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025.04.04] 기묘함과 함께 ‘고리’ 속에서 살아가기 / 박미영(중앙대 영상학과 BK사업단 연구교수)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2667 티머시 모턴 미국 라이스대 교수(영문학과)의 책 『어두운 생태학』은 ‘미래 공존의 논리를 위하여’라는 부제처럼 인간과 생물에 관한 새로운 생태적 사고를 촉구한다. 이 ‘새로운’ 사고는 얼마나 새로운 것일까. 잠깐 시계를 돌려 2000년대 초반을 떠올려 보자. 기후위기나 인류세에 대한 논의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밀레니엄 이후로 지구적 규모의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학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문화 분야에서 등장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주변화된 인간-자연 혹은 비인간적 존재와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소위 환경주의 영화들을 제작했다. 「투모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 | 롤란트 에머리히 감독 | 2004)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하지만 데이비드 인그램 영화연구가의 지적처럼, 이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환경을 구해야 한다는 생태주의적 메시지를 낭만적 태도로 이끌어내고 있다. 2004년 UN 글로벌 콤팩트(UNGC)가 발표한 「배려하는 자가 승리한다(Who Cares Win)」이라는 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친환경 경영 전략이 확산되기도 했다. 지속가능성을 표방하지만 이 또한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있다. 모턴이 생각하는 새로운 생태적 사고는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간 중심의 윤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을 비-인간 생명체인 타자로서 인간과 구분하는 개념 자체를 문제 삼으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생태적 알아차림이라는 경험의 미학, 즉 어두운-우울함이자 어두운 기이함(20쪽)이 있다. 이것은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이 주장하는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처럼 인간과 비-인간을 서로 개입할 수 없는 실재적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하먼은 예술과 객체에 대해 칸트와 마찬가지로 사심 없는 관조가 미적 경험의 자율성을 담보한다는데 동의하면서도, 미적 객체와 그 감각적 성질들 사이의 균열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사심 없는 관조가 최우선의 미적 태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미적 감상자가 진입하여 사라진 실재적 객체를 대체해야 하기 때문”이다.(『예술과 객체』 100쪽). 결국, 객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관객을 경유해야 하는데, 객체로서 예술작품의 경험은 숭고미에 가깝다. 이 숭고미는 객체가 결코 양적으로 혹은 질적으로 절대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20세기 미학적 모더니즘이 지향하는 숭고함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하먼이 말하는 객체의 숭고미는 개별 주체의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찰나의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포착될 수 없는 존재와의 관계성이 지닌 힘의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은 객체를 무정한 존재로 바라보면서, 존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신 그들 사이의 관계 맺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 점에서, 스티븐 샤비로 미국 웨인주립대 교수(영어학과)는 『사물들의 우주』에서 화이트헤드의 관계적 모형을 바탕으로 한 패턴을 갖춘 대비로서 아름다움을 옹호하면서, 하먼이 “관계성의 지위를 약화시키면서 상관주의에 반대한다”라고 비판한다. 하먼이 아름다움과 숭고미를 구분하지 않지만, 샤비로는 무심한 존재론적 물러섬을 전제하는 숭고미와 달리 아름다움은 감응하고, 매혹시키고, 변화시키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지닌 정동적 경험이라고 본다. 그는 “비록 당신이 나의 내적인 삶을 알지 못해도 당신의 행동은 그것에 깊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나를 부르는, 나를 스치는, 나를 기쁘게 하거나 역겹게 하는, 혹은 그렇지 않다면 표면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사물들에 의해 감응되고 변화된다”라고 말한다. 조금 돌아왔지만, 하먼의 관점과 비교해 볼 때 모턴의 사유는 존재의 자율성에 기반한 숭고미보다는 상호의존적 존재의 나타남의 낯섦이라는 기묘한 경험에 무게를 둔다. 생태적 알아차림의 기묘함은 비틀린 고리의 형태로 현재와 미래의 일부로서 과거에 접근하는 시간성이기도 하다. 이 책이 ‘끝난 이후에 시작하기’로 시작해 ‘시작 전에 끝내기’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도 필자의 철학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객체지향존재론을 주장하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모턴은 이 고리에서 벗어나기보다는 인간 또한 이 고리 속에서 살아갈 운명임을 주장한다. 타자로서 자연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에게 동등한 지위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객체들로서의 인간 자신에 대한 감각의 상실을 인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145쪽). 모턴에 따르면, 자기에 관한 특정한 관념 없이도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에코그노시스적 관점은 인간 역시 비인간 존재자와 얽혀있임을 알아차리는 것, ‘낯선 고리를 함의하는 자기-앎의 알아차림’이 필요함을 강조한다(176쪽). 이것은 정치적이거나 윤리적인 당위성이 아니라 비인간으로서 인간 존재의 뒤얽힘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턴의 사유는 그동안 새로운 환경의 리얼리티를 의인화를 통해 인간적 가치를 기준으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생각하려는 경향에 반기를 들면서 “비인간들이 생물학적, 사회적 수준에 뿐만 아니라 사고와 논리의 구조 자체에, 인간의 심오한 수준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포함해 이들과 공존하는 생태적 사고와 예술·윤리·정치를 촉구한다고 볼 수 있다(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