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5.08.05 | 『실재론의 부상』: 실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5.08.05] 『실재론의 부상』: 실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김남이(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12 실재론에 대한 현대철학의 강한 거부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근대 주체의 발명과 과학혁명이 실재론을 격하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후 역사적 부침을 겪으며 실재론이 가져온 이론적-실천적 무용함 혹은 재앙들에 대한 사상가들의 의식적 무의식적 우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마누엘 데란다와 그레이엄 하먼은 단호히 실재론을 견지하고 각자의 ‘실재’에 관한 규정과 설명을 쉬운 대화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화이트헤드, 라투르까지 철학자들의 실재에 관한 존재론들을 두루 살피면서 자신의 실재론을 정교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대담은 사실상 실재의 존재론을 위한 철학사 여행의 안내서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안내서가 흥미로운 이유는 실재에 대한 두 실재론자 사이의 개념적 차이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회구성주의자, 변증법적 유물론을 포함한 – 데란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 저속 유물론자들, 심지어 대륙철학의 관념론자마저도 결국 실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여행을 거쳐왔다는 점, 그뿐 아니라 오늘날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실재론자가 바로 독자 자신일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생각은 대담자들이 도입한 리 브레이버의 실재론/반실재론 테제들과, 하먼과 데란다가 각각 추가한 두 가지 테제들을 통해서 가능하다.(63-64) <실재론/반실재론 테제들(Realism/Anti-realism Theses)> R1/A1 세계는 마음에 의존하지 않는다/의존한다.R2/A2 진리는 대응이다/대응이 아니다.R3/A3 세계가 어떠한지에 관한 하나의 참된 완전한 서술이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R4/A4 모든 언표는 반드시 참 아니면 거짓이다/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R5/A5 지식은 그것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수동적이다/수동적이지 않다.R6/A6 인간 주체는 어떤 고정된 특질을 지니고 있다/있지 않다.R7/A7 철학의 경우에 인간 주체가 세계와 맺은 관계는 특권적인 관계가 아니다/관계이다.R8/A8 세계는 그 속에서 모든 것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전체론적 존재자가 아니다/존재자이다. 가령 나의 경우 세계는 마음에 의존하지 않는다는(R1) 의미에서 실재론자이지만 진리는 대응이 아니라는(A2) 의미에서 반실재론자이다. 혹은 지식은 그것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수동적이지 않다는(A5) 의미에서 반실재론자이지만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는 특권적이지 않다는(R7) 의미에서 실재론자이다. 하먼은 이런 테제들을 고려하면 칸트나 하이데거 또한 ‘일종의’ 실재론자일 수 있다고 본다. “칸트는 언제나 ‘초월적(transcendental) 관념론자’로 일컬어지지만, 우리가 물자체라는 그의 개념을 진지하게 여기면 그는 일종의 실재론자입니다.”(65. 전체적으로 좋은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서 초월이 초험으로 번역된 점은 아쉽다.) 하먼이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은 칸트가 초월과 초험(transcendent)을 엄격히 구분한 것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칸트에게 초월은 ‘경험에 앞서지만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반면 초험(transcendent)은 다만 ‘경험 너머의 것’을 이른다. 칸트는 모든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의 초월적인 마음의 능력을 경험의 근거로 제한한다는 의미에서 초월적 관념론자이다. 동시에 그는 경험 너머에 있는 사물로서 초험적인 물자체는 형이상학의 문제로서 물리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물자체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실재론자(R1)이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주체와의 특별한 관계를 상정한다 – 이것이 초월을 의미한다 - 는 의미에서 반실재론자(A7)이다. 한편으론 이런 방식으로 실재론을 탐색하다보면 누구나 부분적으로 실재론자이고 부분적으로 반실재론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목록의 테제들이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하먼과 데란다는 이 테제들 중 일곱 번째 테제를 실재론의 가장 강력한 규준으로 둠으로써 그 의구심을 피해간다. 즉 오늘날의 실재론자에게 세계란 인간의 마음과 실천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하먼은 ‘실재적 객체’가 마음 독립적이며, 마음뿐 아니라 다른 ‘실재적 객체’로부터도 물러서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칸트와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적 물자체/존재(Sein)를 세속화한다. 그럼으로써 인간중심적인 상관주의를 강력히 비판한다. 왜냐하면 “물자체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118) 반면 데란다는 마음 독립적인 실재를 긍정하지만 그런 실재는 하먼과 같은 ‘물러난 실재’로서의 본질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객체가 속하는 성향(disposition)으로 특징지어진다. 객체는 “한낱 역량들의 다발”이며 그것이 속한 성향이 그 객체에 “영속성을 부여”한다.(124) “성향은 실재적이지만 현재 현시되지 않는다면 현실적이지는 않다.”(125) 이것을 데란다는 ‘창발적 특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어떤 객체에 지속성을 부여해주는 일종의 구조나 패턴(물리적 정보)이고 사물에 속해있다 – 그래서 데란다는 수학에도 물질적 지위를 부여한다.(33) 이런 맥락에서 성향이나 창발적 특성은 인간의 개념이나 범주와 상관없이 사물을 사물이게 해주는 실재일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객체는 원칙적 차원의 성향을 통해 다른 객체와 규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지속성(불안정성을 포함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들의 실재 개념은 모두 인간중심적인 상관주의를 벗어나 있다는 면에서 공통적이지만 화해될 수 없는 개념적 차이 또한 대담을 통해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하먼의 실재인 객체는 각각의 개체마다 특수한 ‘본질’을 지니고 있기에 그런 본질들을 꿰뚫는 시간적, 유적, 구조적 차원이 인정되기 힘들다. 달리 말해 그의 실재론은 객체의 증식을 막지 못한다. 예를 들면 하먼에게는 얼음/물/수증기는 각각의 객체이고, 죽은 독수리와 살아있는 독수리도 각각의 객체이다. 그러나 데란데에게 객체의 증식이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가능태의 증식, 실재의 변형과 역량의 창발을 저지하기 때문이다.(145) 하먼과 달리 데란다에게 객체는 역동적인 것이고 규칙적으로 변환되는 시간적 존재이다. 그에게는 죽은 독수리와 살아 있는 독수리는 “두 가지 다른 상태에 있는 한 객체”이다.(137) 데란다는 하먼처럼 (실재적) 객체를 실재와 동일시하기보다는 그 객체를 가능하게 하는 역량을 더욱 실재적인 것으로 가리킨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하먼은 데란다의 ‘역량’을 실재적이기보다는 형이상학적이며 탈신체화의 결과라고 생각한다.(142, 149) 결론적으로 이들의 대담은 사변적 실재론이나 신유물론이라는 사조 하에 최근 부상한 실재론자들과 유물론자들 사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실재론 입문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이 강조하는 실재들 사이의 비인간적 관계성 및 객체에 대한 강조는 기후재앙, 생태문제를 비롯한 오늘날의 여러 위기에 일조한 인간중심주의적인 이론과 실천을 반성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대담한 철학적 통찰을 통해 실재의 존재론을 숙고해보는 일은 매우 유익하다. 다만 이들의 대화에서 아쉬운 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만 지적해보자면, 무엇보다도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에 앞선 이론들이나 대륙철학의 영향 하에 있는 동시대 이론(포스트구조주의 등)을 단순하게 캐리커쳐화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하먼과 데란다는 지젝의 유물론을 비판하면서 지젝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인용한다. “유물론의 진정한 정식은 어떤 본체적 실재가 그것을 왜곡하는 우리의 지각 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하나의 일관성 있는 유물론적 입장은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하먼의 강조) 그러면서 하먼과 데란다는 지젝을 근본적인 반실재론자 혹은 유물론을 격하시킨 저급 유물론자로 비판한다. 그러나 하먼이 인용한 지젝의 인터뷰에서 핵심은 하먼이 인용하지 않은 바로 뒷 문장에 있다. “단 하나의 일관된 유물론적 입장은 세계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때 세계는 하나의 닫힌 전체로서의 세계라는 칸트적 의미에서 그러합니다.”(필자 강조)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명시적으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칸트의 이런 주장은 세계는 실재하지 않고 오직 인간 주체의 초월적 이성에 의해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이성이 관념적으로 구성한 것이 ‘세계의 전체성’이나 ‘세계의 무한성’이라는 바로 그 허구적 개념이며 그런 개념으로서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즉 여기서 칸트는 이것을 이성의 ‘환영(illusion)’으로서, 즉 이성의 잘못된 사용의 결과로서 비판하고 있다.(『순수이성비판』의 초월적 변증론에서 「순수이성의 이율배반」 절을 참고. 특히 B533) 물론 칸트는 여전히 ‘제한되고 올바른’ 이성 사용에 의해 세계가 우리 앞에 현상한다고 주장한다는 면에서 실재론에 한참 못미친다. 그럼에도 지젝에게 ‘세계는 비-전체이다’라는 칸트의 통찰은 자신의 (논란이 많은) 부정성으로서의 실재 개념의 단초가 된다. 그것이 해당 인터뷰의 요지였다. 최근의 실재론자들이 관념론과 포스트구조주의의 철학적 주제들(주체, 욕망)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그것을 단순화해서 폐기하는 경향은 우려할 만하다. 이들의 실재론이 인간의 세계에 대한 특권적 관계를 부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을 논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신유물론자들이 생각하듯 언어나 문화만을 중요하게 다룬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런 것들에 대한 불신을 다뤄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른 의미에서 동시대 이론들이 정말로 실재론을 폐기했는가 하면 또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특히 현대의 포스트칸트주의, 사회철학, 인식론과 달리 동시대 미학에서는 언제나 실재가 문제였다. 앙드레 바쟁은 「사진 이미지의 존재론」(1945)에서 “세계의 이미지는 인간의 창조적 개입 없이 자동적으로 촬영”되며 “시공간을 지배하는 조건에서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고 바로 그런 주장때문에 동시대 기호학자와 영화 비평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영화에서 실재론은 뤼미에르로부터 시작해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항상 논쟁의 중심이 되어 왔다. 인상주의 화가 세잔 등의 ‘실재’에 대한 집착, 루카치-브레히트의 리얼리즘 논쟁, 귀환하는 실재가 어떻게 개인의 주관적 트라우마의 증상이 아니라 집단적 좌표에서 물러난 객체인지 보여주는 정신분석적-미학적 의미의 실재 개념까지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먼이 미학을 제일철학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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