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하는 동시대 여성 운동을 추동하는 다원성을 명료하게 풀어내는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론적 역량은 서로 다른 특성들과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진정한 도구상자를 제공한다. ― 맛시모 데 안젤리스 『역사의 시작』 저자
실비아 페데리치의 작업이 담고 있는 에너지는 우리가 모든 유형의 착취에 맞선 투쟁을 되살리도록 이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페데리치의 작업은 하나의 공통장을, 투쟁 속에서 공동체를 창출하는 불복종의 공통 감각을 생산한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저자
간략한 소개
실비아 페데리치는 자본주의와 페미니즘 운동에 관한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 중 한 명이다. 20년이 넘는 기간에 걸친 저술을 모은 이 선집은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공통장(commons) 정치의 역사를 상세히 서술하고 비판하며, 자본주의가 부상하던 시기의 옛 인클로저와 오늘날 지구적 자본 축적의 핵심에 자리한 ‘새로운 인클로저’ 사이의 연관성을 고찰한다. 여성과 재생산 노동의 관점에서 공통장을 바라보는 이 선집은 공통장을 착취 관계의 바다에 떠 있는 행복한 섬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기존의 자본주의적 삶과 노동의 조직화에 맞설 수 있는 자율적 공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페데리치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재생산 공통장’이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가정에서 돌봄과 가사노동을 무상으로 수행해 왔다. 이 노동은 사람들의 삶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자본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왔다. 페데리치는 이처럼 자본의 기둥으로 기능해 온 재생산 노동을 다른 사회를 만드는 토대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토지와 물, 식량을 비롯한 생계 수단을 되찾고, 돌봄과 가사노동을 더욱 집합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조직해야 한다. 또한 시장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은 자급 생산의 전통과 각 지역에 축적된 지식과 기술을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생산력의 발전과 기술의 자동화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하리라는 믿음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아이를 씻기고 안아 주는 일, 환자와 노인을 돌보는 일처럼 삶을 재생산하는 수많은 활동은 기계로 완전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주의하에서 과학과 기술은 결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며, 애초부터 이윤 추구와 착취를 목적으로 설계되고 발전해 왔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단순히 장악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삶의 물질적 토대를 되찾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맺으며, 우리가 원하는 사회적 관계를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 책에서 ‘세계와 다시 노래하기’란 잃어버린 마법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발전과는 다른 삶의 논리를 발견하고, 함께 살아갈 집합적 주체를 만들어 내는 공통화(commoning)의 과정이다.
상세한 소개
기후 위기, 전쟁, 인공지능의 가속화 등 세계는 점점 혼돈과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다중 재난의 시대에 ‘세계와 다시 노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며 어떤 함의를 갖는가? 이를 살피기 위해 우선 이 책의 두 가지 핵심 키워드인 ‘새로운 인클로저’(new enclosures)와 ‘공통장’(commons)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새로운 인클로저에 관하여
두 부로 이루어진 이 책의 1부는 ‘새로운 인클로저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모두 다섯 편의 글을 담고 있다. 이 새로운 인클로저는 무엇이며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공통장(commons)이란 무엇인가?
인클로저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공통장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는 존재론적으로 공통장이 인클로저에 앞서기 때문이다. 공통장은 오랜 역사를 가진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시장을 통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공동의 자원을 가리킨다. 나무가 물질문화의 기반이던 시대의 숲, 공유지, 목초지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공통장은 특정한 재화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방식과 주체가 어쩌면 재화 자체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통장에 대한 최근 연구들은 그것을 재화로 한정하지 않고 주체와 활동을 포함한 개념으로 다룬다. 즉 어떤 자원을 공통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합적 활동이 그 자원을 공통의 재화(common goods)로 만들며, 그러한 점에서 공통장은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의 말처럼 “사회적 관계인 동시에 물질적 사물”이다.
역사적으로 공통장이라는 용어가 처음 중세 영국 재산법에 등장했을 때, 이것은 공동체가 사용했지만 소유하지는 않은 목초지, 어장, 숲, 토탄지 등의 자산을 뜻했다. 공통인들(commoners)은 이 자원을 소유하지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그리고 집합적으로 사용하고 관리했다. ‘관습’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러한 이용권은 일반적으로 공통인들과 지주들의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이런 점에서 공통장은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투쟁을 통해 획득한 권리(공통권)를 통해 집합적으로 삶을 재생산하는 양식이라 말할 수 있다.
공통장의 파괴와 자본주의의 탄생
그러나 이러한 삶의 양식으로서의 공통장은 인클로저와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다. 인클로저는 사전적 의미로 울타리를 두르는 것을 말하며, 역사적으로는 공통장의 사유화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이는 생산자를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으로서, 이로 인해 가진 것이라고는 일할 수 있는 능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트”(맑스)가 만들어진다. 맑스에 따르면 이 인클로저와 함께 자본주의가 시작되는데, 인클로저는 토지와 봉건제에 얽매여 있던 이들을 ‘해방’시켜 도시의 노동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맑스주의 전통은 인클로저를 자본주의 사회의 출발점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인클로저는 시초축적의 기본적인 도구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러한 인클로저가 자본주의의 ‘시초’에 일어난, 지나가버린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자본 축적의 경로를 따라 주기적으로 귀환하는 자본의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새로운’(new)이라는 수식어는 이러한 주장을 위해 채택된 단어다. 페데리치는 이 ‘새로운 인클로저’라는 용어를 조지 카펜치스, 피터 라인보우 등과 함께 발간했던 저널 『미드나잇 노츠』(Midnight Notes) 1990년 특집호에서 가져왔으며, 이는 1970년대 중반 이래 진행된 축적 과정의 대규모 재조직화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세계은행과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부채 경제, 다양한 사회적 권리의 축소, 사회주의권의 붕괴 등을 들 수 있으며, 1부에 실린 글들은 이 각각의 사례들을 ‘새로운 인클로저’의 시각에서 연결해서 다룬다.
인클로저는 왜 ‘새롭게’ 반복되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인클로저가 ‘새롭게’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페데리치는 이를 지구적인 투쟁 순환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한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관계를 ‘자명한 자연법칙’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온 까닭에 폭력(맑스에 따르면 시초축적의 비밀)은 언제나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인클로저’의 주된 목적은 노동자들을 다시 무력한 인간으로 만드는 데 있다. 자신들의 조직적 힘을 구축해 온 토대에서 그들을 뿌리 뽑아서 낯선 환경 속으로 내던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여명기에 그러했듯,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상은 극빈자, 부랑자, 범죄자, 구걸꾼, 노점상, 착취 공장의 난민 노동자, 용병, 폭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통장에 관하여
재생산을 공통화한다는 것
인클로저를 통해 전통적인 공통장은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인클로저가 ‘새롭게’ 반복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공통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혹은 새롭게 창조되고 있음을 뜻한다. 공통장이 없다면 인클로저 역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여전한 혹은 새로운 공통장은 어떤 것인가?
페데리치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공통장을 이해한다. 페데리치의 공통장은 무엇보다 재생산 공통장으로서, 이는 지금까지 여성들이 집안에서 무상으로 수행하던 노동력 재생산 노동을, 그래서 자본의 공통장으로, 자본의 기둥으로 수행되던 그 노동을 다른 사회의 토대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페데리치는 공통장의 원리를 사회적 재생산의 조직화에 적용하고자 하며, 이것이 2부(‘공통장에 관하여’)에 실린 여러 글들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다.
이렇게 공통장을 재생산의 재구성으로 이해함에 따라 페데리치는 물질적인 생계 수단을 재전유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2부에서 땅을 주제로 한 글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에 해당하는 두 글이 각각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를 사례로 삼는 것도 눈에 띈다. 이는 페데리치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주변화된, 그런 까닭에 완전히 시장 관계에 포섭되지 않은 재생산 활동이나 자급 생산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곳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러한 곳들이 서구의 고립되고 상품화된 방식과는 다른 재생산을 유지함으로써 그 자체로 재생산의 공통화 가능성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과거의 유산을 그대로 보전하기만 하는 곳은 아니며, 공동체 투쟁을 통해 새로운 집합적 재생산의 양식들을 발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돌봄과 재생산은 기계화될 수 있는가
이렇게 자급 생산, 물질적 생계 수단의 재전유, 재생산의 재조직화에 대한 관심은 페데리치가 기술에 대해 갖는 시각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페데리치는 기술을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각과 분명히 선을 긋는다. 이는 맑스주의와 페미니즘과 공통장을 함께 다룬 글에서 잘 드러난다. 페데리치는 반자본주의적 페미니즘에는 여전히 맑스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맑스를 넘어서야 할 필요 또한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이것은 맑스의 시대 이후 일어난 사회경제적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관계에 대한 맑스의 이해에서 나타나는 한계 때문이다.
물론 이 한계는 재생산 영역과 관련이 있다.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이 산업화(맑스가 일의 자본주의적 조직화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간주했던 특징)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맑스가 가사노동을 무시했다고 본다. 그러나 페데리치에게 가사노동은 노동력 상품을 (재)생산한다는 의미에서 정말로 생산적인 노동일 뿐 아니라 본성상 기계화할 수 없는 일이다. 그에 따라 페데리치는 맑스의 혁명 이론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대상은 ①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모든 일이 산업화될 것이라는 가정, ② 자본주의와 근대 산업은 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가정이다.
첫 번째 가정과 관련하여 페데리치는 재생산 노동의 자동화는 일부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아이를 씻기고 포옹하고 위로하고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는 일을,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혹은 환자나 노인 그리고 자급자족할 수 없는 이들을 돕는 일을 어떻게 자동화할 수 있을까?” 이 자동화의 불가능성은 그 불가능한 일의 양이 “행성에서 대부분의 일을 이룰” 만큼 엄청나다는 점에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산업화 비전을 재고하도록 이끈다.
기술을 장악하는 대신 삶을 재구성하기
두 번째 가정과 관련하여 페데리치는 맑스가 감탄했던 “이른바 고도로 생산적인 산업 체계”가 실제로는 지구상의 기생체였다고 주장하면서 근대 산업을 인간 해방의 전제로 삼는 가정을 문제화한다. 맑스는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장악하면 산업화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페데리치는 우리가 “자본주의적 산업과 과학과 기술을 장악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 생산수단이 만들어지게 된 착취라는 목표가 그 수단들의 구성과 작동 양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페데리치가 내리는 결론은, 재생산 노동은 산업화하기 어렵고 자본주의적 생산수단은 재전유할 수 없으므로 맑스주의 계획은 “스스로 붕괴한다”는 것이다. 페데리치는 이러한 맥락에서 좀 더 집합적인 재생산 형태와 재생산 공통장 창출에 대한 관심과 실험이 늘어가고 있다고 본다. 즉 거듭 강조하듯이 페데리치의 논의에서 공통장이라는 정치적 기획의 중심에는 재생산의 재구조화가 있다. 이것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율적으로, 생산력의 발전이나 생산의 기계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특유의 지식과 기술을 재가치화하면서 좀 더 협력적인 재생산 노동 형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요컨대 공통장은 “새로운 사회의 배아적 형태”로서 그 배아 형태 속에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사회적 관계를 재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축하기 위한 수단을 재현한다.
세계와 다시 노래하기, 세계를 다시 마법화하기
이 책의 원제는 “세계를 다시 마법화하기”(Re-enchanting the World)이다. 인클로저와 공통장을 다루는 이 책에서 마법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막스 베버는 근대의 합리화 과정, 즉 “우리의 삶에서 작용하는 어떤 힘들도 원래 신비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힘들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모든 사물은 계산을 통해 지배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고 있거나 또는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을 “세계의 탈주술[마법]화”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페데리치는 이 책에서 베버가 이야기한 탈마법화를 좀 더 정치적으로 해석하는데, 그에 따르면 탈마법화란 “자본주의적 발전의 논리와는 다른 논리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매일 좀 더 불확실해지는 세계의 출현”을 가리킨다. 그에 따라 페데리치는 “세계를 다시 마법화”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중세의 마법 세계로의 회귀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발전의 이성과 논리와는 다른 이성과 논리의 발견”을 의미한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그 관계 구축에 있어 재생산 노동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노동은 “좀 더 협력적인 사회적 관계를 생성하기”가 쉬우며 “잠재적으로 자연의 제약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생성”하고 그에 따라 우리는 “그 제약 내에서 이 행성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우리는 자본주의적 발전과는 다른 논리로 우리 삶의 물질적 기초와 자치 능력을 형성할 수 있다. 페데리치가 재생산 노동을 “혁명의 영점”으로 이해하는 이유다.
한국어판 제목에서 ‘마법화하기’를 ‘노래하기’로 바꾼 이유는 마법이 줄 수 있는 신비주의적인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노래하기’라는 표현은 마법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의 해제를 쓴 피터 라인보우는 ‘마법화’(enchantment)라는 단어가 프랑스어 ‘chanter’(노래하다)에서 왔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오래전 아메리카인들은 노래가 곡식을 자라게 한다고 믿었으며, 곡식이 자라는 동안 노래를 불렀다고 덧붙인다.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여전히 거리와 광장에서 함께 노래하는 것은 어쩌면 오래전 아메리카인들의 의례를 이어받은 것은 아닐까? 우리의 노래가 사회적 변화를 곧장 낳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 노래가 ‘우리’를 만드는 마법이라는 점은 분명하니 말이다. 페데리치는 카펜치스와 함께 쓴 글에서 공통장이 “자원을 평등주의적 방식으로 공유하는 실천이 아니라 집합적 주체를 창출”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노래하기가 바로 공통화의 한 과정이라는 점을, ‘세계와 다시 노래하기’란 세계를 다시 공통화하는(commoning)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은이
실비아 페데리치 Silvia Federici, 1942~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태어나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작가, 활동가이다. 사회적 재생산, 젠더, 노동, 공통장을 둘러싼 이론과 투쟁에 수십 년간 기여해 왔다. 맑스주의 페미니즘 이론, 여성사, 정치철학, 그리고 공통장의 역사와 이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가 중 한 명으로, 나이지리아의 포트하커트 대학교에서 수년간 가르쳤고, 이후 뉴욕주 호프스트라 대학교에서 정치철학 및 국제학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호프스트라 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1972년 <국제 페미니스트 콜렉티브>를 공동 창립했고, 이 단체는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캠페인을 통해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에서 자연화되어 무상으로 흡수되는 양상을 문제화했다. <미드나잇 노츠 콜렉티브>의 일원이었다. 이 단체가 1990년 발간한 『새로운 인클로저』는 지구적 규모로 진행되는 새로운 물결의 자본 축적 문제를 제기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세계화의 영향을 목격한 이후, 아프리카 대학 내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 <아프리카 학문의 자유를 위한 위원회>를 조지 카펜치스와 함께 공동 창립했다. 주요 저서로 『임금의 가부장제』, Beyond the Periphery of the Skin, 『세계와 다시 노래하기』,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혁명의 영점』, 『캘리번과 마녀』 등이 있다.
옮긴이
권범철 Kwon Beomchul, 1978~
공통장(커먼즈) 연구자.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계간 『문화/과학』, 생태적지혜연구소, 동아대 융합지식과 사회연구소 등에서 활동한다. 『예술과 공통장』, 『돌봄의 공간들』(공저) 등을 썼고, 『목매달린 자들의 런던』, 『역사의 시작』 등을 옮겼다.
서창현 Seo Changhyeon, 1966~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성, 인종, 그리고 계급』,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 『들뢰즈 다양체』, 『도둑이야!』, 『피와 불의 문자들』 등이 있다.
추천사
실비아 페데리치의 작업이 담고 있는 에너지는 우리가 모든 유형의 착취에 맞선 투쟁을 되살리도록 이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페데리치의 작업은 하나의 공통장을, 투쟁 속에서 공동체를 창출하는 불복종의 공통 감각을 생산한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저자
투쟁하는 동시대 여성 운동을 추동하는 다원성을 명료하게 풀어내는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론적 역량은 서로 다른 특성들과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진정한 도구상자를 제공한다. ― 맛시모 데 안젤리스 『역사의 시작』 저자
책 속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미국이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제노사이드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체계가, 존속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 통제 수단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극단적인 폭력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가를 뚜렷하고 섬뜩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9
‘마법화’라는 단어는 ‘노래하다’를 뜻하는 프랑스어 ‘chanter’에서 유래한다. 세계를 ‘노래하여’ 존재하게 만드는 일은 분명 명상적일 수 있다. 때로는 분주한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가만히 손을 내려놓아야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노래’를 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세계를 마법화하자는, 창조의 세계를 노래로 불러내자는 이 호소는 격정적이고 시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예언적이다. ― 피터 라인보우의 해제, 26
우리 일상이 기계화되고 심지어 로봇화되는 것이 수천 년에 걸친 인간 노동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인가? 로봇의 대규모 생산이 파괴해 버릴 게 분명한 자연과 생명체들(동물, 물, 식물, 산)을 포함하여, 이 수많은 타자들과 맺는 관계를 공통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재구성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는 없는가? 이것이 오늘날 공통장의 담론과 정치가 우리에게 열어주는 지평이다. ― 서문, 43
자본은 오랫동안 우리를 우주로 보내 노동하게 만드는 꿈을 꾸어 왔다. 그곳에서는 작업 기계와 삭막하고 억압적인 노동관계 외에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구 자체가 하나의 우주 정거장이 되어가고 있으며, 수백만 명이 이미 우주 식민지와 다름없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숨 쉴 산소도 없고, 사회적, 신체적 접촉은 제한되며, 탈성화된 삶, 소통의 어려움, 햇빛과 녹지의 부재 … 심지어 철새의 울음소리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자신의 신체가 인클로저당하고 있다. ― 새로운 인클로저 입문, 74~75
부채 위기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사회적 파시즘과 양립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를 필요로 한다는 오랜 진리의 교과서적 전형에 가깝다. 경제 회복을 향한 칠레식 방식이 오늘날 자유화와 구조조정을 거친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칠레의 처방은 거의 기계적으로 이식되었다. 학생 조직은 금지되고 지하로 쫓겨나야 하고, 노조는 위협받아야 하고, 보안군은 (대개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정체불명의 자문관들의 도움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조치들이 그것이다. ― 부채 위기, 아프리카, 그리고 새로운 인클로저, 105
1989년 봄 중국에서 일어난 운동은 미국과 중국 언론이 주장하듯 친자본주의적이었는가? 6월 4일 이후 중국 정부가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자행한 학살, 처형, 투옥은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중국, 115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사유 재산에 집착하지 않아 생긴 결과물은 협력과 집단 정체성과 문화를 가치 있게 여기는 공동체적 세계관이었다. 예를 들어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당시 인디언 땅에서는 한 사람이 굶주리면 모든 사람이 굶주렸으며, 이는 그들이 식민지 이주민들에게 베푼 도움을 더욱더 놀라운 일로 만들었다. 개인적인 축적에 대한 반감은 매우 강력해서 그들은 포틀래치라는 의례를 발명했다. ― 미국 아래의 공통장, 161
실제로 공통화가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공통의 주체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동체가 없으면 공통장도 없다”는 슬로건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공동체’는 빗장을 지른 실재, 즉 종교나 종족성을 토대로 형성된 공동체처럼 타인과 분리되어 배타적인 이해관계로 뭉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관계의 질, 협력의 원리, 서로에 대한 그리고 땅과 숲과 바다와 동물에 대한 책임의 원리로 이해해야 한다. ― 본원적 축적 시대의 페미니즘과 공통장의 정치, 209~210
반다나 시바, 마리아 미즈, 아리엘 살레 같은 페미니스트 저자들이 논의하고 풀뿌리 여성 조직이 실천한 것처럼 공통장은 자신의 실현을 위해 생산력의 발전이나 생산의 기계화, 혹은 어떤 자본주의적 관계의 전 지구적인 확장(맑스의 코뮤니즘 기획의 전제 조건)에 기대지 않는다. 반대로 공통장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공통장에 가하는 위협에 맞서 싸우고, 지역 특유의 지식과 기술을 재가치화한다. ― 맑스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공통장, 307
자연의 힘을 읽을 수 있는 역량, 식물과 꽃의 의료적 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역량, 땅에서 자양분을 획득하는 역량, 산림에서 살 수 있는 역량, 길과 바다에서 별과 바람을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역량은 파괴되어야 했던 ‘자율’의 원천이었고 여전히 그러하다. 자본주의적 산업 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상실 위에서 이루어졌고 그 상실을 증폭시켜 왔다. ― 세계를 다시 마법화하기, 339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7
감사의 글 11
피터 라인보우의 해제 17
서문 28
1부 새로운 인클로저에 관하여
1부 서론 46
본원적 축적, 지구화, 재생산에 관하여 49
새로운 인클로저 입문 67
부채 위기, 아프리카, 그리고 새로운 인클로저 82
중국 : 철밥통 깨기 113
공통화에서 부채로 : 금융화, 마이크로크레딧, 그리고 변화하는 자본 축적 구조 128
2부 공통장에 관하여
2부 서론 154
미국 아래의 공통장 156
자본주의에 맞서는, 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공통장 167
대학은 일종의 지식 공통장인가? 189
본원적 축적 시대의 페미니즘과 공통장의 정치 194
아프리카 여성들의 토지 투쟁과 공통장의 재구성 216
라틴아메리카에서 토지와 공동선을 위한 여성들의 투쟁 247
맑스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공통장 274
위기에서 공통장으로 : 재생산 노동, 정동 노동과 기술, 그리고 일상생활의 변형 311
세계를 다시 마법화하기 : 기술, 신체, 그리고 공통장의 구축 333
참고문헌 350
수록 글 출처 379
옮긴이 후기 381
인명 찾아보기 385
용어 찾아보기 389
책 정보
2026.9.18 출간 | 사륙판 130x188mm, 무선제본 | 아우또노미아총서92, Cupiditas
정가 27,000원 | 쪽수 400쪽 | 무게 423g | ISBN 9788961954341 93300
도서분류 페미니즘, 공통장, 자본주의 비판, 재생산노동, 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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