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소가 가장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었고, 집에서 가장 큰 일꾼이었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뒤바뀌어, 소는 우리 농민과 농업의 수난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존재 가치가 고기의 양과 값으로 계산되고 평가되는 소. 시인들은 이런 ‘소’ 앞에서 뭐라고 말하기 전에 잠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모름지기 시인이란 이런 소의 말을 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여행객이나 농부가 할 수 없는, 소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게 시인이다. 시인은 그의 영혼을 비워 속에다 소를 들어앉혀야 한다. 그런 다음 소가 하는 말을 세상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여기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이응인(시인), 「누렁소가 걸어온 길」 중에서
출간의 의미
문학의 위축 속에서도 그간 노동시의 끊임없는 실험과 투쟁의 힘을 지속적으로 표출해온 <마이노리티 시선> 서른다섯 번째 책으로 <객토문학> 동인의 아홉 번째 시집 『소』가 출간되었다.
경남 마산, 창원 지역 노동문학 모임인 <객토문학> 동인은 2000년 첫 동인지 『오늘 하루만큼은 쉬고 싶다』(다움)를 묶어낸 이래로 현실의 첨예한 문제들을 다룬 기획 시집을 꾸준히 출간해 왔다. 노동열사 배달호 추모시집 『호루라기』(갈무리, 2003), 평화 옹호 시집 『칼』(갈무리, 2006), 한미 FTA 반대 시집 『쌀의 노래』(갈무리, 2007), 신자유주의와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노동자들의 애환과 저항을 그린 『각하께서 이르기를』(갈무리, 2011) 등 그간 <객토문학> 동인이 다뤄왔던 주제들은 ‘노동문학은 생명을 다했다’는 오늘날에도 시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는 이들의 끈질긴 고민을 잘 드러내 준다. 이들의 시작(詩作)은 자본과 권력의 폭압에 의해 핍박받고 소외받는 이들이 있는 한 노동문학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때 ‘생구’라 불리며 농사꾼의 가족이자 동료로 존중받았던 소는 오늘날 “순전히 쇠고기 육괴로만 계량”되며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전염병에 걸려 살처분되는 처참한 시대를 살고 있다. “고기로 태어났기에/ 난도질당”하며,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 구제역 걸려 떨고 있”는 소의 눈망울 앞에서, 시인은 한미FTA와 구제역 파동으로 생계를 박탈당한 농민의 마음,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받고 살길이 막막해진 해고노동자의 현실을 떠올린다.
3부 <탈핵 희망>의 시에서 시인들은 더욱 깊이 있는 ‘생명’에 대한 성찰을 이어간다.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를 겪고도 “인류를 파멸케 하는” “핵 발전을 찬양하고 / 765kv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이는” 권력을 향해서 시인들은 “먼저/ 사람이 살아야 한다”고 외친다. 이렇듯 <객토문학>의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어들 속에서 독자는 ‘소’가 되어,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분신했던 ‘이치우’ 열사가 되어 함께 아파하며 시대를 고민하게 된다.
9집을 내며
우리 조상들은 소를 생구(生口)라 불렀다.
생구는 원래 한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을 지칭했는데, 소를 사람과 똑같이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여겼던 것이다. 일찍이 우리 민족공동체와 동고동락한 <소>가 겪고 있는 오늘날의 참혹한 상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면서 소가 생구의 지위에서 쫓겨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2012년 3월 15일 발효된 한미FTA로 인해 밀려들어오는 미국산 소에게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농촌과 축산농가의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소와 축산농민의 현실과 비애, 갈수록 폭등하는 사료 값으로 굶어 죽거나 구제역으로 살처분 당한 수천마리의 소를 시詩로써 승화시켜 내는 작업은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엄숙한 일이기도 했다.
1986년 폭발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린 또 얼마나 그 사실을 상기(想起)하고 있었던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방사능 물질이 한반도까지 날아 올 것이라는 관측과 예측이 우리를 불안하게 했지만 또 잊고 산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일본은 향후 몇 년 후에 원전을 폐기하고 대안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했지만 우린 오히려 원전에다 나라의 미래를 걸고 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고리원전에서 생산한 초대형 초고압 76만 5천 볼트의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 69개가 통과하는 밀양시 5개면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싸움을 7년째 계속하고 있는데, 꼭 남의 나라 이야기 같이 들리는 것은 왜인가? 이 싸움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목숨을 바쳤으며 주민들은 일상적 삶이 파괴되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 사회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문학이 무슨 소용인가? 이 시점에서 물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문학이 이런 엄숙하고 의미 있는 일이 되도록 스스럼없이 발을 들여놓는 데서 <객토문학>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아울러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 의미 있는 일에 기꺼이 동참해 주신 강명자, 김영곤, 박구경, 박보근, 성선경, 양곡, 오인태, 오하룡, 이월춘, 이응인, 장인숙, 정선호, 표시목, 최형일 시인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문학이 좀 더 삶의 한복판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게 동인들의 바람이다. 그 바람이 곧 이루어지리라 본다.
<객토문학> 동인 소개
1990년 경남 마산 창원에서 터를 잡아 1997년까지 작은책 시집 『북1』에서 『북10』까지 발행을 하였고, 잠시 공백기를 거쳐서 2000년 제1집 『오늘 하루만큼은 쉬고 싶다』(도서출판 다움)를 시작으로 2001년 『퇴출시대』(도서출판 삶이 보이는 창), 2002년 『부디 우리에게도 햇볕정책을』(도서출판 갈무리), 2003년 ‘배달호 노동열사 추모 기획시집’ 『호루라기』(도서출판 갈무리), 2004년 『그곳에도 꽃은 피는가』(도서출판 불휘), 2005년 『칼』(도서출판 갈무리), 2007년 ‘한미FTA반대 기획시집’ 『쌀의 노래』(도서출판 갈무리), 2008년 『가뭄시대』(도서출판 갈무리), 2009년 『88만원 세대』(도서출판 두엄), 2011년 『각하께서 이르기를』(도서출판 갈무리)까지 기획시집 두 권과 동인지 여덟 권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노력하였다.
<객토문학> 동인의 책
문영규 시집 『눈 내리는 밤』
박덕선 여성문화 동인 ‘살류주’
1집 『상처받은 몸』
2집 『아버지』
3집 『여성살이』
4집 『주부가출 권하는 사회』
배재운 시집 『맨얼굴』
이규석 시집 『하루살이의 노래』
이상호 시집 『개미집』
정은호 시집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표성배 시집 『아침 햇살이 그립다』
『저 겨울산 너머에는』
『개나리 꽃눈』
『공장은 안녕하다』
『기찬 날』
누렁소가 걸어온 길ㆍ기획시화전 ‘소’
‘소’에서 잠시 숨을 멈춘다. 내 오른쪽 눈 밑에 커다란 흉터가 하나 있다. 어릴 적에 소뿔에 받힌 상처이다. 사람이 다쳤는데도 소를 혼내거나 내다 팔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에는 소가 가장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었고, 집에서 가장 큰 일꾼이었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뒤바뀌어, 소는 우리 농민과 농업의 수난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존재 가치가 고기의 양과 값으로 계산되고 평가되는 소. 시인들은 이런 ‘소’ 앞에서 뭐라고 말하기 전에 잠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행객이 되어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다 소를 만날 때도 있을 것이다. 냇가에서나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를 만나면, 일상에서 한 발 벗어난 여행객은 마음의 여유와 평온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와는 달리, 농부에게는 하루하루를 함께 살아온 소가 있었다. 논밭에 나가 어두워지도록 함께 일하고 저녁이 되면 함께 쉬는 소. 그 시절 농촌에서 소는 삶의 동반자이자 가족이었다.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돌아온 농부는 외양간에서 되새김질하는 소의 휴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다.
모름지기 시인이란 이런 소의 말을 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여행객이나 농부가 할 수 없는, 소의 말을 전할 수 있는 게 시인이다. 시인은 그의 영혼을 비워 속에다 소를 들어앉혀야 한다. 그런 다음 소가 하는 말을 세상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여기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깜부기 그을음 날리는 들판
종자 망태기 든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이렇게 쇠창살 사이에 갇혀
허벅지 비곗살이나 찌게 하느니
묏등 사래 긴 밭은 산신제에 올리고
흙내 좋은 엿골 구릉논 평토제로 바치고
영결종천할랍니다.
누가 저 빈 들에 씨앗 하나 묻어주오
내 후생에 되나거들랑
다시 갈아엎어 보고 싶소
―박보근, 「뒤끌갈이」 중에서
시인은 이렇게 소 울음을 토한다. ‘종자 망태기 든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들판은 이미 끝장난 곳이 아닌가? ‘쇠창살 사이에 갇혀 / 허벅지 비곗살이나 찌게 하느니’ 차라리 ‘영결종천할랍니다.’라고 절규하는 소가 인간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종자 망태기’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쇠창살 사이에 갇혀 / 허벅지 비곗살이나’ 찌우고 있는 건 소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게 무슨 짓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도 모르고, 그냥 고기 맛에 미쳐 있는 인간에게 소가 고하고 있다. 시인은 이렇듯 소의 목소리를 듣고 옮길 줄 아는 존재이다.
누렁소가 있었다
누렁소가 끌던 쟁기가 있었다
누렁소가 부치던 사래 긴 밭이 있었다
누렁소가 짊어지고 가던 가계가 있었다
―문영규, 「소」 중에서
그랬다. 그때는 누렁소가 사래 긴 밭을 갈고, 누렁소가 가계를 짊어지고 갔다. 누렁소가 없으면 가계는 더욱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일에 있어서는 인간은 누렁소의 보조였다. 그랬기에 누렁소는 진정 소중한 가족이었고 또 그렇게 대접받았다. 그 누렁소를 돌보는 일은 아이들 몫이었다.
새벽이면 고삐를 쥐고 누렁소를
풀밭으로 이끌던 소년이 있었다
……(중략)……
석양 무렵 집으로 오던
소년의 휘파람소리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소년이 기술자를 꿈꾸며
소를 외양간에 묶어두고
도시로 떠나던 아침이 있었다
소년에게도 도시는 가슴 두근대는 꿈이자 눈부신 미래이기도 했다. 소년은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양수기를 만들고 / 탈곡기를 만들고 경운기를 만들’었다. 그러자 ‘누렁소가 끌던 쟁기가 없어졌다 / 누렁소가 부치던 사래긴 밭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 이제 농가의 살림을 위해서 / 누렁소가 할 수 있는 것은’ 제 살점을 내다 파는 일뿐이었다.
누렁소는 더 이상 농가의 식구가 아니었다
‘소년은 / 어느덧 청년이 되고 잔업하고 철야하고 특근하고 / 소처럼 일하였다.’ ‘회사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고 / 성능 좋은 자동기계들이’ 청년의 자리를 빼앗았다. 노동으로 살아온 청년에게 해고통지서는 ‘세상을 송두리째 빼앗는 일’이었다.
그러나 소처럼 일하고도 이제는
고기로 던져 저 싸디 싼 가격표조차 갖지 못하는
현실!
―문영규, 「소」 중에서
고향을 떠나온 소년이 걸어온 길은 누렁소가 걸어온 길과 같은 운명이다. 누렁소를 버리고 떠날 때부터 소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산업화, 도시화가 가져다 준 헛된 꿈. 소년은 중년이 되어서야 그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너무나 멀리 떠나왔기에 되돌아갈 엄두조차 내기 힘든 현실이 그의 눈앞에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고깃덩이로 전락한 누렁소는 여기서 주저앉지 않는다.
푸른 들판을 뒤로 한 채
굶어 죽어가는 새끼를
안쓰럽게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일만 원의 송아지를 앞세우고
장관에게 대통령에게 길을 묻고자 나섰다
―최상해, 「마이웨이」 중에서
‘굶어 죽어가는 새끼를 / 안쓰럽게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소는 절망과 슬픔의 끝에서 그냥 쓰러지지 않는다. ‘일만 원의 송아지를 앞세우고 / 장관에게 대통령에게 길을 묻고자 나섰다.’ 시인은 소의 목소리를 통해서 ‘장관에게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따지지 못한 너희는 무어냐?’고 되묻고 있다. ‘일만 원의 송아지’라는 구절에서는 소보다는 농부의 목소리가 더 짙게 묻어 있긴 하지만.
푸줏간에 내걸리는 고깃덩이의 질량으로
모든 가치가 결정되는 같잖은 세상이여
봄날이 오면 잠 깊은 논밭을
갈아엎던 시절이 못내 그리운 듯
길거리에 나서서 혹은 광장으로 나아가
촛불을 밝혀들고 움메움메 울음 우는
우리나라 부룩데이들이여
―양곡, 「소」 중에서
이 시에 이르면 ‘소’는 촛불을 든 시민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들에게는 ‘논밭을 / 갈아엎던 시절’의 기억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그러니 ‘고깃덩이의 질량으로 / 모든 가치가 결정되는’ 세상을 어찌 두고 볼 수 있겠는가? ‘촛불을 밝혀 들고’ ‘울음 우는’ ‘부룩데이’가 되어 ‘광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소’라는 낱말만 떠올려도 잠시 숨을 멈출 수밖에 없는 뼈아픈 역사가 우리 앞에 현재 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다.
* 봄바람 매섭던 3월 24일, 마산문학관 뜰에서 <객토문학> 동인의 <소 기획시화전>이 시작되었다.
이응인(시인)
목차
9집을 내며
1부 <소> 기획 초대시
강명자 아직 끝나지 않은 식사
김영곤 동병상련
박구경 또 다른 시멘트우리
박보근 뒤끌갈이
성선경 소
양 곡 소
오인태 눈, 목격자의
오하룡 소야, 소야
이월춘 반추(反芻)를 꿈꾸다
이응인 소로 태어난 나를 위하여
장인숙 아버지의 소
정선호 소를 키우는 일
최형일 고삐
표시목 하루
2부 <소> 기획 동인시
노민영 귀향
노간주나무
문영규 牛公이시여
소
박덕선 막순이
1984년 그때도 이랬어
배재운 가카
결단이 필요하다
이규석 배반의 시대
한미FTA
이상호 생구
정은호 우리 소
우리소가 죽었다
최상해 소는 없다
마이웨이
표성배 코뚜레
그저 애틋함이다
허영옥 눈물 1
눈물 2
3부 <탈핵 희망>의 시
노민영 인류의 반역자
문영규 영혼의 목소리
박덕선 아름다운 상상
배재운 공익을 위한다면
이규석 살인행위
이상호 반성한다
정은호 원전이 사람의 생목숨보다 더 귀한 것입니까
최상해 2011년 9월 22일 목요일(맑음)
표성배 요지부동(搖之不動)
허영옥 빠른 뉴스
4부 시의 숲 숲의 시
노민영 M 바이러스
돌연변이
문영규 저녁 무렵
[술술 풀리는 집] 화장지
박덕선 갱년기, 여자
이 시대의 모던타임
배재운 내 그릇
도마
이규석 아내와의 술자리
무명씨
이상호 습관
지지대
정은호 돋보기
거울
최상해 석류가 익어 가는 집
다스리는 일
표성배 그리고, 2012년입니다
자정에
허영옥 아버지의 집
감자
누렁소가 걸어온 길ㆍ기획시화전 ‘소’ / 이응인
<객토문학> 동인의 책
책 정보
2012.10.20 출간 l 122x190mm, 무선제본 l 마이노리티시선35
정가 7,000원 | 쪽수 144쪽 | ISBN 978-89-6195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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