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025.09.26] 일기처럼 기록된 광장, 다중이 연 혁명 / 정현주(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학술연구교수)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44429 『빛의 혁명 183』은 크게 비상계엄 선포를 기점으로 남태령의 기억과 어렵게 이루어진 윤석열의 구속까지를 전반부로 서부지법난동과 윤석열의 구속취소, 헌재의 지연되는 선고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내란세력의 역습을 후반부로 구성한다. ‘빛의 혁명’이라는 제목은 얼핏 정권교체라는 광장의 결말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글은 다중의 제헌활력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며, 예외주의가 헌법의 열린 구멍을 통해 돌출했다는 문제의식과 진단은 이 책의 주제를 이룬다. 그런데 제헌활력이 일군 정치적 전환을 ‘혁명’이라 칭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 저작은 일기의 형식을 따라, 그때그때의 현장에 대한 분석과 정세판단이 이어지거나 단상들이 끼어든다. 현장의 구체성이라는 글의 특징은 그의 논리적 주장이 깔끔하게 나타나기 어려운 구조를 동시에 수반한다. 이번 서평은 법치주의와 예외주의에 대한 저자의 정치철학적 논의 구조를 분석하고 구조적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요구가 도출되는 논리를 살피며, 저항권이 ‘혁명’으로 나타날 때 제헌활력이 이루어내는 공통장의 윤리적 성격을 그 근거로 보고자 하는 저자 조정환 사상의 형태를 가시화한다. 다중의 제헌활력에 대한 그의 사유가 가장 선명해지는 곳은 12·3 비상계엄선포로부터 이어지는 현실의 여러 폭력적 계기 안에서다. 이 극단적 사태들은 권위주의적 예외주의가 이것의 모태인 법치주의로부터 폭력적이고 파괴적 현상으로 돌출되는 순간이다. 각 힘의 지향성과 움직임, 역관계를 살피는 다면적 분석으로부터 ①제헌주의적 시민활력 ②법치주의적 대의권력 ③예외주의적 내란폭력의 세 가지 힘의 개념이 추상화한다. 이 가운데 ①은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②와 ③은 ①로부터 파생돼 나온다. ③예외주의적 내란폭력은 ②법치주의적 대의권력으로부터 분립돼 나온 쿠데타 세력을 의미하며, 예외상태로서 비상사태는 법의 지배를 넘어설 수 있는 ‘주권의 예외적 능력’을 지칭한다. 비상사태 선포권으로 알려진 계엄 발동권은 헌법 제77조 제1항에 명시된 예외주의적 특권이며 군주제적 요소다(75∼78쪽). 이 중심에는 바로 ‘87년 법체제’가 있다. 계엄이 선포됐을 때 이를 전력으로 저지한 모든 이들에게 87년 법체제는 12·3 비상계엄 포고령이 위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지만, 만약 포고령의 발효와 동시에 국회만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즉 해제를 결의할 여지를 없앨 수만 있다면 헌법상 포고령의 지배를 제어할 방법은 전혀 없다.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자,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국회·법원·헌재의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김용현의 주장(193쪽)은 이 같은 ‘87년 법체제’의 논리적 균열로부터 출현한다. 법이 논리로만 작동할 때 예외주의적 행동은 “일체의 정치활동이 불가능한” 삶만을 승인해, 모든 자율성과 개별성을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체제로 폭주한다. 법치주의란 모순적 균열 때문에 일탈로 나갈 수 있는 가능태면서 광장의 다중이 예외주의 폭주를 원리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게다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위헌·위법한 공무원을 해임하는 과정에서 시민이 직면한 어려움은 주권자 국민이 직접 해임할 수 있는 통로가 헌법에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비롯한다. ‘국민 저항권’은 헌법에 기초한다. 이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헌법의 기본 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해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다른 합법적인 구제 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마지막 헌법보호 수단이자 국민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수단이며, 자신의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권리로 정의된다(196쪽). 위헌·위법한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반대하고 계엄을 옹호하는 법원습격은 결코 이 경우에 해당할 수 없다. 국민 저항권에 부합하는 행동은 위헌적 계엄권력에 대항한 5·18항쟁(218쪽)처럼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의 위법성에 대항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 장갑차와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섰던 사람들의 헌법수호행동이다(197쪽). 법치주의가 무너졌을 때 다중은 헌법의 실질로서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어선으로 결집하는 힘이다. 이러한 해명을 통해 저자는 ‘아래로부터의 제헌주의적 섭정’을 제안하고 있다. 나는 『빛의 혁명』을 움베르또 마뚜라나 연구자로서 읽었다. 제헌활력을 이루는 생물학적 역학으로서 사회적 결집은 모든 타자를 자신의 살아있음의 일부이거나 모든 차원에서 동반자로 간주하는 현상에 의해서만 그 윤리성을 갖는다. 인간의 선호나 혐오가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 해도 인간의 모든 행동은 구성적으로 다른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자기생성과 인지: 살아있음의 실현』 41∼53쪽 참조) 저자가 광장에서 자생적으로 결집한 다중의 공통장에 깊이 매혹당하는 순간은 책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이 결집하는 힘을 저자는 제헌활력이라고, 모든 필요한 것들이 흐르던 공간을 공통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공통장을 이루는 수많은 이질적인 것들을 물민다중이라고 부른다(521쪽). 저자에게는 여럿이 공통화되는 그 순간은 살아있음의 윤리적·정동적·미학적 경험의 순간이다. 빛의 혁명이 문자 그대로 ‘혁명’인 것은 그 윤리적 성격에 의한다. 『빛의 혁명 183』의 설득력은 지난 광장의 경험을 ‘아래로부터의 제헌주의적 섭정’으로 보고, 여러 개념적 구획을 통해 하나의 정치적 역학으로 해명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