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예술계는 끊임없이 서로를 부정하고 침식하며 동시에 소환하는 역설적인 의미들로 가득 찬 장이다. 이는 실로 집단적인 시각적, 청각적 웅성거림이라 할 수 있다.
웅성거림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경제적 혹은 미디어적 논리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표명한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아감벤이 말한 수용소에 맞서 자신들만의 진영을 구축하며 싸우고 있다. 예술가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수도 있고, 풍차에 맞서는 돈키호테의 싸움일 수도 있다.
간략한 소개
글로벌 예술 현장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완벽한 생산 단위인가, 아니면 새로운 공동체를 창출하는 다중의 웅성거림인가? 이 책은 포스트포드주의 시대 전 지구적인 예술 현장을 예리하게 해부한다. 파스칼 길렌은 오늘날의 예술 세계가 유연한 노동, 프로젝트 기반 작업, 끝없는 이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이상적 모델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비엔날레는 비물질노동을 위한 ‘탈제도’가 되었고, 예술가들은 불안정한 유목적 삶을 미학화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러나 길렌은 이러한 분석에 멈추지 않는다. 그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 개념, 미셸 드 세르토의 창조 이론을 경유하며, 예술적 실천이 지닌 저항과 자율성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예술 작품의 저자성은 개인이 아닌 집단적 ‘웅성거림’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다중의 창조적 에너지는 자본주의적 포획을 넘어설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길렌의 탐구는 예술적 사건과 예술적 흐름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전 지구적인 움직임 속에서 ‘친밀함’과 ‘느림의 미학’을 발견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이번 세 번째 개정판은 예술의 정치적 차원, 자율성, 예술과 윤리, 그리고 민주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길렌의 최신 통찰을 반영하여 대폭 개정되었다. 이 책은 예술사회학의 고전이자 오늘날 창조 노동을 사유하는 필수 텍스트다. 1부 ‘전 지구적 예술과 포스트포드주의’에서는 전 지구적 네트워크 속 예술의 결정, 비엔날레의 제도적 변화, 예술 현장의 경제적 착취 구조를 분석한다. 2부 ‘억압적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예술의 정치’에서는 세계화 시대 예술적 자유의 조건, 공동체 예술의 정치성, 상황적 윤리를 논한다.
상세한 소개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예술사회학자, 파스칼 길렌
파스칼 길렌(Pascal Gielen, 1970년생)은 벨기에 앤트워프대학교 산하 앤트워프 예술연구소(ARIA)에서 문화·정치 사회학 정교수로 재직하는 문화사회학자이자 저술가다. 앤트워프대학교에서 ‘문화적 공통장 연구실’를 이끌며, 예술 제도와 공공성, 공통장(commons), 창의노동을 둘러싼 조건을 비판적으로 연구해 왔다. 또한 발리츠(Valiz)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국제 시리즈 ‘사회 속의 예술’ 시리즈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파스칼 길렌은 이미 국내 주요 미술관의 초청으로 몇 차례 방한을 한 바 있다. 2018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 ‘수직에서 수평으로: 예술 생산의 변화된 조건들’에서 ‘신성한 미술기관에서 공유하는 미술기관으로’를 주제로 기조 발제를 했다(링크). 그보다 앞서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에서는 ‘창조적 도시와 예술: 예술, 정치, 도시의 삶’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링크).
길렌은 이번에 한국에 소개되는 첫 단독 저서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2009/2015 [2026])을 비롯하여 동시대 예술, 문화정치, 창의산업과 비물질노동, 공통장에 관한 다수의 저작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저작은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터키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동시대 예술이 처한 노동, 제도, 정치의 조건을 탐구하는 주요 참고문헌으로 읽히고 있다.
웅성거림의 두 얼굴
이 책의 제목에 포함된 웅성거림(murmuring)이라는 낱말은 사전적으로는 “나지막한 숨소리에 섞인 불명확한 발화”를 뜻한다. 저자는 책의 1장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에서 이 단어의 어원을 따라 의미를 넓힌다. murmuring은 그리스어 mormurein에서 파생된 단어로 반짝임(sparkling), 쉬잇거림(fizzing)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 길렌이 보기에 중요한 점은 웅성거림은 어떤 경우에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웅성거림이 무의미해 보이는 것은, 그것이 어떤 ‘외부의 실재’를 가리키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반대로 의미가 너무 과잉되어 또는 모순과 역설이 겹치고 서로 상쇄되어 발화가 표류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웅성거림은 “비어 있음”이기도 하고 “너무 가득 참”이기도 하다.
길렌은 이 양가성을 예술의 현재 조건과 연결시킨다. 오늘의 예술은 의미를 요구받지만, 그 의미는 고정되기 어려운 다성적 소리들로 분산된다. 그렇게 웅성거림은 동시대 예술이 살아 움직이는 방식을 드러내는 개념이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중심부로 이동한 예술
우리 시대에 예술이 ‘주변부의 낭만’이 아니라, 도시 경쟁과 산업 전략의 ‘중심부’로 이동했다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예술가”의 수는 비약적으로 늘었고, 예술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역시 뒤집혔다. 한때 예술대학 진학은 의아함과 조롱, 연민을 불러왔지만, 이제 창의성, 혁신, 진정성, 엉뚱함마저 기업과 정책의 어휘로 흡수되었다.
길렌은 근대 예술이 중심부로 나아가는 길을 스스로 닦아왔다고 주장한다. 초기 근대 예술계는 포스트포드주의적 노동 윤리가 처음 시연된 일종의 실험실이었다. 탈산업 경제가 요구하는 것은 프로젝트 기반 사고, 불안정한 계약(혹은 무계약), 유연한 시간, 신체와 정신의 이동성, 그리고 소통 능력과 창의성이다. 한때 예술 현장이 자부하던 가치가 이제는 자본주의 축적을 가동하는 운영 코드가 되었고, 신자유주의적 노동 체제를 지탱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예술가들의 지위, 삶, 예술 비평의 역할, 미술관의 기능 등 예술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체제는 길렌의 표현에 따르면 ‘억압적 자유주의’이다. 이 체제는 자신이 말하는 자유를 불신하며 그것을 통제하고 측정하고 관리하려 든다. 숫자(통계, 성장 곡선, 이윤 폭)가 신성시되고 자유는 확대되기보다 정밀하게 조정된다. 예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예술가는 기업가로 재정의되고, 관객은 수치로 환원되며, 보조금은 ‘개입’으로 낙인찍힌다. 효율과 경쟁의 언어가 모든 영역을 장악하는 동안 “무엇이 상실되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은 점점 더 희미해진다.
동시대 예술은 웅성거림으로 존재한다
이 책의 1장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은 ‘소유의 이데올로기는 저자, 창작자, 작품을 개별화해 고립시키지만, 실재하는 창조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증식하며 무리 지어 들끓는다’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세르토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길렌은 세르토에 공감하면서 창조는 원래부터 하나의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솟아오르고 섞이며 확장되는 운동에 가깝다고 본다.
도처에 들끓고 약동하는 삶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박물관의 벽 안에 갇히는 순간 역설적으로 정지되고 만다. 1970년대에 세르토는 문화는 아직 공인되지 않은 주변부에서 증식한다고 말했다. 세르토에 따르면 이러한 창의적 활기는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집단적 주체(a collective), 끊임없이 이동하며 한순간 나타났다 다음 순간 사라져 버리는 무리(swarm)에 속해 있다. 그러나 소유의 이데올로기가 이를 추격하여 예술적 대상이나 상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순간 창의적인 활기는 증발해 버린다. 이때 웅성거림은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무엇보다 미디어가 소비하기 좋은 방식으로 회수되고 포착될 수 있도록 이해 가능한 어휘와 고정된 의미로 응고된다.
길렌에 따르면 오늘날의 예술계는 종사자의 숫자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는 면에서나 작동 방식의 면에서나 세르토가 말한 바의 예술적 다중, 또는 무리로 형성되어 있다. 1970년대에 문화의 변방에서 포착되었던 창의적 활기는 오늘날 예술 및 경제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그 결과 문화 및 창조 산업이 번성하고 있다. 오늘날의 예술계는 끊임없이 서로를 부정하고 침식하며 동시에 소환하는 역설적인 의미들로 가득 찬 장이다. 집단적인 시각적, 청각적 웅성거림이야말로 오늘날 예술계의 모습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웅성거림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경제적 혹은 미디어적 논리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표명한다는 것이다. 즉,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은 억압적 자유주의의 잠재적인 창조 동력이 되기를 원치 않는 다중의 태도를 표현하기도 한다.
포스트포드주의 도시에서 예술 “씬”(현장)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작은 갤러리, 실험극장, 대안 영화관, 무용학교, 라운지 바 같은 공간들이 높은 밀도와 유동성을 가진 구역에 모이면 ‘예술 씬(현장)’이 형성된다. 길렌은 포스트포드주의 경제(유동적 근무, 높은 이동성, 초연결성, 유연성, 창의성과 성과 집착)에서 씬이 특히 기능적인 결속 장치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현장’(scene)이라는 말이 예술, 연극, 퀴어, 마약, 범죄처럼 “상식적인 것”의 바깥을 가리킬 때 주로 쓰인다는 점은, 씬이 혁신과 이단성을 나타내 왔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의 씬은 더 이상 ‘대안의 피난처’만이 아니다. 변두리였던 담론이 중심으로 진출하면서 ‘대안/독립/아방가르드’는 도시가 스스로를 판매하기 위한 브랜드가 되었고, 현장 혹은 씬 역시 품질 보증 마크처럼 기능한다. 그럼에도 현장은 폐쇄적 회원제 그룹과 달리 느슨하고 유연한 관계의 자유를 제공하며, 암묵적 규범(분위기, 언어, 취향, 연결 방식)을 통해 소속감을 만들어낸다. 세계화된 도시들에서 현장은 낯선 곳에서도 통하는 준거틀이 되어 “충분하지만 지나치지 않은 친밀감”을 제공하는 임시적 안식처가 된다.
동시에 씬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무대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으면 씬에 속하지 못하고, 아이디어는 공개된 자리에서 수행되며, 목격자와 평판 속에서 교환된다. 그래서 표절과 가로채기에 대한 편집증이 상시화된다. 비엔날레, 미술관 같은 준공공 인프라는 현장을 더 가시화하고 지속시키지만, 그 대가로 예술 노동은 프로젝트, 임시 계약(혹은 무계약), 밤샘과 열정을 ‘자유’로 포장한 채 정상화되기 쉽다. 길렌이 경고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현장의 자유는 “자유가 노동을 만든다”는 윤리로 쉽게 전환되고, 도시 정책과 기업 논리가 이를 흡수하는 순간 씬은 낭만이 아니라 착취의 생산 단위가 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4장 「예술 현장 : 경제적 착취를 위한 생산 단위?」에서 집중적으로 서술된다.
시장에 맡길수록 감시와 규제는 늘어난다
11장 「억압적 자유주의」는 네덜란드 문화정책을 사례로, 유럽 전역을 휩쓴 긴축 담론이 어떻게 예술 활동에 대한 더 많은 규제와 감시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예산 삭감과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자연스러운 해법”처럼 선전되지만, 길렌은 그 중립성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전환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다. 위기는 “어쩔 수 없다”는 언어로 오래 준비된 변화(시장화, 탈정치화)를 밀어붙이는 구실이 된다.
핵심은 자유시장을 확대할수록 규제가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규제, 감사, 인증, 평가를 수행하는 위탁된 관료 장치가 더 크게 팽창한다는 역설이다. 정부는 물러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시의 민영화’로 통제의 외주화를 확장하며 불신과 관리의 기술을 정교화한다. 그래서 ‘자유’는 약속되지만, 그 자유는 늘 조건부로만 주어진다.
이 과정에서 문화예산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용처가 달라진다. 창작과 공공서비스에 쓰여야 할 자원이 관리, 평가, 보고, 컨설팅 같은 파생적 규제 서비스로 흘러 들어간다. 동시에 문화 내부의 언어도 바뀌어 ‘지원’은 ‘정부 개입’으로, 관객은 고객으로, 예술가는 (창의적) 기업가로 재정의되며 근본적 비판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밀려난다. 길렌은 문화가 전례 없이 소유되고 통제가 당연시되는 시대에, 실용주의적 언어와 선의의 실천마저 체제에 전유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예술이 시장의 ‘절대적 진리’에 맞서는 다른 가치와 대안적 모델을 적극적으로 구상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측정과 효율의 세계를 깨는 예술가들
13장 「상황 윤리 : 예술적 생태학」은 아감벤의 도발적 명제, 즉 수용소가 오늘날 정치 공간의 원형이라는 가정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예외 상태의 일상화 속에서 국가는 헌법 같은 안정적 규칙보다 위기 대응용 “조치”를 앞세운다. 그 결과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정치는 시민의 권리보다 “순수한 생명”을 관리하는 삶권력으로 축소되는 방향으로 기운다.
길렌은 이 흐름이 거시적인 정치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본다. 포스트포드주의 노동 조건은 집과 직장, 휴식과 노동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특히 프리랜서와 지식 노동자들은 항상 연결된 상태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노출한다. 온라인에서의 자기 공개는 누구나 쉽게 타인의 삶에 접근하고 그것을 평가하고 통제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이때 개인은 “타자의 눈에 나는 어떤 대상인가”라는 불안을 상시적으로 떠안고 대체 가능성에 대한 공포와 히스테리 같은 병리도 사회 전반으로 번진다.
길렌이 제안하는 대안은 예술이 오래 축적해 온 “상황 윤리”를 지금의 생태 위기와 통제의 시대에 다시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황 윤리란 상황에 적응해 살아남는 처세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가 전시, 공연, 서사, 연습과 반복 같은 표현 수단을 통해 “상황 자체를 생산”하는 능력이다. 즉, 측정 가능한 수치와 효율의 언어가 현실을 한 가지 방식으로만 고정할 때, 예술은 그 고정을 깨는 다른 시간감, 다른 규칙, 다른 관계 맺기 방식을 실제로 만들어 보여준다. 길렌이 과타리를 끌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태 윤리는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움직이지 못하고, 예술적 상상력과 형식이 결합될 때 비로소 감각적 기준과 실천의 리듬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미 억압적 자유주의의 수용소에 맞서는 데 익숙한 예술가들은 이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술은 단수적인 아이디어를 집단적 토대 위로 옮겨(길렌의 표현으로는 제도화, 함께 제도화) 지속 가능한 습관과 관계로 번역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이 기술을 오늘의 조건에 적용하면, 예술은 위기의 속도에 끌려가며 임시 조치만 반복하는 세계에 맞서, 느림, 반복, 리허설, 서사화 같은 방식으로 책임의 범위를 다시 설정할 수 있다. 예술은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자연과 사회와 정신을 함께 다루는 생태학적 윤리를 훈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술적 상황 윤리는 위기와 통제의 흐름에 맞서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능력으로서, 오늘의 정치와 삶을 다시 설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된다.
지은이
파스칼 길렌 Pascal Gielen, 1970~
벨기에 출신의 예술사회학자이자 문화이론가이며, 현재 벨기에 앤트워프대학교 사회과학대학의 예술사회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또한 동 대학교 연구소인 ‘문화적 공통장 연구실’(CCQO)의 소장을 맡고 있다. 흐로닝언대학교 예술사회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틸뷔르흐 폰티스 예술대학교의 ‘사회 속의 예술’ 연구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현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논의를 주도해 왔다. 예술사회학, 문화정책, 그리고 문화적 유산과 정치를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으며, 특히 포스트포드주의 체제에서 예술 노동이 어떻게 자본주의에 포섭되거나 혹은 저항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공통장’ 개념을 바탕으로 예술적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지속 가능한 문화적 생태계를 위한 제도적 상상력을 검토하며 대안적인 사회 모델로서의 예술 정치를 부각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다작의 학자이자 편집자로서 시각 예술에서 현대 무용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주요 저서로는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 Community Art(공동편집), Teaching Art in the Neoliberal Realm(공동편집), Institutional Attitudes(편저), Commonism(공동편집), The Art of Civil Action(공저), Sensing Earth(공저), Trust 등이 있다.
옮긴이
서창현 Seo Changhyeon, 1966~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있음에서 함으로』, 『사빠띠스따의 진화』, 『네그리의 제국 강의』, 『전복적 이성』, 『노동하는 영혼』, 『자본과 언어』, 『동물혼』, 『자본과 정동』, 『피와 불의 문자들』, 『도둑이야!』, 『들뢰즈 다양체』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역사와 전통이 상이한 한국 독자들에게, 나의 성장 배경은 내 관점에 특정한 색채를 입히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브라질, 우크라이나, 러시아에서 그러했듯 한국에서의 강연 중에도 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동일한 동인들이 인지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바로 이러한 지점들이 우리의 공통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13
주지하다시피 옹알이는 영아들이 가장 즐기는 활동 중 하나다. 이는 장차 의미 있는 언어를 구사하겠다는, 언어 이전 단계의 약속(혹은 그러한 기대)이다. 신생아의 옹알이, 즉 웅성거림은 순수한 잠재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시 대상을 상실한 옹알이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른 이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는 임종 자리의 섬망 환자가, 뇌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도저히 붙잡을 수 없는 기억들에 필사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려는 풍경을 환기한다. 이처럼 웅성거림은 마치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것처럼, 삶의 시작과 끝을 표상한다. ― 1장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 18~19
예술 작품은 예술가와 떨어져 원격으로 작동한다. 이는 시공간적으로 예술가와 작품이 분리될 수 있다는 점(무용, 연극, 음악 같은 공연 예술에는 해당하지 않는 특성)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바로 이 점 덕분에 미술관 관장 같은 제3자가 예술가 작업의 일부를 넘겨받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2장 전 지구적 네트워크에서 ‘결정되는’ 예술, 85
예술적 행위는 단수적 행위일 때만 정치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즉, 한 행위가 개별 소유자로부터 자유로워져 진정으로 자율적이 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한 단수적이고 자율적인 행위는 즉시 공통장에서 사용될 수 있다. 그곳에서 그것은 다른 단수적 에너지들과 결합하여 집단적으로 전유되어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 5장 노마데올로지 : 유목적 존재의 미학화, 157
자율성이 없다면 타율성도 존재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사회적 영역을 넘나들 수 있는 실질적인 가능성이 없다면, 결국 타율성도 의미를 상실한다. 자율성의 가치는 어쩌면 근대의 꿈이었으며, 여전히 노력할 가치가 있는 목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는 여전히 근대인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경유지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다. ― 6장 타율성을 경유한 자율성, 177
무엇보다도 제도 비판이 더는 감사관이나 공인 제도, 혹은 대중매체가 요구하는 상상력이 아니라, 자체적인 논리에 따라 자기 자신의 가치를 상상해야 한다. 그 후, 예술은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에 의한 공공 영역과 가정 영역의 식민화에 전술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동일한 영역들을 위한 대안 모델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 논리가 홈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가정 공간을 점령하고 그곳의 개인적 창의성을 방해한다면, 미술관과 비엔날레는 인터넷, 어린이 워크숍, 자원봉사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정해진 형식이나 사전 계획에 얽매이지 않는 가능성을 제공함으로써 이 창의성을 다시 열어젖힐 것이다. ― 7장 제도적 상상력 : 평평하고 유동적인 세계에서 예술을 다시 정착시키기, 209
많은 자칭 예술가들은 사회적으로 불우한 가정에 사진기나 비디오카메라를 나눠주고 그들 스스로 자신과 이웃의 삶을 기록하도록 요청하는 것을 매우 독창적인 작업이라고 여긴다. ... 선한 의도를 가진 사회 참여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불의를 유지하는 권력에 봉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12장 공동체 예술 지도 제작, 341~342
예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경계를, 심지어 신체와 정신의 경계마저도 의도적으로 폐기해 왔다. 자율 규범적 수용소 안에서, 예술가들이 창조하는 문화는 그들의 제2의 천성이다. 그들은 무용수나 배우가 자신의 몸으로, 배우나 가수가 자신의 목소리로, 시각 예술가가 자신의 망막 능력으로, 그리고 작가가 자신의 본능적인 힘으로 그러하듯이, 자신의 본성을 문화로 조작한다. 요컨대, 그들은 자신의 몸을 예술적 일탈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 13장 상황 윤리 : 예술적 생태학, 379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7
1부 전 지구적 예술과 포스트포드주의
1장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 16
2장 전 지구적 네트워크에서 ‘결정되는’ 예술 53
3장 비엔날레 : 비물질노동을 위한 탈제도 111
4장 예술 현장 : 경제적 착취를 위한 생산 단위? 130
5장 노마데올로지 : 유목적 존재의 미학화 140
6장 타율성을 경유한 자율성 161
7장 제도적 상상력 : 평평하고 유동적인 세계에서 예술을 다시 정착시키기 178
2부 억압적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예술의 정치
8장 민주주의의 예술 214
9장 예술적 자유와 세계화 238
10장 세계화 시대의 예술 정치학 258
11장 억압적 자유주의 280
12장 공동체 예술 지도 제작 315
13장 상황 윤리 : 예술적 생태학 345
감사의 글 382
‘사회 속의 예술’ 시리즈 385
옮긴이 후기 387
참고문헌 395
인명 찾아보기 406
용어 찾아보기 410
책 정보
2026.5.26 출간 | 사륙판 130x188mm, 무선제본 | 카이로스총서124, Cupiditas
정가 27,000원 | 쪽수 416쪽 | 무게 438g | ISBN 9788961954167 93600
도서분류 예술사회학, 미학, 예술 이론, 민주주의
북카드
바로가기
구입처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영풍문고
미디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