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노동

지구적 생명경제 속의 조직 기증자와 피실험대상
Clinical Labor :
Tissue Donors and Research Subjects in the Global Bioeconomy

멜린다 쿠퍼·캐서린 월드비 지음
한광희·박진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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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의 불안정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고위험 1상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생명과학 산업은 대규모의 아직 공인되지 않은 이 노동력에 의존한다. 이는 신체 내로 실험적 약물를 투입하는 경험, 호르몬 변형, 침습적인 생의학 과정, 사정, 조직 추출, 임신 등을 수반한다. 

이 시장은 계급과 인종에 따라 고도로 층화되어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모든 노동 형식을 임상노동(clinical labor)이라 부른다.

 

마침내 '생명노동' 이론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대개 가시화되어 있지 않고 저임금이거나 무급인 이 노동은 고수익을 올리고 있는 제약 산업과 보조생식기술 산업을 위해 대체 불가능한 신체 물질들을 생산한다. 멜린다 쿠퍼와 캐서린 월드비는 이러한 노동이 21세기 포스트포드주의 생명경제를 특징 짓는 분산된 저임금 하청노동(여기에는 고위험/무임금의 벤처노동이 포함된다)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라는 놀라운 통찰을 해낸다. ― 아델 E. 클라크 『생의료화 : 미국에서의 과학기술, 건강 그리고 질환』의 공동 엮은이

 

 

간략한 소개

 

미국 국립보건원의 전 지구적인 임상시험 정보 데이터베이스인 ClinicalTrials.gov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서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도시다. 이와 같은 임상시험 관련 지표들은 주로 개발 중인 약물과 해당 약물 시험의 의뢰자를 조명한다. 하지만 성공적인 시험은 참여자 없이 불가능하며, 임상시험의 성공은 생의학적 혁신을 보장한다. 시험 참여자는 단계에 따라 보수를 지급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업을 노동으로 간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불확실한 약물의 위험성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그들의 작업을 노동이라 부를 수 있을까? 

멜린다 쿠퍼와 캐서린 월드비는 이러한 활동을 “임상노동”으로 명명하고 분석한다. 그들은 임상노동 개념을 통해 현재의 생명경제 속에서 형성된 조직과 노동 그리고 다양한 가치 생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또한 그들은 노동가치론에 근거한 고전적, 맑스주의적, 포스트포드주의적 노동 이론의 맹점을 지적하며 임상노동이라는 개념의 노동 이론적 가능성을 숙고한다. 쿠퍼와 월드비는 몸과 신체 조직이라는 물질적 존재와 사회계약의 산물이 뒤엉킨 생물학적인 노동의 계보를 재구성한다.

 

 

상세한 소개

 

우리 곁의 임상노동, 우리 곁의 임상시험

대도시 시민들이 매일 출퇴근을 위해 몸을 싣고 있는 지하철 광고판에서 임상시험 대상자를 찾는 광고를 발견하는 일이 잦아졌다. 광고를 통해 모집하고 있는 임상시험 종류도 우리에게 익숙한 고혈압, 기능성 소화불량증에서 병명도 어려운 다낭성난소증후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광고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임상시험 참가자들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 참여가 이른바 ‘꿀알바’로 알려지면서 대학생, 취준생들이 시험 대상자로 대거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2021년도 신문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생계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진 실직자, 노인 등 취약계층들이 임상시험 장소로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3개월로 제한된 임상과 생동성 시험 참가 규제를 어기고 1년간 수차례 시험에 참여한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정부의 실효성 있는 규제 재정비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한국 임상시험 시장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4%로 8위에 등극했는데 2004년 승인된 임상시험계획이 136건에 머물렀지만, 이 숫자는 2020년 628건으로 급증하였다. 국내 임상시험 성장에는 2004년부터 의료산업화를 근거로 이루어진 정부의 임상시험 업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정부 지원을 받은 임상시험 업계에서는 시장 확대를 위해 단기간에 많은 시험대상자들을 모집할 수 있도록 경제적 보상을 제도화하는 데만 치중했을 뿐 시험 대상자들에 대한 안전 관리 제도 구축은 소홀해 왔던 것이다. 2021년에야 ‘임상시험 안전관리시스템’이 구축되어 3개월 이내 임상 1상과 생동성 시험에 중복 참여하려는 일반인을 임상기관이 실시간으로 확인해 걸러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임상시험에 준하는 동의, 설명절차, 윤리규정 기준 강화도 예고되기는 하였으나 성장한 시장에 비하면 뒷북 행정이 아닐 수가 없다. 

 

자기 신체를 실험 도구로 처분하는 사람, 임상노동자

이런 한국의 임상시험 시장 상황은 소위 사회 취약계층들이 생계를 위해 자신의 신체마저 실험 도구로 처분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멜린다 쿠퍼와 캐서린 월드비의 『임상노동 : 지구적 생명경제 속의 조직 기증자와 피실험 대상』은 바로 이들 임상시험 대상자들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현재의 지위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전 지구적 임상시험 시장의 출현이 생명공학 기술, 생의학적 기술 발전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현재 이 시장이 사용자생성혁신 모델이라는 새로운 분산형 임상실험 모델을 채택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난자 추출, 대리모 수태 과정, 배아 줄기세포 생성, 약물 시험 등과 관련하여 실험 참가자들이 겪게 되는 호르몬 변화, 약물 소비 과정 전반을 ‘임상노동’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노동과 가치에 대한 고전적인 이론, 맑스의 이론을 갱신하여 임상 노동시장 역사와 출현 과정, 그리고 이들 노동이 다른 노동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임상노동 시장의 발전을 가져온 사회경제적 요인들은 무엇인가?

저자들에 따르면 임상노동 시장 형성의 배경에는 포스트포드주의 경제의 출현이 있다. 포스트포드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수직적 해체가 이루어지고 정규 노동시장이 축소되면서 피고용자 개인들은 제도적인 노동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상노동에 의지하게 되었다.

또 보조생식기술 개발 등의 생식의학과 줄기세포 기술 발전과 같은 생명공학 기술 혁신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생의학 혁신으로 배아와 난자가 여성 신체로부터 분리 가능하게 되면서 유럽 난모세포 시장, 인도 수태 대리모 시장 같은 전 지구적 거래 시장이 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거래는 ‘백인성’을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동유럽인 여성 난모세포에 대한 수요 증가로 나타난다. 또 대리모의 유전적 조성과 무관한 인종의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기술 혁신으로 가능해짐에 따라 수태대리모 시장이 인도에서 확산하게 되었다.

한편, 줄기세포 기술 혁신은 난모세포나 대리모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참여 노동을 변화시킨다고 분석한다. 배아줄기세포 생성은 난자 혹은 잉여배아 기증 여성에게 과배란 노동 참여, 약물투여 위험 감내, 배아에 대한 모성적 감정으로 인한 스트레스 인내 등을 요구한다. 이런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줄기세포 연구란 가능하지 않은 것인데 이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을 이 책은 비판한다. 저자들은 기존 페미니즘적 설명에서도 이에 대한 분석이 적합하게 수행되지 못했다고 본다. 

 

고지된 동의와 특정이행의 문제점 

‘동의’는 오늘날 많은 기업의 책임 회피, 위험 회피 전략으로 사용된다. 대리모 계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임상산업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고지된 동의’는 역사적으로 ‘동의 후 책임 없음’ 원칙에 근거하는 노동 관련법인 불법행위법에서 유래한다. 자본이 미리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는 것은 과거 ‘직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위험 부담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수단이었다. 지금은 ‘고지된 동의’ 양식이 국제 생명윤리협정에 의해 ‘인권’의 지위로 격상되었지만, 그 역사를 살펴보면 이것이 자본과 전문가 집단의 위험 관리 전략으로 출발했음이 분명하다고 저자들은 밝힌다. 따라서 현재 임상노동에 적용되고 있는 ‘고지된 동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 책은 암시한다.

아울러 저자들은 수태대리모 관련 법에 적용되고 있는 노동계약과 관련된 ‘특정이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계약에서라면 금전적 손해배상으로 충분할 사항에 관해서 특정이행이 강제된다는 것은 법원이 계약 내용의 완수를 명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리모 계약에 특정이행이 적용된다는 것은 법원이 대리모에게 아이의 양도를 명령해 계약을 완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법률이 2010년 인도의회에 상정되어 있었고, 이런 예외적인 법 적용이 가능한 것은 법원이 대리모의 어떤 권리보다도 ‘의뢰 부모’의 계약적 권리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대리모는 출산 시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 임상노동을 검토한 저자들의 분석은 생명윤리 원칙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가능케 한다.

 

신약 시험 현장의 변화 ― 감옥과 병원에서 민간 영역으로, 그리고 약물 소비자들에 의한 혁신으로

이 책에 따르면, 신약 효능을 실험하는 임상시험 시장은 역사적으로 감옥과 병원에서의 폐쇄된 임상실험 형태로 출발했다. 그러다 점차 민간 클리닉과 임상수탁시험기관에서 개인 용역계약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개방형 임상실험으로 변해왔다. 이 책은 이를 포스트포드주의 경제, 신자유주의 경제의 도래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또한, 저자들에 따르면 제약 산업은 오늘날 혁신 속도의 감소와 특허 만료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서 기업들은 ‘사용자생성혁신 모델’이라는 새로운 임상시험모델을 채택하는데, 이는 사실상 다중을 무급 임상노동에 동원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사용자생성혁신 모델’이 에이즈치료 운동의 대두, 과학의 민주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출현하게 되었다고 보는데, 이 모델에서는 약품 소비자들이 인터넷 플랫폼을 매개로 시판 후 능동 감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스스로 실험을 관리하고 모니터링하는 전문가 역할도 수행한다. 일부 임상노동 참여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고도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저자들은 이처럼 대중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제약기업이 임상실험이 가져다주는 지적재산에 대한 독점적 특권을 보유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를 묻는다. 불공정한 교환을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제기될 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각 장의 내용 소개

 

1부 ‘임상노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20세기 생식 및 실험 임상노동의 출현 조건을 형성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본다.

1장 ‘임상노동가치론’은 이 책의 논의 틀을 개괄하면서 각 장의 내용을 소개한다. 그리고 임상노동 시대에 걸맞은 임상노동가치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2장 ‘임상노동의 역사적 계보’는 포스트포드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수직적 해체가 이루어지고 정규 노동시장이 붕괴하면서 피고용자 개인이 노동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 계약자로 전환하는 과정을 그린다. 일하는 사람이 맺는 계약의 종류도 근로계약 대신에 용역계약, 개인의 사적 계약으로 변경된다. 이 과정에서 생식력 공급과 임상시험 참여 같은 임상노동이 용역계약으로 편성된다. 동시에 각종 노동보호기제들로부터 이들 용역계약 노동자들이 배제된다. 탈복지적 경쟁국가가 되면서 국가 전체에서 경제적 위험 및 건강 위험을 사회화하도록 설계된 제도를 부분적으로 해체했고 위험관리는 개인의 책임이 된 것이다. 

독립 계약자들은 생산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투입되는데, 노동 수요 변동으로 인한 경제적 위험, 생산성 상실 위험 등을 오롯이 개인이 책임지게 된 상황이다. 임상노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생물학적 자본을 소유한 독립 계약자로 행동하면서 어떠한 노동보호도 없이 노동한다. 이 장에서는 시카고학파 법경제학자들을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이 어떻게 이론적으로 이런 보호 기제의 축소를 정당화했는지를 분석한다. 시카고학파가 지지한 원칙인 ‘특정이행’이 대리모법에 적용되면서 금전적 보상 가능성을 무효로 만들고 법원이 계약 내용의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이행을 강제할 권리를 발동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대리모의 아이 인도 거부를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는 대리모 시장의 정착에 기여하였다. 또 ‘동의 후 책임없음’의 원칙은 ‘고지된 동의’의 윤리적 구조를 뒷받침하는데 이에 따라 실험대상은 논쟁의 여지없이 위험을 감내하는 자로 정의된다. 생의학적 혁신 경제는 보험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체화된 위험을 임상노동자에게 이양하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2부 ‘생식 작업에서 재생노동으로’는 보조생식기술에 기반을 둔 임상 산업의 왕성한 발전을 살펴본다. 보조생식기술은 20세기 축산 관리를 위해 개발된 생식기술을 인간 불임 치료에 응용하면서 도입되었다. 이후 보조생식기술은 생식 생물학을 규정하고 표준화하였으며 생식 생물학을 생체 밖의 것으로 만들었다. 수정이 체외 시험관에서 이루어지고 배아와 난자가 여성 몸과 분리되면서 전 지구적 공간에서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생식이 탈국가화되었다. 

3장 ‘불임 외주화’와 4장 ‘생식적 차익거래’은 불임의 외주화와 관련된 노동의 현황을 정리하였다. 오늘날 불임 브로커들은 생식세포의 생산, 임신, 출산을 계약을 통해 제3의 공급자에게 위탁한다. 불임의 외주화가 생식 생물학을 각 구성과정으로 분해하는 보조생식기술의 산업적 논리에 따라 활성화되고 국가 정책과 입법 환경을 통해 캘리포니아주와 유럽연합에서 난모세포 시장이 성장했다. 또 여기에서 저자들은 인도의 수태 대리모 시장이 출현하게 된 과정을 분석한다. 캘리포니아 생식 비즈니스와 생식 관광객의 출현도 자세히 고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장 수익성 있는 생식 시장이 백인성을 재생산하는 시장이고 이에 따라 수태 대리모와 난자 유통의 지도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정자은행과 난모세포 중개업의 출현, 대리모 대행 기관의 모델에서 기원한 난모세포 시장의 현황을 살펴본다. 난모세포 대행업체와 정자은행은 인구 전체에 분산된 잠재적인 유전적 특성을 유전자본으로 즉 생식세포 시장에서 가격에 따라 주문하고 판매할 수 있는 생식 자원으로 변환시킨다. 수태대리모와 난모세포 공급자의 기여는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처럼 증여, 선물의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그 효과는 이들을 가격 협상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4장 ‘생식적 차익거래’는 생식력 관광으로 나타나는, 국경을 넘나드는 난모세포와 대리모 시장 현황을 서술한다. 유럽의 난모세포 시장과 인도의 수태 대리모 시장이 4장의 주 무대이다. 초국적 대리모는 토착 생식 생명과정을 해외 고객이 사용할 수 있는 임대 가능한 자산으로 변형시키는 활동으로 묘사된다. 생명과학 사업이 대부분 체외 생명과정과 관련되며 이를 기반으로 지적재산권 수익을 창출하는 반면 대리모는 자기 자신의 살아있는 생명과정을 임대하여 지대를 받는 것과 같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GATS>로 저비용 체내 서비스에 대한 초국가적 접근이 가능해졌고 개발도상국의 저학력 인구를 위한 고용 수단으로서 임상노동 형태들이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생식력 거래가 백인성을 재생산하는 데 이용되면서 동유럽 여성이 유럽 난모세포 시장의 주 계약 대상자가 되었다. 

5장 ‘재생노동’에서는 생식적 생의학의 진전에 따라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또 다른 형식의 노동으로서 줄기세포 산업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생산 활동을 살펴본다. 줄기세포 연구는 생식 생명과정이 지닌 역량이 단순한 유기체 생산을 넘어 재생조직 생산, 장기부전 치료와 퇴행성 치료에의 임상 적용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한다. 여성은 대량의 인간 배아, 난자, 태아 조직, 그리고 제대혈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줄기세포 산업에서 주요한 조직 공급자가 된다. 방대한 모집 메커니즘은 서로 다른 여성 인구들을 이 생산 활동에 편입시킨다. 저자들은 한편, 줄기세포 연구에 난자를 기증하는 여성들의 참여를 협력으로 재정의할 것을 주장한다. 줄기세포 생성에는 난자에 깃든 여성 생명과정의 궤적, 생식력, 과배란 노동 참여, 약물투여 위험 감내 등의 노력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 기증자의 협력 없이는 줄기세포 연구가 가능하지 않음에도 이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저자들은 기존의 생의학적 생식노동에 대한 페미니즘적 설명, 소외의 역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분석의 한계를 지적한다. 줄기세포 산업에서 생식노동을 적절하게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소외와 상품 생산의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 개념 목록이 필요하다고 본다. 줄기세포 과학에서 보이는 가치 창출의 특수한 형태로 인해 여기서의 재생노동은 기존 생식노동과 구분된다. 미래 잠재력과 연관되어 가치가 결정되는 줄기세포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3부 ‘실험 작업’ 첫 번째 장인 6장 ‘미국식 실험’에서는 미국과 그 밖의 국가에서 임상 시험작업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살펴본다. 과거에 임상노동은 교도소 수감자, 공립병원 환자, 고아 등이 수행하는 부자유 노동으로 진행되었다. 이 장은 임상시험의 역사를 장기지속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임상연구에 관한 생명윤리적 협약을 위험 규제와 불법행위법의 발전 과정과 더불어 분석한다. 

불법행위법과 관련하여 ‘고지된 동의’ 형식이 위험관리 형태로 출현하였는데, 저자들은 고지된 동의 양식이 생체해부 반대 운동에 대항하고자 하는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역사적 근원을 상기한다. 즉, 환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의학 전문가들의 위험관리 전략으로 고안된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동의했으면 피해 없음”의 원칙이 생명윤리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정리해보면 임상시험은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까지 감옥 혹은 대학 연구병원이라는 제도적 맥락에서 이루어졌고 점차 대학 바깥의 민간 의료 영역으로 이동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개인 전문병원, 클리닉으로 이전해갔다. 이때 인간 연구 대상들은 독립적인 계약자로 신분 변화를 겪는다. 또 임상시험수탁기관들의 활동도 늘어났는데, 이들은 대학병원에서 시행되던 임상시험을 저렴한 비용으로 수행하였다. 

7장 ‘투기적 경제, 우연적 신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성장 중인 임상시험 시장으로서 중국과 인도의 임상시험 부문에 주목한다. 이들 국가에서 임상시험 부문이 부상하게 된 것은 단순히 식민지기 실험의학이 연장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인도와 중국 정부의 임상서비스 무역 장려 정책, 공립병원 개혁 등 구체적인 정책 노력의 산물이라고 저자들은 본다. 저자들에 따르면 “임상연구의 초국가적 조직은 임상단계와 치료 표적에 따라 고도로 계층화되어 있으며 이런 계층화가 국경을 가로질러 일어난다. 사회주의 발전 국가의 잔존물은 특수한 제도적 인프라 즉, 중국의 대형도시 병원, 인도의 상표 등록 없는 약품 생산 영역의 생성을 가능하게 했다.”

8장 ‘분산된 실험 노동’은 제약 산업이 중국, 인도, 구소련 국가 등 저렴한 목적지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증거기반 의학은 전례 없이 세계화되고 규모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임상시험의 인식론적 전제도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형태의 임상연구와 임상노동이 출현하고 있다. 제약 산업의 혁신 속도가 감소하고 기업들이 특허가 빠르게 만료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자본은 임상시험의 새로운 형식 도입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사용자생성혁신 모델이 출현하면서 실험적 약물 소비 관행을 일반 대중에게로 외주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분산실험 모델은 약물 시험의 소비자 보호 모델을 비판한 AIDS 치료 활동가들의 운동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환자들이 약학적 가치의 공동생산에 스스로 참여하는 방식을 탐구함으로써 사용자-생성 약물 혁신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출현”하였다. 

이런 사용자생성혁신 모델에서는 과거의 ‘동의 후 책임없음’의 원칙이 재출현한다. 즉 여기에서는 실험이 자유의지로 선택되었으므로 국가 보호를 받을 가치가 없어졌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저자들은 자기 실험을 할 수 있는 권리가 환자 운동의 뒷받침으로 출현하게 된 상황과 시판 후 능동 감시 프로그램의 등장을 서술한다. 이렇게 과학의 민주화라고 불릴 수 있는 일련의 변화 속에서 자본은 대중 집단을 무급 임상노동에 동원했다. 이는 연구 대상이 그들의 조건 속에서 실험을 관리하고 모니터링하는 전문가가 되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아이러니는 이런 상황에서도 제약기업은 실험에 대한 지적재산의 독점적 특권을 보유한다는 것, 그리고 높은 약물 가격으로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과연 이것이 공정한가를 묻는다. 

 

이 책의 결론에서 저자들은 강조한다. 임상노동자는 비대칭적 계약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임상노동 수행자들은 자기의 신체적 자본을 청산하여 가치를 실현시키거나 보다 더 바람직한 자산으로 교환할 수 없다. 계약자들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려 생명 연장을 모색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다. 이 불공정한 교환의 수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들을 말한다.

 

 

지은이

 

멜린다 쿠퍼 Melinda Cooper, 1971~

 

파리 8대학에서 들뢰즈와 과타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호주국립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쿠퍼의 연구는 신자유주의와 새로운 보수적 통치관행의 상호작용에 중점을 둔다. 저서로 미국 생명공학의 발전과 신자유주의의 발흥을 연결한 『잉여로서의 생명』(2008; 2016), 가족 책임의 원칙을 중심으로 부활한 극우 정치이론과 금융위기의 관계를 규명한 Family Values (2017), 공저로는 『임상노동』(2014; 2022), 신자유주의와 자산의 관계를 논의한 『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2020; 2021) 등이 있다. 최근에는 공공선택이론으로 유명한 버지니아학파가 미국과 호주의 공공재정정책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캐서린 월드비 Catherine Waldby, 1957~

호주 머독대학교에서 사회과학 박사학위 취득. 호주국립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의 ‘사회과학과 의학’부 방문교수. 주요 연구주제는 생의학과 생명과학의 사회학이다. 저서로 HIV와 그것의 역학이 성적 차이에 대한 보수적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한 AIDS and the Body Politic (1996), 여성들이 활용하는 생식의학적 서비스들에 주목한 The Oocyte Economy (2019), 공저로는 『임상노동』(2014; 2022), Tissue Economies (2006) 등이 있다. 저널 BioSocieties의 공동 편집자, 호주 사회과학연구원 회원, 과학연구원의 ‘역사와 철학 위원회’ 위원이다.

 

 

옮긴이

 

한광희

 

국민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회학을 전공, 논문 「비만의 생의료화」로 석사학위 취득. 국민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 출강 중이다. 주요 관심사는 신약 및 신의료기술과 몸의 상호작용이며 공저로 『생명정치의 사회과학』이 있다.

 

 

박진희

 

베를린공과대학 과학기술사학과에서 「베를린 가정폐기물 처리의 역사」로 박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교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장 및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이다. 주요 연구 주제는 기술의 사회적 형성, 과학기술과 페미니즘, 과학기술의 민주화, 에너지 전환 정책과 기술 정책 등이다. 공저로 『불확실한 시대의 과학읽기』, 『과학기술학의 세계』, 『탈핵』, 역서로는 『역사학, 사회과학을 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재생가능에너지』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보조생식기술의 확장과 함께, 난자와 정자 같은 조직 판매, 혹은 수태 대리모 같은 생식 서비스의 판매가 번창하는 노동 시장의 사례로 등장했다. 이 시장은 계급과 인종에 따라 고도로 계층화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노동 형식을 임상노동이라 부를 것이다. ― 1장 임상노동가치론, 20쪽

 

임상노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생물학적 자본”을 소유한 독립 계약자로서 행동하지만 어떠한 노동 보호도 없이 노동한다. 그들은 생의학적 혁신 경제의 경제적 위험과 신체적 위험을 모두 감수해야만 한다. ― 2장 임상노동의 역사적 계보, 51쪽

 

불임 외주화는 생식세포(난자와 정자)의 공급, 또는 대리 임신 및 출산과 같은 생식적 생명과정의 구성요소를 제3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위탁하는 상업적 계약화를 말한다. 정자은행, 불임 클리닉, 난자와 대리모 브로커를 포함하는 고도로 수익성 있는 이 생명경제 부문은 부모 희망자와 같은 고객을 대신해 이들 계약들을 확보한다. ― 3장 불임 외주화, 64쪽

 

스페인의 클리닉은 기증자의 신분과 보상금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상당수의 난모세포 공급자를 모집할 수 있다. 스페인에서는 생식세포 기증을 익명으로 처리해야 한다. 심지어 환자가 자신의 난모세포 공급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시술 과정에서의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대신 제2의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난모세포를 받게 된다. ― 4장 생식적 차익거래, 114쪽

 

생명과학 분야 지적재산 조직은 임상의와 과학자의 노동을 인정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물질의 구성적 본질이나 기증자의 협력은 인정하지 않는다. ― 5장 재생노동, 162쪽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한 조합과 수량으로 약물을 섭취하는 소비자로서, 우리는 이러한 일상적 제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결정하기 위해 무작위 대조군 연구에 참여해온 수백, 수천 명의 연구 대상에 관해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 3부 실험 작업, 187쪽

 

임상시험 참가자들의 인구 구성은 지속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산업의 역사에 따라 계속 변화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참가하고 있는 인구의 속성들이 미국 노동력의 하위 계층과 수렴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 6장 미국식 실험, 244쪽

 

산업계 어법으로 하면 인도와 중국의 환자들은 “고분고분(실험계획과 연구 시간표를 잘 지키는 태도)”하고, 치료적으로 천진난만(약물 노출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시험 데이터가 “더 깨끗하고” 읽기도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하기 때문에 칭찬을 받는다. ― 7장 투기적 경제, 우연적 신체들, 257쪽

 

약물 개발의 위험이 점차적으로 소비 대중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을 때 어떻게 미국 제약 시장에서의 규제되지 않은 약물 가격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임상시험을 약물 소비 대중으로 외주화한 것은 전통적인 인간 대상 실험 모델과 관련된 위험 분산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고 다만 그것을 일반화시켰을 뿐이다. ― 8장 분산된 실험 노동, 346쪽

 

종적 존재의 생명현상은 임상노동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이며, 그것의 현재 형태로 계약자는 이 생명현상을 위험에 맡겨야 하고 그 결과를 떠맡아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과정의 가소적 잠재성, 즉 그것의 변성과 트라우마에 대한 개방성은 임상노동의 생산성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 결론, 358쪽

 

 

목차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5

감사의 글 9

 

1부 임상노동이란 무엇인가?  13

 

1장 임상노동가치론  14

2장 임상노동의 역사적 계보 : 산업적 질서, 인적자본,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  37

 

2부 생식 작업에서 재생노동으로  59

 

3장 불임 외주화 : 계약, 위험 그리고 보조 생식 기술  64

4장 생식적 차익거래 : 국경을 넘은 생식력 거래  101

5장 재생노동 : 여성과 줄기세포 기업들  145

 

3부 실험 작업 : 임상시험과 위험 생산  186

 

6장 미국식 실험 : 감옥-학계-산업 복합체에서 임상 외주화까지  194

7장 투기적 경제, 우연적 신체들 : 중국과 인도에서의 초국적 시험  253

8장 분산된 실험 노동 : 사용자 생성 약물 혁신  309

 

결론  348

 

옮긴이 후기  359

참고문헌  368

인명 찾아보기  401

용어 찾아보기  404

 

 

책 정보

 

2022.7.25 출간 l 145×210mm, 무선제본 l 카이로스총서85, Mens

정가 23,000원 | 쪽수 416쪽 | ISBN 9788961952866 93300

도서분류  1. 사회과학 2. 생명과학 3. 정치경제학 4. 페미니즘 5. 사회학 6. 과학사회학 7. 의료사회학 8. 기술사회학 9. 생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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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기사

 

[전남매일] 새 책 나왔어요 / 임상노동

[한겨레] 사회를 철회시킨 시장의 야만, ‘생명경제’에 있다

[연합뉴스] 신간 / 임상노동

[경향신문] 대리임신·정자 판매···‘보상받는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임금을 받는 노동’이다

[한라일보] 책세상 / 임상노동 外

[새전북신문] 임상노동자, 자기 신체를 실험 도구로 처분하는 사람

[세계일보] 새로 나온 책 / 임상노동

[교수신문] 새로나온 책 / 임상노동

[프레시안] 임상노동자와 '임금 없는 삶'의 거리

[뉴스프리존] 코로나19 백신개발에 참여한 임상노동자들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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