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운 생태학”은 생태적 위기의 논리적 토대를 탐구하면서 우리를 급진적 자기-인식이라는 기이한 위치에 둔다.
모턴은 생물권에서 우리가 점하는 자리와 우리의 소속성을 조명하는 가운데 비인간 존재자들과 우리의 유대를 다시 확립할 것을, 그리고 우리가 가로지르고 있는 어둡고 낯선 고리를 밝게 비추어 줄 놀이와 즐거움을 재발견할 것을 희망한다.
간략한 소개
어두운 생태학은 생태적 알아차림이다. 그것은 어두운 우울함이며, 어두운 기이함이고, 어두운 달콤함이다. 오늘날 차트에서 언제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허무주의이기에 우리는 통상적으로 첫 번째 어둠인 우울을 통과하지 못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우리를 둘러싸고 침투하는 수많은 존재자와 우리의 불가분한 공존과 관련된 비극적 멜랑콜리 및 부정성이라는 특징을 띤다. 그러나 이 책은 두 번째 어둠인 기이한 것을 거쳐 세 번째 어둠인 달콤한 것에, 어떤 역설적으로 아나키적이고 희극적인 공존의 감각에 도달하고자 한다.
모턴은 신석기 이래로 아무런 의문 없이 실행되어온 ‘농업로지스틱스’에서 생태위기의 원인을 찾는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처음부터 인간과 다른 생명체에게 유독했지만, 인간종은 알고리즘의 실행을 멈추지 않았고 오늘의 행성적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 긴급한 생태위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물학적이고 화학적인 환경과 우리를 관계 맺게 하는 다종다양한 사물들, 우리의 인간 자아와 비인간 반려와 이웃 사이의 관계 네트워크들, 그것들 사이의 유대, 그것들을 갈라놓는 갈등들을 다시 깊이 숙고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생태적 알아차림은 우리에게 다수의 규모들, 즉 현재, 생명, 인간, 자연, 사물, 사고, 논리 같은 규범적 개념을 어지럽히는 규모들에서 생각하고 느끼도록 강제한다. 『어두운 생태학』은 끔찍한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문화적 조건에서 탈출하기 위한 환희의 여정이다.
『어두운 생태학』은 티머시 모턴이 2014년에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에서 진행한 웰렉 강의를 엮은 책이다.
상세한 소개
시동 걸기의 기묘함 : 내가 형사이자 범인이다
지난 50년간 야생동물 개체군의 73%가 사라졌다고 한다.(한겨레, 2024.10.10.) 2024년의 폭염과 긴 여름은 한국 사회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기후 위기는 이미 이 행성과 인류를 덮쳤다. 다양한 분석과 대안이 제출되는 가운데 많은 과학자와 논평가가 화석연료 산업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그런데 매일같이 차에 시동을 걸고 있는 우리가 있다. 티머시 모턴은 『어두운 생태학』의 여정을 이 일상의 사례에서 시작한다. 예년 같지 않은 폭염을 겪고 난 우리에게 시동 걸기 같은 행위는 예전 같지 않다. 시동을 걸 때마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26쪽) 모턴에 따르면 시동을 걸고 있는 ‘나’라는 개인이, 대량으로 분산된 어떤 사물의 구성원이고, 이 사물이 종이라고 불린다는 것, 그리고 인간종에게 기후재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이 기묘한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차에 시동을 걸 때, 혹은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교통수단에 오를 때, 나는 45억 년의 지구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 사건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없다. ‘지구’에 해를 끼치고 이미 73%가 사라져버린 야생동물 개체군을 더 살해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다. 게다가 내 차 한 대의 시동 걸기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하지 않은가? 온갖 생각을 더해 보지만, 한 수준 위로 올라가면 매우 낯선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다. 하루에 이 행성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수십억 번의 시동 걸기와 수십억 번의 석탄 삽질을 합산하면 내가 시동을 걸 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지구’에 해악을 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종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인류세에 대해 책임이 있다. 물론 나는 내가 지구 온난화를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만 형식적으로 책임을 질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범죄자인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과학 수사를 통해 이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모턴은 이 사태가 누아르 소설과도 같다고 말한다. 내가 형사이자 범죄자이다! 나는 하나의 인격체이면서 이제는 행성 규모의 지구물리학적 힘이 된 한 존재자의 부분이다. 모턴은 “생태적 알아차림은 서술자가 자신이 비극적 범인임을 알아내게 되는 순간”(27쪽)이라고 말한다.
농업로지스틱스라는 1만 2천 년이 된 기계
내가 차에 시동을 걸 때마다 “슬금슬금 다가오며” 기운을 내뿜는 이 숨은 기계의 이름은 무엇일까? 화석연료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18세기의 ‘산업혁명’일까? 15~18세기에 수십 만 명의 여성을 마녀로 몰아 학살하며 태동한 ‘자본주의’일까? 모턴에 따르면 “증기와 기름의 시대보다 더 거대하게 떠도는 이 구조”는 “농업 그 자체인 기계, 산업 시대의 기계보다 앞선 기계”(83쪽)이다. 그는 이것을 농업로지스틱스라고 부른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초승달 지대에서 발생하여 여전히 앞을 향해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업의 특정한 로지스틱스”이다. 물류나 병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로지스틱스’를 모턴이 사용하는 이유는 농업로지스틱스가 “만들어진 공간에 대한 기술적이고 계획적이며 완벽하게 논리적인 접근법”이기 때문이고, “물러서서 논리를 재고함이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농업로지스틱스는 “너무도 성공적이어서 이제는 행성 규모로 농업 기술을 지배하는 농업 프로그램”이며 “전 지구적 농업”이라는 초객체를 창조하기에 이르렀다.(83쪽) (모턴의 개념인 ‘초객체’는 시간과 공간에 걸쳐 대량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사물을 뜻한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모턴은 ‘어두운 달콤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단계로서 농업로지스틱스의 논리와 귀결들을 세밀하게 탐구한다. 모턴에 따르면 농업로지스틱스는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 사이에 경계를 그었고 현존을 순전한 양으로 환원했다. 브뤼노 라투르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문제로 삼고 있는 자연-문화 분열은 그보다 앞선 자연-농업 분열의 결과라고 모턴은 본다. 농업로지스틱스는 사회적이고 물리적이고 존재론적인 두려움, 불안, 모순을 제거할 것을 약속했지만 그것은 유독한 방식이었다. 농업로지스틱스는 가부장제, 빈곤, 엄격한 사회적 계층구조, 전염병 같은 인간-비인간 상호작용의 피드백 고리로 빠르게 이어졌다.(87쪽)
우울증 내부에서 찾는 장난감과 놀이의 길
우울증은 『어두운 생태학』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모턴은 『어두운 생태학』의 한국어판을 위해 작성한 서문에서, 웰렉 강의를 준비하던 2013년에 자신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밝힌다. 나아가 모턴은 현재 우리가 객관화된 우울증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진단한다. 모턴은 “우울증의 가장 어려운 점은 시야를 매우 작은 관으로 좁혀서 선택지들을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272쪽)이라는 신경학자 애덤 캐플린의 글을 인용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행성적 위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기 위해서는 약 1만 2천 년간 지속되어온 농업로지스틱스를 사고할 수 있어야 하는데 농업로지스틱스는 바로 그러한 장기간의 시간을 사고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짧은 시간 터널을 확산시키는 기계라고 말한다. 즉 지금의 세계는 사람들의 시간 창을 아주 짧은 기간으로 좁히려고 한다. 모턴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경험한 우울증의 가장 끔찍한 점 중 하나이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시간 창은 직전 5분과 직후 5분으로까지 축소될 수 있다. 이렇게 한 존재가 사고할 수 있는 시간 폭이 축소되면 그 존재는 생존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농업로지스틱스는 인간들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생존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위험한 지름으로 그들의 시간성을 압축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대목에서 모턴은 매년 34,000명이 자살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통계를 인용한다.
무력감에 휩싸이기 좋은 상황인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모턴은 “행복한 허무주의에서 어두운 허무주의로” 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우울증과 싸우기보다는 우울증 내부에서 달콤함을 찾자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위로의 ‘초월’ 대신에 아래로 내려가는 ‘저월’의 방법론이 제시된다. 이것은 모턴이 공저자 도미닉 보이어와 함께 『저주체』라는 책에서 탐구한 방법론이다. “터널을 뚫어 내려갈 길을 찾읍시다. 사물이 전적으로 스스로 반짝이는 방식을 볼 수 있는 길을 찾읍시다. 사물들이 의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하는 방식을 찾읍시다.”(209쪽)
우리에게는 웃음, 놀이, 심지어 어리석음을 포함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모턴은 말한다. 예를 들면 아이슬란드에서 <최고당>이 실험했듯이, 정치 체계들을 장난감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서 억압적인 정치 형태들과 경제 구조들, 심지어 신자유주의마저도 장난감으로 여길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책을 닫는 글인 「시작 전에 끝내기」에서 모턴은 자신의 장난감 사유를 플루토늄 보관이라는 난제에 적용해보는 듯하다. 자동차 시동 걸기가 인간종으로서의 나의 연루를 기묘하게 환기하듯이 “인간이 플루토늄을 만들었고, 인간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285쪽) 이 위험한 물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모턴은 방사능이 새지 않게 만드는 물체에 작은 플루토늄 조각들을 넣어서 모든 마을 광장의 한복판에 놓고, 그것을 위한 순례를 개시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혹은 플루토늄 조각을 뉴욕시 현대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공포와 우울증은 슬픔과 즐거움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플루토늄적으로 곤두섭니다. 혹은 우리는 플루토늄적으로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혹은 우리는 플루토늄적으로 웁니다. 혹은 우리는 심지어 플루토늄적으로 춤춥니다. ... 거기에는 언제나 이미 비인간과의 어떤 관계가 있습니다.”(285쪽)
책의 구성 : 운명의 실타래
이 책은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끝난 이후에 시작하기」, 세 개의 본문 장, 「시작 전에 끝내기」,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턴은 세 개의 장을 세 개의 실(thread)로 구상했다. 책이 진행되면서 이 실들은 운명의 여신이 운명의 거미줄을 엮듯이 함께 짜인다. 「첫 번째 실」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어둡고 우울한 통로를 지나간다. 이 통로에서는 기묘함이라는 용어에 관한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신석기 이래로 아무런 의문 없이 실행되었으며 이제는 행성 표면을 뒤덮고 있는 농업로지스틱스가 발견된다. 「두 번째 실」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어둡고 기이한 정류장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농업로지스틱스라는 프로그램의 실행이 맹목적이었던 이유를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문명”이 비인간들을 지워 왔음에도 결코 증발한 적이 없는 인간과 비인간의 원초적 관계성, 즉 “원-석기”(arche-lithic)가 발견된다. 「세 번째 실」은 어둡고 달콤한 장소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희극의 가능성 공간에 발을 들인다. 부록에 수록된 논문 「생태학을 생각하기 : 그물망, 낯설게 낯선 자, 아름다운 영혼」에서 모턴은 상호의존성 정리와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상세히 탐구해 나간다. 생태학은 내밀성에 관한 것이고 세계에 대한 올바른 미적 전유를 위해 거리를 유지하는 아름다운 영혼은 더는 없다는 것이 여기서 밝혀진다.
추천사
생태적 사고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급진적 비전. ―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
모턴의 도발적인 책은 독자에게 그 고리 논리를 엮고, 비틀고, 그것으로 실뜨기 놀이를 해 보라 촉구한다. ― 크리티컬 인콰이어리
모턴은 특유의 자유로운 스타일로 독자들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 『어두운 생태학』은 그의 이전 작업을 확장해 생태학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획기적으로 다른 비전을 제시한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때로는 매료하고, 때로는 신비롭게 하며, 때로는 감동을 주고, 때로는 혼란스럽게 하며, 때로는 신나게 하는 책 … 인류세, 그리고 인간 사회와 생물학적 삶의 골치 아픈 관계에 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어휘를 찾는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 영국 문학과 과학 학회
지은이
티머시 모턴 Timothy Morton, 1968~
철학자, 영문학자, 생태이론가. 옥스퍼드 대학 마들린 칼리지에서 영국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시에 나타난 음식과 섭생, 소비의 문제를 다룬 논문 “Re-Imagining the Body : Shelley and the Languages of Diet”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미국 라이스 대학 영문학과의 리타 시 거피(Rita Shea Guffey Chair)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레이엄 하먼, 레비 브라이언트, 이언 보고스트와 함께 사변적 실재론의 ‘객체지향 존재론’(OOO) 갈래에 속하며, 주로 객체지향 존재론이 생태학적으로 함의하는 바를 탐구한다. 2013년에 출간한 『실재론적 마술 : 객체, 존재론, 인과성』은 모턴의 대표적인 객체지향 존재론 저서로, 특히 객체-객체 관계의 인과적 차원에 초첨을 맞춘다. 2018년 작 『어두운 생태학 : 미래 공존의 논리를 위하여』에서는 객체지향 존재론의 생태학적 함의를 탐구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어두운 생태학”을 전개한다. 2021년에는 도미닉 보이어와 함께 새로운 주체성을 탐구하는 『저주체 : 인간되기에 관하여』를 썼다. 그 밖의 저서로 『생태적 삶 : 티머시 모튼의 생태철학 특강』, 『인류 : 비인간적 존재들과의 연대』, 『하이퍼객체 : 세계의 끝 이후의 철학과 생태학』, Ecology without Nature, The Ecological Thought 등이 있다.
옮긴이
안호성 Ahn Ho Sung, 1995~
와세다대학교에서 서양 철학을 전공하고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을 중퇴하였다. 사변적 실재론에 관심이 많으며, 옮긴 책으로는 『사물들의 우주』, 『탈인지』, 『실재론적 마술』, 『저주체』, 『어두운 생태학』이 있다.
책 속에서
생태적 알아차림은 서술자가 자신이 비극적 범인임을 알아내게 되는 순간입니다. ― 첫 번째 실, 27쪽
인류세는 ‘자연’(Nature)을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인류세가 ‘자연’, 그 유독한 악몽 형태에서의 ‘자연’입니다. ‘자연’은 재앙으로 출현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인류세의 잠재적 형태입니다. ― 첫 번째 실, 110쪽
빗방울 현상과 빗방울 사물 사이에는 근본적이고 비환원적인 간극이 존재합니다. 더군다나 나는 경험적 공간, 심지어는 과학적 공간에서도 이 떠도는 간극의 소재지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철학자들이 사물의 어딘가에 점선과 같은 것이 있고 자신들의 일은 그 점선의 소재를 찾아 잘라내는 것이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빗방울은 작은 점선 및 작은 가위 그림과 함께 “여기를 자르시오”라고 보여주며 다가오지 않습니다. ― 두 번째 실, 167쪽
우리는 근대의 역사를 심리적·사회적·철학적 공간의 내부에서 비인간 존재자들이 발견됨과 동시에 차단된 역사로 읽을 수 있습니다. ― 두 번째 실, 170쪽
사물들은 고유성을 방출합니다. 사물들은 특정성으로 곤두서 있습니다. 보라색, 옅은 보라색, 연한 파란색, 부드럽고 날카로운 가시와 꽃-가시가 나와 나의 주체-객체 절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곤두섭니다. 사물과 그 나타남 사이의 이 깜빡임이야말로 공존이 전체론적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무언가가 언제나 행방불명입니다. 나의 자기-알아차림은 불완전성의 감각입니다. ― 두 번째 실, 190쪽
우리에게는 다양한 정치 체계의 다수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정치 체계들을 장난감 같은 것, 인간과 비인간을 서로에게 연결하는 놀이챙긴, 반쯤 부서진 사물들로 생각해야 합니다. ― 세 번째 실, 203쪽
만약 정치 형태들과 경제 구조들이 장난감이라면, 억압적인 정치 형태들과 경제 구조들도 장난감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장난감입니다. 어쩌면 문제는, 많은 냉소적 논객들이 돈 받으며 지적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를 해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기가 너무 쉬워서 우리가 놓치고 있다는 것일지 모릅니다. ― 세 번째 실, 204쪽
행복한 허무주의에서 어두운 허무주의로 갑시다. 처음에 어두운 허무주의는 우울합니다. 그다음에 어두운 허무주의는 신비스럽게 어둡습니다. 그다음에 어두운 허무주의는 초콜릿처럼 어둡고 달콤합니다. 여러분은 우울증 내부에서 달콤함을 찾습니다. 우울증과 싸우지 맙시다. 터널을 뚫어 내려갈 길을 찾읍시다. 사물이 전적으로 스스로 반짝이는 방식을 볼 수 있는 길을 찾읍시다. 사물들이 의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하는 방식을 찾읍시다. 나르시시즘적인 히피 토크로 악마화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중 점점 더 많은 이가 개인적 여정과 정치적 여정이 같은 형태를 띤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 세 번째 실, 209쪽
장난감 만들기는, 오늘날 지배적인 예술, 인문학, 공학 사이의 상호 의심보다는 오히려 그것들 사이의 의미 있는 협력을 포함할 것입니다. 인문학자들은 냉소주의에 발목이 잡히고 기술자들은 대기업과 맺는 연구 계약에 발목이 잡힙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장난감을 만듭니다 ― 우리의 머릿속에서, 종이 위에, 나무와 플라스틱으로, 우리는 장난감 세계들, 프로토타입들, 우리가 생각하기 위해 활용할 형식들을 만듭니다. 인문학자가 기술자와 함께 작업하여 먼 미래의 장난감, 즉 현재의 기업적 필요의 시간성에 얽매이지 않는 장난감에 대한 기획과 모델을 제작한다면 어떨까요? ― 세 번째 실, 252~253쪽
고양이가 여러분을 깨물 때, 고양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무는 것이자 무는 것이 아닙니다. 고양이는 자신과 모순을 이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비인간은 놀이하는 법을 압니다. 사물은 사물로 있기 위해 놀이합니다. ― 세 번째 실, 253쪽
어두운 생태학은 우리가 절망적으로 그물망에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두운 생태학은 그 자신이 모든 생명체에 대해 온전히 책임이 있음을 발견한다 : 누아르 영화의 형사처럼, 어두운 생태학은 자신이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 부록, 324쪽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9
끝난 이후에 시작하기 14
첫 번째 실 17
두 번째 실 113
세 번째 실 199
시작 전에 끝내기 281
감사의 말 287
부록 : 생태학을 생각하기 ― 그물망, 낯설게 낯선 자, 아름다운 영혼 291
옮긴이 후기 326
후주 343
찾아보기 389
책 정보
2024.10.11 출간 l 130×188mm, 무선제본 l 카이로스총서108, Mens
정가 25,000원 | 쪽수 400쪽 | ISBN 9788961953641 93100
도서분류 생태철학, 환경철학, 정치철학
북카드
구입처
미디어 기사
[한겨레신문] 10월 25일 출판 새 책 / 어두운 생태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1월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