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025.09.17] 생각은 누구 또는 무엇의 것인가? / 박승일 (독립연구단체 캣츠랩 소장·경북대 학술연구교수) 기사 원문 보기 : https://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44196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라는 행위를 의식의 결과로 간주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 계산된 판단, 논리적 추론을 우리는 ‘생각’이라 부르고, 그것이 오직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믿어왔다.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라는 오래된 선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참인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생각, 곧 인지는 인간만의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인지는, 또 인간은 이전과 달리 어떻게 다시 규정될 수 있을까? 아울러 비인간 존재는 또 어떻게 규정되어야 할까? 이 책 『인지와 인공지능』의 저자들은 질문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묻고 따지고 다시 묻고, 손을 내민다. 사유에의 요청이자 경계 너머로의 초대이다. 의식 없는 인지, 인간 없는 사고 1장에서 캐서린 헤일스 미국 UCAL 석좌교수(영문과)는 (의식적) 사고와 묵시적 인지, 비의식적 인지를 각각 구분하면서, “의식이 대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하고 “뛰어난 패턴 인식과 빠른 수용 능력”을 가진, 그러나 잘 인정받지 못하는 인지의 또 다른 층위를 ‘비의식적 인지’로 정의한다. 수풀의 뱀을 밟지 않도록, 또 체스의 판을 한눈에 파악하도록 돕는 것은, 의식보다 먼저 작동하는 비의식적인 인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개념을 한 발만 더 밀고 나가면, 의식 없이도 작동한다는 바로 그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는 인지를 인간 너머로까지 확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의식 중심적인 또는 신경 중심적인 인지가 아닌, 그래서 인간중심적인 인지가 아닌, 비의식적이고 비신경적인 인지의 가능성, 곧 비인간의 인지적 가능성을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비의식적 인지’를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특히 이를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조건과 긴밀히 연결시킨다. 가령 헤일스 교수는 “나는 그 결과(챗GPT가 생성한 텍스트)가 단순한 확률적 예측을 넘어서며, LLM이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언어가 발명된 이후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적응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비의식적 인지라는 개념을 토대로 삼는 한 충분히 예상 가능한 행보이기도 하다. 인지가 의식과 신경 너머에서도 작동한다면, 그래서 인간만이 아닌 다른 존재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마땅히 그 가능성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은주 서울시립대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헤일스의 논의를 이어받는 한편, 이를 인공지능을 비롯한 다종의 인간-기술 배치로까지 확장한다. 마찬가지로 인지는 인간의 뇌 속에서만 발생하는 신경 작용이 아니기에, 인간과 기술, 사회가 얽혀서 작동하는 ‘분산된 인지 시스템’ 또는 ‘인지적 배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체에서 배치로의 이동이고, 도시 교통, 드론 시스템, 금융 자본, 전문 의료, 자동화된 알고리즘 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사고와 판단, 곧 인지가 항상-이미 기술적 매개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결국 인지는 인간과 기술이 공-구성해 나가는 상호침투의 과정(즉 배치)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그 인지적 배치를 새롭게 쟁론화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서 마주하고 끌어안아야 할 질문이자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인공지능 블랙박스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이다. 이 글은 블랙박스를 그저 인간이 알 수 없는 불투명성의 장으로 남겨두기보다는, 프랑스 과학철학자 브루노 라투르(1947∼2022)의 번역 개념을 경유함으로써 “블랙박스화된 인지적 배치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배치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제안한다. 기술이 인지적 배치의 공동 구성자라면, 응당 블랙박스 또한 인간과 기술이 얽혀서 작동하는 윤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현장으로 읽어내야 한다는 주장일 터이다. 타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다소 추상적인 논의는 인공지능이 쓴 「길 위 1번지」라는 소설과 만나면서 비로소 생생한 울림을 얻게 된다. 이 소설은 뉴욕에서 뉴올리언스로 향하는 자동차에 감시 카메라, 마이크, GPS, 시계 등의 장치를 장착해 내외부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인공지능 합성곱 신경망(CNN)과 순환신경망(RNN) 기법을 통해 즉시 텍스트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영수증 용지에 인쇄한 문장들은 얼핏 보기엔 무의미한 조각 같지만, 반복되는 이미지와 인물, 서사가 나타나면서 독특한 리듬과 울림을 만들어냈다. “아침 아홉 시 십칠 분이었고, 집은 무거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윤미선 인하대 교수(영미유럽인문융합학부)가 지적하듯 바로 그 어긋남을 통해 “서사에서 시적 차원을 만들어” 냈다. 미국 출생 영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1843∼1916)가 소설을 “삶에 대한 직접적인 인상”이라고 정의한 바로 그 이유에서,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 텍스트 또한 분명 하나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독자가 이 소설로부터 삶의 인상과 감각, 울림 등을 경험했다면, 이를 소설이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와 같은 오래된 질문이 아닌 “인공지능에게 가능한 창조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비인지적 의식을 핵심 키워드로 삼은 1부에 분석 대상을 일상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한 2부를 더함으로써 그 문제의식을 한층 더 구체화한다. 오릿 핼펀 독일 드레스덴 공대 교수(디지털문화학과)는 지능의 금융화를 다루면서 다양한 금융 장치들이 어떻게 그 정교한 인지적 작동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서로에게 더 많은 부채를 지게 만들”었는지를 분석한다. 문규민 박사(심리철학)는 스마트 시티를 도시 정동의 관점에서 논하면서, 비인간 도시의 지능화가 어떻게 동시에 정동 소외와 신체 감시라는 딜레마를 산출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마지막으로 홍남희 연세대 매체와 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무인 매장의 급속한 증가가 어떻게 그 기술적 배치를 통해 24/7이라는 자본주의의 열망을 지탱하고 또 가속화하는지, 그 가운에 우리는 또 어떻게 스마트한 시민으로 살 것을 종용 받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쟁점화한다. 금융 기계나 스마트 시티나 무인 매장이나 모두 앞서 언급한바 비의식적 인지, 곧 인지적 배치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공지능에게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만 묻고 따지는 사이에, 사실상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점점 더 비의식적 인지의 배치로 채워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질문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온다 그런즉 이 책의 성취는 분명하다. ‘생각’ 또는 ‘인지’라는 행위를 오랫동안 인간 의식의 전유물로 간주해 온 전통적 관념을 흔들고, 그것을 비의식적 층위로, 더 나아가 인간과 기술, 사회가 얽힌 인지적 배치로 확장함으로써, 인지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근본적으로 갱신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인지를 의식의 활동이자 인간의 전유물로만 보던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나, 그 오래되고 단단한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가능성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뿐만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에 대한 새로운 주목도 물론 그 가능성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비의식적 인지와 인지적 배치라는 개념이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기획으로써 설득력을 갖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기술적 행위자를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추상화하는 위험도 더불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인지적 행위자가 되는 것과 그것이 인류에게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1부에서 제시한 비의식적 인지의 가능성과 2부에서 제시한 (그로 인한) 새로운 통치의 가능성은, 즉 더욱 정교화된 지배와 착취의 가능성은 애초부터 공존할 수 없는 긴장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요컨대 1부와 2부의 주장은 어떻게 양립이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1부와 2부 사이의 이 긴장과 모순이야말로 오늘날 인지와 기술을 둘러싼 논의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쟁점인 것이 아닐까? 결국 이 책은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남긴다.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던 인지가 이미 인간 너머의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새롭게 사유해야 하고 또 무엇을 다시금 경계해야 하는가? 예컨대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인가, 아니면 비의식적 인지를 통해 이 세계에 개입하고 있는 새로운 행위자인가? 그리고 그 행위성을 인정한다면, 그로부터 비롯되는 책임과 윤리를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그것은 진정 가능한 일일까? 이 책은 이렇듯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물음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불편하기에 더 정직하고, 위태롭기에 더 매혹적인 질문들이다. 박승일독립연구단체 캣츠랩 소장·경북대 학술연구교수. 지금까지 기술문화연구와 기술철학, 비판이론에 중점을 두고 학제적인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 포스트휴먼, 신유물론 등에 관심을 갖고 공부와 저술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동안 인터넷과 권력, 권력과 저항, 포스트 인터넷, 인공지능 철학 등에 관한 논문을 썼고, 저서로는 『기계, 권력, 사회』와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가 있다. 공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을 아우르는 공부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