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 2024년 3월호] 동일성의 시대, ‘바깥’에 있는 신의 음성을 듣다 / 안규식(한국신학 연구자)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47 우리는 동일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동일성은 자기 긍정성과 다르지 않고, 자기 긍정성은 자신에게 낯선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반하는 타자성을 부정성으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을 ‘무한하게’ 중심화하고 강화한다. 오늘날 인간의 초월은 자기(self)를 중심으로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켜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는 ‘이상한’ 초월이다. 우리 사회에 암울하게 깔린 타자성을 제거한 자기 동일성의 이상한 초월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특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과는 다른 ‘이질적인’ 타자를 배제하고 제거하려는 동일성의 정치, 온갖 종류의 차별과 혐오, 배타주의, 이질적인 것이 없는 진공으로 채워진 공허함,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 갉아먹는 자기 착취 등이다. 문제의 배후에는 타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상실한 이 시대의 동일성 과잉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질적인’ 타자의 음성을 어디서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동일성을 극복할 수 있는 자기-초월의 가능성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메롤드 웨스트폴(Merold Westphal, 1940-)은 《초월과 자기-초월》(갈무리, 2024)에서 인간의 자기-초월을 위한 근거는 신의 초월성이고, 신에 관한 담론은 인간의 자기-초월로 드러나는 변형과 연관된다는 탈-종교 시대에 과감하게 들릴 수 있는 주장을 펼친다. ‘초월과 자기-초월’이라는 이 책의 주장은 단순하다. 하지만 이 주장을 독자 앞에서 펼치기 위해 동원되는 서구의 지적 전통에 대한 웨스트폴의 독해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웨스트폴은 자신의 주장을 펼칠 지적 맥락을 포스트모더니즘 곧 탈근대성으로 규정한다. 그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은 타자성과 탈중심성이다. 따라서 자기-초월이 희석되거나 제거된 근대성의 자기중심성이 그가 극복하고자 하는 문제라면, 그에 대응하는 탈중심적 자아(decentered self)를 찾기 위해 전근대성과 탈근대성의 지적 흐름 속에서 신의 초월성을 통해 인간의 자기-초월에 관한 근거를 발견하려는 것이 그의 해답이다. 무엇보다 자기-초월은 타자에 대한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관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웨스트폴은 이 책의 전체적인 기획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신의 타자성, 곧 명령하고, 심판하고, 은혜로 용서하는 신의 타자성을 가장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인 윤리적/종교적 초월이며, 이 신이 인간 자아에 가장 심원한 자기-초월의 차원을 불러온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전개는 신을 세계에 대한 타자로, 나/우리의 인식의 성취에 대한 타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39-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