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평론 25.08.19 | 『빛의 혁명 183』을 읽고

[자율평론 86호 2025.08.19] 『빛의 혁명 183』을 읽고 / 추유선(시각예술가,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daziwon.com/?page_id=474&uid=11036&mod=document&pageid=1 12월 3일. 그날 밤을 잊을 수 있을까? 다급함과 불안, 그리고 팽팽하게 날 선 긴장감.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까지 시시각각 올라오는 속보들에 하루 종일 핸드폰을 쳐다보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와 사랑이 교차하고 불안과 긴장, 감동으로 쏟아내는 눈물과 거짓, 왜곡에 따른 분노, 그럼에도의 환희 등 다양한 감정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밀려오고 밀어냈다. 그리고 윤석열이 파면됐다.질문이 떠올랐다. 윤석열 파면 집회의 단상에 올랐던 20~30 여성들의 또렷한 마음을 담은 발언들, 결코 뒤돌아서지 않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기개, 1월 4일 밤새 내린 폭설에도 은박 담요만 걸친 채 거리를 지켰던 단단함, 집회가 끝난 후에도 남태령으로 달려갔던 지치지 않는 마음, 헌법재판소의 결정 때까지 응원봉과 깃발을 놓지 않았던 기세는 박근혜 탄핵 집회와 닮으면서도 달랐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리고 매일 열리는 탄핵집회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 외에는 마냥 헌재의 윤석열 탄핵판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이 생겼다. 20~30대 여성들의 ‘또렷한 마음’이 미래가 될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질문을 마음에 담고 책을 펼쳤다. <빛의 혁명 183>은 저자가 12.3 계엄 전과 그 이후 탄핵까지의 매일매일 탄핵 집회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사유를 담고 있으며,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대선에 나왔던 이재명, 권영국, 김문수, 이준석의 연설과 태도 분석을 통해 담아냈다. 책은 계엄 이전 2024년 10월 6일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했다. 집회에 참여하면서 거리에서 느꼈던 탄핵의 징조를 존 홀러웨이 <폭풍 다음에 불>을 기반으로 한 ‘무리’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져왔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가 2016-2017년 촛불혁명에서의 다중의 능동적 정치 행동을 인적청산이라는 제한적 수준에서 흡수하고 다중을 다시 제도 밖으로 밀어냈다고 했다. 이는 반문재인 정부를 표방한 윤석열 정부를 만들었으며, 다중의 능동적 정치 행동 즉, 제헌활력은 탄압되고 억압을 받게 됐다. 그로인해 ‘무리’의 고통과 절규를 불러왔다고 한다. 내란 이전의 징조를 다루는 부분도 흥미로웠으나 2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내란의 과정은 신체적 정신적 경험과 연결되기도 하고 그 과정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어 저자와 정동을 공유하며 읽었다. 12.3 계엄선포 이후 4월 4일 탄핵까지 다른 많은 시민처럼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때 유튜브에서 보았던 시위 참여자들의 발랄함과 강인함도 다시 상기됐다. TK 딸의 선언과 노래방 도우미 여성의 또렷한 발언, 폭설 속에서 강건하게 앉아 있었던 키세스 시위대, 남태령 전봉준 농민투쟁단과 연대했던 말벌 동지들, 그리고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무리들의 투쟁을 ‘제헌활력’으로 해석했다. 즉 제헌활력은 국가의 권력을 넘어서는 과잉, 초과의 권력, ‘제헌권력, 주권’이라고 했다. 윤석열이 계엄에 실패했던 이유도 제헌권력이 제정권력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했기에 국회만 폐쇄하면 자동으로 제헌권력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많은 다양한 매체에서 왜 윤석열의 12.3 계엄이 실패했는지를 분석했다. 군 헬기가 서울로 진입하는 것이 늦어져서, 혹은 국회의 전기를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으나 12.3 계엄 후 늦은 시간임에도 1,500명 이상의 많은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간 것과 다급히 온 국회의원들을 국회 담을 넘게 하여 계엄해제를 의결할 수 있게 한 것으로 귀결됐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은 청년들과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것을 몸으로 막은 국회의원 보좌진들, 몸으로 막아낸 그들이 없었다면 계엄은 성공했을 것이다. 이를 저자의 말로 다시 정리해 보면, 12.3 계엄을 막아낼 수 있던 것은 첫째, 계엄 작전 주체의 밀행성, 즉 이미 다양한 정책적 실패로 인해 윤석열을 따르는 세력이 거의 없었기에 자신이 믿을 만한 극소수의 사람들로 쿠데타를 실행하려고 했기 때문임을 들었다. 두 번째로 ‘군인들의 태업과 시민 다중들의 은밀한 정동적 공감’이라고 했다. 이것은 존 홀러웨이가 <폭풍 다음 불>에서 강조한 비복종, 불복종이나 저항과는 구분되는 ‘무리의 운동방식’이라고 했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계엄령이 선포되자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이라고 세 가지 요인으로 들고 있다. 저자는 12.3 계엄을 선포했을 때 국회로 달려왔던 시민들뿐 아니라 내적 외적 은밀한 정동적 공감을 품고 있었던 다중을 제헌활력으로 보았다. 저자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다중은 저항의 주체일 뿐 아니라 생산의 주체이며,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이다.”를 인용하며 추운 밤 아스팔트에 남아 있던 저들, 사적 이익이 없는 저들이 저항의 주체, 생산의 주체,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인 공(公)민이자 공(共)민인 시민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다시 만난 세계’에서는 내란세력에 저항하며 윤석열의 탄핵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공민 시민들이 집회에서 만들어냈던 담론들이 헌법안으로 흡수되어야 하며 그 권력을 공민인 시민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기본권의 확대와 불가침성, 시민평의회 구성권, 국민소환권, 국민투표권, 시민 예산권, 주권 주체의 복수화 등을 포함하는 개헌과 7공화국의 제기는 정당만 교체되는 수평적 교체가 아닌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정권교체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2025년 4월 18일 MBC 백 분 토론에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표명했던 이재명 후보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까? 저자는 2025년 4월 27일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퇴행했음을 지적한다. 그는 민주주의의 복원과 회복에만 한정시켰다고 했다. 왜 “위대한 국민”은 주권자로 호명될 뿐 기본권 외에는 그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하는 유령적 실체로 전화하는지, 위대성은 왜 평범성으로 축소되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렇기에 국민 다중이 자신의 주권을 대표자에게 위임해서는 안 되며,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의제도는 직접민주주의에 기속된 제도로 배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억압받는 자에게는 ‘예외상태’가 늘 규칙이었다.(발터 벤야민)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집회에 나갔다. 그때 거리에서 전인권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같이 불렀다. 노래 가사와 같이 지나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세계를 만날 수 있게 주문을 외듯이 노래 불렀다. 그러나 수평적 정권만 바뀔 뿐 무리의 절규와 비명은 거리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2024년-2025년 거리에서는 ‘다시 만난 세계’를 깃발을 펄럭이고 어두운 밤을 빛으로 수놓으며 함께 불렀다. ‘걱정 없는 세계’가 아닌 ‘어떤 세계를 만날 것인가’를, 또 다른 윤석열이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 평형수를 가득 채우기 위한 또렷한 마음들이 주장하고 행동했다. 아마 그 또렷한 마음들은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를 때에도 함께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예외상태’가 규칙이 되지 않기 위해.저자는 2016년-2017년 박근혜 탄핵 집회는 탄핵하도록 ‘압박’하는 것이었다면 2024년-2025년의 윤석열 탄핵 집회는 ‘집단적 명령이고 헌법적 행동’이었다고 한다. 즉, 여의도, 남태령, 한남동, 광화문, 안국동 등에 집결하여 탄핵을 명령했고, 공수처가 체포하도록 압력을 넣었으며, 구속하고 기소하고 파면하도록 이끌어감으로써 조기 대선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는 다중이, 빛의 혁명이 열어낸 공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중은 약탈된 국민주권 회복을 위한 내란종식과 정체성주의에 갇혀있는 국민주권의 구성적 혁신인 사회대개혁을 요구한다고 했다.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해 온 대의민주주의는 주권자를 기본권만 남기고 소거하는 방식으로 주권자들 위에서 군림했기에 주권자가 직접민주주의의 섭정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조직화된 다중의 활력으로 사회를 새롭게 발명해 내는 것에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자본과 국가에서 독립되고 연합된 다중의 힘으로 기업이나 국가가 자신들의 기회에 봉사하도록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공통주의이며, 다중의 직접민주주의적 섭정이다”라고 했다. 제헌활력인 국민은 공민의 직접적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현행 자유대의제를 공민에 의한 기속대의제로 전환함으로써 불평등과 차별, 삶의 불안정과 생태 파괴, 팬데믹과 기후 극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파시즘과 권위주의적 억압에 저항을 조직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따라서 공부하고 연락망과 네트워크를 조직해야한다고 강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기대감도 숨기지 못하고 있는데 칼 맑스의 “인류는 자기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제기한다”라는 인용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아마 윤석열 탄핵 집회 때의 또렷한 마음들이 그의 마음에 어쩌면... 어쩌면...을 형성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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