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5.05.28 | 객체를 통해 발생한 새로운 시간성: 『반시대적 객체』를 읽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5.05.28] 객체를 통해 발생한 새로운 시간성: 『반시대적 객체』를 읽고 / 서현식(건축가)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42 객체지향 존재론과 고고학의 만남 “건축, 미술, 문학, 생태학 등 철학 외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혀온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이 이번에는 고고학과의 조우를 통해 사유의 지평을 다시 한번 확장한다. 이 흥미로운 접점의 결실이 국내 번역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 인간이 남긴 유물을 통해 과거를 시간 속에 배치하고, 동시에 그 유물을 통해 시간 자체를 판별해 내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이다. 이처럼 ‘객체’와 ‘시간’이 본질적으로 얽혀 있는 고고학은, 객체를 중심으로 세계를 사유하는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의 객체지향 존재론과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이 책은 『실재론의 부상』처럼 공동 집필된 저작으로, 하먼과 함께한 크리스토퍼 위트모어(Christopher Witmore)는 라투르(Bruno Latour)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을 고고학에 접목해 고고학적 실천을 새롭게 구성한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두 저자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기존 학문 체계에 안주하지 않고, 비판적 거리두기를 통해 독자적인 이론을 구축해 온 인물들이다. 특히 이 책에서 두 저자는 시간을 선형적 흐름이나 단순한 용기(container), 혹은 객체로부터 독립된 실재로 보는 통념에 도전한다. 저자들은 ‘객체들이 시간을 생성한다’는 명제를 중심으로 사유를 전개하며, 시간과 객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무엇이 반시대적인가? 하먼과 위트모어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 사용한 ‘반시대적(untimely)’이라는 표현을 빌려, 자신들의 철학과 고고학이 인문학 전반의 ‘시대적’ 흐름과 어떤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여기서 ‘시대적’인 것과 ‘반시대적’인 것의 구분은 시간을 ‘심층적 실재’로 보느냐, 혹은 ‘표면적 효과’로 보느냐의 차이로 갈린다. 이는 시공간을 사유할 때 객체를 중심에 두는지의 문제와도 깊이 연결된다.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객체를 물질이나 흐름과 같은 본질적이고 연속적인 실재로 환원하려는 니체, 들뢰즈(Gilles Deleuze)를 비롯한 유물론자들, 그리고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현대 철학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하먼은 ‘시간은 실재의 심층에 존재한다’는 통념에 맞서, 객체야말로 실재의 기반이며, 시간은 객체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심층이 아닌 표면에서 창발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시간성은 연속적 변화나 생성 과정보다는, 견고하고 이산적인 개별자로서의 객체를 중심에 놓는 그의 철학과 긴밀히 연결된다. 한편 위트모어는 오랫동안 물질적 유물을 통해 인간의 과거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간주해 온 전통적 고고학의 통념에 도전한다. 그는 고고학을 ‘과거가 현재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이는 객체가 표상하는 과거의 사건이나 행위를 밝히기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한 객체가 현재 우리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위트모어의 전환은 고정된 과거를 전제로 하지 않고,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객체가 어떤 과거를 새롭게 구성해 낼 수 있는지를 탐색함으로써, 고고학을 보다 미래지향적인 사유의 장으로 이끈다. 책의 구조 이 책은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지닌 두 저자가 ‘객체’에 대한 공통된 관심을 중심으로 대담과 독립 서술을 병행하는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1장은 공동 저술로 시작되며, 2장과 4장은 각자의 단독 집필, 3장과 5장은 그 독립적 서술에 대한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다. 여타 공저와 달리 이 책은 각 장마다 두 저자의 학문적 배경이 분명히 드러나며, 때로는 이질적이고 불연속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책 전반에서 논의된 시간 개념들을 간략히 정리하는 결구가 덧붙는다. 단독 집필된 2장 「시간의 고대성: 그리스의 객체들」과 4장 「시간의 근원으로서의 객체들」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시간에 대한 논의를 객체에 대한 선행적 관심 위에 구축한다. 하먼에게 객체란 단지 물질적 사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도, 유령, 미키마우스와 같은 비물질적 존재들 또한 객체로 간주하며, 존재론적으로 동등하고 환원 불가능한 독립적 실재로 간주한다. 위트모어 역시 이러한 객체 개념에 동의하지만, 고고학적 실천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논의는 주로 물질적 유물에 집중된다. 이는 단순한 학제 차이를 넘어 물질을 철학적으로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입장 차이를 드러낸다. 객체지향 존재론의 사중 구조와 시간론 하먼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객체로 간주하며, 이들 모두는 동일한 존재론적 구조를 갖는다고 본다. 그는 이를 두 개의 ‘균열’에서 파생된 사중 구조(quadruple object)로 설명한다. 첫 번째 균열은 객체의 실재적 차원(real object)과 감각적 차원(sensual object) 사이의 긴장이며, 두 번째 균열은 객체와 그것의 성질(qualities) 사이의 분리를 가리킨다. 이 두 균열의 교차점에서 네 가지 요소—실재적 객체(RO), 감각적 객체(SO), 실재적 성질(RQ), 감각적 성질(SQ)—가 생성되며, 이는 하나의 객체가 결코 스스로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의 토대가 된다. 하먼은 시간, 공간, 본질, 형상이라는 존재론적 범주들이 이 네 항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이 가운데 시간은 감각적 객체(SO)와 감각적 성질(SQ) 사이의 긴장에서 비롯된다. 즉, 시간은 객체 외부에 실재하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객체가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성질과 상호작용을 하는 표면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그는 이를 객체와 성질의 놀이라고 표현하며, 이 놀이가 모든 것을 발생하게 하거나, 어떤 것을 발생하게 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말한다. 하먼은 시간의 자리를 첫 번째 균열에서 감각적 차원에 전적으로 배치한다. 시간은 객체의 심층부—물러서 있고 접근 불가능한 실재적 영역—에 속하지 않으며, 객체들이 감각적 차원에서 맺는 표면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실재적 객체는 서로 직접 접촉할 수 없으며, 감각적 객체를 매개로 한 대리적 관계를 통해서만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은 이러한 감각적 접촉, 즉 표면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이 감각적 상호작용은 객체의 내적 실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드물게 그 표면적 접촉이 실재적 차원에까지 파급되는 순간이 있으며, 바로 이때 진정한 변화가 발생한다. 이러한 실재적 변화는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가 말하는 단속적으로 명멸하는 존재자, 혹은 들뢰즈의 생성 철학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흐름과는 달리,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예외적 계기들이다. 하먼은 『비유물론』에서 이를 인생의 전환점에 비유하며, 대략 5~6번 정도 일어나는 드문 사건들이라고 언급한다. 그는 “사실상 장기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안정성이 지배하는 시기들이 있다. 그 밖의 시기들에서는 하나의 위기가 그다음 위기를 초래하고, 심지어는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268쪽)고 말한다. 이러한 감각적 상호작용이 실재적 객체의 내면에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제3의 객체가 탄생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과 역사 속에서 하나의 중대한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심미적 경험의 계기이기도 하며, 객체와 성질 사이에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때 객체는 물러서고 성질만이 감각적으로 잔존하지만, 성질은 객체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기에 다시금 객체를 요구하게 된다. 하먼은 이러한 미적 경험의 전형적인 사례로 호메로스의 표현인 “포도주 빛 짙은 바다”를 자주 인용한다. 이 표현에서 실재적 객체인 ‘포도주 빛 바다’는 접근 불가능한 상태로 사라지고, 감각적 성질인 ‘포도주의 색’만이 지각자의 인식 속에 남는다. 그러나 이 성질은 그 자체로 완전한 실재성을 갖지 못하고, 새로운 객체를 구성하기 위한 관계망 속에 다시 놓이게 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지각자인 ‘나’는 사라진 바다를 대신하여 감각적 성질을 매개하는 일종의 ‘메소드 연기자(method actor)’로 작동하게 되며, 이로부터 제3의 객체가 창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객체지향 존재론에서 시간, 역사, 미적 경험이 교차하는 방식에 대한 함축적인 설명으로 기능한다. 객체들이 생성하는 다양한 시간 하먼과 위트모어는 절대적이고 균일하며, 모든 사건과 무관하게 과거-현재-미래의 단일한 방향으로, 직선적으로 흐른다고 가정하는 뉴턴식 선형적 시간 개념을 비판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삼투하는 시간’과 ‘위상학적 시간’ 같은 비선형적 시간 개념을 제시한다. 위트모어는 미셸 세르(Michel Serres)의 '삼투'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삼투하는 시간’을 제안한다. 이때 삼투란 단순히 물질 간의 투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객체들 사이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활동력으로, 가속, 역류, 맴돌이와 같은 비선형적이고 역동적인 시간성을 함축한다. 위트모어가 이 개념에 주목하는 이유는, ‘삼투’가 시간의 흐름을 생기 있게 묘사하면서도, 베르그송(Henri Bergson)이나 들뢰즈의 '유동(flux)' 개념처럼 모든 존재를 연속적인 흐름 속에 용해시키는 형이상학을 전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다. 삼투하는 시간 속에서 객체는 고유한 지속을 지니며, 서로 다른 시간적 층위에 속하면서도 동시적으로 현존할 수 있다. 예컨대 그리스의 고대 무덤에서 발견된 미케네 문명의 유물과 그 유물 위에 깔린 1990년대의 아스팔트 조각은 선형적 시간 개념에서는 수천 년의 간극을 두고 분리되어야 마땅하지만, 삼투하는 시간 개념에서는 이질적인 두 객체가 같은 장소에서 현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공존한다. 이러한 접근은 고고학의 전통적인 시간 이해—즉, 과거를 선형적 연대 속에 배치하고, 그로부터 현재를 해명하는 방식—에 도전하며, 고고학을 과거의 복원이 아니라 현재 속 객체 간의 관계망을 통해 ‘과거가 어떻게 현재 속에서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탐구하는 미래지향적 학문으로 재구성한다. 반면 하먼의 ‘위상학적 시간’은 선형적 시간에서의 연대기적 거리와 무관하게, 객체들 사이의 형태적 유사성에 기반한 시간 개념이다. 위상학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점들을 형태적 유사성을 통해 서로 가까이 놓으며, 달력상의 시간 간격을 제거하고 객체들을 시간적으로 밀착시킨다. 또한 그 반대로, 표면적으로는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들 사이에 내재한 방대한 시간적 격차를 강조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즉, 위상학은 시간을 수축시킬 수도 있지만,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펼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하먼은 선사시대의 불, 신석기 시대의 바퀴, 19세기의 피스톤, 20세기의 컴퓨터와 에어백 등 이질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기술 요소들이 결합된 복합체로서 현대의 자동차를 제시한다. 이러한 객체는 단일한 시공간의 산물이 아니라, 비동시적인 기술들이 형태적 유사성을 통해 한데 결합된 위상학적 객체로 이해된다. 또 다른 예로 그는 카르타고에서 인신 공양에 사용된 바알 상의 비어 있는 내부 구조와 챌린저호의 구조적 형태 사이의 유사성, 그리고 파시즘과 현대 미국 정치 사이의 형태적 반복성을 언급하며,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는 형태의 접속을 설명한다. 이처럼 위상학적 시간은 단순히 시간을 재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객체 간의 관계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고 사유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위트모어의 삼투하는 시간과 비교할 때, 하먼의 위상학적 시간 개념은 물질보다 형태를 중시하는 그의 존재론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하먼이 『실재론의 부상』에서 마누엘 데란다와 나눈 깊이 있는 논쟁의 핵심 역시 물질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있다. 하먼은 물질(질료)을 존재의 궁극적 기반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존재론적 논의에서 그것을 배제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당신이 사물들에 관해 작업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런 사물들의 형태들에 관해 작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과 같은 것은 결코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373쪽). 하지만 위트모어의 삼투하는 시간과 하먼의 위상학적 시간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닌 선형적 시간에 대한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삼투는 주로, 시간이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게 함으로써 선형적 시간을 뒤엎지만, 위상학적 시간은 다른 방식으로, 시간적 거리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킴으로써 선형적 시간을 뒤엎습니다.”(193쪽) 하먼과 위트모어가 주장하는 객체들이 생성하는 시간 개념은,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에서 나타나는 긴장 상태와 유사하다. 후설에 따르면 하나의 객체는 감각적 속성들이 변화하지만, 동일성을 유지하며 지속된다. 즉, 성질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객체는 안정된 동일성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데리다(Jacques Derrida)를 비롯한 ‘차이의 철학들’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데리다에게 시간은 동일성보다 차이의 연쇄 속에서 생성되며, 의미와 정체성은 항상 유예되고 흔들린다. 반면 하먼과 위트모어에게 객체는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유지하는 실재로 간주된다. 시간은 이러한 실재 객체의 지속성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감각적 변화를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위트모어의 경우, 객체의 동일성과 안정성은 고고학적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내일, 다음 주, 내년, 심지어 20년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리라 기대되는 미케네 시대의 다리를 예로 들어, 객체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동일성의 중심축으로 기능하는지를 강조한다. 이는 하먼의 존재론과 마찬가지로, 객체의 자율성과 실재성이 시간 구조의 기반을 이룬다는 관점을 잘 보여준다. 객체의 실재적 변화와 객체의 안정성 이처럼 변화하는 감각적 성질 속에서도 객체는 동일성을 유지하는 안정된 존재이며, 하먼이 『비유물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듯, 객체의 실질적 변화는 매우 드물고 예외적인 사건으로 제한된다. 하먼은 객체가 평생에 단 5~6차례 정도의 진정한 변화를 겪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존재론적 입장은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공생 이론을 통해 새로운 객체의 출현을 설명할 때도 유지된다. 공생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객체(공생체)는 독립된 실재로 등장하지만, 이를 구성하는 각 하위 객체(예: 세포, 박테리아)는 여전히 자율적 실재로 남아 존재를 지속한다. 이는 외적 성질이 변화하더라도 객체 내부의 실재는 유지된다는 하먼의 존재론—즉 객체의 근본적 안정성과 자율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객체의 안정성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하먼이 고대의 역설인 테세우스의 배 문제를 논의하면서, 오히려 파괴되고 일부가 제거된 배—즉 손상된 형태의 객체—가 그 객체에 대해 더 많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이다. 이는 물질적 감소가 오히려 개념적 명료성을 강화한다는 주장으로, 외형이 아무리 변해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안정된 객체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통찰이다. 위트모어가 예시로 드는 노르웨이의 버려진 어선이나 고고학적 폐허도 마찬가지다. 물리적 퇴락 속에서도 이들은 객체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며, 시간 속에서 동일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객체들이 생성하는 다양한 시간 개념은, 동일성을 유지하는 안정된 객체와 변화하는 성질 사이의 긴장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객체지향 존재론의 독자적인 형이상학적 구조와 깊이 호응한다. 방법으로서의 객체지향 존재론의 가능성 이 책에서 하먼은 주로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서술을 전개하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쿼드러플 오브젝트』나 『비유물론』에서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던 ‘시간’ 개념을 객체지향 형이상학의 핵심 요소로 정교하게 탐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 독자에게는 역사학의 하위 분과로,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고고학’이라는 분야를 전면에 내세운 점도 흥미롭다. 위트모어는 고대 그리스의 풍경 속에서 마주한 구체적인 객체들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시간 속에서 현재의 객체를 단순한 잔존물이 아닌 과거를 새롭게 구성하고 감각하게 만드는 실재적 매개로 제시한다. 이러한 시도는 객체지향 존재론의 철학적 탐색이 어떻게 물리적 현장과의 만남을 통해 감각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의 말미에서 위트모어가 하먼에게 던진 질문은, 객체지향 존재론이 단순히 이론적 체계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철학자뿐 아니라 예술가, 과학자, 고고학자 등 서로 다른 영역의 독자들에게도 또 다른 ‘에피소드’를 창안할 수 있는 창의적 계기를 제공한다. 하먼 역시 객체지향 존재론을 일종의 ‘기계적’ 방법으로 적용해 보는 것을 제안하며, 이를 통해 기존의 상황을 뒤흔들고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보기를 권한다. 그는 “‘방법’에 대한 저의 감각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기계적으로 적용됨으로써 어떤 상황의 기존 상태를 뒤흔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단의 느슨하고 유익한 규칙에 대한 감각입니다”(410쪽)라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을 가장 의미 있게 읽고 활용하는 방식은, 객체지향 존재론을 자신이 속한 구체적인 맥락에 적용해 봄으로써, 기존 질서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가능성의 장을 열어보는 실천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분과학문들에 적용할 규정을 제정하는 OOO와 관련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건축적 OOO 또는 트로이의 OOO를 저술할 방법을 배우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4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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