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장

이한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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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그 때 나는 이한주 시인과 같은 대학 출신들이 노동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볼 때 솔직히 '젊은 시절 한때 거쳐가는 것이겠지' '관념적인 이론에 사로잡혀 한바탕 휘젓고 지나가는 그 동안 많이 보아온 학출들 중 하나겠지' 하고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거창하게 운동을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철로변/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모두들 떠나간 그 자리에/노오란 민들레를 피워냅니다'(자갈밭). 

이처럼 '모두들 손 털고 떠난 자리에' 진득하니 남아서 역사발전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이 시대를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그 자리를 지키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인의 이웃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한주 시인은 '울렁이는 시대의 노래가 되지 못'할지라도 '누군가 손이라도 내밀면/순대 떡볶이 불평 불만 /그 무엇이라도/그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지금 나의 시가 ― 평화시장 18)고 했습니다. 정말 나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시, 그 시는 나의 것이 되었습니다. ― 민종덕

 

 

발문 : 나를 부끄럽게 하는 아름다운 시

 

민종덕(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시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자신의 시집이 발간되니 발문을 써 달라는 이한주 시인의 부탁을 듣고 몇 날 며칠 간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평론가도 아니고 문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명인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나는 평소 글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글은 시라고 생각하며, 이 어려운 글을 쓰는 시인이야말로 성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시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재주가 많다 해도 좋은 시를 쓸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내 생각은 내가 온갖 세상사의 더러운 것들에 찌들어 갈 때마다 더해집니다. 그래서 더러워진 내 영혼의 때를 조금이나마 털어 내고자 할 때는 좋은 시를 읽곤 합니다. 이처럼 시와 시인은 나에게 있어서 외경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한주 시인이 나에게 발문을 써 달라고 하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글이 자칫 시인의 그 순수하고 맑은 영혼에 흠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서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볼 때 하필 나 같은 사람한테 발문을 요청할 때는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낯 뜨거움을 무릅쓰고서 응하기로 했습니다. 

 

이한주 시인과 내가 알게 된 인연은 청계 피복 노동조합을 통해서입니다. 85년부터 87년 6월까지 내가 청계 피복 노조 합법성 쟁취 투쟁 관계로 구속되어 있는 동안 청계 노조 조합원들은 청계 노조를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조합활동 가운데 하나가 청계 문화학교였는데 이한주 시인은 이 문화학교 강사로 진작부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화학교 강사로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청계 피복 노조 간부인 이경현과 결혼도 하고 나중에 청계천 공장에 취업도 하여 명실상부한 청계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 전에 취직을 했는데, 맨 처음 취직한 곳이 대기업 홍보실에서 사보를 편집하는 일이라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취직한 지 몇 달 안 되어서 직장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기업에서 사보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자본가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것이라서 이한주 시인의 품성으로서는 도저히 안주 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안정된 그 직장을 때려치우고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실업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청계 문화학교 일을 열심히 하는 한편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전태일문학상 실무 일과 운영위원 일을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해서 나는 지금까지 이한주 시인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한주 시인의 시를 통해서 몇 가지 부끄러운 나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지난 시절 노동운동을 한다고 설쳐 대고 그걸로 해서 어려움도 당했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유명(?)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을 금방 뒤집어 버릴 것 같은 만용을 부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 나는 이한주 시인과 같은 대학 출신들이 노동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볼 때 솔직히 '젊은 시절 한때 거쳐가는 것이겠지' '관념적인 이론에 사로잡혀 한바탕 휘젓고 지나가는 그 동안 많이 보아온 학출들 중 하나겠지' 하고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운동 상층부들이 갖기 쉬운 오만이 깔려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식권 내기 장기를 두다 보면 안다 

   쌩쌩 독불장군 車가 달리고 

   요리저리 馬가 설치고 다닐 때면 

   당장 판이 끝날 것 같다가도 

   잘난 저희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가 

   나 몰라라 떠나는 것쯤은 

   식권을 몇 장 잃다 보면 안다 

   판세가 바뀌었다며 

   일확천금 외통수를 꿈꾸던 象이 손들자 하고 

   믿었던 包도 이제는 자신 없어 하는데 

   뒤로 한 발 물러설 곳 없는 卒들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깨동무 모여들고 

 

   눈길 한 번 받아 보지 못한 못난 놈들만 

   모두들 손 털고 떠난 자리에 

   깃발로 펄럭이는 것이 

   어디 

   1200원짜리 장기판뿐일까 

 

   -[장기] 전문- 

 

나는 한때 모든 것을 노동운동에 다 바칠 것같이 설쳐대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 노동현장을 떠나 한낱 소시민적 안일에 머물러 살아가는 결국 그저 그렇고 그런 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거창하게 운동을 한다면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철로변/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모두들 떠나간 그 자리에/노오란 민들레를 피워냅니다'(자갈밭)

 

성급하게 덤비고 성급하게 식어버리는 그 경박함을 준엄하게 질타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요즘 이른바 386세대가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이렇게 동시대를 함께 했던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합니다. 역사발전의 진정한 토양은 약삭빠른 영웅들의 구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 ······ /보이는 것만 믿는 우리에게/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 /소리 나는 곳으로만 눈길을 돌리는 우리에게/한 발짝 비켜 서서/저녁밥으로 끊고 있는 그가 있다/ ······ /사진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던 그가/어느새 서울특별시 우리집 안방에 있다/ ······ '(하계수련회) 

 

나는 지금 시인의 그 해맑고 착하디착한 눈빛과, 매사에 헌신적인 그의 아내 이경현을 떠올리며 진정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언제나 평화로운 그 가정을 볼 때 너무도 예쁘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모두들 손 털고 떠난 자리에' 진득하니 남아서 역사발전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이 시대를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그 자리를 지키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인의 이웃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보다 먼저 익힌 가난에 

   학교 담장을 훌쩍 뛰어넘은 

   열세 살 

   알면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저 엄마 치마폭에 묻혀 

   혓바닥이나 히쭉삐쭉 내 보일 

   그 어린 것이 

 

   노동을 알겠습니까 

   착취를 알겠습니까 

 

   흙이라도 파먹고 뒤돌아서면 

   금방 배고플 나이 

   단내 나는 엄마 젖가슴이 

   손에서 떠나지 않을 

   그 어린 것이 

 

   눈깔사탕 같은 사장 말에 

   제 키보다 큰 원단과 씨름하다 

   쓰러져, 

   잠이 들 때면 

   그저 노는 것에나 정신 팔릴 

   그 어린 것의 꿈 속은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어깨동무 웃음꽃이 아니겠습니까 

 

   미싱을 멈추고 

   한줌 햇살에 휘청거리는 

   다락방의 점심시간 

   달랑 머리부터 빠져 나와 

   두 칸짜리 공동변소에 줄을 서다 

   초경도 이른 나이에 

   찔끔 찔끔 속옷을 적시는 

   열세 살의 눈물 

 

   -[열세 살 청계천 ―평화시장 1] 전문- 

 

이 시는 나의 콧등을 시큰하게 하고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시입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내가 청계천에서 일할 때 나의 동료에 대해 이렇듯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운동을 했던가, 한때 그러한 마음이 있었다 해도 언제나 그러한 마음을 잃지 않고 지금도 간직하며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눈시울이 적셔지는지 아니면 자꾸 옛 생각이 나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요즘도 가끔씩 그 '열세 살의 눈물'의 주인공, 이제는 40대가 되어 버린 아주머니들을 만납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고단한 지난 세월 다락방 먼지 속의 힘겨운 노동으로 빼앗긴 젊음의 상흔이 역력한 채 일찌감치 늙어가는 모습을 볼라치면 가슴이 저며 옵니다. 

 

청계천의 어린 동심을 한없이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전태일의 마음입니다. 전태일은 어린 동심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마침내는 자신을 죽이기 위한 결단을 앞두고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60년대, 70년대 초에 있던 어린 동심이 80년대, 90년대에도 그대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이한주 시인이 '전태일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나는 늘 확인했습니다. 

 

   오늘따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시다판에 

   송이송이 땀방울이 맺힐 때면 

   이젠 노란 봄인가 싶다가도 

   문화학교 가는 길 

   공장보다 한 철 더디게 오는 

   청계의 밤 하늘은 얼어 있었다. 

   천원에 열 개 귤을 담아 들고 

   덤 하나 별 하나 호호 담아 들고 

   쿵 쾅 쿵 쾅 

   계단을 오른다 

   딱 한 잔이면 사람 죽이게 웃어 보이는 신학이 

   자주 잊어버리던 안경을 오늘 숙희는 제대로 쓰고 왔을까 

   목이 긴 영애 신발이 보이고 

   아무렇게나 벗어 논 춘단이 하얀 운동화 

   토닥토닥 정숙이 그 옆에 

   새로 굽 갈은 현아꺼 

   휴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문을 열면 

   순대 떡볶이 반 가른 붕어빵 인자의 보조개 

   거기 저만치 

   봄이 와 있다 

 

   -[문화학교 가는 길 ―평화시장 15] 전문- 

 

시인이 문화학교에 사 들고 간 붕어빵이며, 순대며, 귤 한 봉지는 어쩌면 그 옛날 전태일이 점심을 굶는 어린 시다들한테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서 사 주었던 그 풀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속물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허망하게 바쁜 나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얼어 붙은 청계의 밤하늘에 화사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헐레벌떡 바쁘게 뛰는 그는 '애시당초 강철같이 단단한 데라곤 없었다/주위를 살피고 말소리를 낮추며/전략전술을 되뇌이지도 않았다/너는 다만/잠들어 있을 동료들을 위해/내일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는/작은 바스락거림이었다'(애시당초 너는 ―평화시장 9) 

 

지난날 운동을 한답시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노선이 어떻고, 전략전술이 어떻고 하면서 서로 편을 가르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들이 아프게 기억됩니다. 노동해방, 인간해방이라는 것이 당위성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목청만 올린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님은 세월이 지나 약간 철이 들고 나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한주 시인의 시는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렇지만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창신동'을 바라보듯이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싫지 않고 정감이 갑니다. 

 

사람이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런 저런 만남을 갖게 되고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나는 나의 많은 관계 속에서도 이한주 시인, 김명환 시인, 이인휘 작가를 비롯 노동문학을 하는 몇몇의 문인을 알고 지내는 것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그들을 만나면 그냥 편안하고 친근감이 갑니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문학 얘기를 할 때 나는 뒷전에서 듣고 있기만 해도 그 자체로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들과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고,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나서 헤어진 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면 그들의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한없이 흐뭇해집니다. 이들 중에서도 이한주 시인은 나와 함께 청계 노조와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의 시가 나에게 더 감동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한주 시인은 '울렁이는 시대의 노래가 되지 못'할지라도 '누군가 손이라도 내밀면/순대 떡볶이 불평 불만 ······ /그 무엇이라도/그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지금 나의 시가 ―평화시장 18)고 했습니다. 정말 나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시, 그 시는 나의 것이 되었습니다.

 

 

목차

 

제1부 

 

프로는 아름답다 

기능직 10등급 

스물네 시간 맞교대 나는 

프로는 아름답다 

오늘도 무사히 

목욕탕 

살기 위하여 

자갈밭 

천둥 번개 호루라기 

장기 

서부역 집회 

발바닥 

민주대의원 

파업일지 

유실물 

나는 왕이다 그들은 행복하다 

일공휴무 

나의 경쟁 상대는? 

하계수련회 

체험 삶의 현장 

철도 노동자로 산다는 건 

잠실야구장 

빽 

고백 

 

제2부 

 

살다 보면 본전 생각이 난다 

어머니 

사랑법 1 

사랑법 2 

사랑법 3 

상계동 순이 

형아 

구례 박철구 

사랑법 5 

사랑법 6 

사랑법 7 

사랑법 8 

창신동 

열세 살 청계천 

죽기 아니면 살기 

서울 

한가족 

애시당초 너는 

종합검진 

출근길 

컴퓨터 

첫가투 

문화학교 가는 길 

살다 보면 본전 생각이 난다 

신도림역 십자가 아주머니 

지금 나의 시가 

푼수끼 그대로 

 

제3부 

 

잘 가라 빌어먹을 나의 20대여 

우리 할머니 

겨울나기 

초동리 노래자랑 

할머니 제삿날 

첫월급 

신혼일기 1 

신혼일기 3 

잘 가라 빌어먹을 나의 20대여 

겨울 

부끄러움 

여유 

증명사진 

내 나이 서른 

퇴근길 

할머니집 가는 길 

20년 후 

 

 

책 정보

 

2003.3.10 출간 l 128x210mm, 무선제본 l 마이노리티시선5

정가 5,000원 | 쪽수 144쪽 | ISBN 89-8611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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