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 136호 2023.08.03] 한국 독립영화의 모험과 도전 – 『이방인들의 영화』 리뷰 / 함연선(《마테리알》 편집・발행인) 기사 원문 보기 : https://actmediact.tistory.com/1822 ‘독립영화는 대체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이란 말인가?’ 한국 독립영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항상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이다. 일본의 ‘자주영화’, 중국의 ‘지하전영’과 한국의 ‘독립영화’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왜 한국은 ‘독립’이란 단어를 쓰게 되었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이 뒤이어 나온다. 어쩌면 한국 독립영화계의 오랜 플레이어들은 지긋지긋해 할지도 모를 질문들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국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더 정확히는 자문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한 때가 2000년대부터고, 그렇다면 제대로 된 답변 없이 흘러간 세월만 벌써 20년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한국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블랙홀처럼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논의를 끌어 삼키고 종국엔 아무것도 남기지 않게 되는 블랙홀. 그러나 내 생각에 한국 독립영화가 정체성과 관련하여 겪고 있는 곤란함이야말로 『이방인들의 영화』가 서문에 말하고 있는 독립영화와 관련된 경험의 빈곤함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다. “독립영화가 양적으로 넘쳐나는 상황에서 독립영화와 관련된 경험은 어찌하여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25쪽) 서문을 제외한다면 『이방인들의 영화』는 한국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특별히 방점을 두고 있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한국 독립영화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부분들에 주목”(9쪽)하면서 주로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들과 에세이 영화들을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물론 그러한 접근 방식이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는 방편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실험적인 작품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회의 방법을 통해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그 곤란함에 도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논문의 형식으로 발표되었던 것으로, 『영화연구』나 『현대영화연구』와 같은 학술지에 실렸던 글들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따라서 각 글들이 논문의 형식을 보이고 있음이 눈에 띈다. 책의 1장인 “혼돈의 사회와 도시의 리듬”에서는 ‘도시 교향곡 영화’ 장르를 경유하여 〈아침과 저녁사이〉(1970)와 〈서울 7000〉(1976), 〈국풍〉(1981)과 같은 초기 한국 독립영화들을 비교・분석한다. 이를 통해 “정치적 비전”과 “미학적 가능성”(69)이 결합된 것으로서 초기 한국 독립영화를 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2장 “영화의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1장과 유사하다. 하지만 1장이 초기 한국 독립영화 작품들에 대한 분석이었다면 2장은 한국 사회의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재개발이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내용의 측면과 형식의 측면에 끼친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의 기본적인 틀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논의와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권이 언급되고 있다. 뒤이은 3장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역사와 벌이는 한판 내기”에서는 다큐멘터리에 일종의 매체특정성이 있음을 전제하고, 그러한 매체특정성이 기록과 관계됨을 역설하면서 역사와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몇몇 작품들이 맺는 관계를 고찰한다. 이때 “사진적 매체와 역사의 친연성을 탐구한”(119쪽)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주장이 주요한 이론적 전거로 서술되고 있다. 4장 “현장을 전유하는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이슈가 발발하는 현장”(159쪽)을 중심으로 했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전통적인 방법론이 오늘날까지 어떤 방식으로 분화되고 전유되었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세 개의 범주를 제시한다. ‘현장-기반형 다큐멘터리’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액티비즘적 경향을 설명하는 이름이다. ‘현장-전유형 다큐멘터리’는 ‘현장-기반형 다큐멘터리’에 대한 반성 혹은 고찰에서 나온 것으로서 사적 다큐멘터리라 이름붙여졌던 흐름과 에세이영화적 흐름과 관련된다. 마지막으로 ‘현장-창출형 다큐멘터리’는 애니메이션이이나 파운드 푸티지 등을 통해서 가상의 현장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현실에 대해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이른다. 이 책의 앞부분 절반이 “액티비즘적인” 다큐멘터리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관련한 여러 분석적 시도를 하고 있다면, 뒷부분 절반인 5장부터 7장까지 그리고 부록으로 수록된 “사유하는 영화, 에세이 영화”에 이르는 총 4개의 장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다큐멘터리를 초과하거나 혹은 벗어나는 작품들에 보다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5장 “불안에 대한 성찰은 문정현, 이원우 감독의 〈붕괴〉를 분석하는 여정에서 사적 다큐멘터리와 에세이영화에 관한 한국적 맥락을 검토한다. 이러한 5장의 내용은 부록 “사유하는 영화, 에세이 영화”에서 보다 일반적인 방향으로 확장하는데, 여기서는 “사유를 형상화”(351쪽)하는 것으로서의 에세이 영화 일반에 대한 설명이 보다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6장 “포스트 시네마적 상상”에서는 포스트-시네마의 상황이라는 큰 맥락을 먼저 제시하고 임철민 감독의 〈프리즈마〉와 〈야광〉을 그러한 흐름에 위치시킨다. 마지막 7장 “이 지루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는 다른 장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글로 정재훈 감독의 작품들을 ‘지루함’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부제인 ‘한국 독립영화가 세상과 마주하는 방식’이 “한국 독립영화”를 명백히 호명하고 있지만, 『이방인들의 영화』에서 한국 독립영화의 큰 부분이라 할 수 있을 한국 독립 극영화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독립 극영화의 빈자리가 그리 큰 공백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근 10년 전부터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비평적으로 주목할만한 작품들 대부분이 논픽션 영화 쪽에서 많이 나왔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방인들의 영화』 속 대부분의 글들은 영화로 치자면 중간 크기의 쇼트로 한국 독립영화계를 바라보고 있다. 아주 멀리서 독립 영화계의 거시적인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아주 가까이서 개별 작품들을 클로즈업하여 살펴보는 것도 아니다. 대신 이 책은 (익스트림) 롱쇼트와 클로즈업 사이의 중간 크기 쇼트를 선택함으로써 개별작품들과 다큐멘터리/에세이영화/포스트시네마 등의 범주와 흐름을 적절히 연결시키고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영역의 외연 확장과 내재적인 변화 두 가지를 동시에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