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주의 유토피아는 활활 타면서 더 밝은 빛을 내는가, 활활 태우면서 유토피아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는가?
기술주의 시대에 예술은 무엇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술과 사회와 예술을 횡단하며 현대사회의 현상과 작동시스템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
지금의 디지털 기술 매체는 ‘실패하지 않는 예술’을 넘어서 ‘예술가 없는 예술’을 꿈꾸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 창작한 예술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창작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인공지능은 예술가의 도구인가? 하나의 주체로서 협업자인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혹은 우려)를 갖게 한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인 것이 있다. 과연 인공지능은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이 의문을 아이폰의 ‘시리’에게 물었다. 시리는 거듭 대답한다.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 본문 중에서
간략한 소개
미술비평가 안진국의 첫 번째 단독 저서. 저자는 현대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변화들을 인공지능, 팬데믹, 복제, 저작권, 스마트폰, 짤, 밈, SNS, 뉴트로, 제도권미술, 인류세, 포스트휴먼, 재난, 커먼즈 등의 키워드(해시태그)와 접속시켜 사유한다.
우리 시대에 기술과 예술은 어떤 양상을 보이며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팬데믹은 예술계에 어떤 충격을 주고 있는가? 인공지능의 시대에 누가 예술가인가? 지적재산권은 창작자를 양성하는가, 플랫폼 기업의 배를 불리는가?
이 책에 따르면 초연결시대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디지털-인터넷 기술은 둔갑술에 능하다. 만민 디지털-인터넷화를 촉발한 스마트폰은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시위대의 짱돌과 화염병이 되고, 이미지 복제-변형-공유의 놀이터가 되고, 백과사전이 되고, 사진첩이 되고, 카메라가 된다. 마녀사냥과 신상털기의 도구가 되고, 가짜뉴스의 배달부가 되고, 어떤 때는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열쇠 구멍이 된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폐허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폐허’는 몰락과 새로운 시작을 품은 공간이다. 우리는 과도한 자본주의적 산업기술 발전에 대한 경고장으로서 ‘인류세’라는 시대적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기술과 사회와 자연이 뒤섞인 새로운 테크노-생태를 구축하려는 몸짓, 인간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로서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도 목격된다. 이 책은 인류가 맞닥뜨린 난제를 해결하는 데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상상력을 촉발하는 ‘커머닝 예술 행동’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상세한 소개
디지털-인터넷 기술의 ‘불타는 유토피아’
우리는 기술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인도하리라 기대했다.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공유, 더 많은 정보, 더 많은 데이터. 이러한 바람은 디지털-인터넷 기술에 불을 지폈다. 디지털과 무선 정보통신 기술, 빠른 정보 이동과 처리 기술, 많은 데이터를 촘촘히 저장할 수 있는 하드웨어는 디지털-인터넷 기술의 연료가 되어 불길을 키우고 있다. 기술주의 유토피아는 활활 타면서 찬란한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디지털-인터넷 기술의 불길은 이율배반적으로 유토피아를 태우며 그곳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불타는 유토피아’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기술 유토피아의 이면 : #악플 #마녀사냥 #초단기알바 #팬데믹 #성장제일주의
이 책에 따르면 보편기계로서 ‘개방된 민주적 공간’을 형성하리라고 기대했던 ‘디지털-인터넷’이 악플과 신상털기, 마녀사냥, 가짜뉴스 등이 넘쳐나는 사악한 기계로 변하고 있다. 데이터 기술발전은 모든 것을 자동으로 분류, 예측, 실행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하여 생활의 편리함을 주고 있지만, 그 시스템 틈바구니에서 인간은 데이터 눈알 붙이기(데이터 라벨링)를 하거나 온라인의 초단기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복제는 더욱더 쉬워졌고, 저작자의 권리 보호를 중요하게 여기는 목소리가 높아져 저작권은 점점 더 강조, 강화되는 추세이지만, 사실상 저작권 수입은 창작자보다는 플랫폼을 만든 테크 기업이나 저작권을 구매한 법인 저작자의 몸집을 불릴 뿐이다.
고도화된 기술과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합이 역사상 유례없는 편의와 자유를 실현한 듯 선전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는 인류세를 맞이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제시하며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결국 성장제일주의라는 고전적인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 부스러기가 태산처럼 모여 만들어낸 빅데이터는 지금 가야 할 길과 저녁 외출을 하며 입을 복장과 내일 날씨까지 알려주는 확률 절대자가 되었다. 확률 절대자는 사람의 모든 것을 지정해주며, 확증편향을 일으키고, 사회를 획일화하고 있다. 우리는 빅데이터라는 확률 절대자가 알려주는 대로 같은 길로 가고, 같은 코스의 맛집을 들르고, 같은 방식으로 프러포즈를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예술에 가져온 변화 : 복제, 포스트인터넷 아트, 인공지능
이런 시대에 예술의 양상은 어떠한가? 디지털 기술이 예술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이 책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은 복제, 변형이 손쉽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우선 예술가의 작업 방식을 바꿨다. 과거에는 손으로 종이에 직접 예비 드로잉을 했다면, 오늘날의 작가들은 디지털 프로그램에서 복사, 붙이기, 편집, 삭제 기능을 사용한다. 작업 중간에 실수하면 바로 작업을 뒤로 돌려 실수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작업하는 것이 가능하다. 저자는, 실수와 오류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나오는데, 예술가가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면서 혹시 그런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한다.
또한, 웹아트나 넷아트는 모든 사람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평등하게 작품을 접하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었다. 오늘날 그러한 기대는 포스트-인터넷 아트라는 형태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인다. 미술 제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면서 비물질적 디지털 데이터를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상은 빛이 바랬다. 이제 온라인에 떠도는 비물질적 이미지들을 물질화시켜 그것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미술 제도권에 전시하는 포스트-인터넷 아트가 부상하고 있다.
인공지능도 예술에서 중요한 화두이다. 인공지능은 디지털과 빅데이터, 딥러닝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현대 미술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활용되고 있다. 인공지능 작가들은 기능적으로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더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질문들이 제기된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단순히 도구로만 활용해야 할 것인가, 도구 이상의 인간 조수(비서)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과 동등한 새로운 종의 예술가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인공지능 작가는 예술가인가?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예술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가? 예술계에서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 책은 진단한다.
팬데믹과 시각예술
코로나19는 예술계에도 커다란 어려움을 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하여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미술관은 그 주요 활동들인 전시와 교육이 거의 마비된 상황이다. 그래서 전시와 교육 활동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튜브로 전시 투어 영상을 올린다거나 전시장을 그대로 스캔하여 온라인 가상갤러리로 구현하는 등의 방식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일상화된 비대면 상황에 예술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온라인 전환’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으며, 좀 더 광범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열린 문제라고 이 책은 말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회성 전염병이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가 불러온 재앙인 만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예술에서도 필요하지 않은지, 이 책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작권 전쟁의 주범은 따로 있다 :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서 사라진 이유
이 책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어려운 사정에 처한 대다수 예술가들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지적재산권’, ‘저작권’에 대한 통념을 의문에 붙인다. 시각예술에서는 특히 저작권이 학문 연구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책에 따르면 시각예술 연구서적이나 잡지를 출판할 때, 이미지 저작권료가 제작비의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여 출판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고, 이런 현실은 동시대 미술 연구서적보다는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고전 미술 연구로 미술서적 출판이 쏠리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사기업 ‘워너/채플 뮤직’은 1998년에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의 저작권을 확보하여 매년 23억 원 이상의 저작권료를 벌어들인다. 마이클 잭슨은 1985년 비틀스 노래 목록을 4,750만 달러에 사서, 해마다 수백만 달러의 저작권료를 취득했다. 미국에서는 1928년 제작된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소유자인 월트디즈니사의 압력으로 관련 법 개정이 이루어져 저작권 보호 기간이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까지 연장되었고, 미키마우스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어린이의 친구로서 엄청난 저작권료를 수확한다. 이 책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서 자취를 감춘 것도 저작권료 때문이다. 근근이 작업 활동을 이어가는 대다수 예술가들의 현실과, 저작권의 ‘법적 소유자(법적 저자)’가 취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의 가늠하기 힘든 격차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저작권 전쟁은 창작자와 복제자 사이의 다툼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기업들을 비호하며 저작권법을 갱신하고 수호하는 정치인이 있고, 저작권법의 수혜자인 저작권 보유자들에게 고용되어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법률가들이 있으며, 법률가들을 고용하여 적극적인 저작권료 수취 캠페인을 펼치는 기업가들이 있다. 저작권은 단순히 저작자의 권리를 넘어서,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기업은 저작권을 사들여 저작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득을 얻는다. 플랫폼은 저작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거래를 맺어주면서 저작자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다. 지금까지 저작권 전쟁에서 보이지 않았던 세력들을 드러내고 그들이 하는 행위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커머닝 예술 행동이 열어줄 상상력
이 책은 인류가 직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커머닝(commoning)과 커먼즈(commons)를 이야기한다. 커먼즈, 커머닝은 우리말로 공통장, 공유지, 공유재, 공통의 것 등으로 번역되는데, 우리 삶과 세계의 ‘공통’적인 측면들을 드러내는 대안적인 용어로서 예술은 물론이고, 사회운동, 정치학, 사회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00년대 들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이 책에서 커머닝은 “공통의 것으로 잘 조직하기 위해 개입하고 관리하는 행위”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공통의 것으로 잘 조직하기 위한 행위가 커머닝이라면, 이 책은 예술도 커먼즈일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이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역할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인류 공통의 난제들을 우리가 피부로 느끼게 되고, 사회 시스템이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술은 상상력으로 그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나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럴 때 ‘커머닝 예술 행동’이란 공통의 이익을 위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한 단면일 것이다. 커머닝 예술 행동은 공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행동하는 예술을 의미한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은 기존 질서가 가지 않았던 길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장이다. 커머닝 예술 행동은 예술적 상상력을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공통의 것으로 조직하여 함께 대안적 예술을 형성하거나 누리는 예술 행동이다.
커머닝 예술행동은 이 책의 핵심 질문,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응답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비영미권 미술관 협의체인 ‘인터내셔널’은 2009년에 “예술의 비판적 상상력이 시민의 제도이자 시민권과 민주주의 개념의 촉매제”로, “예술과 예술 기관이 … 전반적인 제도의 공식적인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논의하기 위한 적합한 플랫폼”이라고 선언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 이후, 사회 시스템이 오작동하고 있었음이 밝혀졌을 때, 예술은 인류 공통의 난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은 인류의 난제를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각인시키고, 시스템이 상상력을 잃었을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각 장의 내용 소개
저자는 각 장의 내용을 해시태그(#)로 압축하고 있다.
1부 ‘낮달’에서는 마치 ‘낮달’처럼 존재하지만,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슈들을 다룬다.
디지털-인터넷의 강력한 감시와 통제의 힘인 #편재성, #인공지능이 예술에서 하는 일, 기술주의의 틈에 끼여 #유령처럼 일하는 온라인 노동자,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오게 된 근원적 원인과 비대면 예술 및 감상이 지닌 한계와 새로운 대안, 초기술복제시대에 #복제를 둘러싼 #저작권 전쟁 등이다.
2부 ‘둔갑술’에서는 ‘둔갑술’에 능한 디지털-인터넷 기술로 인해 변화를 겪고 있는 문화를 살펴본다.
시위문화에서 화염병이나 짱돌을 대신하고 있는 #스마트폰,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짤과 #밈, 전시장이 되고 있는 #SNS, 형상 없는 디지털-온라인이 물질적 형상을 가지고 #제도권미술이 되는 현상, 아날로그의 반격이라고 적지만, 디지털의 역습으로 읽어야 할 #뉴트로 문화 현상 등이 분석된다.
3부 ‘폐허’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그래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미술과 문화적 현상을 다룬다. ‘폐허’는 몰락의 자리와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자리라는 양면적인 의미를 가진 공간이다.
#인류세 위기에 닥친 우리의 모습,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포스트휴먼으로의 변화, #재난과 #재생이 예술로 들어오는 방식, 공통의 소유로서 #커먼즈 예술의 가능성 등의 주제를 살펴본다.
4부 불면증에서는 쉬지 않고 데이터를 모으며, 잠들지 못하는 현상이 낳은 불안의 풍경을 다룬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서 ‘불면증’을 앓고 있다.
탈역사적이고 모든 것이 상대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빅데이터가 만든 확률 절대성, 바로 #다타이즘, 빅데이터의 사생아라고 할 수 있는 #아카이브가 현대 미술에서 등장하는 방식, 모든 것이 디지털 ‘블랙박스’에 저장되고 있는 시대에 인간이 디지털 기계언어를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번역불가능)할 때 닥칠 결과에 대한 불안 등이 고찰된다.
지은이
안진국 Lev AAN (Ahn, Jinkook), 1975~
미술비평가. 동시대에 일어나는 다채로운 사건들의 내면에서 흐르고 있는 사유체계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동시대인의 보편적인 사유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으며, 졸업 후 10여 년간 시각예술가로 활동하던 중 ‘2015 조선일보 신춘문예’의 미술평론 부문에 「제안된 공간에서 제안하는 공간으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비평을 시작했다.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의 편집 위원으로 활동했으며(2016~2017), 월간 『BIZart』 고정 필자(2016.7.~)이다. 우란문화재단의 연구지원으로 『한국현대판화 1981-1996』(2019)을 발간했으며, 『비평의 조건 ─ 비평이 권력이기를 포기한 자리에서』(2019)와 『기대감소의 시대와 근시 예술』(2017)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의 미술정책분과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디지털·문화·정책을 연구하면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책 속에서
지금의 디지털 기술 매체는 ‘실패하지 않는 예술’을 넘어서 ‘예술가 없는 예술’을 꿈꾸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 창작한 예술이다. ... 과연 인공지능은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이 의문을 아이폰의 ‘시리’에게 물었다. 시리는 거듭 대답한다.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 1부 낮달, 24~25쪽
하지만 튜브형 물감은 시각예술가의 습성을 변화시켰다. 클로드 모네부터 폴 세잔까지 실제 자연을 보고 사생할 수 있었던 것도 튜브형 물감 덕분이다. 모네가 말년― 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것도 어쩌면 수련 연못에 반짝이는 빛을 너무도 오랫동안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사실 튜브형 유화물감이 없었다면 인상주의의 등장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 1부 1장 연기 없이 타는 불, 33쪽
온라인 테크 기업들은 사용자가 남긴 온라인 콘텐츠 중 가장 검토하기 힘든 부분을 인간에게 맡긴다. 인간은 기계 속의 유령처럼 SNS 사용자가 자신의 은밀한 신체부위를 찍어 올린 사진이 ‘성인물 등급’ 사진인지, 그저 신체 일부가 담긴 무해한 ‘일반 등급’인지 태그를 달고, 온라인에 올라온 단어가 외설적인 뉘앙스가 있는지 없는지 결정하고, 인공지능의 훈련 데이터라고 불리는 기본 이미지들을 분류하여 이름을 붙인다. ― 1부 3장 기계 속의 유령, 92~93쪽
표절 논란에는 크게 두 축이 엮여 있는 듯 보인다. 그 두 축은 ‘원저자의 권위’와 ‘저자 권리로서 저작권료’다. 전자는 감정의 측면이고, 후자는 자본의 측면이다. ... 과연 저작권료로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 1부 5장 죽은 자의 부활, 156~157쪽
디지털의 손쉬운 복제-변형-공유 기능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일반 대중이 쉽게 시각 이미지를 다룰 수 있게 만들었다. 편집자나 디자이너, 예술가와 같은 시각전문가와 일반인을 나누고 있는 높은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 이 시대의 대중은 소비자-창작자(사용자-생산자)가 되었다. 넓은 의미의 예술인간이 된 것이다. ― 2부 1장 어디에나 존재하는, 196~197쪽
3D 프린터 기기가 상용화되면서 디지털 복제 미술의 지형이 변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비물리적인 디지털이 그 장벽을 뚫고 물리적 현실에서도 복붙기술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로써 디지털이 적극적으로 ‘미술관’이라는 미술제도에 노크를 하는 양상을 만들었다. 미술관(미술제도)을 벗어나고자 했던 디지털이 뒷걸음으로 다시 미술관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 2부 3장 비물리적 디지털이 물리적 작품이 될 때, 229쪽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서 ‘불면증’을 앓고 있다. 현재는 다다익선이 미덕인 시대다. 창고형 쇼핑몰에서 다 쓰지도 못할 물건과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카트에 담는다. ... 디지털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더 심하다. 데이터는 종교이며, 돈이며, 예언자다.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뭔가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해주리라 생각한다. ― 4부 불면증, 332쪽
저자 인터뷰
Q. 이 책을 통해서 ‘디지털’ 기술이 예술에 가져온 변화가 참으로 크다는 감각을 새삼스럽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변화들이 두드러지는지 독자들을 책의 내용으로 안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사례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디지털 기술은 디지털아트와 인터렉티브 아트 등과 같은 뉴미디어아트를 불러왔습니다. 또한 예술의 기록과 재생, 공유, 보관 등도 간편하게 했습니다. 그 외에도 작업 과정에서 여러 편리함을 주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예술에서 여러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에서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비판적 시각에서 예술과 디지털 기술의 관계에 접근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복제, 변형이 손쉬워서 예술가의 작업 방식을 바꿨습니다. 예전에는 손으로 종이에 직접 작업의 예비 드로잉을 했었는데, 이제는 디지털 프로그램에서 복사, 붙이기, 편집, 삭제 등으로 하고 있습니다. 작업 중간에 실수하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작업을 뒤로 돌려 실수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작업합니다. 그렇다 보니 완벽한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실수와 오류는 어찌 보면 예술의 정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기술을 예술가가 사용하면서 그런 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본력이 없는 신진예술가들은 컴퓨터를 통해서 완벽하게 작업하여 그것을 다시 물질성 있는 작품으로 그립니다. 그들에게 실수나 실패는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만드는 과정 중에 순간적으로 나오는 감각적 표현입니다. 완성과 같은 완벽한 예비 작업은 이러한 표현을 소멸시킵니다.
또한 디지털의 편의성과 자본주의의 경제성이 결합되면서 예술가를 1인 기업가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작업 제작뿐만 아니라,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작품 사진을 올리고, 자신의 전시 보도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과 같은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습니다. 작업 외에 자신을 메니지먼트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것이 비단 예술계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디지털 기술은 예술가의 작업할 시간을 끊임없이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작업의 변화를 보자면, 모든 사람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평등하게 작품에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웹아트나 넷아트의 기대는 현재 포스트-인터넷 아트라는 형태로 뒷걸음질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비물질적 디지털 데이터를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상은 퇴색되고, 미술제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면서 온라인에 떠도는 비물질적 이미지들을 물질화시켜 그것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미술제도권에 전시하는 방식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도 예술에서 중요한 화두입니다. 인공지능은 디지털과 빅데이터, 딥러닝 알고리즘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현대 미술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식을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인공지능이 창의력을 가지는지 의문이지만, 기능적으로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더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단순히 도구로만 활용해야 할지, 도구 이상의 인간 조수(비서)로 활용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과 동등한 새로운 종의 예술가로 인정해야 할지 예술계에서는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더불어 인공지능이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감상자로서 인공지능이 가능한지에 대한 기술적, 인지과학적, 윤리적 논의도 필요합니다.
Q. 책의 여러 곳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예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변화들을 조망하고 분석하고 계십니다. 코로나19는 예술계에 충격이었는지요? 팬데믹 이후의 예술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이후에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코로나19는 예술계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공연예술 분야가 가장 심한 타격을 받고 있지만, 시각예술계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빗장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고, 선별적 개방과 폐쇄가 거듭 반복되면서 미술 전시를 찾는 감상자의 수가 줄더니, 지금은 아예 찾지 않는 상황에 이른 듯 보입니다. 이것은 개인전으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보여주던 예술가에게는 심각한 타격입니다. 미술관과 같은 기관들도 타격은 심합니다. 이런 기관의 목적에는 미술작품의 수집과 연구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주요한 활동이 전시와 교육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이 활동이 거의 마비된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활동을 온라인에서 풀어보고자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전시 투어 영상을 올린다거나 전시장을 그대로 스캔하여 온라인 가상갤러리로 구현하는 등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온라인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방식으로 변하는 것은 매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그 크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데, 스마트폰 화면에서 보는 작품과 대형 티브이로 보는 작업은 같은 작업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작품이나 장소가 지닌 분위기와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할 텐데, 온라인 화면만 보는 것은 이것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술관 전시는 이런 방식의 온라인 전시로 대거 이동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왔는데, 코로나19로 급격화되었을 뿐이니까요. 이제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물리적 공간이 왜 필요하냐는 식의 말이 나오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에 대한 저의 짧은 생각을 책에 담기도 했습니다.
Q. 일반적으로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생각되곤 하는 ‘저작권’이 사실은 저자(작가)가 아니라 “테크 기업과 법률가, 불로소득 플랫폼”을 살찌우는 제도라는 지적이 날카로웠습니다. “이제 저작권 전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라는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이는 ‘창작’의 시대는 지났고, 지금은 ‘제작’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것을 만들더라도 그것은 다른 것에 빚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예술가가 생각하여 예술이 공유재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지금도 심각하게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술가가 작업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작품을 손쉽게 도용하거나 복제하는 것을 그저 디지털 시대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면서 시대적 환경을 두둔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대가 변한 것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없고요.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더 연구하고 생각하고 다른 분들과 더 폭넓게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저작권 전쟁의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은 도용이나 복제 등에 관한 작은 범주의 논의가 아닙니다. 저작권에서 보이지 않는 부류가 큰 이익을 가져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법과 이를 이용해 불로소득을 가져가는 플랫폼을 저작권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작권의 장에는 창작자와 복제자가 있고 그들 사이의 논쟁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저작권법을 갱신하는 법률가가 있고, 그 법률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업가가 있습니다. 저작권은 단순히 저작자의 권리를 넘어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저작권을 사들여 저작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플랫폼은 저작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거래를 맺어주면서 저작자보다 더 큰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저작권 전쟁에서 보이지 않았던 세력들을 드러내고 그들이 하는 행위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전쟁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Q. 이 책은 예술장을 포함하여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커머닝’, ‘커먼즈’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커머닝 예술 행동’이라는 조어가 인상적이었고, 어떤 예술 행동이 커머닝일 수 있을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말이었습니다. ‘커먼즈’나 ‘커머닝’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그 개념이 무엇인지와 예술과의 관련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 말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서술하지 않았지만, 1968년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의 짧은 에세이 제목입니다. 공유지는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목초지나 바다, 산 등을 의미하는데,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과도하게 그것을 사용한다면 황폐해지고 전체의 이익을 파괴해서 공멸을 자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을 반박하면서 하딘의 가상의 초원은 진입이 개방된 열린 접근 체제(오픈 액세스의 비극)이지, 공유지가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엘레노어 오스트롬입니다. 그는 『공유의 비극을 넘어』라는 책에서 하딘을 반박했습니다. 개럿 하딘 자신도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제목을 달았어야 한다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을 거치면서 공유지는 공동이 함께 개입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습니다. 이 ‘공유지’가 바로 영어로 ‘커먼즈’로, ‘공유지’라는 한국어가 뜻을 너무 한정시킨다는 생각에 ‘공유재’나 ‘공통의 것’, ‘공통장’이라고 번역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뜻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영어 그대로 ‘커먼즈’라고 사용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커머닝은 공통의 것으로 잘 조직하기 위해 개입하고 관리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예술도 어떤 측면에서 ‘공유재’, 즉, ‘커먼즈’의 속성이 있습니다. 예술이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인류 공통의 난제가 이곳저곳에서 등장하고 사회시스템이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술은 상상력으로 그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나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머닝 예술 행동’이란 공동의 이익을 위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한 단면입니다. 모든 예술이 어느 정도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커머닝 예술 행동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행동하는 예술을 의미합니다. 예술은 기존 질서가 가지 않았던 길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장입니다. 그래서 논리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대안의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커머닝 예술 행동은 예술적 상상력을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공통의 것으로 조직하여 대안적 예술을 형성하거나 누리는 예술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우리 시대에 ‘데이터’는 예술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데이터는 예술에서 큰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작품이나 작가를 분류하여 큐레이션하는 것이 이제는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작품이나 작가의 데이터가 풍부해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다다익선처럼 많은 작품이나 작가, 혹은 관람객 반응에 대한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데이터주의(다타이즘)가 여러 모양으로 예술 작업이나 전시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빅데이터의 사생아로 아카이브를 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미술계에서는 아카이브 전시가 부쩍 늘었고, 꾸준히 열리고 있습니다. 수집에 대한 열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모으고 분류하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기능처럼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물론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밝히는 데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되기 시작한 시기에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자료의 수집, 검색, 축적이 손쉬워짐에 따른 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근대가 수평적인 병렬 구조의 ‘아케이드’ 시대(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였다면, 현대는 수직적인 축적 구조의 ‘아카이브’ 시대(고층 빌딩, 멀티플렉스)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아마도 계속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고, 그 데이터를 아카이브 전시 형태로 드러내거나 색상별로, 주제별로, 구도별로 분류하고 통계를 작성해 어떤 규격화된 결과 자료를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작업을 하는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어쩌면 작가들의 상상력을 훼손시킬지도 모를 일입니다.
데이터 수집은 한 번 가속이 붙으면 멈출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해온 결과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에서 데이터 수집은 계속될 것이고, 수집된 데이터는 예술을 재단하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목차
프롤로그 8
1부 낮달 : #편재성 #인공지능 #유령 #감염병 #복제 #저작권 21
1장 연기 없이 타는 불 : 헤테로토피아를 부유하는 납작해진 현대 미술 28
2장 미래의 침묵 : 목소리를 빼앗긴/빼앗길 예술 61
3장 기계 속의 유령 87
4장 코로나19 블랙홀 : 전염병 시대의 예술과 예술 커먼즈의 (불)가능성 115
5장 죽은 자의 부활 : 초기술복제시대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145
2부 둔갑술 : #스마트폰 #짤×밈 #SNS #제도권미술 #뉴트로 178
1장 어디에나 존재하는 184
2장 SNS는 전시장이 되고, 미술관은 SNS를 전시하고 207
3장 비물리적 디지털이 물리적 작품이 될 때 222
4장 덜 새롭고 더 진부해진 디지털? 233
3부 폐허 : #인류세 #포스트휴먼 #재난 #재생 #커먼즈 245
1장 태양과 바다와 인류세, 그리고 물질생태미학 251
2장 휴머니즘을 버리는, 혹은, 휴머니즘을 취하는 포스트휴먼 269
3장 사막에 피어난 예술, 예술로 들어온 재난 287
4장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 재난을 대하는 동시대 미술의 행동 강령 301
5장 커머닝 예술 행동, 공통의 부를 되찾기 위해 316
4부 불면증 : #빅데이터 #다타이즘 #아카이브 #번역불가능성 331
1장 숲은 검게 선 채로 침묵한다 : 빅데이터 시대, 아카이브 열병에 관한 진단서 335
2장 침묵의 바벨탑에 선 말을 잃은 자들 : 언어의 이종성이 불러올 미래에 대한 가상 시놉시스 368
에필로그 × 감사의 말 391
참고문헌 397
인명 찾아보기 401
용어 찾아보기 405
책 정보
2020.12.24 출간 l 130×188mm, 무선제본 l 카이로스총서70, Cupiditas
정가 23,000원 | 쪽수 408쪽 | ISBN 978-89-6195-255-2 03600
도서분류 1. 미술 2. 미술비평 3. 예술 4. 사회학 5. 인문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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