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024.11.06] 물질적 통치의 사유, 오이코노미아의 정치적 지평을 향하다 / 권두현(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27011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1970년에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의 취임강연은 1970년 12월 2일 ‘담론의 질서(L’ordre du discours)’라는 제목으로 행해졌고, 이 강연은 이듬해 같은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푸코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그를 일종의 ‘담론적’ 이상주의자로 재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발적이게도, 토마스 렘케(Thomas Lemke)는 미셸 푸코의 작업이 ‘신유물론적’ 접근을 재고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물의 통치(The Government of Things)’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렘케가 보기에 푸코가 통치에 대해 ‘인간-너머’의 분석을 적극적으로 추구한 적은 없지만, 푸코의 작업에는 이제껏 강조되지 않은 중요한 착상이 존재한다. 행위성과 존재론에 대한 관계적 설명 ‘통치’가 인간과 사물 간의 관계, 즉 ‘오이코스(oikos)’의 문제라는 점이다. 사물의 통치(갈무리, 2024)에서 렘케는 푸코가 일관되게 논의하거나 적극적으로 발전시키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기반으로 삼아, 이들을 보다 일관된 ‘신유물론’적 접근으로 정리해 보인다. 이 과정에서 렘케는 푸코로부터 가져온 개념적 착상뿐만 아니라, 과학기술학으로부터는 경험적 통찰을, 그리고 신유물론적 사유로부터는 영감을 취함으로써 ‘사물의 통치’라는 개념을 완성하여 독자 앞에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렘케는 자신이 제안하는 ‘사물의 통치’가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행위성과 존재론에 대한 관계적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임을 강조한다. 미셸 푸코의 개념을 장치로 삼는 『사물의 통치』는 푸코가 주장한 장치의 속성이 그러하듯, ‘전략적’이다. 첫째, 그 전략은 ‘물질적 초점화’에 있다. 『사물의 통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시도는 푸코를 이해하는 키워드로서 ‘담론’에서 ‘물질’로의 전환이다. 이는 푸코를 경유하여 인문사회과학의 ‘물질적 전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전략의 의미를 지닌다. 둘째, 그 전략은 ‘이론적 정교화’에 있다. 오늘날 ‘신유물론’이라고 뭉뚱그려진 물질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정교화하는 것이다. 신유물론에 대해 렘케는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의 ‘객체지향 존재론’, 제인 베넷(Jane Bennett)의 ‘생기적 유물론’, 마지막으로 캐런 버라드(Karen Barad)가 제안한 ‘행위적 실재론’의 세 가지 접근법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비판한다. 세 가지 접근법은 각각 차이를 드러내며 정교해지지만, 뚜렷한 경계를 그리기보다는 관계를 그리면서 궁극적으로 렘케가 제안하려는 푸코의 역동적 유물론과 재접속한다. 셋째, 그 전략은 ‘대안적 정치화’에 있다. 물질성에 대한 재고찰을 통치, 더 나아가 정치의 문제와 연결하여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새로운 형태를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신유물론을 생명정치에 대항하는 대안적 이론의 자리로 데려가고,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 복합체의 대항적 실천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다. 장치, 기술 그리고 환경 토마스 렘케가 캐런 버라드와 제인 베넷, 그레이엄 하먼의 논의를 검토하는 것은 미셸 푸코가 기존의 ‘신유물론적’ 접근의 문제점을 적절히 해결함으로써 물질 일반, 즉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유물론적 인식론을 제공할 수 있다는 그의 작업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 기반을 이루는 핵심적 개념은 ‘장치(dispositif)’, ‘기술(technology)’, ‘환경(milieu)’이다. 세 가지 개념에 대한 렘케의 분석은 유물론자로서 푸코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시도의 핵심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과학기술학 및 신유물론과의 유효한 접점을 마련해낸다. 예컨대, 토마스 렘케는 “푸코의 장치 개념은 ‘사물들을 배열하기’로서의 통치에 관한 물질-담론적 이해로 특징지어짐을 보여준다(26쪽)”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렘케는 푸코의 장치 개념에 있어서의 독창성이 담론적 요소와 비담론적 요소를 조합한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렘케는 기구(apparatus) 및 회집체(assemblage) 개념과의 차별화를 통해 푸코의 장치 개념을 설명한다. 렘케 자신도 푸코의 초기 텍스트에서 장치라는 용어의 의미가 기구라는 기술적 의미에 가깝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이러한 용법은 렘케의 재해석을 통해 사물들의 어떤 주어진 질서의 도구들, 기계들, 연장들, 부품들, 또는 그 밖의 설비들의 ‘정적 집합체’인 기구와는 다른 사물들의 ‘전략적 구성’으로서의 배열 또는 네트워크의 의미로 새롭게 드러난다. 배열과 네트워크로서 장치의 의미는 회집체의 개념과 만나 한층 정교해진다. 두 개념의 차이는 회집체가 대체로 창발, 혁신, 그리고 창조와 관련이 있는 반면에, 장치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정돈하는―다시 말해, 질서있게 배열하는―안정화의 움직임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 있다(178쪽). ‘장치’를 ‘기구’ 및 ‘회집체’와 구별하는 렘케의 목적은 장치를 ‘전략적 관여(strategic concern)’로 드러냄으로써 사물의 존재론을 정치의 지평으로 이끌고, 더 나아가 통치에 대한 물질적 접근의 길을 여는 것이다. 렘케는 기존의 ‘신유물론적’ 접근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은 다른 물질과의 상호작용(inter-action) 또는 내부작용(intra-action)을 통해 그 성질 또는 속성을 획득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렘케는 기존의 ‘신유물론적’ 접근들이 강조하지 않았던 ‘전략’의 사유를 통해 물질이 사물이 되어 인간과 만나는 배열과 네트워크의 지평, 즉 ‘안정화’의 지평까지를 시야에 담는다. 이렇게 ‘담론의 질서’는 ‘사물의 질서’와 조우하고 결합한다. 통치, 인간과 사물로 구성된 복합체 요컨대 통치는 인간과 사물로 구성된 복합체에 관한 것이다. 이는 토마스 렘케가 주장하기에 앞서 이미 미셸 푸코가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푸코는 무엇보다도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어떤 권위에 의해 통치될 것인지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푸코적 유물론은 개별 행위자와 그들의 역량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창발의 조건과 행위의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푸코는 ‘통치’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맥락에서 인간의 행동과 행위를 (영혼, 자아, 아동, 인구, 국가 등의) 지배 문제와 관련하여 설명하는 데 관심이 있기에, 비인간의 행위적 역량을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이른바 ‘인류세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렘케가 푸코의 ‘통치’를 인간과 비인간 세계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주장하는 것은 푸코 자신이 회피하고자 했던 ‘인류세적’ 사유를 푸코에게 주입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그렇다면 비인간을 포괄하는 통치의 사유를 왜 하필 미셸 푸코로부터 끌어내야 하는 것일까. 『사물의 통치에서 이루어진 토마스 렘케의 검토에서 이미 드러나다시피, 최근 많은 학자들이 비인간의 생기성(vitality) 또는 유생성(animacy)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론적 전환’의 저자들은 종종 원주민 지식이 비인간 행위자성 이론에 미친 영향을 인식하지 못한다. 식물, 동물, 미생물과 같은 유기체뿐만 아니라 돌, 산, 강과 같은 비유기체 등 모든 것이 에너지와 고유한 지능과 창조 과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이것이 원주민의 애니미즘(animism) 관점이다. 애니미즘은 그저 ‘미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와 그 통치에 대한 응답이다. 원주민 지식 체계에는 비인간, 즉 인간-너머의 존재의 힘을 인식하는 전통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전통 또한 렘케의 사유와 뚜렷한, 커다란 접점을 가지고 있다. 신유물론적 접근의 계보를 굳이 푸코와 연결하지 않더라도, 그 사유에 더 적합한 지식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오이코노미아의 지식은 여전히 비(非)-지식인 것처럼 다뤄지고 있지만 말이다. 토마스 렘케의 접근은 미셸 푸코‘만이’ 아니라 푸코‘마저’ 그 지식의 관계에 있음을 ‘전략적’으로 환기하는 것으로 독해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장치’의 사유다. 렘케를 통해 푸코는 계보학의 이론가에서 관계론적 존재론의 이론가로 전환된다. 렘케가 푸코를 인용하며 강조했듯이, “장치는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회집하고 그 자체가 이런 “형성”의 과정의 결과이다(161쪽)”. 푸코에 의해 렘케의 이론 또한 마찬가지 함의를 가지게 된다. 물질적 담론이자, 담론적 물질로서 렘케의 이론은 다른 이론과의 경계가 아니라 관계를 이룬다. 실제로 렘케가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신유물론적 접근들은 렘케의 이론을 뒷받침하며 보다 선명한 이론적 네트워크의 지형으로 재배열된다. 토마스 렘케가 정확하게 발견했듯이, 미셸 푸코에게서 모든 개념은 역동적이거나 복잡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렘케의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개념을 관통하는 복잡한 환유는 용어 자체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맥락에서의 접근 방식을 독특하게 만드는 선택에 존재한다. 그 선택을 위한 지도로서 『사물의 통치』는 유효한 윤리-존재-인식-론(ethico-onto-epistem-ology)의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이 장치가 가리키는 전략적 목적이 오이코노미아의 정치적 지평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미셸 푸코의 사유와 원주민의 지식이 긴밀한 관계로 배열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