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6.10.18 | 생명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

[교수신문 2026.10.18] 생명은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 / 김진아 제주대 강사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11326 하나. 완성된 개체에서 생성 중인 유기체로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흔히 일정한 형태와 경계를 갖춘 개체를 떠올리고, 그 개체가 외부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우드로네 주카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철학)의 『유기체지향 존재론』은 이러한 사유의 순서를 뒤집는다.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살펴야 하는 것은 완성된 개체일까, 아니면 그 개체가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일까? 저자는 서론에서 유기체를 생명의 한 영역으로만 다룰 것인지, 하나의 존재양식으로 사유할 것인지를 묻는다. 말하자면 유기체지향 존재론은 살아 있는 존재를 규정하는 특질을 통해 존재론을 다시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그 배경에는 생명을 통제하고 도구화하는 생명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놓여 있다. 저자는 푸코와 들뢰즈, 말라부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생명 자체에서 저항의 가능성을 찾는다. 특히 살아 있는 존재가 스스로 조직하고 산출하며 변화하는 역량에 주목하고, 이러한 특성이 생명권력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의 토대가 될 수 있는지 묻는다. 유기체지향 존재론은 과정성, 다수성, 잠재성이라는 세 가지 주요 관념에 기초하여 유기체들을 끊임없이 발달하고 변화하며 진화하는 것으로서 검토한다. 이러한 이해는 유기체의 범위를 고립된 생물학적 개체에 한정하지 않고, 다른 생명이나 기술적 요소들과의 결합까지 검토의 범위를 확장한다. 나아가 행성적 규모에서 생명체와 비생명 체계의 상호작용을 다시 살피도록 한다. 책의 전반부인 1~4장은 시몽동의 개체화, 뤼예의 형태발생과 의식, 들뢰즈·과타리의 차이생성, 말라부의 가소성을 가로지른다. 시몽동에게 개체는 개체화의 결과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뤼예는 생명체가 자신의 형성을 이끄는 활동에 주목한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유기체를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하는 회집체로 사유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준다. 말라부의 가소성은 이러한 변화가 창조뿐 아니라 파괴의 가능성도 포함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생명이 어떻게 함께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하나의 생명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유기체지향 존재론』의 전반부는 바로 이 질문을 시작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 둘. 자기생성과 공동생성 사이의 생명 생명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서 자신과 타자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카우스카이테는 자기생성 이론을 검토하면서 자율성과 환경에 대한 의존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생성이란 살아 있는 체계가 자신의 구성요소들을 생산하면서 조직을 유지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유지한다는 것이 외부와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포는 주변에서 물질과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조를 변화시킨다. 자기생성 체계는 조직적으로 닫혀 있으면서도 구조적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유지하는 활동 자체에 이미 외부와의 관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계 탐구는 생명체와 기술의 결합으로도 이어진다. 5장에서 다루는 스티글러의 일반 기관론은 신체적 기관, 기술적 도구, 사회적 조직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핀다. 글과 이미지 같은 기술적 기억은 개인의 경험을 외부에 보존하고, 다른 사람이나 다음 세대가 이를 공유하게 한다. 이러한 매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겪지 않은 과거에도 접근할 수 있다. 기술은 신체 기능을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형성에도 관여한다. 유기체를 이해하려면 생물학적 신체뿐 아니라 신체와 결합하는 기술 및 사회적 관계를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이다. 6장의 가이아 논의는 생명과 환경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관계를 행성적 규모에서 살핀다. 라투르는 가이아를 각 부분을 지배하는 거대한 유기체로 보지 않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환경을 바꾸며 상호작용하는 연결망으로 이해한다. 이에 대해 주카우스카이테는 유기체나 체계가 반드시 그런 지배 관계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자기생성 체계도 내부의 차이와 다수성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해러웨이의 공동생성은 관계 속에서 존재자들이 형성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통생명체에서도 숙주를 중심에 놓기보다, 숙주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서로의 공생체로 사유한다. 저자는 자기생성과 공동생성이 서로 대립하거나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체계적 복잡성의 서로 다른 양태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자기생성과 공동생성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에는 경계의 문제가 남는다. 울프는 유기체와 환경의 경계를 모두 허문다면 무엇과 무엇이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주카우스카이테는 관계를 맺는 존재자들을 먼저 규정해야 하는지 되묻는다. 오히려 상호작용의 과정을 먼저 살피고, 존재자들을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잠정적인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질문은 개체보다 개체화의 과정에 주목했던 책의 전반부와 맞닿아 있다. 생명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완성된 개체들이 관계를 맺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관계 속에서 각자의 존재가 형성되고 변화한다는 뜻으로 확장된다. 셋. 인류세 너머의 생명을 사유하기 생명이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면, 그 관계를 인간의 관점에서만 이해할 수 있을까? 7장의 혼종 유기체 논의는 이 질문을 신체 내부로 가져온다. 저자가 검토하는 생태적 면역의 관점에서 면역계는 외부의 침입을 막는 방어 장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유기체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이고 관계를 조정하면서 자신을 유지한다. 인간과 다른 종의 생물학적 요소들을 결합하는 바이오아트 역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만 저자는 이러한 실험에서 생명권력에 저항할 가능성과 생명을 조작하고 위험에 노출할 가능성을 함께 살핀다. 인간과 다른 생명의 관계를 다시 묻는 이 책의 문제의식은 부제인 ‘인류세 너머의 생명’에서도 드러난다. 주카우스카이테는 인류세 논의가 지구에서 생명이 살아갈 조건이 악화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책임을 보편적인 ‘인류’에게 돌린다면, 식민주의와 성별 권력관계 등에 따른 조건의 차이가 가려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기후위기를 정량적인 조절로 해결하려는 지구공학적 접근을 문제 삼는다. 이에 비해 가이아 논의는 다양한 유기체들이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역량과 그 행성적 연결에 주목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류세 너머’는 생명을 인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사유 방식을 넘어서는 과제로 읽힌다. 유기체지향 존재론은 생명이 자신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역량에 주목하면서도, 장애와 질병, 손상과 죽음을 포함한 삶의 조건들에 가치를 부여한다. 이 책의 핵심적인 의의 중 하나는 생명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을 생명의 가치를 분류하고 결정하는 생명권력에 대한 비판과 연결한다는 데 있다. 구체적인 공존의 기준은 더 논의해야겠지만, 그 출발점은 인간 역시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있다. 『유기체지향 존재론』은 철학서이지만 그 물음은 우리 모두의 삶을 향해 열려 있다. 인류세를 살아가며 공존의 지혜를 모색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이루는 관계들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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