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5.05.30 | 실증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자연’을 다시 쓰다

[교수신문 2025.05.30] 실증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자연’을 다시 쓰다 / 김영진(대구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650 『자연의 개념』이 출판된 시기에 실증주의 사고가 지배적이었으며, 이를 비판하기 위해 다양한 철학적 활동이 발생했다. 당시의 실증주의는 자연과학의 경험적 방법을 통해 반철학적 활동을 추구했다. 즉 검증될 수 있는 관념만을 진리로 수용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 위협을 느낀 철학들, 현상학, 구조주의, 비판이론 등이 당시의 자연과학과 그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조망했다. 후설로 대표되는 현상학은 의식의 지향적 활동, 하버마스와 벤야민으로 대표되는 비판이론은 지배와 해방의 역사적 전략,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로 대표되는 구조주의 이론은 언어의 무의식적 구조를 탐구했다. 그 사상들은 모두 ‘관계’에 관해서 탐색했다. 현상학적 방법은 세계와 의식의 지향적 관계, 비판이론의 방법은 역사적 생산에 대한 인간 주체의 사회적 관계, 구조주의적 방법은 언어의 체계와 개인 언어의 구조적 관계를 고려했다. 하지만 그 철학적 운동의 공통점은 인간의 사유와 언어 및 사회적 활동을 통해서 관계를 보았으나, 자연 내부의 관계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했다. 그런 운동들은 가장 중요한 지점을 간과했는데, 그것은 자연의 이분법의 극복이다. 그러나 『자연의 개념』은 그런 방향과는 달리 근대 과학의 출발점이 되는 전제에서 무엇이 문제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개념을 통해 자연을 탐구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저서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개념』의 목표는 인간의 사고 이전에 자연 그 내부에서 관계를 찾는 것이며, 또한 인간의 사유가 아닌 신체와 자연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사유 이전에 자연 자체 내에서 드러나는 관계를 탐색했다. 대다수가 알고 있듯이, 20세기에 과정과 관계를 사유한 대표적 인물들은 프랑스의 베르그손과 독일의 하이데거이다. 하지만 화이트헤드는 베르그손의 직관의 방법이나 하이데거의 현상학과 같은 비분석적 방법(비과학적 방법)이 아니라, 분석적 방법(과학적 방법)을 통해 관계의 문제에 천착한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가 ‘자연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분석적 개념은 무엇인가? 화이트헤드는 이미 수학과 논리학에 대한 위대한 연구 결과를 제출했다. 그래서 그는 ‘사영 기하학’(projective geometry)의 공리와 ‘술어 논리학’의 개념들을 자연의 개념에 철저하게 응용을 한다. 물론 화이트헤드가 자연이 이런 개념들을 통해 완벽하게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과연 화이트헤드는 어떤 개념을 통해 근대 과학의 한계뿐만 아니라 관념론에 맞선 실재론을 주장할 수 있는가? 한편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플라톤의 우주론과 뉴턴의 우주론이 서구를 지배해왔음을 강조한다. 물론 두 우주론의 차이가 있지만, 그 공통점은 ‘점’의 사유에 있다.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점의 정의(부분을 가지지 않고 크기가 없는 것)에 대해서 『자연의 개념』 9장에서 기술한다. 사실 점에 대한 정의를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유독 이것을 강조하는 화이트헤드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서구의 사유의 출발점이 수학의 ‘점’에서 시작됨을 안 것이다. 플라톤의 ‘선의 이데아’와 뉴턴의 시공간 이론은 모두 유클리드의 ‘점’을 절대적인 근거로 삼았다. 이것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의 기원이 되며, 근대 과학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수학자로서 화이트헤드는 깨달은 것이다. 만약 화이트헤드가 수학자가 아니었다면, 서구 우주론의 영속 불변하는 실체적 사유의 기초가 바로 유클리드의 ‘점의 사유’에 있음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운동과 시간을 연구하는 근대 물리학 역시 점의 정의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음을 알았다. 결국 점을 통한 시공간은 ‘순간’으로 정의된다. 화이트헤드가 볼 때, 이 순간을 통한 시공간과 실체와 속성의 전제가 되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로는 자연과 생명의 과정은 결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자연이 하나의 과정이라면, 유클리드가 말하는 부분이 없는 점의 정의로는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로만 자연을 보게 된다. 즉, 그 개념들은 과정을 기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서양에서의 그 주된 본보기가 바로 제논의 역설이다. 그렇다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관계를 기술할 수 있는 추상 개념은 어떻게 가능한가? 화이트헤드에게 이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과 같다. “어떻게 점은 선의 관점에서 정의될 수 있는가?” 결국 유클리드의 점의 정의에서 드러난 한계와 그 대안을 위해서 화이트헤드는 사영 기하학과 화법 기하학, 술어 논리학을 깊이 연구한다. 그는 『사영 기하학의 공리』(1906)에서 “점들은 존재들의 클라스를 형성한다”라고 하며, 어떤 점은 다른 점들 사이에 있을 때, 조화공액(harmonic conjugate)이라는 관계가 형성됨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점을 선들의 다발로 볼 수 있으며, 최초의 한 점이 고립된 어떤 것이 아니고 오직 다른 점들과의 관계 속에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화이트헤드가 시공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분석적 방법은 사영 기하학의 공리를 적극적으로 자연의 개념들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화이트헤드의 연구자들은 그의 이후의 저서 『과정과 실재』에서는 위상학을 통해 자연과 우주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누구나 『자연의 개념』을 읽게 되면, 화이트헤드가 자연의 과정에 적합한 추상적 개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험의 여정을 걸었음을 볼 수 있다. 그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 환호와 축복이 없는 외롭고도 조용한 사색의 길이었다. 그러나 이 저서만큼 근대 과학의 전제가 되는 ‘자연의 이분법’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저서는 국내외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아주 사소한 흔적을 통해 범인을 잡는 홈즈처럼, 수천 년간 인간의 사유로 파악할 수 없었던 과정을 분석적 방법을 통해 찾아냈다. 물론 어떤 추상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그 과정을 모두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의 개념』 1장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어떤 사유나 개념을 통해서도 “감각 알아차림은 소통될 수 없고, 소진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부 철학에서 인간 사유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세계관이나 상관주의를 거부하는 단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이 책 덕분에 자연의 결과 마디를 제대로 파악한 개념을 통해 내 몸의 일부인 ‘그’ 자연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김영진대구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서양철학한국화이트헤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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