박하고 진솔하게 그려서 좋았습니다. 혼란한 시기에 느끼는 두려움이나 감정의 변화, 새것에 대한 경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래된 것에 대한 집착(고수)이, 산골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상사로 힘입게 표출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작가의 경험담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 거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 프리뷰어 김종미

 

 

지은이

 

예쥔젠 叶君健, 1914~1999

 

작가이자 번역가, 국회의원, 대학교수였던 예쥔젠은 1914년 12월 7일 중국 후베이성 홍안에서 태어났고 ‘Ye Junjian’, ‘Yeh Chun-chan’, 찌찌오 마르(Cicio Mar) 등의 필명을 사용하며, 중국어·영어·에스페란토로 작품 활동을 했다. 17세(1931년)에 에스페란토를 배웠고 1933년에는 일제하 조선농민의 침탈을 그린 장혁주의 「쫓겨 가는 사람들」을 중국어로 번역, 출간하였다. 우한대학교를 졸업한 1936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나 1937년 7·7 사변 뒤 위험인물로 분류되어 중국으로 송환되었다. 이후 항일 통일전선의 문학예술 활동에 참여, 우한·홍콩 등지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중국 최초의 국제 문학잡지 『중국 작가』를 창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중국 국민의 투쟁을 전 세계에 알렸다. 에스페란토로 소설 La Forgesitaj Homoj(잊혀진 사람들)를 썼다. 그의 대표작 대하장편소설 3부작 『대지』는 구정치 체제의 멸망과 1919년 신공화정으로 이어지는 중국 역사의 한 시기를 잘 묘사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44년에는 영국 정부의 초청으로 영국 순회 강연을 하며 중국 국민의 항일 전쟁 영웅담을 알렸다. 1947년 중국 문학인으로서는 최초로 중국에 관한 영어 소설 『산촌』을 발표, 1947년 영국작가협회에 의해 ‘이 달의 우수 도서’로 선정되었다. 또 『안데르센 동화 전집』을 중국어로 발간하여 중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공로로 덴마크의 ‘국기장’ 훈장을 받았다. 1949년 귀국 후에는 『중국문학』(영문 월간지)의 편집인으로 25년간 일했다. 1980~82년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위원회 위원, 중국번역가협회 부회장, 중국작가협회 고문, 중국에스페란토연맹 부회장, 월간지 『중국보도』 자문위원,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위원회 임원 등을 역임했다.

 

 

옮긴이

 

장정렬 Jang Jeong-Ryeol(Ombro), 1961~

 

창원 출생. 부산대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한국외대 경영대학원 통상학과 졸업. 현재 거제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동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과 외래교수이며 국제어 에스페란토 전문 번역가이다. 1980년에 에스페란토를 배웠고, 한국에스페란토청년회 회장, 에스페란토 잡지 La Espero el Koreujo, TERanO, TERanidO 편집위원을 엮임했다. 현재 한국에스페란토협회 기관지 La Lanterno Azia 편집위원이다. 편저서로 『여민 이종하 선생』(한국에스페란토협회) 등이 있고, 에스페란토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책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2008년)로 선정된 『봄 속의 가을』(갈무리), 『바벨탑에 도전한 사나이』(공역) 등이 있으며, 『님의 침묵』,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했다.

 

 

목차

 

1. 우리 마을 설서인 라우리우  7

 

2. 천연두에 걸린 알란  33

 

3. 국화 아줌마와 장 보러 가다  61

 

4. 아버지가 형을 데리고 집에 오다  88

 

5. 우리 집 소가 암송아지를 낳다  123

 

6. 혁명 사상을 전하는 청년의 방문  156

 

7. 파종과 긴 가뭄, 보안대원  191

 

8. 낯선 여자와 도둑  225

 

9. 혁명과 정치지도원  263

 

10. 군중집회에 나타난 국화 아줌마의 남편  299

 

11. 고향으로 돌아가다 붙잡힌 판 삼촌  339

 

12. "우리는 돌아온다"  378

 

부록 

작가 예쥔젠  413

『산촌』에 대하여  (예녠셴)  427

찌찌오 마르(Cicio Mar) : 뛰어난 펜  (스청타이)  436

『산촌』의 「에스페란토판 서문」 (험프리 톤킨)  441

중국에스페란토협회 전 회장 탄슈주 여사 축하문  444

예쥔젠의 『산촌』 출간을 축하하며  (이영구)  446

 

옮긴이 후기 

고(故) 예쥔젠 작가와의 만남, 작품 『산촌』의 번역 과정을 생각하면서  449

 

 

책 정보

 

2015.5.28 출간 l 127×188mm, 무선제본 l 피닉스문예7 Cupiditas

정가 15,000원 | 쪽수 464쪽 | ISBN 978-89-6195-091-6 04080

 

 

구입처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미디어 기사

 

[경향신문] 순박한 산골 사람들이 마주친 중국 내전과 혁명

[독서신문] 신간 / 산촌

[OLIVO] 산촌

[K뉴스와이드] 산촌 예쥔젠 장편소설

[대구신문] 산촌...순박한 산골에 불어닥친 내전과 혁명

[문화 다] 중국혁명과 영웅본색(英雄本色)

[참세상] 중국 산촌 마을에 들이닥친 ‘근대’와 ‘혁명’의 얼굴

[대자보]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 몫 없는 자들의 희망

[문화빵] 네 개의 시간, 네 개의 언어를 가로질러 도착한 ‘중국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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