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문학

삶, 그 열림과 생성의 시간
Literature of Kairos

조정환 지음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도서


*현재 흠난책은 없습니다.
*새 책 구입은 온/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해주세요.

 

 

『노동해방문학의 논리』 이후 15년에 걸친 오랜 정치철학적 모색 끝에 펴내는 세 번째 평론집.

 

문학, 지식, 문화가 자본에 실질적으로 포섭된 시대에 문학적 창조와 생성의 시간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열리는가?

 

 

나는 제목으로 사용한 『카이로스의 문학』을 삶문학의 동의어로 생각했다. 그리스어 크로노스(Chronos)는 시간의 길이, 시간의 충족, 측정된 시간을 뜻함에 반해 카이로스(Kairòs)는 시간의 순간, 시간의 도착, 사건 속의 시간을 의미한다. 카이로스는 위기 속에서의 선택과 결정을 함축한다. 이 이름으로써 나는 우리가, 시간의 길이를 통해 측정되고 재현되는 운동-이미지의 위기 상황 속에서, 특이성의 사건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는 시간-이미지를 살아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운동-이미지에 전과는 아주 다른 색채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증언하려고 했다.” ― ‘책 머리에’ 중에서

 

 

간략한 소개

 

민족문학, 민중문학, 노동문학, 노동해방문학의 삶문학(bioliterature)으로의 재구성, 리얼리즘의 해독제로서의 버추얼리즘(virtualism)의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탐색!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문학장의 핵심 쟁점(리얼리즘-(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분단체제 논쟁, 민족문학 논쟁, 문학권력 논쟁, 문학 위기 논쟁 등)에 대한 비판적 개입.

서정주, 김지하, 박노해, 백무산 등 한국 현대 시문학사의 거장들의 문학적 행보에 대한 예리한 분석.

 

 

『카이로스의 문학』의 초점과 발간 의미

 

1) 사회주의와 민중, 그리고 당파성에 기초했던 1980년대의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의 붕괴와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그리고 민중의 부재로 대변되는 탈근대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국가정치 및 공장정치의 삶정치(biopolitics)로의 대체라는 정치철학적 모색에 기초하여 민족문학-노동문학에서 삶문학(bioliterature)으로 전환을 주장하는 매니페스토(Manifesto).

 

2) 백낙청과 최원식의 이론적 분리와 실리적 동거가 함축하는 문학사적 함의는 무엇인가? 한국의 근대를 지배해온 각종의 민족문학(론)들, 특히 백낙청-최원식에 의해 주도되어온 창비의 민족문학론이 통합된 세계자본주의와 제국의 시대에 겪고 있는 얄궂은 운명은 무엇인가? 민족문학론이 한편에서는 그 창조적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문학장(문화산업의 공장으로 변한 문단)을 통제하는 권력으로 탈바꿈하는 메커니즘이 무엇인가? 왜 민족문학론은 이론적 국가장치인가? 등등에 대한 통렬한 분석.

 

3) 2000년대 초 혈기 넘치던 문학권력 비판과 비판적 글쓰기는 왜 문학권력의 자장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마는가? 문학권력 비판이 문학권력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고 문학권력 행사의 공정성과 합리성만을 문제 삼는 데 자신을 한정한 것의 비극적 결과를 보여주면서 주례사 비평에 대한 비판이 하나의 당위적 주장을 넘어 그 ‘너머’를 달성할 진정한 동력과 방법을 찾으려는 모색.

 

4) 민중적 공동체가 사라진 시대에 ‘비루한 것의 카니발’을 주장한 황종연의 모더니즘론(‘근대성과 모더니즘의 변증법’)이 ‘비루한 것’(그가 보는 ‘다중’)들로부터 냉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다시 질서와 민족/국가의 담론에 종속시키는 미학적 테크놀로지는 무엇인가? ‘근대성과 모더니즘의 변증법’을 주장하는 『문학동네』의 모더니즘론과 ‘근대성취와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를 주장하는 『창작과비평』의 리얼리즘론이 오랜 갈등 끝에 이제야 어깨를 잡는 미학적 형제라는 것, 이것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론에 숨어 있는 ‘출생의 비밀’임을 밝힌다.

 

5) 영웅적 민족주의에서 반공주의와 보나빠르뜨적 파시즘으로 나아간 서정주, 저항적 민중주의에서 생태주의로 나아간 김지하, 혁명적 사회주의에서 평화, 생태, 나눔의 인간주의로 나아간 박노해, 전투적 노동자주의에서 존재와 시간에 대한 도저한 탐색으로 나아간 백무산. 젊은 시절에 체제와 길항하다 투옥된 경험을 갖고 있는 이 문학적 거장들의 새로운 좌표 찾기와 그 귀결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에 대한 치밀한 분석.

 

6) 조정환 평론집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 표지6) 1960~70년대의 산업화에 대한 저항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했으며, 1980년대에 박노해, 백무산, 박영근, 김해화 등을 배출하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겪으면서 지역적이고 전국적인 문학운동을 전개해온 새로운 문학현상이자 조류로서의 노동자 자신의 글쓰기. ‘노동문학’이라 불리는 이 대중 자신의 문학적 글쓰기가 노동운동의 제도화와 ‘운동으로서의 문학’의 퇴조라는 악조건 속에서 치르는 암중모색, 그것이 직면한 어려움과 가능성에 대한 따뜻하고 깊이 있는 분석.

 

7) 1990년대 이후 영상 매체의 급격한 부상과 문학 위기 담론의 증가 속에서 문화가 세인의 주목을 끌어왔다. ‘문학에서 문화로!’라는 1990년대 초의 운동구호는 이제 ‘문화연구’ 학과의 대학내 개설 경향등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담론과 문화운동은 무엇을 개척했고 어떤 위험에 직면해 있는가? 그것은 이윤축적을 넘어 삶의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문화담당층으로 다중이 부상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식과 지식인은 어떻게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할 것인가? 1960~70년대 프랑스 상황주의자 운동과 1970~80년대 이탈리아 자율주의 운동 등에 대한 참조를 통해 삶문화(bioculture) 구축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8) 특이성의 사건, 열림과 생성의 시간, 즉 삶의 저 카이로스의 순간 속에서 조감할 때 우리 시대의 문학적 건축물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우리 시대의 뜻있는 작가들, 평론가들, 독자들이 자신들이 선 자리에서 자신을 에워싼 건축물, 아니 자신이 속해 있는 전체에 맞서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롭게 열어나가야 할 삶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조용한 그러나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제안이다.

 

 

상세한 소개

 

제1부 총론

총론 「카이로스의 시간과 삶문학」에서는 1970~80년대의 문학운동(특히 민족문학)이 1990년대 이후에 문학권력으로 전화하는 사회역사적이고 논리적인 메커니즘을 분석했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논쟁 속에서도 의연히 인식론적 재현에 집중되어 있는 근대적 민족문학론의 관심을 존재론적 표현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려고 노력하면서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전개될 탈근대적 삶문학의 지평의 윤곽을 드러내려 했다.

 

제2부 민족문학을 넘어 삶문학으로

2부는 민족문학의 삶문학으로의 전환을 강제하는 역사적 조건을 규명하면서 문학의 위상 재조정, 문학적 주체성의 재구성을 탐구했다. 민중의 소멸과 다중의 구성이 이 부에서의 주된 문제의식이다. 여기에서는 민중에서 다중으로의 이행이 어떻게 제3세계 민중에 기초했던 민족문학의 갱신 노력을 공회전하도록 만들며 심지어 그 내부에 위계를 도입하려는 시도까지 도입하도록 만드는지를 살펴보았다. 또 1980년대에 상승하여 박노해, 백무산, 박영근과 같은 걸출한 시인을 배출했던 노동문학이 겪고 있는 창조조건의 변화를 ‘통치의 제국적 재구조화와 시뮬레이션 사회의 도래’와 ‘재현 패러다임의 위기’라는 시각에서 고찰했다.

 

제3부 포스트모던, 버추얼, 싸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신화

3부는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대립이라는 전통적 에피스테메를 버추얼리즘(virtualism) 관점의 도입을 통해 해소, 해독하려는 시도를 담았다. 하나의 예술형태로서의 문학이 계몽(교육)에서 정치로, 정치에서 산업으로 전화하면서, 근대에 발생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이 흔들리고 이 양자의 경쟁적 공모관계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되면서 문학의 새로운 자리, 새로운 문학적 감성, 새로운 문학적 기술이 요구되는 상황을 제시하는 이 부는 탈근대성의 양상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활성화와 싸이버스페이스의 등장이라는 참으로 새로운 현상이 신화적 상상력이라는 아주 오래된 능력과 내밀하게 결합되는 역설적 현상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이제 문학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통체를 창출하는 과제에 관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4부 서정주, 김지하, 박노해 그리고 백무산

4부에는 서정주, 김지하, 박노해, 백무산에 관한 글을 따로 묶었다. 이들은 한국 근대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인들이다. 또 이들은 삶과 시작활동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은 인물들이다. 서정주는 영웅적 민족주의에서 반공주의와 보나빠르띠즘으로 나아갔으며, 김지하는 저항적 민중주의에서 생태주의로 나아갔다. 박노해는 혁명적 사회주의에서 평화와 생태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갔으며 백무산은 전투적 노동자주의에서 존재와 시간에 대한 탐구로 나아갔다. 젊은 시절에 체제와 길항하다 투옥된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들이 그 고통의 체험을 해석하면서 찾아나간 그 나름의 길들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한 고찰을 통해 문학이 지닌 위험과 가능성들을 동시에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조정환 평론집 『노동해방문학의 논리』 표지제5부 모색기의 노동문학

5부에는 1980년대에 성장한 노동시인들이 1990년대에 어떤 조건에 처해 있고 어떤 꿈을 꾸고 있으며 어떤 정서로 이 시대를 살아나가고 있는지를 분석한 글들을 모았다. 공사장을 떠돌며 막노동을 하면서 노동시의 깃발을 완강하게 붙들고 있는 김해화가 보여주는 비장의 정서, 철도 노동자 김명환과 이한주가 보여주는 비애와 익살의 정서, 그리고 오랜 기계공 생활을 하다가 해고당한 조기조가 보여주는 기계적 상상력은 저항, 탈주, 구성의 선들의 다양한 궤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제6부 문화와 지식인

6부에는 협의의 문학범주를 넘어서지만 그러나 문학과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는 ‘문화’와 ‘지식인’이라는 두 주제의 글들을 따로 묶었다. 문학이 사유활동인 한에서 그것은 한 사회의 지식, 지성, 문화의 배치구조와 분리될 수 없다. 이 부에 실린 글들은 20세기 후반 이후 지성이 다중의 것으로 전화하는 현실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는데, 대중지성 혹은 다중지성의 대두는 전통적 지식인 유형의 해체와 지식인의 자유인으로의 재구성(과 그 필요성)을 조건짓는다. 안또니오 네그리의 ‘대중지성’론과 프랑스의 ‘국제 상황주의자 운동’은 한국에서 개시된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참조될 수 있는 국제적 수준에서의 이론적 실천적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 것이다.

 

  

책머리에

 

15년 만에 세 번째 평론집을 엮어낸다. 첫 평론집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연구사, 1989)은 문학운동에서의 당파성 요청을 제기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을 중심으로 짜여졌고 두 번째 평론집 『노동해방문학의 논리』(노동문학사, 1990)는 사회주의와 문학운동의 이념적 실천적 조직적 결부를 요청한 노동해방문학론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이 두 평론집은 1987년을 분기점으로 급격히 상승하던 대중노동자들의 해방투쟁에 문학이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제안된 방법은 현실주의였지만 그것의 기본적 정서는 아방가르드적이었다. 문학은 대중의 사상과 정서를 이끄는 전위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 싸워야 할 적이 분명하고 도달해야 할 목표가 선명했던 만큼, 언어는 첨예했으며 문체는 단정적이었다. 글의 문면과 행간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과 열망이었다. 작품이 표현해야 할 객관적 현실이 실재하고 그것을 투시할 명백한 세계관이 있으며 작품이 현실주의를 통해 객관적 진리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앞선 두 권의 평론집은 문학(운동)을 밤하늘의 별이, 혹은 마음속의 도덕률이 안내하고 있던 한 시대에 속한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단단했던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매일 앞서 변하는 시대를 뒤따라가는 것이 일과였던 수 년. ‘객관현실’이 그 단단했던 ‘객관성’을 잃어가던 지난 15년 동안 나는 세월이 이 두 권의 책을 갉아먹도록 내버려 두었다. 모든 것을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단단한 모든 것이 결코 저절로 녹아내리지는 않는다. 나는 한국의 권위주의 권력을 무엇이 무너뜨리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을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실존하던 사회주의 권력들을 무엇이 무너뜨리고 있는가에 대한 답도 찾아야 했다. 어떤 새로움도 눈여겨보지 않으려는 완고한 정신들과 거죽의 새로움에 온 몸을 내맡기는 호기심 많은 정신들 사이에서 우리가 직면한, 아니 우리가 속해 있는 그 변화의 실체, 그 동력학, 그리고 그것이 직면한 한계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문학이 ‘객관현실’의 관념에 묶이지 않으면서도 삶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카이로스의 문학』에는 이 물음들을 묻다가 물러나고 다시 물었던 모색과 동요의 흔적들이 화석처럼 곳곳에 새겨져 있다.

 

원고들을 다시 읽으며 내가 발견하는 것은, 수 년 전부터 ‘삶문학’이라는 말이 마치 화두처럼 나의 문학적 사유를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1999년 말에 씌어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에서부터 지금까지. 왜, 저 오래된 용어인 ‘문학’에 하필이면 낡고 낡아서 상투화된 용어인 ‘삶’을 갖다 붙인 이름일까? 문학이 이제 민주주의나 민족이나 노동해방 등과는 무관하다는 의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삶은 늘 이들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것들’이 기초해 있는 근거였다. 바로 삶으로부터 이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것들의 의미가 발생해 오지 않았던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삶은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것을 규정하는 외부로, 빈칸으로, 예외로 실재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삶은 ‘잠재적으로 정치적인 것’이었다. 1990년대의 새로움은 (그것이 어떤 수준에서 파악되는 것이건) 잠재적으로 정치적인 것이었던 삶의 펼침과 접힘의 운동과 결부되어 있다. 물론 이 삶의 드라마는 자본에 의해 매개되어 왔다. 자본주의적 근대가 삶으로부터 절단해낸 노동시간을 포섭하는 것에서 성립되었다면 노동시간을 넘어 삶의 모든 시간을 포섭하려는 자본의 보편적 운동 속에서 자본주의적 탈근대가 성립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탈근대 속에서 삶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어떤 변화도 그 실재성(reality)에 따라 이해할 수 없으며,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이 이 새로운 실재성을 물신화하는 눈가리개라는 점을 통찰하지 않고서는 그 실재성에서 더욱 멀어질 뿐인 시대에 살고 있다. 삶은 절대적으로 다양하면서도 유일한 실재성이며 삶 외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삶이 자본에 포섭되면서 삶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현장으로 된다.

 

『변혁기 러시아의 리얼리즘문학』 표지노동해방문학을 시대에 뒤진 것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 근본적인 변화이다. 노동해방문학론은 실재로서의 삶을 현실성(actuality)의 차원으로 환원했다. 그것은 직접적 현실을 넘어서 가능성으로서의 총체성에 도달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현실적 총체성의 거울 이미지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노동해방문학론은 현실공간 속에서 전개되는 공간화된 시간, 즉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에 묶여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계기적 시간.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계기적 시간의 실체적 주체성으로, 일종의 동일성의 집합으로 이해되었다. 정치는 국가영역를 둘러싼 특수한 인간활동으로 파악되었고 당은 그 특수한 대의적 인간활동의 핵심 행위자로 파악되었다. 문학의 자리는 그래서 실재의 현실 차원―크로노스의 시간―양적 전체―양적 집합적 주체―국가적 대의정치를 잇는 선분 위에 설정되었다. 이른바 ‘현실정치’, 역사적 인간, 행동으로서의 실천, 공장이라는 장소, 노동자라는 집합주체, 목적으로서의 사회주의, 그리고 변증법이 문학을 운동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었고 문학은 오직 문학운동으로서만 존립 가능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문학을 가능케 했던 조건들은 이제 사라졌다. 현실성의 차원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더 깊은 차원, 아니, 현실 그 자체를 가능케 하는 표면으로서의 잠재성의 차원과의 관계 속에서 체험되고 또 사유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요청은, 안타깝게도, 문학 역시 자본에게 포섭되고 있는 역사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문학의 잠재력의 실현이 곧 삶의 안보, 삶의 건강의 실현과 같은 궤도에 놓인 시대, 그래서 문학의 해방과 삶의 안보 및 자기가치화의 문제가 서로 겹쳐지는 시대가 바로 탈근대이다. 노동이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 공통체적 삶 전체로 확산되고, 삶이 잠재성과 현실성의 총체 속에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으로 되며, 양적이고 공간적인 시간이 측정불가능한 카이로스(kairòs)의 시간에 의해 횡단되고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념적 집합적 동일성으로 남아 있기보다 오히려 이질적이고 혼종적인 주체성으로, 탈주적이고 구성적인 다중으로 살아가는 시대. 변증법이 미분법의 홍수에 잠겨버린 시대. ―중략―

 

이 책은 미리 기획되고 짜여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후반에서 분석된 작품론이 이 책의 전반에 전개된 문학론의 사례분석으로 읽혀지기는 어렵다. 아마도 내가 이 책에서 다룬 작품들은 의미 있는 작품들 전체에 비할 때 그 빙산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수 년 전에 이 책을 구상할 당시에는 『경향을 넘어 존엄으로』라는 제목을 생각했었는데 지난 수 년 사이에 이 제목이 너무 해묵은 느낌을 준다. 나는 제목으로 사용한 카이로스의 문학을 삶문학의 동의어로 생각했다. 그리스어 크로노스(Chronos)는 시간의 길이, 시간의 충족, 측정된 시간을 뜻함에 반해 카이로스(Kairòs)는 시간의 순간, 시간의 도착, 사건 속의 시간을 의미한다. 카이로스는 위기 속에서의 선택과 결정을 함축한다. 이 이름으로써 나는 우리가, 시간의 길이를 통해 측정되고 재현되는 운동-이미지의 위기 상황 속에서, 특이성의 사건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는 시간-이미지를 살아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운동-이미지에 전과는 아주 다른 색채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증언하려고 했다. 이 책을 함께 생산한 무수하고 다양한 시간들에게, 특히 저 고뇌와 격정과 긴장의 시대를 함께 견디고 싸우면서 삶을 바꿔 냈던 이름 없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06년 1월

조정환

 

 

지은이

 

조정환

 

지금은 댐 건설로 수몰된 경상남도 진양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에서 일제하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연구했고, 1980년대 초부터 <민중미학연구회>, <문학예술연구소>에서 민중미학을 공부하며 여러 대학에서 한국근대비평사를 강의했다. 1989년에 월간 『노동해방문학』 창간에 참여하면서 문학운동의 주류였던 민족문학론에 맞서 ‘노동해방문학론’을 제창하여 당시 문학운동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 말, 국가보안법에 의한 전국지명수배령이 내려졌고 1990년에서 1999년 말까지 그는 9년여에 걸친 기나긴 수배생활에 들어갔다. 그러한 엄혹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이원영’이라는 필명으로 10여 권의 번역서를 펴내는 등 그의 연구와 사유의 과정은 중단 없이 지속되었고 이 ‘발견적 모색’의 긴 시간을 통해 그가 ‘자율주의로의 선회’라고 부르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1999년 12월 수배 해제 이후 그는 월간 『말』에 1년간 문화시평을 연재하면서 자율주의적 관점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는 한편, ‘제국 속에서 Whithin Empire 제국에 대항하여 Against Empire 제국을 넘어서 Beyond Empire’라는 의미의 ‘다중문화공간 왑 WAB’(지금의 다중네트워크센터)을 통해 다중 지성과의 접속을 이어 갔다. 그는 또 그 동안 발전시켜 온 현대사회와 사회운동, 그리고 문학․예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집약하기 위해 ‘조정환의 걸어가며 묻기’라는 연속 저작집을 내고 있다. 현재 다중네트워크센터 (http://waam.net) 대표, 웹저널 『자율평론』(http://jayul.net) 상임만사,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대표,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성공회대학교 대학원,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맑스주의 역사와 탈근대 사회이론 및 문화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과 자기비판』(연구사, 1989), 『노동해방문학의 논리』(노동문학사, 1990), 『지구 제국』(갈무리, 2002), 『21세기 스파르타쿠스』(갈무리, 2002),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갈무리, 2003), 『아우또노미아』(갈무리, 2003), 『제국기계 비판』(갈무리, 2005)

편역서: 『오늘의 세계경제:위기와 전망』(크리스 하먼, 갈무리, 1994), 『현대 프랑스 철학의 성격 논쟁』(알렉스 캘리니코스 외, 갈무리, 1995),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크리스 하먼 외, 갈무리, 1995), 『이딸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1』(쎄르지오 볼로냐 외, 갈무리, 1997), 『미래로 돌아가다』(안또니오 네그리 외, 갈무리, 2000)

번역서: 『변혁기 러시아의 리얼리즘문학』(게오르그 루카치, 동녘, 1985), 『오늘날의 노동자계급』(알렉스 캘리니코스, 갈무리, 1994), 『디오니소스의 노동1』(마이클 하트 외, 갈무리, 1996), 『디오니소스의 노동2』(마이클 하트 외, 갈무리, 1997), 『사빠띠스따』(해리 클리버 외, 갈무리, 1998), 『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워너 본펠드 외, 갈무리, 1999),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갈무리, 2002), 『무엇을 할 것인가』(갈무리, 2004), 『들뢰즈 맑스주의』(니콜래스 쏘번, 갈무리, 2005)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총론

 

카이로스의 시간과 삶문학

 

제2부 민족문학을 넘어 삶문학으로

 

역(逆)지구화를 위한 문학적 주체성의 재구성

백낙청과 ‘지혜의 시대’의 비밀

통치의 제국적 재구조화와 노동문학의 새로운 방향모색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노동문학의 현실과 삶문학적 전망

 

제3부 포스트모던, 버추얼, 싸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신화

 

오늘날의 문학상황과 버추얼리즘

싸이버 공간의 확장과 글쓰기 양식의 이행

2001년 싸이버스페이스 마젤란

마르꼬스의 신화적 글쓰기와 맑스의 신화론

대중지성 시대의 미학을 위한 비망록

 

제4부 서정주, 김지하, 박노해 그리고 백무산

 

서정주의 보나빠르띠즘

김지하의 생명사상

박노해의 방향전환, 극복인가 좌절인가

바람의 시간, 존재의 노래

-백무산의 『길 밖의 길』

 

제5부 모색기의 노동문학

 

변두리로 밀려나서

-<일과시>와 90년대 노동시의 모색

유리 시인 김해화의 정주(定住)의 꿈과 그 위기

꿈의 만회를 위한 싸움은 오래 지속된다

-김명환의 시와 꿈

비장의 무덤 위에 핀 비애와 익살의 시

조기조 시와 기계적 상상력

근대화 경제발전의 쇠수레바퀴 아래서

노동현장은 살아 있다

 

제6부 문화와 지식인

 

1990년대 ‘문화연구’논쟁과 네그리의 ‘대중지성’론

프랑스 상황주의자 운동과 90년대 한국 문화운동자유인, ‘지식인의 죽음’ 이후의 지식인

탈근대와 지식인의 재구성

다중지성 시대의 지식인

대학과 다중지성

 

찾아보기

 

 

책 정보

 

2006.2.22 출간 l 139×208mm, 양장제본 l 아우또노미아총서10, Cupiditas

정가 24,000원 | 쪽수 592쪽 | ISBN 978986114852

 

 

구입처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미디어 기사

 

[연합뉴스] 책 / 조정환 평론집 '카이로스의 문학'

[한겨레] 21세기 노동해방문학은 ‘삶문학’

[부산일보] 책세상 / 카이로스의 문학

[국민일보] 책꽂이 / 카이로스의 문학

[중앙일보] 새로나온책 / 카이로스의 문학

[영남일보] 새로나온책 / 카이로스의 문학

[광주대한일보] "노동문학서 삶문학으로의 전환 꿈꾸다"

[컬쳐뉴스] 삶의 잠재성과 활력에 주목해야

[경인일보] 눈길끄는 볼만한 책 / 카이로스의 문학

[오마이뉴스] "박노해의 시적 긴장이 많이 떨어졌다"

 

 

보도자료

 

 

재입고 알림 신청
휴대폰 번호
-
-
재입고 시 알림
floating-button-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