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5.12.29 | ‘다시 만들 세계’의 주술 ‘弓弓乙乙’을 생각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5.12.29] ‘다시 만들 세계’의 주술 ‘弓弓乙乙’을 생각한다 / 이수영(미술작가,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714 권력과 무속이 결합하는 병리적 증후를 역사화하기 김가현은 조선시대 혼군(昏君)으로 연산군, 광해군, 고종을 뽑고 그들의 농단 정치에 무속이 결합하는 방식을 분석한 뒤 이를 각각의 개별적 사건들이 아닌 역사적 법칙으로 정리한다. 이 혼군들은 통치 역량이 부재하기에 자신의 정치적 고립과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무속이라는 초월적인 힘에 기대었다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김가현에 따르면 권력과 무속의 결합은 한 개인의 일탈이나 기행이 아니라 역사적 법칙으로 “한국 정치사에서 되풀이되는 구조적 질병(231)”이다. 그리고 이 역사법칙은 세기를 뛰어넘어 윤석열의 무속정치에서 다시 되풀이된다. 김가현은 이 역사적 법칙의 필연성을 무속의 본질적 속성에서 찾는다. 무속은 “자연계가 고유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21)” 신령, 귀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 혹은 땅의 생명력 같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좌우된다고 여긴다. 따라서 무속은 주술적 의례를 통해 신령이나 비인간 존재자들의 생명력에 의탁하여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무속에서 물자체와의 접촉으로 발명해 나가고자 하는 바는 지극히 사적인 이익일 뿐 사회 전체를 위한 윤리에 이르지 않는다. 김가현은 비인간 객체들에 기대는 것은 자신의 무능을 가리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사회의 공적 시스템인 정치와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비인간에 기대는 주술적 믿음은 권력과 결탁한다는 것이다. 비인간들이 뿜어내는 ‘사물-권력’과 매혹 윤석열-김건희의 국정농단에서 발견되는 무속 정치 경향을 어떻게 볼 것인가. 조정환(『빛의 혁명 183』, 159)은 무속을 비합리, 불법, 비정상으로 놓고 이 문제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비정상’이라는 말은 문제를 너무 쉽게 치워버리기도 하지만, 무속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대의주의, 법치주의, 자본주의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정상성’으로 묶을 때 정작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정환은 무속 역시 예술, 종교, 과학이 그러한 것처럼 인간-비인간 객체들을 파악하려는 역사적 테크놀로지라고 말한다. 풍수는 삶의 터를 고르고 정할 때 주변을 감싸며 뻗는 산의 크기와 형세, 물의 흐름과 방향, 바람이 지나는 길, 교통과 사람이 드나드는 번잡한 정도를 파악하고 따지는 집단적 앎의 체계이다. 휑하게 터져 바람 골이 깊은 곳에 나무를 심어 방풍림으로 좌청룡 우백호 같은 사신사를 만드는 비보풍수(裨補風水)는 압도하는 힘으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간-비인간 접촉을 안정시키기 위한 다중지성이다. 태어난 해와 달, 날과 때가 어느 정도 덥고 추웠는지와 같은 기운의 배치로 명(命)을 짚어 혼인과 취업 같은 버거운 선택을 가늠하는 것은 개인의 삶이 시공간 곡률의 영향 아래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는 앎이다. 부엌에 조왕신, 대들보에 성주신, 우물에 용왕님, 마을 어귀에 서낭신은 일상의 공간 속에서 동선을 함께하는 사물들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는 일종의 합리화 기제이다. 이성과 합리라는 ‘정상성’이 기반하고 있는 인간의 지성은 인간이 비인간 객체와의 조우를 처리하는 하나의 경험 방식일 뿐이다. 제인 베넷(『생동하는 물질』)은 존재자들이 인간이 그것들에 부여한 맥락을 찢고, 결코 기호로 환원되지 않으며 뿜어내는 생생함에 인간이 정동되는 독특한 앎을 ‘사물-권력’이라고 불렀다. 그레이엄 하먼 역시 인간 경험에 언제나 물러서 있는 실재가 낯설게 감각적으로 덮쳐오는 체험을 ‘매혹’이라 부르며 미적 경험을 지적 경험보다 더 기본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마르셀 모스와 앙리 위베르는 『주술론』에서 주술을 병리나 기만과 같은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물자체와 관계하는 어떤 집단적 정동, 근원적 에너지로서 연구했다. 인간-비인간을 위한 더 많은 주술과 마법걸기 그렇다면 윤석열-김건희의 무속 정치가 갖는 문제점은 다중이 세계와 교통하는 다양한 경험의 방법들, 창조적인 앎의 체계들, ‘사물-권력’과 ‘매혹’을 농단한 데에 있을 것이다. 윤석열-김건희의 무속 정치의 문제는 ‘농단(隴斷)’, 즉 자신에게 대의 된 자리에서 얻은 정보와 힘으로 사적인 이익을 취하고 사취에 유리한 권력장을 만들기 위해 내란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황우석이 과학으로 농단했던 것처럼, 농단의 방법이 무속인지 과학인지는 초점이 아니다. 과학이든 종교이든 무속이든 세계와의 관계를 파악해 온 여러 인간 경험의 공통체를 수탈 정치의 양식으로 사취했다는 점에서 같다. 윤석열-김건희의 무속-농단 정치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미신을 타파하는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비인간 존재들과의 더 다양하고 새롭고 거침없는 관계의 발명일 것이다. 조정환은 이를 창조적 제헌활력이라고 표현한다. 제헌활력을 영토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조직화, 자기가치화에 기초해서 정치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속, 과학, 예술, 철학의 테크놀로지를 제헌활력의 자기 지성, 자기의 테크놀로지로 전환해야 한다. 권범철(「세계에 다시 마법을 걸기」, 『문화/과학』 2025년 봄호) 역시 조정환과 같은 맥락으로 마법을 ‘세계 제작행위’로서 파악한다. 그는 인간의 지성이 모든 객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근대 합리화 과정이 여성과 비서구를 이성과 문명이 결여된 자연으로 대상화하고 차별화했음을 지적하고 이를 막스 베버의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표현으로 정리한다. 임신과 출산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고 풀과 열매에 밝아 병을 치료하며 마을 공유지의 소득을 나누는 ‘마녀의 마법’은 인간과 비인간을 분리하여 자연을 비활(非活)적인 채굴 객체로 대상화하기 위한 ‘재판’에서 불태워졌다. 비인간 존재들과의 얽힘을 자신의 존재론적인 조건으로 이해하는 “공통하기(commoning)”를 위해 권범철은 실비아 페데리치를 인용하며 “세계를 재주술화”할 것을 제안한다. 농민혁명군이 고종(高宗) 관군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몸속에 지니고, 불태워 마시고, 읊조려 소리를 몸에 발랐던 ‘弓弓乙乙’ 부적과 주술, 그리고 고종-명성황후와 그들의 비선실세인 무당 ‘진령군의 관우신앙’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와 후자 모두 성리학 시스템이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 괄호치고, 음사(淫事)로 탄압하며 허락하지 않았던 무속을 자신의 정치 수행으로 삼은 공통점이 있다. 차이는 동학농민혁명의 주술이 물민다중(物民多衆)의 제헌활력을 세계 제작 행위로 삼은 반면, 혼군들의 무속정치는 공통장이 길어 올린 공통권을 사적 이득을 위해 착취했다는 것이다. 내란 특검이 끝났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바로 지금이 새로 만들 세계의 ‘弓弓乙乙’이 필요한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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