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오토는 신은 ‘전적 타자’(wholly other)라고 말했다.
신은 세계의 어떤 부분이나 전체와 다르다는 점에서 세계를 초월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초월의 물음이 또한 자기-초월의 물음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세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이 세계에 대한 태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창조주로서의 신에 대한 긍정에서 신의 초월이 가장 깊은 의미로 보존된다. 그것은 우주에 어떤 구조를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감사함으로 분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
간략한 소개
신의 초월에 관한 물음은 전통적으로 범신론과 유신론 간의 차이로 정립되어 왔다. 범신론은 신이 전적으로 ‘세계’ 내부에 존재한다고 확언한다. 유신론은 신이 세계 ‘내부에’ 있으면서 ‘외부에’ 존재한다고, 내재적이면서 초월적으로 존재한다고 확언한다. 하이데거의 존재-신학 비판과 타자의 차이를 존중하고 보존하려는 일반적인 포스트모던적 관심에 대하여, 메롤드 웨스트폴은 인간의 자기-초월의 방식과 관련해서 신의 초월을 다시 생각하고자 한다. 스피노자, 헤겔, 아우구스티누스, 위-디오니시오스, 아퀴나스, 바르트, 키에르케고어, 레비나스, 데리다, 마리옹을 다루면서, 웨스트폴의 작업은 존재-신학 비판, 타자성의 중요성, 탈중심화된 자기, 그리고 자율적인 초월적 자아에 초점을 맞춘다. 웨스트폴의 신앙의 현상학은 이 책을 오늘날 유럽대륙종교철학의 주요 흐름 속에 안착시킨다.
역자 인터뷰
Q. 메롤드 웨스트폴은 누구이고, 어떤 학자인가요? 또 역자 선생님의 연구와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메롤드 웨스트폴은 1940년생으로 미국 휘튼칼리지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예일대학교와 호프칼리지를 거쳐 포덤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같은 학교 철학과 명예석좌교수로 있는 인물입니다. 원래 그는 헤겔 전문가로 명성이 드높았으나 헤겔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지향을 기반으로 삼아 키에르케고어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키에르케고어를 포스트모던 사상의 선구자적 인물로 해석하면서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영어권 학계의 포스트모던 논쟁에 대담하게 뛰어드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포스트모던 흐름에 접속하는 방식은 좀 색다른 것이었는데요.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터전인 그리스도교 신앙, 더 정확하게는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를 유지한 채 19~20세기 철학을 더 깊이 파헤칩니다. 이를테면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의 메시지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나 종교 비판과 무척 잘 어울린다는 것이지요. 또한 레비나스와 리오타르가 전체성을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국가의 전체성을 비판하는 그리스도교 사상가 키에르케고어와 공명한다는 것이 그의 색다른 접근 방식입니다. 요약하자면, 포스트모던 사상의 그리스도교적 전유라고 할까요? 바로 이런 작업을 통해 현재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철학적 흐름으로 성장한 유럽 대륙종교철학, 또는 포스트모던 종교철학의 거목 중 하나로 선 사람이 바로 웨스트폴입니다.
사실 한국사회에서는 유럽대륙종교철학이라는 주제가 매우 생소합니다. 서구 철학계와 달리 종교와 철학이 첨예하게 구별되는 경향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분야가 무엇보다 다종교사회인 우리 사회 현실 속에서 꼭 필요하다고 보고 해당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럽대륙종교철학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자면, 이는 유럽대륙철학의 주요 흐름, 이를테면 현상학, 해석학, 구조주의, 최근의 신유물론 등의 사조를 통해 종교철학의 주요 주제를 새롭게 탐구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갈무리 출판사에서 2021년에 출간된 리처드 카니의 『재신론』이 바로 그런 사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술 가운데 하나고, 이번에 나온 『초월과 자기-초월』도 그런 흐름에 속하는 책입니다. 이 사유에서는 신을 전통철학처럼 형이상학적 대상이나 증명을 요구하는 존재자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을 우리에게 주어지고, 나타나는 체험되어야 할 현상으로 간주하거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기호로 보지요. 이렇게 하면 신과 계시는 증명을 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와 삶에서 풍요로운 의미를 불러오는 독특한 현상이 됩니다. 이때 우리는 신과 종교를 단지 전통적 교리의 틀에서 벗어나 훨씬 더 자유롭게 사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종교 간 대화나 타자와의 대화가 촉진됩니다. 더 나아가 이방인 환대나 윤리적 책임의 문제도 이런 사유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사유할 수 있습니다. 즉, 유럽대륙종교철학의 신-담론은 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뿐만 아니라 신과 신앙에 연루된 우리의 삶의 성격과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실적인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장 뛰어난 포스트모던 철학자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좌파 사상가 쟌니 바티모는 우리 시대 혁명이 가능하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가능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 속에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좌파 정치는 적어도 현실 의회 정치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힘을 못 쓰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이 와중에 사회 변화와 희망의 계기를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신앙공동체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프란치스코 교황과 바티칸에서 일으키고 있지요. 얼마 전 로마가톨릭은 사제들이 성소수자 커플을, 비록 제한적인 형태이긴 하나 축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공식 문서를 공표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로마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이 따라야 하는 지침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큽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소수자들이 교회에서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사회가 막다른 골목에 처하고, 혐오가 깊어질 때, 환대와 희망의 메시지를 종교에서 재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보수건 진보건 종교에 대한 이해가 극히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한 번 생각해 보지요.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이슬람 신앙을 가진 이주민들이 우리 곁에 늘어날 것입니다. 보수건 진보건, 우파건 좌파건 이주민 환대, 이방인 환대를 실천하려면 바로 이 종교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교에는 전광훈만 있는 게 아니고, 이슬람에는 하마스만 있는 것이 아니며, 유대교에 시오니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종교라고 하면, 가장 최악의 형태만을 생각하고 무시해 버립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선용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며, 여기에는 종교적 유산도 포함됩니다. 유럽대륙철학, 곧 현상학과 해석학 등을 기반으로 삼아 사유하는 종교철학에는 바로 이론적인 차원에서 종교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선용하고자 하는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유럽대륙철학에는 이런 실천적 함의가 있고, 저도 또 저자인 웨스트폴도 이런 흐름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의 저자의 결론도 결국 초월을 따라 일어나는 자기-초월이란 자기가 중심이 된 주체가 신과 이웃을 향해 개방된 탈중심화된 주체로 변형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에서 종교적 초월은 윤리적 책임이나 사랑과 분리될 수 없음을 이 책이 재확증해 주는 셈이지요. 지극히 이론적인 내용 가운데 서려 있는 실천적인 메시지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Q. ‘존재-신학’이란 무엇이고 종교철학에서 왜 그토록 논쟁적인 단어인가요? 하이데거는 ‘존재-신학’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했습니까?
유럽대륙철학 전통에서는 일종의 계시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하이데거의 존재-신학 비판입니다. 이것은 전통 형이상학의 신-담론이 신을 그저 자기-원인이나 최고 존재자처럼 형이상학의 개념으로, 더 정확하게는 우리가 사유하는 한에서 존재하는, 우리가 사유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개념화된 신으로 고착시켰다는 비판을 골자로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과 신앙을 사유함에 있어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형이상학에 입각하면 신은 유일실체나 자기원인, 정신의 현시 가운데 드러나는 절대자처럼 기껏 체계를 정당화해주는 하나의 계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신은 성서나 꾸란, 토라에 등장하는 인간의 기도를 듣고, 인간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그런 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좀 역설이긴 합니다만,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신-담론, 곧 아우슈비츠 이후 다시 신을 말하기 위한 사유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제가 역설이라고 한 이유는 어떤 식으로건 나치에 연루된 하이데거의 사유가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사유하는 신-담론과 공명했기 때문입니다. 고통 받는 인간이 남겨진 세상, 대참사 이후 다시 희망을 말해야 하는 세상, 진보가 아닌 종말론을 말해야 하는 세상에서 다시 신을 말해야 한다면, 우리는 근대인들처럼 개념으로 사유되는 신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런 개념의 신 앞에서는 기도도, 예배도 할 수 없고, 춤도 출 수 없다고 한 하이데거의 이야기가 새로운 신-담론의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Q.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자 웨스트폴이 범신론과 유신론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도달한 곳은 어디입니까? 저자는 초월의 의미를 갱신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저자가 말하는 초월은 이중적입니다. 한편으로 그것은 신의 초월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신의 초월은 절대적 존재의 초월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초월을 목도하는 인간의 자기-초월을 소환한다는 게 제목의 의미입니다. 특히 저자가 다시금 이런 초월의 의미를 소환하는 데는 웨스트폴 자신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이해 − 바꿔 말하면 포스트모던 문제의식 − 가 주요 동기로 작동합니다. 말하자면, 근대적 사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한 몇몇 사유, 특히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스피노자와 헤겔의 범신론이 신의 초월을 제거하고 덩달아 이 초월과 연동된 인간의 자기-초월의 가능성도 제거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초월에 대한 복원은 그 자체로 근대성 비판이라는 함의를 가집니다. 그럼, 유신론 전통은 어떨까요? 웨스트폴은 유신론 전통에서도 신을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팽배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전통을 재해석합니다. 우선 그는 부정신학을 매개로 삼아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의 초월의 의미를 파헤치면서 우리가 신을 존재론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말할 수 있는 법을 제안합니다. 그런 다음, 칼 바르트, 레비나스, 키에르케고어로 논의를 옮겨가지요. 저자가 이해하는 방식대로 하자면, 19~20세기로 넘어가는 이들의 사유는 포스트모던의 통찰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 직접적으로 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 레비나스가 사유의 동력을 제공합니다. 타인인 무한의 절대적 타자성이 어떻게 우리 인식의 지향성을 파훼하고, 전도시키는지를 보여주지요. 이를 통해 저자는 키에르케고어의 그리스도교 유신론이 레비나스적 의미의 윤리적 초월과 그리스도교 전통의 종교적 초월을 함께 성취한다고 봅니다. 즉, 한편으로 우리가 기도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신의 초월의 의미를 갱신함과 동시에 이것이 비단 종교적 영성의 차원에 국한되는 게 아닌, 주체의 윤리적 각성을 일으키게 한다는 점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즉, 신의 초월은 자기-초월을 일으킴과 동시에 타자성을 향한 개방도 함께 일으킨다는 점이 독특한 지점입니다.
Q. 저자가 특별히 하이데거, 스피노자, 헤겔, 아우구스티누스, 위-디오니시오스, 아퀴나스, 바르트, 레비나스, 키에르케고어에 특히 주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위-디오니시오스라는 인물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레비나스는 키에르케고어보다 후세대 인물임에도 저자가 키에르케고어를 마지막 장에서 살펴본 이유는 무엇입니까?
위-디오니시오스는 6세기 초 인물로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신학자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신을 긍정적으로 정립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파악 작용에서 미끄러지는 신에 대한 부정적 방식의 접근을 고안한 인물입니다. 그의 신비신학은 이후 신학에서만이 아니라 부정의 사유나 존재론적 개념의 해체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장-뤽 마리옹의 경우에는 형이상학 해체 또는 탈형이상학적 사유의 선구자로 위-디오니시오스를 꼽기도 합니다.
저자 웨스트폴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키에르케고어에게서 일종의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유신론적 전통에서 키에르케고어야말로 거대담론의 위력에 빠지지 않은 채로 신과 신앙을 사유한 탁월한 인물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웨스트폴은 키에르케고어를 단지 신을 공경한 사상가로만 보지 않고, 니체나 마르크스와 같은 급진적 사상가로 이해합니다. 이는 실제 키에르케고어의 삶에서 주된 행적을 돌아보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코펜하겐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덴마크의 현자는 덴마크 국가 교회를 자신의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습니다. 당시 덴마크 사회에서 사람들은 국교회 소속이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됩니다. 여기에 주체성의 결단 같은 것은 없지요. 또한 교회는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가에 저항하지도 않고, 사람들의 일상적 생사화복에 체계적으로 관여할 뿐입니다. 키에르케고어가 보기에는 이 모든 것이 중산층 그리스도교의 안온함을 보여주는 사태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면을 평생에 걸쳐 끈질기게 비판한 것이 바로 키에르케고어의 비판 정신입니다. 웨스트폴은 이런 점에서 키에르케고어에게는 신에 대한 공경 이전에, 레비나스처럼 체계와 전체성에 대한 도전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체성에 대한 도전을 부각하고자 레비나스를 경유하고요. 그가 레비나스를 존중하면서도 이 유대교 사상가에게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명시적인 형태의 신-담론이 없기 때문입니다. 웨스트폴이 보기에는 레비나스의 문제의식을 선취하면서도, 그의 윤리적 초월을 윤리적-종교적 초월로 확장할 가능성이 키에르케고어에게 충만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그를 레비나스를 거쳐 키에르케고어로 이끈 이유입니다.
Q. 이 책이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일단 유신론적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이 적절한 신인지, 혹시 개념화된 우상을 내가 신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이나 신 이해를 점검할 수 있겠지요. 아울러 종교적 초월의 이유는 결국 이웃 사랑, 타자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점을 이해함으로써 종교의 의미를 갱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철학에서 말하는 초월과 신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 웨스트폴이 철학자들을 풀어내는 솜씨는 가히 최고라고 평할 만합니다. 적당하게 텍스트를 버무리는 게 아니라 일차 텍스트들을 본인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에 독자들은 초월, 신, 주체성, 타자성 등에 대한 엄밀하고 상세한 이해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종교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신자들은 지나치게 교회의 소위 정통 교리에 무비판적으로 빠져 있고, 비신자들은 종교와 종교철학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칫 상대방에 대한 무지나 혐오를 생산하는 데 일조할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신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면서 종교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까지도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체계나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 주체의 탈중심화, 타자성의 고양 등을 쟁점으로 삼는다면, 이것이 종교와는 어떻게 접속될 수 있을지를 본서가 아주 잘 가르쳐줍니다.
상세한 소개
초월과 인간
『초월과 자기-초월』은 서양 철학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진 초월 개념을 다룬다. 흔히 초월이라고 하면, 무엇인가를 넘어선다는 말, 존재하는 우리 세계 저편의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책은 바로 그런 초월 개념을 다루며, 저자는 이를 우주론적 초월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특히 이런 초월을 신과 더불어 사유했다. 인간과 세계 저편에 있는 것, 다름 아닌 모든 것 너머에 있는 절대적으로 초월적인 것은 바로 신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단지 신의 초월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인간의 자기-초월을 다룬다. 신의 초월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목도하거나 경험하는 인간과 관련해서다. 그리고 인간이 신의 초월을 단지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할 때 인간 안에서는 일종의 자기-초월, 주체의 탈중심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이 책이 해명하려는 주제의 기본 골자이다.
저자 웨스트폴은 이런 기본적인 주제 의식 아래 서양 철학에서 초월이 은폐 혹은 탈은폐되는 철학의 사건을 다룬다. 특히 이 작업을 감행할 때 저자는 탈근대 철학과 전근대 철학의 공명을 꾀하는 독특한 사유를 보여준다. 이는 근대철학에서 신을 개념화하는 사건을 문제시한다. 이 책에 따르면 그러한 개념화는 신 자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 주체의 주체성을 강고한 자아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즉, 저자는 근대철학, 특히 스피노자와 헤겔의 범신론에서 신의 초월이 제거되었는데, 그리하여 인간 자아를 더 겸허하고 신과 타자에게 개방된 주체로 만들 수 없게 되었다고 본다. 이에 초월적 신과 그 신의 부름을 듣는 인간의 자기-초월을 탁월하게 사유한 철학의 거장들을 저자는 세심하게 분석한다. 그들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 위-디오니시오스, 아퀴나스, 칼 바르트, 레비나스, 키에르케고어다.
이 전근대 및 탈근대철학자들의 텍스트를 꼼꼼하게 독해하면서, 저자 웨스트폴은 이들이 어떻게 개념적으로 사유되는 신을 넘어 인간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무한과 초월의 신을 드러냈는지 해명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러한 초월적 신과 관계 맺는 인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함께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레비나스의 초월에 대한 사유에 의존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시작한 초월 개념에 대한 검토를 키에르케고어로 마무리 짓는다.
왜 키에르케고어인가?
서구 전통, 특히 그리스도교가 지배적인 서구 전통에서 신의 초월은 단지 사변철학의 체계를 넘어서는 신을 칭송하고 찬미하기 위해 고안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서의 최고 계명, 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함께 성취하는 탁월한 계기의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저자는 결국 초월의 재발견에서 우리가 복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타자성과 이 타자성에 개방된 주체성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때 타자성은 이중적인 것으로써, 신의 타자성과 이웃의 타자성을 함께 지시한다. 즉, 신의 초월과 맞물려 자기-초월을 경험한 주체는 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개방된 주체성을 함양하며, 이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 바로 키에르케고어다.
키에르케고어로 가는 길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 위-디오니시오스, 아퀴나스를 거친다. 이때 저자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부정신학의 전통을 환기해낸다. 고중세 철학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주의자 중 한 사람으로 칭송되는 위-디오니시오스는 그 누구보다도 신에 대한 부정적 진술의 의미를 잘 해명한 이로 통한다. 그리고 이 위-디오니시오스를 매개로 삼아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가 한 편에 설 수 있게 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명령하는 초월
아우구스티누스는 위-디오니시오스의 사상을 선취하여 신을 파악할 수 없는 자로, 개념화할 수 없는 자로 이해하고, 아퀴나스 역시 신을 우리의 사유로 충분히 이해될 수 없는 자로 이해한다. 이때 활용되는 신에 대한 부정적 접근은 ‘신은 ~이 아니다’라고 진술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을 부르기 위해 개념이 아닌 새로운 말을 고안해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말을 찬양과 기도로, 아퀴나스는 유비로 이해한다. 즉, 부정신학에서 초월적 신을 말하는 방식은 단지 신에 대한 부정적 진술을 하는 게 아니라 신을 찬양, 기도, 유비 등을 통해 새로이 신을 말하는 것이다.
웨스트폴에 의하면, 초월에 관한 이러한 전근대적 사유 방식은 근대에 이르러 스피노자와 헤겔의 범신론에서 단절된다. 양자 모두 신을 자연이나 정신의 체계 속에 욱여넣음으로써 신을 초월이 아닌 내재성 안에서의 계기나 일종의 전체성으로 파악한다. 이때 신은 철저히 인간 정신이나 지성, 또는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자연의 실체로만 파악되며, 이 경우 인간은 자신의 지성에 입각해 철저히 이성적인 방식으로 신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그친다. 이때 인간은 자연의 원리에 입각하건 정신의 체계에 입각하건 이성과 정념을 따라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구성하는 자가 되고, 이때 인간에게 인간 바깥의 타자는 절대적 계기로 떠오르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이 웨스트폴이 레비나스와 키에르케고어를 소환하는 이유다. 타자성과의 단절은 단지 초월적 신과의 단절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 곧 이웃으로서의 타자에 대한 접근도 가로막는다. 물론 범신론에도 이웃의 존재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레비나스처럼 절대적인 성격을 가진, 유한한 나에게 무한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타자로 나타나지 않는다. 고립된 자아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알을 깨고, 상식이나 실정법, 규범을 넘어서까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현실화하는 것은 나의 유한한 본성이 아닌 이웃의 명령에서 비롯한다. 즉, 우주론적 초월은 단지 신의 초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명령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종교적 초월의 성격을 가진다. 이 가운데 윤리적 초월의 성격을 새롭게 각인시킨 것이 다름 아닌 레비나스이고, 여기에 종교적 초월의 의미를 부과한 것이 키에르케고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교와 신학
이런 기나긴 초월의 이야기를 웨스트폴은 특유의 날카로운 독해력과 재기 넘치는 언어를 동반하며 서술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접하면서 서양철학에서 논의되는 신과 초월, 주체성, 타자성에 대한 참신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자기만의 초월의 이야기를 전개할 때, 저자는 소위 포스트모던적 시각에 입각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흔히 통념상 포스트모더니즘은 탈종교적 사유나 무신론과 어울린다고 이해되는 것과는 달리 저자는 그리스도교 전통이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정한 계기를 잘 성취한다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다.
여기서 포스트모던의 계기란 다름 아닌 주체의 탈중심화, 절대적 타자성, 차이에 대한 사유다. 신은 절대자이지만, 인간은 유한하다. 유한한 인간이 신의 어깨에 올라설 수 없으므로, 인간은 신을 개념화하기보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의미를 겸손하게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안에는 언제나 또 다른 초월적인 타자로서의 이웃에 대한 책임과 존중의 요구가 담겨 있다는 것이 웨스트폴의 시각이다. 이러한 웨스트폴의 시각을 통해 우리는 종교에 대한 고루한 인식을 넘어 포스트모던 및 탈형이상학의 시대에 종교와 신학이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는지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와 유관한 이들은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반성할 수 있을 것이고, 종교와 무관한 이들은 서양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초월과 신의 개념에 대한 탁월한 이해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저자 웨스트폴은 다방면의 철학에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이는 재기 넘치는 철학자다.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다루었지만, 그는 미국헤겔학회 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헤겔 연구에 정통한 학자이며, 키에르케고어 연구에서는 연구사적으로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레비나스에 대해서도 꽤 탁월하고 중요한 해석을 제공했다. 이런 탁월한 철학자의 논증 구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훌륭한 철학 교사를 곁에 두는 셈이다.
지은이
메롤드 웨스트폴 Merold Westphal, 1940~
1940년 미국 출생. 일리노이주 휘튼칼리지 역사학과 졸업 후 그의 첫 번째 멘토인 아더 홈즈를 만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철학적 사유를 배웠다. 1966년 예일대학교에서 헤겔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철학과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호프 칼리지 철학과 교수로 일했다. 1987년부터 뉴욕 포덤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재직, 은퇴후 명예석좌교수로 있다. 중국 우한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중국 학생들은 잠시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헤겔 연구에 정통하여 미국헤겔학회 회장을 지냈고 그의 책 History & Truth in Hegel’s Phenomenology는 잡지 『초이스』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또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키에르케고어, 레비나스, 리오타르 등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철학자들을 탈근대적 관점에서 탁월하게 해석해내며 해석학, 종교철학, 정치철학,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존 카푸토, 리처드 카니와 더불어 영어권 학계에서 현대 유럽대륙철학을 종교적 맥락에서 가장 탁월하게 전유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히며, 종교철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던 종교철학의 가능성을 정통주의 그리스도교와 연계하여 발전시킨 대표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그의 사유의 폭과 독창성에 주목하여 그를 주제로 삼은 박사학위논문이 출간되고 있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언급한 책 이외에도 Suspicion and Faith, Overcoming Onto-Theology, Levinas and Kierkegaard in Dialogue 등이 있다. 우리말로 번역된 저서로 『키르케고르』, 『기독교와 포스트모던 전환』, 『교회를 위한 철학적 해석학』, 『초월과 자기-초월』이 있다.
옮긴이
김동규 Kim Dongkyu, 1980~
총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폴 리쾨르 연구로 석사학위를, 마리옹과 리쾨르의 주체 물음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벨기에 루븐[루뱅] 대학교 신학&종교학과에서 마리옹의 계시 현상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선물과 신비』, 공저로 『프랑스 현상학의 위대한 시절』, 『포스트모던 시대의 철학과 신학』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탈출에 관해서』,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해석에 대하여』,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 『예술로서의 삶』(공역), 『교회를 위한 철학적 해석학』, 『윤리와 무한』, 『과잉에 관하여』, 『재신론』 등이 있다. 현재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한국현상학회 대회협력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종교&신학과 박사과정에서 현대 유럽 대륙철학과 종교철학, 종교 간 대화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책 속에서
신의 초월이 암시하는 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인간의 자기-초월의 명령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8쪽
탈근대적 사상은 타자성에 진정으로 열려 있는 자기(self)는 더는 근대성이 그토록 열광했던 진리와 선의 자율적 조정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세운다. ― 들어가는 말, 33쪽
철학은 신이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든다. 고대의 욥처럼, 철학은 인간의 설명에 대한 욕망/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모습으로 철학 속으로 들어올 것을 신에게 요구한다. 이에 존재-신학은 계산적-표상적 사유로서의 성격 때문에 나쁜 신학이 된다. ― 1장 하이데거, 87~88쪽
우리는 두 가지 경쟁적인 묘사 또는 우주론을 가지고 있다. 내재성 이론은 무한하고 궁극적인 것이 비인격적이라고 주장한다. 초월의 이론은 무한하고 궁극적인 것이 인격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물음이 존재-신학적 형식을 취할 수 있다. 최고 존재에 대한 이론 중 어떤 것이 존재 전반에 대해 가장 좋은 설명을 제공하는가? 누구의 신이 충분 근거율의 요구를 가장 잘 충족시키는가? ― 2장 스피노자, 125쪽
스피노자처럼 헤겔은 범신론자지만 아주 다른 부류의 범신론자다. 그는 우주론적 초월에 대한 논쟁을 탐구할 수 있는 또 다른 자리를 제공한다. 헤겔에게 세계는 준궁극적으로 자연의 세계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인간 정신과 이 정신의 역사의 세계라는 점에서 ‘우주론적’이라는 용어는 더는 적절치 않다. ― 3장 헤겔, 154쪽
우리는 존재-신학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신학을 하는 길을 찾고 있다. 그런데 신학을 한다는 것은 신 담론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와 데리다의 의미에서의 신학이라는 말과 관련해서, 신학의 주제인 신담론을 탈형이상학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신학을 찾는 일은, 우리가 말을 할 것이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물을 것을 전제한다. ― 4장 아우구스티누스와 위-디오니시오스, 252쪽
존재 전체는 우리의 지성으로 충만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존재 전체의 의미에서 핵심인 최고 존재가 우리 지성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온전히 신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신학은 경배의 삶과의 접촉을 잃지 않으며, 다만 기도와 찬양과 (하이데거가 무관심했던 이웃 사랑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 5장 위-디오니시오스와 아퀴나스, 287쪽
철학이 인간의 가장 높은 가능성이라고 생각한 헤겔과 달리 바르트는 종교가 그 영광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6장 바르트, 323쪽
레비나스는 얼굴을 가진 타자가 이웃일 뿐만 아니라 고아, 과부,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식별해낸다. ― 7장 레비나스, 427쪽
키에르케고어에게 이웃 사랑 명령은 그 안에 다음과 같은 다른 명령을 포함한다. “너는 올바른 방식으로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또 그는 이렇게 평한다. “너 자신을 올바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완벽하게 일치한다.” ― 8장 키에르케고어, 486쪽
그 어떤 인간적 발화자를 넘어서는, 제일의 발화자는 듣는 자에게는 절대 전적으로 투명하게 드러날 수가 없는 내면성과 자유다. 형이상학적 파악 불가능성은 이 더 깊은 진리, 진리의 텔로스, 고유한 본향의 한 측면이자 기대에 불과하다. ― 결론, 495쪽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6
약어표 12
들어가는 말 : 방향을 설정하기 18
1부 존재-신학과 우주론적 초월을 넘어서려는 욕구
1장 하이데거 : 신에 관해 말하지 않는 법 44
2장 스피노자 : 자연의 존재-신학적 범신론 100
3장 헤겔 : 정신의 존재-신학적 범신론 154
2부 인식론적 초월 : 신의 신비
4장 아우구스티누스와 위-디오니시오스 : 존재-신학적 기획과의 단절로서의 부정신학 208
5장 위-디오니시오스와 아퀴나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말하는 법 ― 존재의 유비 254
6장 바르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을 말하는 법 ― 신앙의 유비 312
3부 윤리적 초월과 종교적 초월 : 신의 명령
7장 레비나스 : 존재-신학을 넘어 이웃 사랑으로 382
8장 키에르케고어 : 존재-신학을 넘어 신에 대한 사랑으로 432
결론 488
감사의 말 498
옮긴이의 말 499
참고문헌 508
인명 찾아보기 520
용어 찾아보기 524
책 정보
2023.12.29 출간 l 130×188mm, 무선제본 l 카이로스총서99, Mens
정가 30,000원 | 쪽수 528쪽 | ISBN 9788961953368 93100
도서분류 1. 종교철학 2. 서양철학 3. 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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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기사
[한겨레신문] ‘신의 초월성’은 ‘주체의 탈중심화’와 어떻게 만나는가
[새전북신문] 초월의 물음이 또한 자기-초월의 물음이기도 하다
[대자보] 인간에게 유효한 ‘신(神)-사용법은 있는가?
[복음과상황] 동일성의 시대, ‘바깥’에 있는 신의 음성을 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