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24.07.05] [책&생각] 작아져라, 서로 이어지고 의존할 수 있게 / 최원형 기자 기사 원문 보기 :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47805.html 인류가 지구의 지질과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주목하는 ‘인류세’ 담론을 들여다보면, 꽤나 얄궂은 역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가 지구를 인류세에 빠뜨린 장본인이라면, 인류는 어떤 방식으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책임에 걸맞은 행위를 하라고 인류에게 요구하는 것은, 애초 이 위기를 만들어낸 인간-비인간의 이분법과 거기에 담긴 인간중심주의를 방향만 바꿔서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인류가 여태껏 그래왔듯 사물들을 자기만의 목적으로 형성해내는 능력을 발휘해 “답을 찾아”낸다면 그만인 걸까? 티머시 모턴(56)은 이른바 ‘객체지향 존재론’(OOO, Object-oriented ontology)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전개해온 철학자·생태이론가다. 그는 모든 인간-비인간 존재자, 곧 사물들의 비환원적이고 개별적인 본질에 주목하는 객체지향 존재론을 토대로 삼아 새로운 ‘생태정치’를 추구하는데, ‘초객체’(hyperobjects)는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개념이다. 초객체란 국지적인 범위를 벗어나 시간과 공간에 대량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우리가 그걸 존재자라고 인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물을 말한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 블랙홀, 스티로폼, 항생제, 자본주의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기 위한 시도다. 2021년 모턴이 인류학자·미디어 제작자 도미닉 보이어와 함께 펴낸 ‘저주체’는 초객체적인 시대에 우리가 어떤 실천을 해나갈 수 있을지 탐색하는 책이다. 엄밀하고 탄탄한 논증 대신 놀이처럼 때론 혼잣말 같고 때론 대화 같은 즉흥적인 진술을 이어가는, 실험적인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