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6.02.23] 모델의 환상과 모델링의 역사 말하기 / 권혜린(문학 연구자)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94 역사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면 이 책에 진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매력적인 우회로에 한번 올라선다면, 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일지라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에 분명한 경계 틀을 세우고 명쾌한 분석을 하는 쉬운 방향을 틀어, 개개인에게 다르게 작용했을 효과들을 어려운 우회로로 가서 세밀하게 분석한다. 협력/저항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넘어서는 효과들은 풍부한 자료들로도 증명된다. 시나 소설 등의 문학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일기, 영화, 독본, 종족지 등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 재미를 더한다. 책의 제목이 낯설지 않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2005년에 출간된 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 정치의 개정 증보판이기 때문이다. 20년 후에 나온 만큼 새롭게 추가된 부분들도 있다. 크게는 ‘중국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을 정동의 프리즘으로 보는 5부이고 작게는 연설 공간, 문자 미디어, 라디오, 독본 등 언어와 미디어를 분석한 3부 3장이다. 따라서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정보’에서 ‘정동’으로 저자는 ‘역사적 파시즘’을 “1931년 ‘만주사변’을 전후로 한 침략 전쟁의 가속화와 세계대전을 거쳐 일본의 패전에 이르는 시기”(26~27쪽)로 정의한다. 이를 분석할 때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정보’가 아니라 경계를 넘어서고 침투하고 균열을 내는 ‘정동’들이다. 정보 전쟁과 관련되는 전시 동원 체제의 파시즘은 사상 통제와 풍속 통제로 이어지지만, 통제 대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성을 바탕으로 발명한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는 통치 테크놀로지를 맥락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중점적으로 제시하는 분석은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황민화’가 명확해 보이는 듯한 환상을 주지만 현실에서는 개개인에게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책에서 제시되는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다. 같은 아시아라도 조선은 일본보다 하위였고 ‘지나인’과 ‘남방인’은 조선보다도 더 하위였다. 총력전 체제에서 엘리트 청년과 ‘골칫덩어리’로 불리던 불량 청년들은 같은 청년이 아니었다. 사치와 향락으로 상징되는 신여성, 조선의 구여성과 일본 부인의 명랑성을 결합한 총후 부인도 달랐다. 조선의 지식인 여성은 일본의 지식인 여성을 ‘언니’로 부르며 따랐다. 시골의 여성은 아이처럼 간주되어 훈육하고자 했다. 그러니 언어와 미디어의 차원에서도 동일한 전달은 불가능한데, 이 역시 저자는 그 차이를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예컨대 조선에서 생산된 독본은 일본보다 실용성에 더 집중하여 실제 행위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황민화는 위계화된 구도에 따라 동일하게 경험되지 않았으며 “피식민자에게 끝없는 자기 심문과 자기 부정, 자기 모멸을 강제”(216쪽)하면서 정체성 투쟁들이 나타나게 된다. 전시 동원 체제와 지금-여기 연결하기 섣부른 감상이자 도식화일지도 모르지만, 책을 읽으며 ‘제국의 판타지’로서의 황민화와 현실화된 양상들이 ‘모델(model)’과 ‘모델링(modeling)’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목표치에 해당하는 고정된 모델을 제시하지만, 현실에서는 단일한 모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서 언제나 모델에 다다르지는 못하는 과정들(model-ing)로 드러나는 것이다. 모델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조건이다.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어떤 보상(대가)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기획된 인과 관계에 따라 이데올로기가 된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조건이 주어진 듯한 환상을 제시하는 것은 대상만 다를 뿐, 현재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이 책은 이처럼 전시 동원 체제와 지금-여기를 연결하는 사유를 하게 한다. 전시 동원 체제의 모델인 ‘좋은 일본인’은 입신출세의 욕망을 지닌 청년들을 경쟁하게 했다. ‘입신출세’나 ‘경쟁’이라는 단어에서 현대의 자본주의와 맞물리는 연속성도 확인할 수 있다. 이때의 욕망 또한 “적대와 경쟁, 선망과 불안, 기대와 불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복합적으로 공존”(75쪽)한다는 점에서 단일한 형태가 아니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 ‘좋은 일본인’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달 불가능한 모델은 열등한 타자를 배제하면서 자신을 우월하게 하는 방식으로 모델링된다. 배제해야 할 가상적 대상은 적대와 절멸, 증오에서 기인한 풍속 통제를 당하는 여성 스파이와 더불어 ‘야만’으로 상징되는 동시에 자원을 ‘무진장’ 지녀 개발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남방(동남아시아)이다. 확장되는 정동들과 신체들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이 제국의 판타지가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크게 드러나는 정동뿐만 아니라 ‘미세 정동적 반응’까지 제시하여 흥미롭다. 금주와 금연을 강조하고 스파이를 경계하라는 등 일상을 지배한 파시즘적인 통제에 짜증을 내고, 불평불만을 말하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무의지, 무감각, 무관심 등의 ‘탈정동’까지 분석하고 있어 정동의 스펙트럼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의 사례가 1941년에 만들어진 국책 영화인 <지원병>과 <반도의 봄>이라는 점에서 미디어의 표면적 주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전달한다. 열기나 활력을 당위적으로 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 불가능한 목표로서 ‘적절한 수동성’을 탈정동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청년, 총후부인, 소국민이라는 용어의 틈새와 균열에서 길어 올린 수행성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새로 추가된 5장이 분량상으로는 다른 장보다 적지만 확장된 시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자 스파이를 분석할 때도 등장하였던 전파, 감염, 전염, 기운 등의 용어를 정동과 더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제시된 ‘중국적인 것’ 역시 하나의 의미로 정리될 수 없다. ‘소중화’를 추구했던 조선의 입장에서 중국은 정동적 대상이었고, 일본은 그와 같은 지향성을 탈정동화하고자 했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의 정동 지리 속에서 중국의 의미는 소멸하고 현대에는 부정적인 정동으로 변용되었다. 저자는 야만으로 치부하던 남방과 ‘소중화’를 지우기 위해 깎아 내린 중국에 차별적인 시선을 지니며 혐오하는 정동들을 짚어 낸다. 현재에도 한국인에게 계몽의 대상이나 값싼 여행지 정도로 이해되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서술할 때 혐오의 정동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자 이후의 연구와도 연결되는 ‘전파매개적 신체’ 개념을 저자의 표현을 빌려 강조하고 싶다. 의미나 정보를 스스로 생산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실어 나르는 특성을 지니는 이 개념은 이 책에서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은 여성, 부랑자, 비엘리트 남성, 미성년에서 시작하여 ‘중국적인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전파매개적 신체’들은 “개체를 특징짓는 윤곽선을 갖지 못한다. 이들의 윤곽선은 외부와 독립적인 신체성을 형성하지 못하여 외부에 침투되기 쉽고, 반대로 이들 신체 자체가 윤곽선이 흐릿해서 바깥으로 퍼져 나간다.”(424~425쪽)라고 서술되는 것처럼 다양한 대상에 적용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며 잠재성을 지니기에 이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해석들과 사례들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대마다 추구하는 모델은 다를지라도 그것이 현실에서 이데올로기화되는 모델링은 반복된다. 따라서 이 책은 전시 동원 체제나 해당 시기에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고정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모델링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과정을 앞으로도 따라갈 수 있기를, 분열과 틈새에서 생성되는 역동적인 장을 계속해서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권혜린 작가와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2.0』(공저), 인공지능 시대 대학생을 위한 말하기와 글쓰기(공저), 젠더 프리즘, 그 이후(공저), 소설집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0』(공저)과 장편 소설 『불가사리 전선』, 『부어스: 별을 따는 사람들』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