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5.06.13 | 객체지향 철학과 고고학의 만남…“새로운 시간성을 제시하다”

[교수신문 2025.06.13] 객체지향 철학과 고고학의 만남…“새로운 시간성을 제시하다” / 권아람(건국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6499 『반시대적 객체』는 역사를 밝히는 실증적 학문인 고고학과 새로운 인류세의 사고를 여는 객체지향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이 책의 저자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은 인간과 비인간이 동등한 객체로 세계를 구성한다는 시각을 제공한 사변적 실재론의 갈래로써 ‘객체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이라는 이론적 틀을 구축해왔다. 그는 근대철학이 오류를 범한 인간중심주의의 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해 사물을 인간으로부터 자율적인 객체로 독립시킨다. 세계를 인간 사유의 상관물로 간주하는 태도를 거부하고 세계는 인간의 생각으로부터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에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객체의 범위를 사물, 자연을 넘어 개념적 요소인 ‘시간’으로 확장시킨다. 그의 시선은 충분히 반시대적이다. 하먼은 고고학자 크리스토퍼 위트모어(Christopher Witmore)와의 대화를 통해 시간을 인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두 사람의 대화는 철학적 시선이 격변하는 시대에 인류가 오랫동안 전제해온 역사 개념의 기저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수 있는 사유의 단서를 제공한다. 전통적인 고고학은 물질적 유물로부터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연대기적 구분을 도출해내며, 이를 시간이라는 척도로 판단 삼는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선형적이고 연속적이며, 유믈 외부에서 주어진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예컨대, 우리는 고고학적 객체들로부터 발견된 정체성을 ‘절단’하는 행위를 통해 시간대를 구분하고 과거와 현재를 일렬로 나열시킨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와 반대로, 본문에서 언급하는 사례들을 통해 객체들이 시간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객체들로부터 생겨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두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의 연대기적 역사와 보편적 시간 개념은 ‘시간을 달력으로 변환하는’ 수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구성된 틀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 세계는 단선적이고 균일한 시간이 아니다. 역사를 파악하는 일은 물질적 유물의 ‘드러난 표면’에서 ‘한 특정한 사건의 잔류물’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구축한 역사적 견지 안에서만 인식될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표면은 현재에 더 가까운 과거가 더 먼 미래를 지우는 결과로써 드러난다. 하먼은 “객체를 어느 특정한 과거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하려면 우리는 그것의 전사(前史)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마주치는 현재 순간의 완전한 참신성도 무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는 우리의 현재에서 현시되는 모습대로 절대 현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35쪽) 즉, 그는 모든 객체가 시간 안에, 시간 속에서 발생하고 의존한다는 사고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든다. 하먼은 절단할 수 없는 무한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증명하는 제논의 역설과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을 통해 시간은 실재의 표면에 속하고 심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한편, 위트모어는 물질적 유물들로부터 파생되는 시간적 지점들이 불일치하는 지점들을 발견하며, 삼투로서의 시간과 위상학적 시간 개념을 제안한다. 그에 의하면, 기존의 고고학은 유물에서 발견되는 속성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것들을 인과적 흐름 속에 배열함으로써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트모어는 시간을 ‘엔트로피와 존속의 상호작용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는 사물들과 그 주변의 사건들이 일정한 질서에 따라 작동하지 않으며, 일회성과 반복이 뒤섞인 교란 속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이는 선형적인 흐름으로 시간을 이해하는 기존의 관점을 전복시키며, 손수건처럼 접히고 펼쳐지는 위상학적 구조로 제시된다. 이러한 시간 개념이 배로 증식될 때 우리는 경계 없이 스며드는 삼투로써의 시간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109쪽) 결국, 지금까지의 고고학은 ‘인간의 유물’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려는 경향을 취해왔으며, 이는 “오직 인간과 맺은 관계들에 의거하여 이해하려는 경향”(53쪽)이라는 점에서 인간중심적 사고에 기초한 오류 범할 학문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먼의 객체지향 철학은 동시대 근대철학이 지닌 이분법적 사고의 문제점을 집으며, 세계를 이해하는 기준으로 작동해온 역사적 분석에 철학적 관점을 개입시킨다. 다르게 생각하면, 하먼이 제안하는 시간에 대한 철학적 관점이 고고학적 방법론 속에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논의로 확장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받은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 중심적 사고가 인류의 사고와 문화를 지배해온 현재, 두 인물의 만남은 중요한 인식론의 전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반시대적 객체』는 동시대 철학이 지금의 실증주의적 시대에 새로운 사유의 틀을 제안함으로써 여전히 사회에 유효하게 개입하며 역할 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가능성도 드러낸다. 여기서 ‘반시대적’이라는 표현이 내포하는 의미는 단순히 시대 비판적 태도를 뜻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그릇된 사유 구조에 대한 갱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철학의 주요 테제인 시간과 객체에 관한 접근을 1장에서 논의하고 2장과 4장에서는 크리스토퍼 위트모어와 그레이엄 하먼이 각자의 이론을 배경과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이어지는 3장과 5장에서는 다소 어렵고 자의적일 수 있는 개념들을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이 서로의 이론에 관해 대담하는 과정이 실려있다. 더불어, 관련 학계에서 바라보는 다양한 의견들이 두 인물의 대화 안에서 다루어져 독자는 실제 철학적 논의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이 책의 내용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특히, 객체지향철학이 고고학이라는 실증적인 학문과 만남으로써 시간과 공간에 관해, 역사를 어떻게 객체 철학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다시 접근할 수 있는지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음 세대의 사고를 변화시킬 철학적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반시대적 객체』는 최근 부상한 객체지향철학과 그레이엄 하먼에 관심이 있는 전문 독자에게는 물론, 역사, 정치, 문화 등 특히 오늘날 첨예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분야에 통찰을 가진 모든 독자에게 중요한 서적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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