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026.01.05] 인간 이후의 철학은 가능한가...객체는 관계보다 깊다 / 나우혜(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박사수료)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4189 20세기 초,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근대 철학의 지평을 뒤흔들며 인간-존재 사유의 방향을 새롭게 그려냈다. 그리고 한 세기가 흐른 지금, 그레이엄 하먼을 비롯한 사변적 실재론자들의 등장은 또 한 번 철학 위에 균열을 낸다. 철학은 언제나 세계를 새롭게 묻는 방식으로 우리 사고를 자극하며, 낡은 패러다임의 잔해 위에 또 다른 전쟁을 연다.『객체지향 교전』은 그 전장의 중심에서, 하먼이 어떤 무기(개념)로 싸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동안 철학은 세계를 인간의 인식·경험 체계 안에서만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를 거의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메이야수, 하먼, 브라시에, 그랜트는 ‘사유 바깥에 놓인 세계—인간 없는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제기하며 기존 철학의 축을 흔들었다. 이 문제 제기는 빠르게 확산되어 철학 내부뿐 아니라 예술·비평·문화연구 전반에 새로운 진동을 일으켰고, 그 잔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건축연구소 철학 교수)이다. 『객체지향 교전』은 하먼이 자신에게 제기된 비평에 또렷하게 대답하며, 객체 개념을 다듬고 확장하는 철학적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는 품위를 잃지 않은 채 설명을 되짚고, 잘못된 논지를 만나면 단호히 반박한다. 하먼의 목소리는 활자 너머로 생생히 들려오는 듯하다. 후설의 관념론, 실재론으로 이어지나 1장은 톰 스패로의 논의로 시작된다. 스패로는 현상학이 반실재론적 전통에 머물러 있으며 실재를 다룰 능력이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하먼은 이 지점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현상학을 헤겔적 관념론의 연장으로 보고 종말을 선언하려는 스패로의 입장에는 신중하게 거리를 둔다. 후설은 관념론이지만 객체를 기술의 중심에 두기 때문에 실재론으로 이어질 여지를 남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패로는 파계적 실재론에 기대를 걸지만 하먼은 한 발 비켜서 있다. 현상학을 향한 애정과 좌절을 공유하면서도, 하먼은 그 흔적을 밟아 실재론과 반실재론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길을 연다. 초반부는 하먼이 자신의 철학적 위치를 다듬고, 이후 펼쳐질 논쟁의 무대를 정비하는 서막이다. 이어 그는 사변적 실재론 내부에서 현상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난제를 꺼내며, 네 입장의 간극을 정리한다. 브라시에는 현상학에 적대적이고, 그랜트는 무관심하며, 메이야수는 애정적이지만 모호하게 거리를 둔다. 스패로는 비판을 급진화한 경우다. 한편 후설·레비나스·메를로-퐁티는 일상적 사물성과 질감을 복원한 점에서 실재론적 함의를 남기지만, 결국 관념론적 지평을 넘지 못한다. 하먼은 현상학이 경험주의의 ‘성질-다발 객체’ 개념을 뒤집고 지향적 객체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형상적 환원과 음영의 긴장만을 남겼을 뿐 실재에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요컨대 그는 현상학을 존중하되 비판하고, 그 위를 넘어 객체지향 존재론이라는 다른 길을 연다. 이는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계승–비판–초과의 변주이다. 객체, 심연의 중심과 감각적 양상 스티븐 샤비로와의 논쟁은 본격적으로 열기를 띤다. 샤비로는 화이트헤드와 정동(affect)의 철학에 기대어 객체를 관계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 한다. 하먼은 그의 통찰을 존중하면서도 이렇게 주장한다. 감각에 포착되는 것은 객체의 얇은 막일 뿐이며, 그 너머에는 끝내 닿지 않는 핵이 남는다. 이것은 하먼의 객체론이 관철하는 핵심 주장이다. 객체는 언제나 자신을 전부 드러내지 않고 일부만을 노출한 채 물러나 있으며, 어떤 관계도 그 존재를 소진시키지 못한다. 그는 객체를 심연의 중심—철회된 핵—과 표면에 드러나는 감각적 양상으로 나누어 사유한다. 반면 샤비로는 화이트헤드와 들뢰즈를 잇는 흐름 속에서 표면의 진동, 과정의 생성, 정동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사유한다. 객체의 본체가 숨어 있다는 하먼의 주장과 달리, 샤비로에게 중요한 것은 사물의 관계적 발현, 경험적 표면에서 벌어지는 미적 사건이다. 그는 객체의 은둔보다 관계의 떨림과 변화의 움직임을 더 전면으로 가져온다. 하먼이 ‘철회된 핵’을 붙든다면, 샤비로는 ‘진동하는 표면’을 붙든다. 스패로·샤비로의 논의가 비교적 부드럽게 흘렀다면, 그래튼과 울펜데일은 가장 치열한 논쟁을 촉발한다. 이 두 장에서 하먼의 어조는 유난히 예민하고 강렬해지며, 독자의 집중을 요구한다. 그래튼은 객체론을 고전 형이상학의 복귀라고 말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울펜데일은 언어철학적 관점에서 근거를 요구하며 하먼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브라시에는 「사변적 부검」이라는 강렬한 제목으로 참여하며 객체철학을 해부하듯 분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후 알베르토 토스카노, 크리스토퍼 노리스, 단 자하비, 스티븐 멀홀이 차례로 호출되며 시야는 더 넓어진다. 토스카노를 비롯한 후반부는 전장을 한눈에 조망하며 객체철학이 어떤 지형 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연기담론에 대입한 객체연구 나는 작년에 객체를 연기담론에 대입한 연구를 진행했다. 객체가 실재한다면 배우는 어떻게 연기할 수 있을까? 그 실험의 장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공기인형>(2010)을 선택했다. 인간처럼 작동하지만 끝내 인간이 아닌 몸, 관계 안에 놓이지만 그 관계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 표현을 쌓는 연기가 아니라, 철회된 존재로 남는 연기. 그 지점에서 연기는 감정의 전달이 아니라 객체와 닮은 방식의 현존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연구와 함께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했다. 하먼의 객체는 철회되어 있지만, 오히려 미술·연극·영화·건축·비평에서 놀랍도록 유효하게 작동한다. 객체는 보이지 않는 침묵·잔여의 층위를 사유하게 만들고 예술이 오래 다뤄온 불가시적 차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감각되지 않는 것을 사유하게 하는 점에서 객체론은 예술 비평에 새로운 언어와 시선을 제공한다. 많은 철학서를 읽었지만, 하먼만큼 독자를 끝까지 데려가는 철학자는 드물다. 그의 문장은 깊어지되 선명하고, 항상 독자 곁에서 설명을 풀어준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낼 수 없다. 어제 이해한 문장이 오늘 다시 보면 전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고, 지금 읽는 문장이 내일은 새로운 결로 다가올 수도 있다. 마치 책 자체가 객체처럼 깊이를 감추었다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동시대 철학자들의 등장 폭과 밀도다. 숄 클립키, 샘 콜먼, 윌리엄 시거, 돈 로스를 비롯해 놀트, 모턴, 브라이언트, 등등 여러 사유가 하나의 장 안에서 광범위한 스펙트럼으로 교차한다. 그 양과 깊이는 독자를 압도하기도 하고, 동시에 객체론이 오늘 철학의 가장 뜨거운 중심부에서 논의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래서 이 책은 책장 깊은 곳에 귀속되지 못한다. 책상 위에 머물며, 때마다 펼쳐지고 다시 읽힐 것이다. 종결이 아닌 기점이며, 조용히 다음 사유로 걸음을 내딛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