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살펴보면 표면적으로는 집단주의의 광기가 사회를 지배하지만 그 집단이란 적대와 분열에 의해 사회구성원을 각각의 게토에 배치하는 증오 정치의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증오의 수위는 일부 박탈된 집단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집단에서 높아진다.
이 책은 만주사변에서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일제 말기의 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주요 대상으로 하면서 이 체제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 시대의 경험이 법이나 제도, ‘사회통념’이나 집단 무의식, 재현의 정치와 감정과 정동 등의 형태로 재생산되고 변용되는 과정을 살핀다.
간략한 소개
이 책은 역사적 파시즘 체제를 주요 대상으로 하면서 이 시대의 경험이 체제가 사라진 이후에 법이나 제도, ‘사회통념’이나 집단 무의식, 재현의 정치와 감정과 정동 등의 형태로 재생산되고 변용되는 과정을 살핀다. 식민지 조선에서 파시즘의 시대는 젠더, 인종, 지역과 학력, 문맹의 정도, 연령과 세대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게 경험된다. 총후부인이라는 파시즘적 정체성은 신여성과 구여성을 적대하고 부정함으로써 구성되었다. 조선의 애국부인과 일본의 애국부인은 ‘자매’라는 ‘여성적 연대’의 어휘를 전유하여 일본 여성의 우위를 구축한다. 조선은 식민지로서 ‘아우’인 대만과 막 새로 진입한 만주 및 남방의 각 지역과 죽을힘을 다해 경쟁해야만 식민지로서의 우위를 누릴 수 있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파시즘 통치에서 ‘중국’은 제거해야 할 ‘암종’, 바이러스, 조선을 병들고 타락하게 하는 온상으로 여겨졌다. 적대의 반복적 수행만이 강요되는 체제에서도 빈틈과 파열의 공간들 역시 생성되었다. 이런 파열은 단지 주체의 의도나 의지의 산물만은 아니었고, 그런 점에서 정동적이고 물질적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역사적 파시즘의 시대는 적대와 증오의 내면화 경험만 남긴 것이 아니라, 거기서 이탈하는 대안적 정동 생성의 실험장이기도 했다.
이 책에 따르면 파시즘은 젠더, 인종, 계급, 지역, 세대의 차이를 적대로 전유하는 감정 및 정동의 정치이며, 전시 동원 체제에서 조선은 일본, 중국, 남방, 다른 식민지와의 다층적 위계 속에서 파시즘화를 경험했다. 이 경험은 강제와 자발의 경계, 가족국가주의, 여성화 공포, 청년 주체화, 식민지 간 경쟁, 중국에 대한 정동적 적대 등으로 분기되며, 그 유산은 오늘 한국 사회에도 깊이 남아 있다.
상세한 소개
역사적 파시즘 체제, 전시 동원 체제
한국에서 일제 강점기, 일제 말기, 암흑기 등으로 표현되는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역사적 파시즘 체제였다. 전 세계가 파시즘 3국 동맹이었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반파시즘 연합국으로 나뉘어져 파시즘과 반파시즘이 세계 체제를 구축하고 재구축하는 근간이 되었던 시대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이 시대를 파시즘 연구에서는 역사적 파시즘(Historical Fascism) 시대로 규정한다.
일제 말기의 전시 동원 체제는 일본 제국이 미국, 영국에 대항한 장기전과 총력전에 대비하여 일본, 조선, 대만에 대한 체제 전환을 강제하는 과정이었다. 전시 동원 체제에서 만주나 남방 열도 등 새로운 식민지들은 ‘일본 제국’의 ‘지도’ 속에 새롭게 편입되었다. 이는 국가가 주민의 노동, 재생산, 이동, 감정까지 통제하며 전장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이었고, 청년, 여성, 아동을 각각 ‘황민’으로 재규정해 전쟁 기계의 부속으로 배치하는 총체적 동원 체제였다.
이 책에 따르면 젠더, 인종, 세대, 지역, 계급의 차이를 적대의 기준으로 바꾸는 것이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핵심이다. 전시 동원 체제에서 이 적대 구조는 일상 깊숙이 스며든다. 전쟁은 일본 제국의 적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조선인들 내부에서 수행되어야만 했다. 젠더와 세대, 계급과 인종, 지역과 연령에 따라 촘촘하게 구획된 강제적인 정체성 수행은 이러한 적대를 현실화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적대는 ‘안과 바깥’ 모두를 향해 고조되었다.
저자는 201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아래 온라인 환경 속에서 증오정치가 강화되면서, 인종, 젠더, 세대의 차이가 적대로 번역되는 구조가 다시 나타났다고 본다. 이 책은 과거 파시즘 체제가 만든 감정 구조가 오늘의 혐오정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내며, 역사적 파시즘 연구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를 보여 준다.
파시즘 체제에 대한 지지와 동의라는 환상
파시즘 체제나 폭력에 대한 대중의 ‘지지’, ‘동의’ 문제는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파시즘 체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회 내부를 촘촘하게 분할하여 적대적으로 재배치하고, 위로부터 부과된 정체성 역할을 강제로 수행하도록 하는 과정은 이른바 강제와 자발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것은 일종의 강제된 자발성이자, 개별 주체의 일상적 수행이 자율이나 자발로 설명할 수 없는 포획된 상태로 변형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전시 동원 체제에서 식민지 조선은, 위로부터 부과된 정체성 정치가 일상화된 준(準)내전적 공간으로 재편되었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친일협력 영화 <지원병>(1941)의 서사는 중년층인 조선인 부르주아와 청년세대 조선인을 갈등과 적대의 구도로 두고 계급 투쟁과 세대 투쟁의 서사를 전유한다. 그러면서 지원병을 조선 청년의 유일한 희망 직종이자 타락한 조선에서의 탈출구로 그린다. 계급 투쟁과 세대 투쟁의 외관을 띤 이 ‘혁신’의 각본은 자발성을 포획하고, 강제를 자발성으로 전도하며, 식민주의적 노예화를 위험성이 크지만 미래를 걸어볼 만한 ‘선택’으로 만든다. 저자는 이 영화에 대해 분석하면서 인물들의 무표정과 무감정이 남기는 해석 불가능한 잉여에 주목한다.
파시즘의 젠더 정치
조선을 전시 동원 체제로 재편성하려는 일본 제국과 총독부의 정책은 천황제 파시즘에 근거한 가족국가주의의 틀을 따라 진행되었다. 조선인은 ‘황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청년, 총후 부인, 소국민이라는 새로운 주체 위치로 배치되었다. 이때 총후 부인은 ‘여성’에 관한 담론이지만 본질적으로 후방이라는 총력전하 사회 체제 유지를 위한 이념과 관련되었다. 즉 남성들이 전장에 나간 상태에서 후방의 노동력, 재생산, 방첩, 방공, 물자 동원 등과 관련되었다.
신여성의 몰락
최근 전 세계 극우정치의 리더 자리에 여성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면서 파시즘과 여성에 관한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우선 여성 그 자체가 서로 다른 차이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이 젠더사 연구의 출발점이다. 일제시기 ‘여성’ 역시 마찬가지여서 당대 여성은 신여성, 구여성이라는 다른 명명 체계로 구별되었고 인지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여성은 사회주의 여성/부르주아 여성 등으로 다시 구분되었다. 이처럼 여성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는 파시즘의 젠더 정치에서 적대의 준거로 전유되었다.
여기서 신여성의 몰락이라는 인식, 감각, 선동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윤규섭은 체호프의 「붉은 양말」을 원용한 글(「현대여성의 위치」, 『여성』, 1940년 10월)에서 신여성을 “반(半) 남자”로,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있는 여성적 정체성의 대명사로 명명했다. 파시즘의 젠더 정치는 약자의 정치학을 표방하면서 약자의 상실감과 권력 박탈에 대한 공포를 주로 자극하고 ‘약자’를 새로운 주체로 구성한다. 조선에서 신여성은 ‘그간 많은 것을 얻은’ 집단으로, 구여성은 ‘그간 얻은 게 없는’ 여성 집단으로 위계화되었다. 즉 구여성은 여성 내부의 ‘약자’로 배치된 것이다. 이렇게 여성들 내부를 위계화하고 적대시키면서 신여성을 ‘기득권자’로 설정하고 신여성의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공격이 진행된다. 반대로 ‘약자’인 구여성에게는 새로운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된다. 이렇게 정체성 집단 내부에 위계를 재설정하고 적대를 강화하는 방식은 ‘총후 부인’의 정책과 담론,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총후부인과 스파이
총후부인은 이 위계 구조 위에서 탄생한 파시즘적 여성상이다. 일본 부인의 ‘명랑성’과 조선 구여성의 검소함을 결합한 이상적인 후방 주체로, 가정과 마을, 배급과 저축, 방공과 방첩까지 책임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조선 여성의 법적 지위는 일본과 동등하지 않았고, 더구나 처(妻)는 법적 무능력자에 해당했다. 그러나 총후부인 담론에서는 이런 법적 행위무능력자인 조선의 처(妻)가 공적 행위 능력을 부여받는 것처럼 선전된다. 이런 ‘참가의 환상’은 여성들에게 참여와 주체성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국가의 전쟁 기계에 편입되는 것이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1937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스파이 담론에서 스파이는 여성의 특정한 정체성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1935년 2월 29일 나치스는 두 명의 여성을 스파이 혐의로 단두대로 보내고 그 머리를 광장에 걸어놓았다. 1937년 이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는 글은 이 여성들이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방탕한 생활로 인해 적에게 포섭되었다고 기술한다. 이처럼 특정한 여성 정체성이 적의 침투에 노출될 수 있는 약점으로 간주되면서 여성의 사회생활과 ‘사교’는 부정적인 의미로 폄하된다.
사회의 ‘문란’에 대한 공포는 사회의 ‘여성화’에 대한 공포와 맞물렸다. 1930년대 후반 조선에서 총후부인 담론이 ‘국가에 헌신하는 이상적 여성’을 만들었다면, 스파이 담론은 ‘통제되지 않은 위험한 여성’을 만들어내어 여성 내부의 위계와 적대를 강화했고, 두 담론은 함께 파시즘적 사회체를 재조직하는 핵심 장치가 되었다.
놀이로서의 증오
증오정치(파시즘)는 무시무시한 폭력만이 아니라, 쾌락 특히 즐거움과 재미를 동반한다. 나치와 일본 파시즘은 이런 즐거운 선전을 가장 핵심적인 ‘대중선동’ 논리로 내세웠다. 전시 동원 체제 조선에서 여자스파이단의 신화는 바로 이런 놀이로서의 증오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스파이란 유행어이자 흥미로운 읽을거리이기도 했지만, 가상의 ‘소비’를 통해 가상의 적에 대한 공포를 현실화했다. 국제 스파이단이 흥미로운 읽을거리로, 스파이가 유행어로 등록된 그 시점에 이미 가상의 적에 대한 공포는 현실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일례로 이미 1932년 “괴상스러운 중국 미인”이라고 묘사된 여자 스파이에 대한 검거 소식이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데 이는 중일 전쟁 이후 본격화된 스파이 담론의 예고편이라 할 만하다. 오히려 전시 동원 체제 국민 방법 정책에서 스파이 담론은 흥미유발을 통해 적대적인 경계심을 내면화시켰고, 이는 적대와 공격성을 특징으로 하는 파시즘 정치가 ‘흥미’나 ‘재미’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유튜브 사이버 렉카들의 흥행을 떠올리게 한다.
전쟁기 식민지 지식인의 남방을 향한 시선
‘암흑기’로 표상되는 전시 동원 체제에도 모범생들은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저자에 따르면 전시 동원 체제 조선의 청년 학생들은 ‘공부’의 자리를 지정받게 된다. 저자는 당시 연희전문 학생의 메모를 사례로 삼아 논의를 확장한다. 세계대전의 와중인 1942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영일 대역본에 남긴 자필 메모는 당대 청년 학생의 어떤 내면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저자는 “태평양 전쟁기의 조선 지식인의 심리는 영어와 일어가 상호 번역되는 세계, 그 세계를 학습하고 상호 번역의 원리를 학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불안 같은 게 아니었을까?”라고 질문한다. 그러면서 자기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영어와 일어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바깥에서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의무와 열망이야말로, 피식민자인 조선인의 내면이었고, 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남방(오늘날의 동남아시아를 말한다)에 관한 관심이라고 분석한다.
남방 담론은 1938년을 전후로 급증하여, 1941년에서 1943년 사이에는 관련 담론이 조선의 매체를 장악할 정도로 넘쳐나게 된다. 남방 담론은 향후의 전쟁의 승패를 예상하고 전망하는 형식으로도 나타나지만, 주된 형식은 종족지와 시였다. 조선에서 생산된 남방 종족지는 오래된 식민지로서의 조선의 위기감과 불안감,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남방에 대한 기대와 선망이 복잡하게 뒤얽혀 만들어졌다.
총독부는 남방에 대한 관심을 주로 일본의 대동아 성전의 혁혁한 전과를 조선인들이 인지하는 정도의 선으로 제한했고 남방 자원이나 남방 건설에 대한 조선의 관심을 철저히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의 남방에 대한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남방 점령은 중국, 동남아시아의 여러 민족 집단, 서구의 제국주의 등의 다양한 행위자들뿐 아니라, 기존의 일제의 식민지였던 타이완과 조선, 만주국 등 여러 행위자들 사이의 충돌하는 이해관계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고 이를 통해 조선의 담론 공간을 들끓게 만들었다. 동시에 남방이라는 새로운 점령지가 부상하면서 조선이 맡을 수도 있을 미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담론 곳곳에서 확인되며 이는 남방을 매개로 아시아에서의 조선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이 고양되는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중국은 ‘공기’이자 ‘위험’이었다
전시 동원 체제 일본 제국에게 중국적인 것은 도처에 편재하는 공포의 대상이자, 제국을 안으로부터 오염시키는 미지의 병균과 같았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단지 비유가 아니다. 전시 동원 체제에서 일본 제국에게 중국적인 것은 외부의 적이지만 온전히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잠재된 것이다. 중국적인 것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파괴하는 것으로 인지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모든 경계를 구성하는 인자가 되었다.
중국적인 것은 조선적인 것에 병균처럼 들러붙어 있고, 일본 제국에 대한 반감을 독처럼 퍼트리고, 일본 제국이라는 성스러운 신체를 병들게 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중국적인 것은 박멸하려 해도 다시 살아나는 병균이고 숨만 쉬어도 감염되는 바이러스이며, 공기 그 자체이기도 했다.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전파매개적 신체성이야말로 우리가 오늘날 정동이라고 부르는 개념과 가장 가까운 특성을 보인다. 전파매개적 신체성을 이런 식으로 규정하고 박멸할 대상으로 보는 방식은 2025년 현재에도 법적 개념으로 한국 사회에 현존하고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저자는 본다.
전시 동원 체제 아래에서는 조선을 중국의 파생물이나 혼종물로 보는 담론이 늘어난다. 조선적인 것은 중국적인 것을 향한 지향성의 운동으로 고유성이나 원본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은 “지나적 조선 문화”로 규정되기도 했다. 중국적인 것은 상해 조계, 스파이, 폐풍의 온상으로 표상되며 가짜와 진짜가 뒤섞인 분열된 신체로 그려진다. 그러나 중국을 단지 병리적 전파매개물로만 호명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중국적인 것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하위지각적 힘’으로 조선의 감각과 상상력을 감싼다. 일본 제국은 조선을 중국의 영향에서 떼놓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사상 통제와 풍속 통제를 통해 ‘정보’와 ‘비정보’를 가르는 검열 체제는 결국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정동의 정치였으며, 그 속에서 중국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은 함께 인종화되고 분할되었다고 이 책은 분석한다.
지은이
권명아 Kwon Myoung A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대학 연구소를 대안 제도로 정립하고자 하는 실험으로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2018년 설립, 현재 소장을 맡고 있다. 2011년 대안연구모임 <아프꼼>을 만들었고, 갈무리 출판사와의 협업으로 공동번역서 『정동 연구 지도제작』(2025) 등 지금까지 총 여섯 종의 책을 출간했다. 역사적 파시즘 연구에서 시작하여 헤이트스피치 비교 연구를 지속해 왔고, 소수자 연구에 기반을 두고 어펙트 이론을 재구성한 젠더·어펙트 이론을 제안하여 젠더·어펙트 총서 6권 『대안적 연결체의 테크놀로지』(산지니, 2025) 등 지난 6년간 총서를 발행했다. 또 지방소멸론에 대해 다각도로 비판적인 연구 방법을 모색하고 제안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일본, 타이완, 중국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서 지방소멸론이 어떻게 정착민 식민주의를 재구성하는 담론적, 정책적, 정동적 기반이 되고 있는지를 비판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지역의 연구자들과 함께 <젠더·어펙트 연구회>를 구성, 함께 세미나와 번역, 출간 등을 지속하면서 공부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000), 『맞장뜨는 여자들』(2001), 『문학의 광기』(2002), 『탕아들의 자서전 ― 가족 로망스의 안과 밖』(2008),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 ― 탈식민화와 재식민화의 경계』(2009),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 한국 사회의 정동을 묻다』(2012), 『음란과 혁명 ―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2013),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2019),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 ― 젠더사로 보는 전시 동원 체제』(2025) 등이 있으며 여러 권의 공저서, 편저서가 있다.
책 속에서
한국에서 파시즘은 집단주의의 일환으로만 논의되는 경향이 과도하다. 그러나 파시즘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집단주의적 경향보다는 경쟁 체제, 증오심, 박탈된 자의 원한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특정한 면모와 더 관련이 깊다. 일제 말기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파시즘 체제에 합류하게 되는 내적 요인들은 매우 복잡하고 이질적이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고, 남을 딛고 위로 올라서려는 욕망의 문제이기도 했다. ― 개정증보판 서문, 10
파시즘의 정치학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른바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의 수호를 주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에게 전통적인 가족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집단의 모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이질적인 것의 뒤섞임, 이질성과 오염으로부터 정화된 이상적인 국가란 바로 이러한 전통적 가족의 모델 위에서 성립된다. 역으로 파시즘의 정치학에서 ‘가족’은 언제나 몰락에 직면해 있고, 가족을 재구축하는 것만이 지금껏 한 번도 이루지 못한 ‘근본적 혁명’의 꿈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 1부 1장 역사상을 둘러싼 투쟁, 41
전시 동원 체제에 이르면 조선에서는 여가와 취미의 공간이 파시즘 통제를 통해서 극단적으로 축소되고, 그 결과 ‘술, 담배, 마작’으로 상징되는 최소한의 식도락 문화 외에는 남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존재하던 기존의 문화 공간조차 사라져 문화의 황폐화와 협소화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느낌 역시 개별 집단에 따라서 이전 시대에 어떤 문화를 향유했는지가 다르고 상실감의 대상과 성격도 판이했다. ― 1부 2장 파시즘 경험과 유산을 둘러싼 논쟁 비판, 76
홍콩과 타이완에서 다문화주의가 급진적 민주주의와 결합되는 중요한 요인은 이 지역의 정치적, 인종적 상황이다. 이 지역에서 급진적 민주주의는 중국과의 갈등적 관계의 정치적 반영이다. 홍콩과 타이완에서 맑스주의는 중국 공산당과 분리 불가능하며, 신좌파의 모색 역시 홍콩의 노동자 계급과, 타이완의 분리 독립파 및 소수 인종의 정치적 자유에 대한 소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 1부 3장 이론적 실천과 소비의 경계, 116
총후부인 담론에서 ‘가정’의 이념 쇄신, 생활 개선 운동, 생활 예절 등이 강조되는 것은 정치의 기초 단위로 가정이 재구성되고 ‘부인’이 조직화되는 과정을 반영한다. 전시 체제에서의 생활 개선이나 부인의 역할에 관한 논의들은 <애국부인회>의 총후 활동 내용을 반영한다. 생활 예절에 대한 강조는 내지와 생활을 일체화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 2부 1장 총후부인, 신여성, 그리고 스파이, 147
여자 스파이단에 대한 신화 역시 파시즘이 스스로 여성화하면서 사회의 오염, 침투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강건한 사회를 구축하는 남성성에 대해 강조함과 더불어 스스로 약자/여성의 위치와 동일화함으로써 이러한 절멸의 기획을 정당화하는 모순된 정치 이념의 산물이다. ― 2부 2장 여자 스파이단의 신화와 ‘좋은 일본인 되기’, 163
청년 담론은 ‘청년 일본’에서 ‘청년 조선’, 식민지 파시즘화를 수행하는 최전선에 배치되는 황군과 청년단에 이르기까지 ‘청년’을 사회의 최선두에 위치시킴으로써 대중을 새롭게 배치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 청년 담론에서 청년이 ‘사회의 선두’로 배치되지만 그 선두의 자리는 ‘제국’의 지휘와 통합에 의해서만 보증되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대중 장악, 혹은 ‘민중’에 대한 ‘엘리트’의 계몽이라는 근대주의의 신화와 이데올로기를 파시즘적으로 전유한 전형적인 형식이다. ― 3부 1장 입신출세와 ‘일본인 되기’ 사이의 간극과 딜레마, 227
이른바 대동아의 구상이란 표면에 놓인 동화의 수사학에도 불구하고(물론 이 동화는 ‘문명화의 수준’에 따른 위계화와 같이 배타적인 적대와 차별화의 다른 이름이다) 기본적으로 일본과 아시아 여러 국가들 사이의 배타적인 적대와 서열화에 의해 지탱된다. 이는 일본을 동아시아 가족들의 수장으로 위치 짓고 아시아 각국을 ‘제국의 아이들’로 서열화하는 가족국가주의적 담론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 4부 2장 ‘남방’, 중국, 화교와의 경쟁, 식민지 ‘사이’의 경쟁이 남긴 것, 341
일본은 조선을 중국의 영향에서 떼어내고 아시아에서 중국이 지녔던 영도적 지위를 일본이 차지하기 위해 다양한 선전 정책을 펼쳤다. 예를 들어 중국이 맡았던 아시아의 지도적 지위를 이제는 일본이 맡게 되었다는 논의는 전형적이다. ― 5부 3장 조선의 기운과 공기로서의 중국, 451
목차
개정증보판 서문 8
1부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 젠더 정치 ― 논쟁과 논점들
1장 역사상을 둘러싼 투쟁 ― 젠더사의 시각과 파시즘 이론 22
1. 일제 말기, 파시즘, 젠더 정치와 인종차별주의 비판을 둘러싼 논란들 22
2. 파시즘의 정치학과 젠더 ― 1930년대 이후 논의의 역사적 전개 26
3. 한국사 연구 방법론에 대한 문제제기 ― 젠더사의 시각과 질문 45
2장 파시즘 경험과 유산을 둘러싼 논쟁 비판 57
1. ‘일상’은 동의의 공간인가 57
2. 사회의 준내전 체제화 ― 일제 말기와 해방 후의 연속성 71
3. 파시즘의 유산과 ‘골칫덩어리들’ ― 난센스의 의미 75
4 .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의 의미 ― 파시즘의 마지노선, 자본주의와 근대적 규율화 96
5. 대중은 누구인가 ― 주체 개념의 한계와 파시즘적 주체화의 문제 98
3장 이론적 실천과 소비의 경계 ― ‘문학 속의 파시즘’ 연구와 대중독재론의 문제 100
1. 임지현은 누구와 싸우는가 ― 탈신화화와 이론의 경계 100
2. 이론의 소비와 알리바이들 103
(1) 이론의 소비와 제도화 103
(2) 돌림병, 유행병, 제도화된 주체들의 자기방어 기제들 106
3. 제도화된 민중주의의 담론적 무능력과 자기 정당화 112
4 . 다문화주의, 차이의 정치학과 차이의 마케팅의 경계에서 115
5. 탈신화화의 모호함과 제도화의 명확함 119
2부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 ―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경험과 유산
1장 총후부인, 신여성, 그리고 스파이 ― 황민화와 여성 정체성 집단 간의 위계적 차이화의 과정 122
1. 한국 사회의 젠더 정치의 기원을 고찰하기 위해 122
2. 전선과 가정, 그리고 ‘국민’의 안과 밖 124
3. 총력전 체제와 모성 이데올로기 134
4. 가족국가주의의 확대와 정치 단위로서의 가정의 구성 142
5. 총후부인과 스파이 ― 무능력자와 ‘정치적 주체’ 사이의 균열 146
2장 여자 스파이단의 신화와 ‘좋은 일본인 되기’ ― 인종주의와 젠더 공포 154
1. ‘좋은 일본인 되기’의 엔진으로서의 스파이 담론 154
2. 여자 스파이단의 신화 ― ‘대동아’의 신체와 여성 157
3. 국민방첩과 스파이 담론 ― 잠재된 적과 현실의 가상화 164
4. 스파이 담론과 ‘좋은 일본인 되기’ ― 가상의 현실화 170
5. 좋은 일본인 되기 ― 좋은 일본인으로 죽거나 나쁜 일본인으로 죽거나 180
3장 황민화와 여성 정체성 집단 간의 지역적·계급적 차이화의 역사 ― 엘리트 여성과 비엘리트 여성의 파시즘 체제 경험의 차이 183
1. 파시즘 체제와 문학, 여성, 국가 183
2. 파시즘적 주체화와 젠더 정치 ― 조직, 교육, 경험과 여성 정체성 189
3. 식민지 경험과 여성 정체성 209
3부 모던보이 비판과 애국 청년의 구성 ― 전위와 퇴폐 분자 사이에서
1장 입신출세와 ‘일본인 되기’ 사이의 간극과 딜레마 220
1. 청년 담론의 역사화와 파시즘적 주체화의 문제 220
2. 입신출세와 ‘일본인 되기’ 사이에서 222
3. 청년이 되는 것과 ‘일본인’이 되는 것
― 선택과 신분, 황민화 기획과 자발성의 문제 230
2장 남성 정체성 집단 간의 적대적 위계화 ― 모던보이 비판과 ‘애국 청년’의 구성 234
1. 혁신의 이념과 전위로서의 청년 234
2. 청년의 정체성과 모던보이 비판 241
3장 참가의 환상은 측정 가능한가 263
1. 전시 동원 체제와 언어 공간의 재편 263
(1) 국책의 이념과 언어 공간의 현실 사이의 간극 263
(2) 언어 공간의 재편 ― 연설 공간, 문자 미디어, 라디오 269
2. 균열로서의 내선일체와 ‘언어’ 275
3. 전시 동원 체제와 미디어의 독본화 ― 입신출세주의와 ‘대중’의 황민화 286
4. 전시 독본 미디어와 언어 공간 292
5. ‘참가의 환상’은 측정 가능한가? 299
4부 남방 종족지와 제국의 판타지 ― 경쟁, 살아남기라는 ‘도덕’으로 남겨진 파시즘의 유산
1장 ‘네이티브’의 위치와 대역본의 세계 ― 제국들의 사이에서, 식민지들의 사이에서 304
1. 영일 대역본을 보는 조선인 학생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 304
2. 재현의 권력, 재현의 정치 309
3. “깜둥이 나의 여인아” ― 인종주의의 시학화와 제국의 판타지 313
4. 확장되는 영토, 포섭·배제되는 주민들 ― 남방의 자원과 원주민, 그리고 ‘화교 경제’ 327
5. 남방 관심의 개관 ― 관심의 복합성, 제국의 판타지에서 일상적 이해관계까지 332
6. ‘땅의 아들’로서의 ‘원주민’과 피식민 주체성의 문제 333
2장 ‘남방’, 중국, 화교와의 경쟁, 식민지 ‘사이’의 경쟁이 남긴 것 338
1. 대동아공영의 이념과 가족국가주의 ― 인종과 젠더, 그리고 민족 338
2. 신생 식민지의 출현과 피식민 주체의 불안 ― 제국의 시선과 식민지의 시선 사이에서 346
(1) 대동아 기획과 아시아의 위치 변화 346
(2) ‘전선’과 ‘시장’으로서의 남방과 개척자로서의 조선 351
(3) 식민지 토인으로서의 남방과 문명 기획자로서의 조선 359
3. 피식민 주체의 불안과 인종 공포 371
3장 남방 종족지와 제국의 판타지 ― 다시 ‘최소한의 도덕’을 위하여 373
1. 재현의 스펙터클, 관객과 연기자 ― 파시즘과 ‘최소한의 도덕’ 373
2. 잉여로서의 남방 담론과 과잉된 응답의 역설 381
3. 남방이 주는 실감의 두 차원 387
4. 남방 선전의 특성과 식민 지로서의 종족지 398
5. 남방 종족지와 제국의 판타지 409
6. 독일 파시즘의 유태인과 일본 파시즘의 남방 원주민 ― 기술적·행정적 조치의 대상으로 변용된 적군과 증오 없는 전쟁 417
5부 중국적인 것의 정동화와 조선적인 것의 인종화 ― 전시 동원 체제 연구와 전파매개적 신체 연구
1장 중국 정동과 전파매개적 신체 연구 422
1. 중국적인 것과 정동 422
2. 전시 동원 체제와 중국적인 것의 변화 423
3. 전파매개적 신체와 중국적인 것 429
2장 조선적인 것의 중국 지향성과 중국의 정동화 ― 배일적 태도와 폐풍의 통제 432
1. 감정과 정서의 체계로서의 조선적인 것과 중국 지향성 432
2. 배일적 태도와 중국적인 것 436
3장 조선의 기운과 공기로서의 중국 ― 분발심 없는 종족집단과 중국적인 것의 전파매개성 440
1. 전시 동원 체제의 인종주의와 조선의 소중화 의식 440
2. 실체성을 상실한 전파매개물로서의 중국과 그 파생물로서의 조선 448
3. 하위지각적 힘 혹은 잠재성으로서의 중국적인 것 449
4장 역사적 파시즘 체제와 젠더·어펙트 연구의 과제들 ― 정동 연구를 통한 정보 이론, 인종 과학 연구를 위하여 454
1. 중국 정동과 ‘반중 정서’ 454
2. 소수자 연구의 국가 감상주의 프로젝트 비판과 중국 정동 연구 459
참고문헌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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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2025.11.28 출간 l 신국판 152x225mm, 무선제본 l 카이로스총서119, Potentia
정가 30,000원 | 쪽수 496쪽 | 무게 679g | ISBN 9788961954075 93900
도서분류 제국주의와 식민성 연구, 파시즘 연구, 젠더 정치와 젠더사, 인종주의 연구, 문화정치학, 역사사회학, 정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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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기사
[교수신문] 새로 나온 책 /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