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문영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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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소개

 

전체 5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에는 모두 80여편의 시가 실려 있다. 2부까지는 고향에 대한 애환과 그리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5부는 노동자 생활의 단면과 질곡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문영규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 마냥 외롭다.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이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데 있을 것이다. 밥줄을 떠돌아다닌 세월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한 외로움으로 괴로와했다. 하지만 문영규 시인은 그 외로움을 승화시켜 이웃과 일터의 동료들에게 다가감으로써 시인의 몸에 배었을 외로움의 늪에 빠지지 않았다.. 오늘도 외로움을 툭툭 털고 시대의 아픔 앞에 터벅터벅 길을 걷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표성배(시인)

 

 

발문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겨울나기

정규화

 

고향은 문학의 보고라고들 한다, 문인에게 있어서 고향이란 늘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곳이며 삶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일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신석정시인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그의 고향이다. 삶의 모순과 괴리를 신석정시인은 어머니가 상징하는 고향의 품에서 바로 세우거나 다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문영규의 경우도 매 한가지다. 고향은 있어도 고향이 없는 사람, 얼핏 북에 고향을 둔 사람이 아닌가 하겠지만 그의 고향은 경남 합천군 대병면 상천리다. 상천리를 비롯한 대병면 일대가 합천댐 공사로 수몰되었기 때문이다. 합천댐이 들어서자 가족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이산의 아픔을 맛봐야 했는데 홀로계시는 모친과 처는 가까운 거창에 옮겨두고 자신은 공단이 있어 일자리가 많다는 마산과 창원을 전전하게 되었다. 

‘농민의 아들’은 ‘노동자’라는 등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맡겨지는 노동의 질과 양을 자신의 힘으로 ‘감사하는 노동’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에 시달리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절규 앞에서 그냥 모른척 할 수는 없었다. 

결혼 전 까지는 노동운동도 했고, 하얗게 밤을 지새면서 70년대 한창 노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난쏘공』을 읽으며 토론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의 문학은 이렇게 자라기 시작했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 다시 말해 떨쳐버릴 수 없는 밑바닥 생활의 도피처(?)는 시에 있었다. 자연히 이 일터 저 일터를 떠돌게 되었고 문학청년은 질병을 앓으며 살아야 했다. 문학이란 질병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앓아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이네는 조개가 질병으로 제 속에 진주를 키우는 것과 같은 것이 문학의 질병이라 했다. 

그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밤들을 공부하는 데 쏟은 그는 우리 주변에 격랑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80년대에 통신고등학교와 통신대학(국어국문학과)를 마쳤다. 참으로 장한 일이다. 그는 올해 46세의 중년이다. 그의 첫 시집에 발문을 쓰면서 그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뿐이다. 시의 성공여부는 추고에 있다는 것이다. 어쨌던 한편의 시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적어도 일백 번 이상의 손질을 해야 한다. 그의 근면함과 성실함을 볼 때 누구보다 좋은 시를 쓸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전체 5부로 나뉘어진 이 시집에는 모두 80여편의 시가 실려 있다. 2부까지는 고향에 대한 애환과 그리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5부는 노동자 생활의 단면과 질곡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대충 그의 개인사를 훑어보았는데 이는 그의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함이었다.

 

   눈이 내린다 

   눈은 내리면서 추운 듯 

   가로등 쪽으로 

   다투어 몰려가 손 비비는구나 

   -「눈 내리는 저녁」에서

 

   노란 아이들이 삑삑 

   선생님을 따라 길을 건너고 

   다음날 

   길가의 은행잎은 노랗게 

   철없이 물들었지요 

   -「은행잎은 철모름」에서

 

   지난 겨울 얼어서 터진 

   마당가의 수도꼭지를 

   이제야 고쳤다 

   망치로 시멘트를 깨면서 

   손등을 몇 번이나 쳤는지 

   장갑을 벗어보니 

   벌겋게 부어 올랐다 

   -「뼈에도 그리움이」에서

 

시의 어느 곳을 보아도 꾸민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다 위의 예문은 1부에서 무작위로 뽑아 봤는데 구석구석에 착하고도 진솔한 그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눈은 내리면서 추운 듯/ 가로등 쪽으로/ 다투어 몰려가” 손을 비비는 겨울밤이 그립다. 분위기를 봐서 아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일 것 같다. ‘눈이 춥겠다’는 감성의 발로는 그가 얼마나 순박한 사람인가를 나타내고 있다. 

‘노란 아이들’이란 유치원생들을 말하고 있는 듯 한데 그 노란 아이들이 지나가고 나서(순진성) 오염됐던 도시의 거리(은행잎)가 그 순진성을 닮아 ‘노랗게’ 물드는 것도 신선한데 마치 은행나무도 아이들처럼 삑삑거리는 것 같은 조금 과장된 상상력은 그가 한없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시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뼈에도 그리움이」라는 시에서는 그가 얼마나 가정적인 사람인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집에서 아예 수도꼭지를 고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의 자상함은 「회양나무 화단」에서 나타나 있듯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계획을 말하고 있다. 

 

   당신과 나는 

   저렇게 삽시다 

   날마다 서로에게 

   살깍살깍 

   눈길로 마음으로 

   가위질 해주어 

   언제나 

   나지막이 가지런히 삽시다

   키큰 홍단풍나무 

   바람에 흥근히 나부낄 때에도 

   우리 언제나 

   나지막이 가지란히 

   흔들리지 말고 

   마침내 

   한 그루인지 두 그루인지 

   모르도록 

   -「회양나무 화단」전문

 

처음은 늘 서투르고 아쉬운 것이다. 첫 시집을 대표 시집으로 가지고 있는 시인이라면 그만큼 불행할 것이다. 시란 살아가면서 쓰는 것이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 첫 숟갈에 배부를리 없다. 그렇다. 우리네 살림도 처음부터 좋은 집과 살림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보면 살림이 불어나는 재미가 없어서 그걸 다 날리는 경우가 있다. 

문영규의 경우 군데군데 서툰 흔적을 추억처럼 남겨두고 있다. 이것은 그의 순진무구한 심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더 나아가면서 더러는 아파하고 넘어져 보면 제 스스로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서툴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서툴면서도 서툰 줄 모르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류의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시인이란 밭을 일구는 사람과 같다. 겉으로 봐서는 그냥 땅이지만 풀을 뽑고 돌을 골라보면 그 곳에 보리를 심을 것인지, 깨나 콩을 심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땅은 많이 가꿀수록 좋아진다. 그리고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미 퇴색해버린 말처럼 여겨지는 “믿음, 예의, 신념”같은 것을 땅에게도 주었을 때 그대로 주인에게 되돌아오는 것 아닌가? 곡식과 짐승도 주인이 정성 쏟은 것만큼 보답하는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다면 좋은 시인이라는 칭호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바르게 살고 싶지만 주위에는 항상 유혹이 도사리고 있듯이 어느 목표점에 도달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질곡이 가로막고 있으며 그것을 통과하는데는 인내와 지혜가 필요하다. 늘 “찬바람 부는 저녁”에도 냉방에 몸을 눕히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뿐이랴. “바람이 사나울수록/ 별은 더욱 빛나” 듯이 아플수록 더욱 단련시켜 세상의 “빛”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찬바람 부는 저녁 

   지그시 입술 깨물어 보는 것은 

   작은 별 하나 

   그 자리에 늘 

   빛나는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하늘에는 

   쉼 없이 바람불어 

   별은 빛나는구나

   바람에 흩날리는 

   때묻은 구름에 

   별은 

   오히려 제 몸을 씻는다 

   바람이 사나울수록 

   더욱 별은 빛나서 

   우리는 토막난 꿈이나마 꾼다 

   -「찬바람 부는 저녁」 전문

 

‘별’, ‘누님’, ‘겨울’, ‘눈’, ‘봄’, ‘개나리’, ‘가을’, ‘거미’, ‘은행잎’, ‘밤꽃’, ‘저녁’, ‘둥지’, ‘아내’, ‘찬바람’, ‘구름’, ‘하늘’, ‘민들레’, ‘고향’, ‘사촌들’, 등의 단어가 주로 많이 등장하는 1부와 2부에서는 그가 아직 떨쳐 낼래야 낼 수 없는 그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단어들이다. 비록 고향은 수몰되었으나 고향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은 남다를 리 없다. 그의 처와 모친이 이주해 간 거창군 남하면 살목리를 5편의 연작시로 묘사하고 있다. 

윤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이 마을은 주민의 대다수가 노인들뿐이다. 생기를 잃어가는 농촌 정서와 고향의 이미지가 돋보이고 있다. 그는 이곳 살목리에서 자신의 고향마을을 연상하고 있지만 살목리의 겨울은 눈만 내리고 노인들만 가끔 도랑 출입을 할 뿐이다. 다음은 「살목리 2」인데 “눈 온 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눈이 와도 

   오랜만에 참 많이도 와서 

   밤사이 대나무는 

   무거운 눈 뒤집어 쓰고 

   아예 누워버렸고 

   뒷산 큰 소나무 한 그루 

   팽팽히 견디다 못해 

   쩌억하며 꺾이고

   마을길 눈 치우자는 확성기 소리에 

   삽이며 가래를 들고 나온 사람들이란 

   육칠십 넘은 노인들뿐

   허연 머리에 

   허연 입김을 뿜어며 

   허연 눈을 치울 때 

   허연 눈은 자꾸자꾸 내리고

   마을 어귀 

   솔가지에 쌓인 눈이 와르르 쏟아질 때 

   쿨럭쿨럭 기침도 허옇게 날리고 

   -「살목리 2」 전문

 

역시 같은 연작시 3번을 보자. “발자국”이라는 부제가 있는데 작품성을 봐서는 위의 것보다는 훨씬 더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이 시집에서 대표작 중의 하나일 것 같은 「살목리 3」은 우리네 농촌의 일상적인 모습을 꾸밈없이 그리고 있다. 조합빚 걱정, 아들 등록금 걱정, 사료 값 걱정, 부랑아로 떠도는 집안 동생 걱정 등이 전형적인 우리 동시대인의 삶의 모습이다.

다만 시인은 여기서도 눈을 뿌리고 있다. “싸락눈이 오는 아침”의 이미지가 작품의 긴장감을 더 주고 있다. 마치 윤동주의 어느 싯귀가 떠오르게 하는 고무신을 신은 어른의 발자국은 윤동주가 바라봤던 용정땅의 「순이」의 발자국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싸락눈 내린다 

   싸락눈이 

   흡사 요소 비료를 뿌리듯 

   싸락싸락 내리는 아침 

   당산나무 밑 공터에 난 발자국 

   고무신, 어른 발자국이다

   발자국 속에는 

   희뿌연 담배연기와 

   땅이 꺼질 듯한 

   한숨 소리 배어있다

   대학생 아들놈 새학기 등록금 걱정 

   비싼 사료값에 헐값인 소 걱정 

   늘어만가는 조합빚 이자 걱정 

   대처에서 직장 잃고 

   수면제 먹은 동생 걱정 

   이 걱정 저 걱정 밤새 잠못이루다 

   갑갑해서 찬바람 쐰 모양이다 

   발자국은 

   서성서성 걷다가 

   줄담배 태우다가 

   주춤주춤 공터 한 바퀴 돌아서 

   다시 마을로 갔다 

   -「살목리 3」 전문

 

노동자로서의 그의 삶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삶은 마치 정성들여 옮겨다 심었으나 끝내 활착하지 못하고 뿌리부터 말라가는 “소나무” 같다. 몇 군데 업체를 전전하다 아마 날품팔이로 전락했던가. 그의 노동에는 “장마”가 왔다. “바위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모든 무게를 땅으로 집중”시키는데 반대로 “갈대는 유혹에 적응하기 위해” 부드러워 져야 하는 아이러니에 봉착하게 된다. 소위 ‘배신의 계절’은 그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에겐 봄이 와도 “바람이 훈훈해지고”, “민들레 새싹”이 나와도 봄을 느낄 수 없었다. 좌절의 밑바닥에서의 인생을 되씹어야 했던 고뇌 속에 갇히게 된다.

 

   중고 문집 앞에 

   문들이 기대어 섰다 

   고물 문들이다

   이곳 저곳에서 

   사람을 현혹 시키기도 하고 

   돌아서 고개를 떨구게도 하던, 

   그러나 이제는 

   노숙자처럼 쓸쓸하다

   -중략-

   지금은 

   문들도 좌절하는 시대 

   머지 않아 시대마저도 

   좌절할지 모르므로 

   -「문들도 좌절하는구나」에서

 

그렇다면 시인은 그렇게 좌절하게 만드는 창원공단은 도대체 어떤 곳이던가 박정희가 세운 기계공단이다. 여기서 미사일을 날리고 싶었던 박정희의 꿈을 담아 봉암다리 쪽에서 오는 입구에는 미사일이 날아오르는 형상의 기계공단 탑이 서 있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곳이다. 

그가 체험한 창원공단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있을까.

 

   우리 나라 중공업의 요람 

   창원공단은 

   피라밋처럼 무겁다

   팔차선 산업 대로에 내달리는 

   트레일러, 덤프, 레미콘은 

   쥬라기의 공룡 같고 

   대동백화점 근처 

   이십층 아파트단지 

   콘크리트 숲에서, 작은 화단 

   연산홍에 떨어지는 햇살마저 무겁다 

   남천에는 중금속 섞인 물이 

   사철 앓는 소리를 내며 흐르고 

   그 속에 살던 붕어는 

   이미 화석처럼 무거울 것이다

   오나가나 높다랗게 달린 

   [안전제일] 은 

   떨어질 듯 불안해 보이고 

   노동자들의 안전화랑 안전모도 무거운데 

   그들의 어깨에 지워진 선진조국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이곳에서는 바람도 

   쇳먼지 일으키며 분다 

   -「창원공단」 전문

 

지역민의 불만은 계속되고 있다. 온갖 공해를 다 만들어내면서 지역사회에 생색을 내기 때문이다. 공장이 있는 곳에 당연히 본사가 있어야 그들의 표어대로 “종업원을 가족처럼” 사랑하게 될 것인데 주인은 서울에 있고 그 하수인인 공장장등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진정한 인간대접 받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틀린 말이다.

 

   잠시, 비 그쳤다 

   먹구름은 빠르게 흐르고 

   울타리 옆에 소나무 한 그루 

   습기찬 바람에 깃털을 말린다 

   꿩병아리처럼 

   으스스 추운 모양이다 

   -「장마」에서

 

   꽃들은 

   미워하고 증오하다가 

   때가 되면 주저 없이 

   불붙여 온몸을 던지는구나 

   -「꽃길」에서

 

   피곤한 나날에 

   위장약 먹으며 출근하고 

   퇴근하며 소주 마시지만 

   봄은 좋은 것이라 

   자연은 위대한 것이라 

   수선화는 피었다 

   수선화는 저 혼자 

   곱기만 하다 

   - 「수선화는 피었다」에서

 

비록 현실은 춥고 어둡더라도 혼자 피어도 아름다운 수선화처럼 노동자의 미래는 희망이 차있다. 그에게 있어서 미래는 이처럼 뚜렷이 다가오고 있다. 또한 그에게 있어 꽃이란 미워하고 증오하다가 때가되면 온몸을 던질 수 있는 신념의 결집체다. 그래서 그의 미래는 꽃길로 이어져 있다. 아직은 그때가 아니지만 그는 그야말로 “그 날이 오길”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기다리며 그의 노동일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의 시 여기저기 노동의 아픔이 배어나고 있다. 「면접 보러 가는 날」도 마찬가지다. 큰 공장에 가고 싶지만 노동운동 많이 한 공장의 경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력서를 내밀어야 하는 밑바닥 사람의 의식구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왕 벌어먹기는 

   그래도 큰 공장이 좋다는데 

   데모 많이 한 공장 경력으로는 

   아예 이력서도 못 낼 처지다 

   기계 서너 대 굴리는 곳이지만 

   그래도 이삼백푸로라도 뽀나스 나오고 

   토요일 오전근무 하는 곳을 찾아 

   또 일자리를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면접 보러 가는 날」에서

 

이력서를 들고 다녀 보지 않는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를 것이다. 다 같이 노동을 하더라도 먹고살기에는 걱정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훗날 더러는 국회의원도 되었지만 먹고살기조차 팍팍한 노동자들에게 직장이 없다는 것은 바로 밥을 굶어야 하는 딱함이 있을 뿐이다. 빵을 해결하고 노동운동을 할 수는 없는데 그 운동의 결과는 실로 하늘과 땅의 차이다. 절대노동자와 국회의원,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주전자에 

   막걸리 두 병, 사이다 한 병 섞어서 

   서너 잔 마시면 

   금세 얼큰해지던 세월이었다 

   -「지난 여름에도」에서

 

문영규의 시는 늘 땀이 배어 있다. 그가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는 무엇보다 진실할 것이다. 시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거짓말로 쓴 시는 바로 알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건강한 시란 어떤 것일까. 아는 사람만이 시를 읽는 슬픈 시대가 왔다. 하지만 문영규처럼 온 몸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 늘어 날 수록 시는 다시 우리 생활속에 파고 들것이다. 

시란 영혼의 양식이다 진실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문영규는 분명히 한 사람의 시인으로 그 책임과 사명을 다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단에 큰 별로 우뚝 빛날 것이다. 그래서 오늘 그는 남천가에 나와서 소주를 마시며 민족의 미래 노동자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그의 노래를 귀담아 들어보자. 

 

   해질녘 남천에서 

   신문지를 펴고 

   삼겹살을 구웠다

   경제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피랏밋 같은 공장들은 

   여전히 쿵쾅거리며 돌아가고

   노을이 남천에 내려와 

   제 몸을 풀어 

   검은 물빛을 한동안 

   어루만지고 가는 걸 보았다

   이윽고 

   별빛이 웅덩이에 내려와 

   죽은 붕어 곁에 맴도는 걸 보며 

   우리는 

   담배를 피워물고 

   아무 말이 없었다

   몸에 쌓인 쇳가루는 

   삼겹살이 그만이고 

   삼결살에는 소주가 그만이지만 

   -「남천에 나와 소주를 마시다」 전문 

 

한 사람의 위대한 시인의 마음속엔 한 사람의 평론가가 들어있어야 한다고 어느 평론가는 말했다. 그 만큼 자기 시를 자기가 알아야 된다는 말이 되겠다. 문영규의 시를 가장 사랑해 줄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는 이 시집에 실린 시에서 그의 욕심과 고뇌를 읽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의 시가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릴 날이 머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애정을 가지고 그날을 기다리며 그의 시를 읽기를 권하고 싶다.

 

2002년 11월 3일 천주산 아래서 정규화

 

 

문영규 시인

 

1957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남

<일과 시> 동인 4집으로 활동 시작

1995년 <마창노련 문학상> 받음

 

우리가 오르려 하는 곳이란 울타리를 오르는 나팔꽃보다 하찮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단 하루만이라도 가지런해야 겠다는 사람. 해진 살림 기우고 바닥난 쌀통 채우는 사이 우리의 사랑도, 정도 채워왔다는 사람, 스스로 다짐했떤 일을 뒤돌아보니 눈 녹듯 흔적밖에 없어 눈 밟기조차 미안하다느 사람. 황토로 벽돌 손수 찍어 집을 짓고 동무들 아무렇지도 않게 제집처럼 찾아주기를 바라는 사람. 찬바람 부는 오늘 저녁,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 메만른 세상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이더냐. 그 사람 착한 사람, 착애서 시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 시보다 삶이 더 아름다운 사람, 문영규 시인을 만나 소주 한자 나누고 싶다. 땀냄새 물씬 나는 이 첫 시집을 들고..... - 서정홍(시인) 

 

 

목차

 

제1부 하루만이라도

하루만이라도 외

 

제2부 겨울나기

겨울나기 외

 

제3부 장마

애조 외

 

제4부 바위는 저항하고 갈대는 적응한다

바위는 저항하고 갈대는 적응한다 외

 

제5부 문들도 좌절하는 구나

문들도 좌절하는 구나 외

 

발문 / 정규화

후기 / 문영규

 

 

책 정보

 

2002.12.12 출간 l 128x210mm, 무선제본 l 마이노리티시선17

정가 5,000원 | 쪽수 152쪽 | ISBN 978898611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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