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2025.09.09] 『빛의 혁명 183』, 광장을 채운 주체는 누구인가? / 이미정/이름(무위예술가)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jabo.co.kr/40296 ❝이 책은 나 혼자 쓴 책이 아니다. 나의 신체를 통과한 무수한 시민들의 자기 기록이다.❞- 조정환 - 한국의 시민/다중들은 국정농단(박근혜) 탄핵 이후, 친위 쿠데타 혐의의 (윤석열) 대통령까지 8년 사이에 두 명의 최고 권력자를 탄핵시켰다. 특히 2024년 12월 3일, 실패한 친위 쿠데타인 윤석열 정권이 몰고 온 극우의 노골적인 폭력성과 대표적인 보수정당이라는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다시 한번 탄핵을 외쳐야 했던 광장의 시민들에게는 183일 동안에 네 명의 대행이 바뀌는 ‘예외와 초유’라는 수식어가 붙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기간 동안 시민/다중들의 밤은 뉴스 중독과 응원봉 그리고 깃발의 집회로 이어진 불면의 시간이었다. 탄핵 찬성 집회를 밝힌 빛은 바람 불면 꺼지던 촛불에서 발랄한 K-응원봉으로 교체되었고 대중문화 팬덤 기구의 빛을 모아 겨울 동안 눈바람을 맞으며 내란세력과 연동된 극우 출몰에 맞서 늦은 봄을 맞이했다.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가 그 현장을 함께 호흡하며 담아낸 『빛의 혁명 183』은 자율주의 시각에서 신유물론을 접목한 해석과 촛불혁명 이후의 방향성을 정치철학자로서 현장감 있게 분석한 다큐멘터리다. 12.3의 역설적이며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인 『빛의 혁명 183』이 예사롭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2002년 효순, 미선 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을 계기로 전통적인 노동자 시위와 나이 어린 학생들의 촛불이 함께하는 광장의 집회 변화에 주목해 온 저자의 오랜 관찰과 기록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출간은 그의 촛불 시위 시리즈 중 네 번째 책인 셈이다. (『제국의 석양 촛불의 시간』(2003) : 2002년 촛불을 분석 / 『미네르바의 촛불』(2009) : 2008년 광우병 촛불 / 『절대민주주의 : 신자유주의 이후의 생명과 혁명』(2017) : 2014년 세월호 촛불과 연동된 박근혜 탄핵 시위) 베테랑 집회 기록자인 조정환의 『빛의 혁명 183』에는 유독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다. 물민(物民)다중, 물민(物民)광장, 섭정, 제헌활력, 직접민주주의 등 ... 그중 저자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물민다중은 ‘빛의 혁명’에서 가장 큰 개념적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율주의 학자로 국민 대신 다중의 개념으로 촛불운동에서 다양한 연령과 직종 그리고 젠더 등을 아우르며 광장촛불에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른바 ‘대항-섭정’의 다중은 타 국가와 경쟁하고 전쟁하는 국민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바꾸는 운동”임을 강조해 왔다. 여기에 물민이라는 수식어 같은 접두어가 붙으면서 집회광장에 등장한 응원봉과 각양각색의 깃발 그리고 (반려)동물, 트랙터, 은박지 같은 소품과 도구, 장치 등 비인간까지 확장되어 집단정동의 활력이 확장된다. 다중의 해방적 힘은 법이 아닌 물민다중에 의해 발화하면서 물민광장은 생태적이며 정치적인 공간으로 전환되고 확대된다. 이 개념 변화는 다중을 호명해 오던 저자가 2010년 이후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신유물론과 사변적 실재론, 그리고 객체지향 존재론을 접목하며 나타난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한 인식의 확장이자 세계관의 재인식에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물민다중과 연동되어 섭정이라는 단어도 이 책에서 재해석된다. 사전적 의미의 ‘섭정’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존 홀러웨이의 섭정론이 반영되었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의 궐위를 대신하는 대행으로서의 혹은 대의제적 협의의 섭정을 넘어서서 헌정질서를 창출하는 제헌활력으로 직접민주주의에 도달한다. 이 책은 역설적으로 독재자나 대의제의 비상대권이 아닌 시민다중의 ‘비상대권’을 모색한다. 그 모색을 통한 실질적인 주권의 확보가 제2의 내란을 방지할 대안으로 제시된다. 따라서 국민이 담아내지 못하는 다중과 물민다중의 해방적 원천은 존재론적이며 윤리적인 동시에 미학적이다. 이와 관련해 『빛의 혁명 183』 2장에 수록된 “내란을 혁명으로”에서 “편견과 망상에 관해 어느 술집 여자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에 대한” 저자의 주석은 일종의 사례이자 메타포처럼 읽힌다. 12월 11일 오후 부산 서면에서 윤석열 탄핵집회의 단상에 오른 용기 있는 한 여성의 인사말을 성별적 직업적 계급적 편견을 깨고 박수와 환호로 맞이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물민광장“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저기 온천장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입니다.”에 이어 그는 주목할 이슈로 집회 참가자와 온라인 참가자들을 경청하게 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정당이나 후보자 혹은 국힘당을 지지할까?” “왜 촛불혁명은 8년 뒤 비상계엄과 내란을 가져왔을까?”라는 촛불집회의 혁명성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전자와 관련해 “이들은 왜 이데올로기, 이해관계, 커뮤니티의 부추김 등의 감각적이고 상상된 것에 휘둘리는가?”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시민교육의 부재와 그들이 소속된 적절한 공동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자의 의문에 대해 저자는 그동안 좌파 진영에서 촛불집회가 (노동계급의 운동형태가 아니며) 중간계급성의 한계를 갖는다는 계급 비판적 평가와는 상이한 입장에 발언자가 서있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그 원인에 대해 발언자는 “촛불시민들이 촛불 다음에도 계속해서 정치와 우리 주변에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저자는 이를 “실천적 해법”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바로 그 ‘관심’이 ‘아래로부터의 제헌주의적 섭정’임을 조망한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 같은 현상에 문제제기를 하며 내놓는 그에 대한 대안을 나 역시도 온라인에서 관심 있게 기사로 읽은 바가 있는데, 저자는 이 소중한 장면을 휘발시키지 않고 인용과 해석을 곁들였다. 비유컨대 소위 술집여자의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발화를, 저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수 있도록 이 책을 통해 성능 좋은 신종 마이크와 스피커를 연결해 준 셈이다. 자칫 지식권력의 폭력성이 묻어날 수 있는 인터뷰가 아닌 발화자의 인용이라는 스케치에, 자율주의 정치철학자의 주석을 통해 강조점이 인상적으로 채색되었다. 결론적으로 물민광장에서 휴대폰에 입력한 글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유흥업소 알바직원은 그날 고정관념을 깨는 무대의 주인공이었고, 신선하게도 기존 좌파와 다른 시각의 문제제기와 함께 『빛의 혁명 183』의 기록이 되었다. 그 같은 생각과 발언에서 ‘제헌적 활력’뿐 아니라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촉수로 더듬어보게 된다. (저자의 언급대로) 여전히 ‘내란은 진행 중’인데 정권 교체 이후 극우의 난동과 파시즘의 장악이라는 정치적인 악재가 되풀이되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간 시민/ 다중은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 또한 남긴다. 수고스런 탄핵 찬성집회를 통한 헌법재판소의 8 대 0 파면결정과 정권교체가 파시즘을 막아내고 우파를 잠시나마 숨죽이게 견제하는 지금, 세계적으로 극우 정권이 전이되는 시대에 응원봉 집회가 이룬 정권교체는 그 자체로 혁명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앞에서 서술했듯이 대의제에서 독재자의 전유물이던 비상대권을 시민/다중이 주권으로 확보해 제2의 내란을 막는다는 저자의 제안처럼, 이 책은 직접민주주의의 다양한 제도적 가능성을 상상하게 한다. 또한 12.3 사태를 시간 흐름대로 현장에서 섬세하고 심도있게 담아내는 데 있어 정치철학자의 사유가 묻어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종합적으로 정의한바, 자기물민지(自己物民誌)라는 형식을 경험한다. 끝으로 필자는 빛의 혁명 183일 동안 시민들의 뉴스중독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듯한 12.3 사태의 내용을 적확하고 동시대 정치철학자답게 풀어 쓴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프로세스 아트 같은 책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