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 2023.05.28] 페미사이드, 경제구조적 맥락을 간과하지 말라 / 김미선 (여성학 연구자) 기사 원문 보기 : https://ildaro.com/9638 여성 대상의 폭력과 살인은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지만 이를 멈추려는 정부와 한국사회의 노력은 가시적이지 않다. OECD 기준 경제성장이 세계 10위권에 들 만큼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이지만 왜 여성 폭력은 여전히, 매일 발생하고 있을까? 실비아 페데리치의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2017)는 이러한 우리의 궁금증을 푸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미 페데리치의 저작 가운데 2011년에 번역된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2004)는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페미니즘적 해석의 모범을 제시했다고 평가될 만큼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는 유럽에서 발생한 마녀사냥의 정치경제적 맥락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논의한다. 그리고 지금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등 신식민지에서 발생하는 여성 폭력을 마녀사냥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문제화함으로써 마녀사냥의 현재적 의미를 드러낸다. 마녀로 내몰린 여성들은 주로 가난한 농민이었다 페데리치는 1부에서 자본의 시초축적기 유럽의 마녀사냥을 다루면서 왜 여성이, 그리고 어떠한 여성이 주된 표적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초점을 둔다. 무엇보다도 마녀사냥에서 여성이 표적이 된 이유를 밝히기 위해, 자본주의가 수반한 사회적 갈등은 무엇이고 이로 인해 재생산 및 젠더 관계에서 초래된 근본적인 변화가 무엇인지에 주목한다. 그녀는 특히 중세 이후 농업자본주의의 부상을 추적함으로써 마녀사냥이 도시보다는 주로 농촌에서 발생했고, 마녀로 내몰린 여성들은 주로 가난한 농민이었음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농촌 지역 공동체에서 나이 든 여성은 권력을 빼앗기고 취약한 상태에 놓였으며, 결과적으로 이들의 사회적 권능은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즉 인클로저(enclosure, 중세 후기부터 영국에서 소규모 토지들을 대규모 농장으로 합병해가는 흐름. 공동 경작하던 땅이나 미개간지 등에 울타리를 쳐서 사유지로 전환하고 재산권을 주장하여, 경작민들을 쫓아냄)에 저항한 “빈곤과 사회적 배제에 저항한 여성”(48p)이 마녀로 내몰렸으며, 처벌과 함께 이들은 악마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유럽 마녀사냥의 탄생은 자본주의에서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자, 여성들 간의 분열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즉, 자본주의 발달로 야기된 혼란으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것은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페데리치는 특히 “친밀한 여성 친구”를 의미했던 ‘가십’이 “남을 뒤에서 헐뜯는 한심한 말”로 변질되는 과정이 여성의 사회성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다는 새로운 논의를 제시한다. 마녀사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소외와 배제의 메커니즘”이었음을 드러내며, 이러한 점에서 “마녀사냥은 여성 전체를 상대로 한 테러 체제”(70p)임을 밝힌다. 16~17세기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확대되면서 여성의 욕망은 더욱 억압되었다.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에 의해 여성은 결국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종속적 하위 존재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신식민지에서 발생하는 페미사이드와 마녀사냥의 유사점 1부가 마녀사냥이 여성의 힘과 여성 간의 우정을 약화시킴으로써 여성의 권능을 파괴하고 결과적으로 여성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면, 2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역사적 맥락의 흐름 속에서 분석하며 과거와 현재의 자본주의 발전이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논의한다. 페데리치는 오늘날 여성에 대한 폭력, 일종의 페미사이드(femicide)가 증가하는 원인으로 새로운 형태의 자본축적을 문제시한다. 마녀사냥을 통해 밝혔듯, 자본주의 발전은 여성 폭력으로 시작되었던 것과 같이, 여성 폭력이 역사적 변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음을 지적한다. 오늘날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동남아 등 반식민주의 투쟁이 강력하게 전개된 지역에서 여성 폭력이 극심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신인클로저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신식민지에 속한 여성들은 공동체를 결속하고 비상업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며 공유지에 접근하고 자급농업을 해왔지만, 오히려 “여성은 화폐경제의 확대를 방해하는 주요 행위자”(148p)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전 지구적 세계화 과정에서 농촌 여성을 통합함으로써 오히려 이들이 ‘강제된 의존’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아프리카에서 농토는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산이지만, 마녀로 내몰린 여성은 자신의 토지를 빼앗기게 되고 그녀의 토지는 시장을 통해 상업화된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신식민지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축적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촉발”(102p)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오늘날 전지구적 현상으로 나타나며, “경제적 세계화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을 증가시키는데 기여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드러낸다”(116p)고 강조한다. 즉 세계 경제로의 여성 ‘통합’은 오히려 여성의 “사회적 소외”를 초래하며, 이 과정에서 지역경제가 파괴되고 아프리카를 재식민화하면서 착취한다.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여성-사냥이라는 마녀사냥” 현상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시초축적’ 과정을 겪는 사회에서 일어난다.”(144p)는 것이다. 페데리치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 즉 마녀사냥이 발생하는 현재의 사회적 조건과 정치경제적 측면을 분석함으로써 경제의 세계화로 인한 신식민지가 겪는 문제를 드러낸다. 페데리치는 여성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에 벌어진 마녀사냥을 새롭게 분석함으로써, 마녀사냥을 “우리가 살아있는 기억으로 만들 때에만, 그러한 과거가 우리에게 되풀이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165p)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페데리치는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에서 유럽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을 역사화·현재화하면서, 여성 폭력이 자본축적을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의 구조적 요소임을 분명히 한다. 마녀사냥을 정치경제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여성의 권능과 여성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부장적 과정을 기반으로 자본축적, 즉 자본주의가 구축되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발생하는 여성 폭력은 새로운 형태의 자본축적이 지속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임을 설명한다. 페데리치의 논의는 여성 폭력의 일환으로 전개된 마녀사냥이라는 역사적 현상을 자본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문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페미니즘적 통찰력을 제공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한 여성주의 비판 의식을 갖도록 한다. 더욱이 페데리치는 인클로저 이전에 존재했던 농촌사회의 공유재를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축함으로써, 공동의 자원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새로운 공동체주의를 구성하기 위한 이론적 모색을 한다. 농촌 지역공동체 관계를 이상적(理想的)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지금의 파괴적 자본주의에 의한 폐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의 경제적 위치와 ‘여성 폭력’의 상관관계 그렇다면 페데리치의 마녀사냥에 대한 분석은 과연 지금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성 폭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에도 어떠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까?한국의 상황은 페데리치가 마녀사냥을 현재화하며 논의한 신식민지에 속한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는 사실 정치경제적 혹은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상당히 다르다. 이러한 점에서 농촌공동체와 토지 소유에 초점을 둔 페데리치의 논의를 3차와 4차 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 사회에서, 그리고 도시에서 주로 발생하는 여성 폭력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여성 폭력을 자본주의와의 관계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여성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과도하게 결부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제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페데리치의 마녀사냥을 둘러싼 역사적·현재적 논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 폭력의 의미를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여성들은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렸고 경제 영역에서 계속해서 배제 및 주변화되었다. 여성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여성 폭력은 물론, 여성의 몸과 재생산, 섹슈얼리티 문제를 자본축적, 즉 자본주의와의 관계 혹은 맥락 속에서 심도 깊게 논의할 때 그것이 발생한 현상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페데리치의 지적은 우리에게도 이론적 통찰력을 제공한다. 그동안 한국에서 여성 폭력이 자본축적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성경제를 구축하는 원초적 잉여의 출처가 되는 방식을 분석하거나(김주희, 2020), 연예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 여성 연예인의 성상납 등 성착취와 성노예적 계약과 이로 인한 죽음을 문제화하는(김현경, 2014; 권명아, 2018) 등의 논의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해지는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여성 대상의 범죄와 폭력, 특히 디지털 성범죄로 인한 고통과 후유증으로 인한 여성의 자살 등을 분석할 때 성차별주의와 가부장적 권력을 문제시하지만, 자본주의의 측면에서는 문제화되지 않는다. 상징적·문화적 폭력으로서의 여성혐오가 온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산업은 여성혐오와 성적 대상화라는 정동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부장적 권력관계 및 자본주의와의 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요한다. 더욱이 여성 혐오가 여경무용론과 같이 여성을 ‘쓸모없는’ 노동자로 의미화하는 등의 담론적 자원으로 계속해서 활용되는 가운데,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저임금과 비정규직으로 계속해서 배치되는 상황이 여성의 위치를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현상의 이면을 자본주의 시스템과의 관계 속에 맥락화하고 내적 동인을 밝히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페데리치의 마녀사냥에 대한 연구는 바로 이러한 작업의 필요성과 이러한 논의가 갖는 의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날로 여성혐오 발화와 자살을 포함한 여성 폭력이 심각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는 상당히 작고 얇은 책이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 즉 마녀사냥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통해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여성 폭력 문제를 파헤칠 수 있는 이론적 해석의 틀을 제시한다. 여성 폭력과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의 질주에 대한 비판적 독해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참고문헌]-권명아(2018), “여성 살해 위에 세워진 문학/비평과 문화산업”, 『문학과사회』, 제31권 제1호, 140-167쪽.-김민정·김보화·김세은·김수아·김홍미리·손희정·오찬호·이나영·추지현·허민숙·홍지아(2019),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 :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의 격발』, 돌베개.-김주희(2020),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현실문화.-김현경(2014), “기획사 중심의 연예산업과 이미지 상품으로서의 여성 연기자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대학원 박사학위 청구논문.-손희정(2015), “혐오와 절합하고 경합하는 정동들 : 정동의 인클로저를 넘어서 혐오에 대해 사유하기”, 『여성문학연구』 제36호, 117-141쪽.-실비아 페데리치(2011),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갈무리.-황주영(2013), “페미니즘 사전 :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이론』 28권, 192-214쪽. [필자소개] 김미선. 여성학 연구자(여성노동·경제사). 경제의 역사적 젠더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여성적 기술’을 기반으로 전개된 여성 자영업을 연구해오고 있다. 식민지 시대 ‘신식’화장담론과 신여성의 소비문화 연구로 석사학위(이화여대 여성학)를, 영화 〈지옥화〉와 〈하녀〉를 다룬 전후 공장여성노동자의 문화적 생산에 관한 연구로 역사학 석사학위(위스콘신주립대 매디슨 캠퍼스)를 받았다. 「양장점을 통해 본 1950년대 전후(戰後) ‘여성의 경제(female economy)’」 논문으로 박사학위(이화여대 여성학)를 받았으며, 이화여대 우수학위 논문상을 수상했다. 단행본 『명동 아가씨 : 근현대 여성공간의 탄생』(마음산책, 2012)과 구술사료선집 『모던걸, 치장하다』(국사편찬위원회, 2008)를 펴냈다. 현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이며 〈노동과 젠더〉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