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2026.05.21] '역사적 파시즘', 폭력의 기원을 찾아서 / 이수영(미술작가, 다중지성의 정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jabo.co.kr/40609 “알고 보니 그 시인은 일제시기에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 친일 부역자였다.” “알고 보니 그 마을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려 국군과 미군에 의해 집단 살해당했다.” 고고학적 트라우마의 ‘친밀한 배신’ 서사에서 중요한 대목은 “알고 보니”일 것이다. 애도 받지 못한 죽음들과 사느냐 죽느냐로 내몰리는 사상 검증의 폭력적 경험은 오랫동안 말해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없었던 일인 듯 부정당하거나, 마치 그랬던 적 없는 듯 뻔뻔한 것들은 ‘친중-반미-종북-좌파’와 ‘혐중-친미-토착 왜구-보수’라는 마법의 프레임으로 빨려 들어간다. 대한민국 국시 논쟁, 대한민국 건국 논쟁처럼 대한민국의 국가 신체는 ‘친일’과 ‘빨갱이’라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얼룩져 있다. 일제와 한국전쟁의 생존자들이자 그 후손인 우리에게 이 역사적 DNA인 트라우마의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다. 권명아의 『역사적 파시즘 체제의 인종주의와 젠더 정치』(이후 『역사적 파시즘』)는 친일과 빨갱이 이원론이 샘솟는 매트릭스로 우리를 회귀시킨다. 인정받지 못한, 말할 수 없었던 그 기원을 무대 위에 세워 비로소 마주해야 트라우마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치유적이다. 일본제국주의 역사적 파시즘에 대한 외상은 ‘여성’. ‘청년’, ‘가정’, ‘민족’과 같은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여 오히려 보이지 않는, 친밀하고 단단한 것들 속에 가려져 있다. ‘여성’, ‘청년’, ‘가정’, ‘민족’과 같은 말들은 분석하고 설명해야 할 문제의 위치가 아니라 선험적으로 주어진 실체로 사회를 설명하는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권명아에게 젠더, 세대, 민족, 가정은 스스로 본질을 가지고 있는 초역사적으로 고정된 것들이 아니라 역사적 파시즘 체제인 일제의 식민주의의 통치술 그 자체이다. 『역사적 파시즘』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여 비로소 보이게 한다. ‘총후부인’이라는 경계적 신체 예를 들어 근대 이후 오랫동안 이상적으로 표상되어 온 ‘어머니’의 원형인 ‘총후부인(銃後婦人)’을 살펴보자. 어린 자녀를 미래의 황국 국민인 ‘소국민(小國民)’으로 기르고, 아들을 전쟁터로 자원하는 ‘청년’으로 만들고, 전시경제에 ‘가정’을 건사하고, 후방에서 나라에 물자를 조달하는 어머니이자 아내인 ‘총후부인(銃後婦人)’은 일제 총동원 체제 식민주의가 발명한 젠더 객체이다. 조선에서 그림자 없는 유령처럼 사회적·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금치산자인 ‘여자’가 ‘신민’으로서 일본제국주의 국가와 사회의 주요한 주체가 되는 ‘평등과 참여의 자발성’이 ‘총후부인’이다. 이제 ‘여자’는 ‘가정’의 중심이 됨으로써 천황-청년-총후부인-소국민이라는 황민화 위계 안에 당당한 주체가 된다. “주체성의 정치학이 가족국가주의의 젠더 분리선을 따라 구성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130쪽) 그리고 일제에 대한 자발성의 내면화로 발명되는 주체는 동료 시민과의 연대가 아니라 차별과 경계 짓기 수행성으로 달성된다. ‘총후부인’은 수동적이고 못 배운 조선의 구여성과 자신을 구별하고, 이기적이며 겉멋 든 모던걸 신여성을 혐오하고, 일본인 여성을 언니로 모시고 배우며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조정하는 경계적 신체로서의 젠더이다. ‘청년’은 마르크스주의적 지식인이나 부르주와 자유주의자 모던보이와 대립하는 위치로서 징병제 전투의 주체로 구성된다. 특히 스커트 밑에 총을 숨기고 남자를 유혹하여 살해하는 미모의 ‘중국 여성 스파이’와 같은 ‘레드(빨갱이) 우먼’ 대중 담론은 가정 바깥의 순결하지 않은 여성, 남성을 거세하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여성, 불온하고 혐오스러운 중국이라는 이미지를 여성 혐오와 ‘빨갱이’ 혐오로 연결한다. 평범한 이웃으로 위장하고 있을 간첩에 대한 공포는 국가적 위기감이라는 총동원 체제에서 식민주의가 발명한 부인, 청년, 소국민과 같은 정체성의 안쪽을 ‘좋은 일본인’으로 그리고 그 바깥을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는 불온한 조선인으로 경계 짓는다. 친일/저항, 빨갱이/반공이라는 이원론은 국민-되기(황민화)라는 자발성이 젠더, 민족, 세대로 교차하며 교착되는 식민주의 통치술 자체임을 권명아는 분석한다. 일제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보는 조선의 ‘제국의 판타지’ 『역사적 파시즘』에서 권명아의 ‘남방 담론’ 분석은 ‘조선적인 것’이라는 ‘민족’ 감각의 발생과 변용을 보여준다. 일제가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을 점령하면서 동남아시아는 조선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깜둥이 토인’, 무진장한 자원, 원시적 자연 등 조선보다 미개한 곳으로 표상되는 남방 이미지는 일제의 권역인 대동아공영권의 다른 민족 중에서 조선이 그래도 넘버 2는 해야 한다는 불안한 경쟁 심리, 화교처럼 우리도 남방으로 진출할 수 있을 거라는 성공 신화에 대한 열망의 투영으로서 일제의 눈으로 다른 민족들 속의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권명아는 이 남방열 담론이 조선이 아시아 내의 다른 민족 국가와 조우하게 되는 ‘원점’이라고 분석한다. “태평양 전쟁기에 남방이라는 새로운 ‘준거’를 통해 자기상을 상상적으로 구성하는 조선인의 자기 인식의 내적 갈등이 투영(318)”된 것이다. 또한 ‘조선’은 대동아공영권 안에서 다른 민족, 종족들 중의 하나인 로컬리티로서 재구성된다. 권명아는 토착성·본래성의 이념이 한국이라는 국민국가 구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 것도 이러한 일본 제국주의의 황민화와 대동아공영 이념의 역사적 경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총력전 체제의 정치적 주체인 ‘총후부인’과 ‘청년’의 식민주의 통치술의 내면화된 자발적 수행은 젠더, 가정, 민족이라는 중립적이고 보편적으로 보이는 자연화된 객체 속으로 가라앉는다. ‘좋은 일본인’과 ‘불령선인’ 사이에서 ‘친일’과 ‘반공’은 불안, 경쟁, 증오, 열망과 같은 정동적 증후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장기간 반복된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지금의 우리에게 『역사적 파시즘』은 그 폭력의 기원을 마주 보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