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26.07.03 | 신자유시대의 예술적 다중, 아직 웅성거리는가?

[대자보 2026.07.03] 신자유시대의 예술적 다중, 아직 웅성거리는가? / 추유선(미술 작가)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jabo.co.kr/40645 예술적 다중은 아직 웅성거리는가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은 벨기에의 예술사회학자인 파스칼 길렌이 신자유주의 시대인 오늘날 예술은 포스트포디즘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예술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예술세계 특유의 유연한 노동, 프로젝트 기반의 작업, 기민함과 이동성이 오히려 신자유주의 경제의 이상적 모델이 되었다고 날카롭게 진단한다. 정부는 지원금을 통해 예술작업에 개입하고, 예술가는 1인 기업가로 기민한 이동을 통해 국제적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관객은 수치로 환원되어 예술작품의 질을 결정한다. 이는 비엔날레뿐 아니라 미술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예술가들의 삶이 신자유주의의 모델이 되었고, 예술은 그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술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연대를 통한 공통의 장을 만드는 것으로 이러한 포스트포디즘 안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는 예술가들과 예술현장을 향해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2009년에 출판되었기에 간극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한국 예술현장에 대입하여 생각해 볼 때 큰 시간적 간극을 느낄 수는 없었다. 저자는 이 책을 2부로 나누었다. 1부는 세계화된 예술계와 미술관, 비엔날레와 같은 제도적 층위를 고찰했다. 이는 ‘다중’, ‘포스트포디즘’, ‘비물질노동’, ‘삶정치’가 예술계에서 어떤 현상으로 드러났는지를 검토했으며, 2부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통해 억압적 자유주의가 예술의 자율성을 어떻게 부식시켰는지, 예술과 윤리, 민주주의가 어떤 내적 연관성 속에 묶여 있는지 추적했다. 따라서 길렌의 저서가 담고 있는 저자의 주장이 한국에서는 어떤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2026년의 예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예술현장은 오늘날의 어떤 문제를 탐구하고 있는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2026년 이후 어떤 예술현장에서 살아가고자 하는가? 이것은 저자를 통해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먼저 저자는 ‘웅성거림(murmuring)’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웅성거림을 직접적인 변혁이나, 혁명 대신 끊임없는 소통과 연결을 통해 기존의 예술제도에 균열을 내는 저항방식으로 보았다. 그가 제목으로 사용하기도 한 ‘예술적 다중’은 파울로 비르노(Paolo Virno)의 ‘다중’ 개념을 예술 사회학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비르노에 따르면 과거 포디즘 시대의 노동자들은 하나의 공장에서 같은 시간에 노동했기에 ‘인민’,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릴 수 있었으나, 포스트포디즘 체제 아래에서 노동자들은 프리랜서, 예술가, 돌봄 노동자, 교육가, 플랫폼 노동자 등으로 각기 차이를 가지고 존재하며 비르노는 이를 정치적으로 ‘다중’이라고 정의했다. 다중의 핵심은 ‘공통(common)’이며 오늘날의 노동은 언어, 소통, 감정, 상상력, 지식, 기억, 관계의 생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비르노는 이러한 능력을 포스트포디즘이 포섭하면서 ‘혼종적이고 유동적이며 탈영토화되어 끊임없이 움직이는 노동조건’을 생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르노의 ‘다중’ 개념을 가져와 저자는 예술에 접목시켰다. 길렌은 비르노의 ‘다중’ 개념의 특성이 예술가들의 삶과 노동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그가 책에서 정리한 것과 같이 예술계 안에서 건축, 공학, 교육 등 다른 연구 분야에 종사하면서 예술과 느슨한 연대를 맺는 콜렉티브 그룹들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 콜렉티브 그룹들의 웅성거림이 기존의 포스트포디즘에 포획되어진 예술제도에 균열을 낼 것으로 기대했다. 곧 질문과 비평, 예술적 실험과 협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 형성의 ‘웅성거림’이 혁명과 같은 강도 높은 변혁은 아니지만 서서히 틈을 내는 방식의 낮은 강도의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길렌이 주장한 실험적 삶의 방식이자 예술 제도에 새로운 균열을 냈다고 언급될 수 있는 예로 (책의 발간 후 일어났던 전시라서 책에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2022년 <카셀 도큐멘타 15>를 들 수 있다. 2022년 <카셀 도큐멘타 15>는 ‘혁신’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도큐멘타였다고 분석되는 예술적 사건이다. <카셀 도큐멘타 15>는 기존의 백인, 서구, 남성 중심의 전시에서 인도네시아의 예술그룹 루앙루파(ruangrupa)가 전시 총 감독을 맡으면서 집단 예술 감독 체제를 실험했다. 루앙루파는 ‘룸붕(Lumbung:공동 쌀 곳간을 의미) 정신을 핵심 개념으로 삼아 이 기간 동안 자본, 시간, 공간, 장비, 아이디어와 지식을 나누고자 했다. 나아가 루앙루파는 <카셀 도큐멘타 15>에 참여한 예술인들과 공동기금을 형성하고 그것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이들은 도큐멘타의 전시 기간인 100일 동안 이어진 끊임없는 토론과 회의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관람객 역시 단순한 관조자에 머무는 대신, 예술가들과 음식을 나눠 먹고 토론에 참여했다. 더불어 의자 만들기 등의 간단한 조형 활동에 참여하거나, 바라는 바를 적는 낙서 행위 등을 통해 주체적으로 예술에 동참했다. 루앙루파는 룸붕 정신으로 도큐멘타를 예술 및 경제모델로 구축하고자 했으며, 참여자들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공통의 구조를 건설하는 대안적 전시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시 중 종교 및, 인종차별뿐 아니라, 반유대주의(anti Semitism) 논란이 불거지면서 문화적 역사적 상호존중의 정신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루앙루파는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를 빌미로 문제를 일으킨 개인 혹은 콜렉티브에게 해결을 미루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대안적 구조의 책임 윤리에 대한 회의감을 낳았다. <카셀 도큐멘타 15>는 안착된 서구 예술제도가 아시아 예술가 그룹에게 기획을 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한 것으로 예술적 질문과 지향성이 소진된 서구예술계에 아시아적 예술 공동체 삶의 방식이라는 또 다른 문화적 생명력을 공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룸붕 정신이 제도 안으로 흡수되었으며, 이벤트화되어 공동체는 더 이상 제도 밖의 대안이 아니라 국제 전시가 소비하는 새로운 전시 형식이 되었다. 즉, 룸붕이라는 대안적 정신마저 새로운 문화자본으로 소비된 것이다. 나아가 구조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질문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포스트포디즘은 특유의 기민함과 유연성으로 예술이 가진 전복성마저도 흡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2026년의 예술은 어느 지점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해 길렌의 대안과 더불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문래동뿐 아니라 2000년대 자생적 예술현장들이 스쾃(squat) 운동과 함께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활동한 오아시스 프로젝트(OASIS Project)가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시민에게는 문화를, 예술가들에게는 작업실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목동 예술인회관을 점거했다. 이 안에서 분양퍼포먼스뿐 아니라, 동숭동 오아시스, 예술포장마차 오아시스로 스쾃 개념을 확장하기도 했는데 이 포장마차는 예술가, 노동자, 소외계층이 모여 수다를 떨고 연대를 하며 대안적 소통 아지트로서 역할을 했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 창작 레지던시들이 만들어지는 것에 영향을 주었다. 이 자발적 프로젝트는 길렌이 이야기한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창작 레지던시에 입주하는 것은 곧 예술계 주류에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레지던시에 입주했던 작가들은 순서대로 유명 공공 레지던시를 돌며 자신들의 스펙을 쌓고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이것이 미술관이나 주요 갤러리에서 전시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된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위계들이 형성되었고 신진 작가들은 레지던시에 입주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게 됐다. 또한 창작 레지던시는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명목하에 선정된 예술가들에게 시민들을 위한 교육활동이나 시민 참여 예술 활동을 요구했다. 예술가들 역시 오픈 스튜디오와 시민예술교육, 성과발표 등을 거치며 자발적으로 제도 안으로 편입되었고, 그 결과 자신들의 작업 과정과 기간을 행정의 시간에 맞추게 되었다. 이는 강제가 아니라 자유와 자율을 매개로 예술가를 포섭하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governmentality)의 전형이다. 결국 오늘날의 레지던시와 지원금 제도는 예술가들이 고유의 예술언어를 깊이 파고 들게 하기보다, 행정이 요구하는 조건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예술가들이 자율성을 발휘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초기에 보여준 저항정신은 정부 지원금 제도와 포스트포디즘의 노동 특성에 의해 더 이상 기존의 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오늘날 예술 공동체는 개인으로 파편화되었으며 이제 예술현장은 개인의 생존이 걸린 치열한 경쟁터로 변모했다. 현재 한국 예술가들은 이러한 과도한 경쟁에 따른 피로감으로 인해 지원금 의존에서 벗어나 자립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적 경제 구조를 구축하지 못함에 따라, 결국 예술가 개인이 각자도생의 노동현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파스칼 길렌의 『예술적 다중의 웅성거림』은 현재 예술현장에 대한 날카롭고도 논리적인 분석으로 ‘지금, 여기’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서적이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우리시대의 희망은 무엇일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파스칼 길렌이 분석했던 시대와 지금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존재함에도 포스트포디즘은 지칠 줄 모르는 기세로 예술제도 곳곳에 더욱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모습은 존 홀러웨이의 『폭풍 다음에 불』의 마지막 문장에서 한 소녀가 책을 덮으며 머리 위에 도사린 괴물을 바라보고 있었던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에게 서늘함을 준다. 그러나 소녀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를 되뇌었듯이,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의 한 자락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현장에서 목격했던 다중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그룹들의 빛나는 ‘활력’ 때문일 것이다. 2026년의 ‘웅성거림’은 더 이상 예술제도 내부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제도 밖의 독자적인 노선을 개척하는 독립 출판사와 지역상인들, 건축가들과 손잡고 있는 예술가들의 연대, 이주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의 연대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손노동을 매개로 모이는 바느질 그룹에 이르기까지, 빛나는 다중의 ‘활력’은 SNS 플랫폼을 통해 형성되는 느슨한 취향 공동체, 일시적인 연대, 독립적인 실천 등의 ‘웅성거림’으로 포착된다. 물론 이러한 실천들 또한 플랫폼 자본주의에 쉽게 포섭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완전한 바깥을 찾는 일이 아니라, 포섭되는 순간에도 또 다시 다른 공통장을 생성해내는 능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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