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2023.05.18] 객체지향 존재론의 관점에서 인과성을 탐구하다 / 이종근 기자 기사 원문 보기 : 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780927 '실재론적 마술(지은이 티머시 모턴, 옮김이 안호성, 펴낸 곳 갈무리)'은 객체지향 존재론의 관점에서 인과성을 탐구한다. 모턴은 인과성이 미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미적 사건은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인간과 화폭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인간과 드라마 속 대사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미적 사건은 톱이 새로운 합판 조각을 베어 물었을 때 일어난다. 미적 사건은 벌레가 축축한 흙에서 배어 나올 때 일어난다. 미적 사건은 거대한 객체가 중력파를 방출할 때 일어난다. 우리가 예술을 만들거나 연구할 때 우리는 인과관계를 만들거나 인과성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턴은 미적 차원은 인과적 차원이라고 말한다. 철학자이자 생태 이론가로서 모턴은 객체지향 존재론의 생태학적 함의를 탐구하며 “어두운 생태학”이라는 독자적인 생태 이론을 전개해 왔다. “어두운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모턴의 가장 잘 알려진 저서 '대자연 없는 생태학'(Ecology Without Nature)에서 처음 제출되었다. 모턴이 “자연”(nature)이 아니라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대자연”(Nature)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 개념이 생태학에서 라캉의 대타자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대자연 개념은 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이지 않은 것 사이의 구별에 의존한다. 모턴은 “대자연”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달팽이는 아마도 대자연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조리된 달팽이는 그렇지 않은가? 만화 속 달팽이는 어떤가? 방사능에 노출된 달팽이는 어떤가?”(64쪽) 모턴은 생태학에서 대자연 개념의 사용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자초한다고 진단, 새로운 생태 이론을 전개한다. 책의 제목 '실재론적 마술(Realist Magic)' 은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이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언어유희다. 이 책은 서론과 네 개의 장, 결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서 모턴은 P.M. 던의 노래 '기억의 축복 속에 표류하다'와 유쿨찌 나팡가티의 '무제' 등 여러 예술 작품을 고려하며 객체지향 존재론에서 인과적 차원이 미적 차원인 이유를 보여준다. 1장 '환상과 같이'에서는 책 전체의 범위를 설명한다. 모턴은 콘크리트 블록이 블록을 구성하는 입자로 환원되지 않고 블록에 대한 지각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방식을 보여주며 콘크리트 블록의 신비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각각의 객체가 고유한 것임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또한, 모턴은 실체의 역사를 논하며 논리학과 수사학이 분리된 이유를 보여주고, 수사학과 논리학을 같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의 회귀를 제안한다. 2장 '마술의 탄생'은 객체가 시작되는 방식을 다룬다. 논의가 진행되며 객체의 시작은 숭고임이 밝혀진다. 새로운 객체는 객체들의 총회를 왜곡함으로써 탄생한다. 3장 '마술의 삶'에서는 객체가 존속하는 방식을 다룬다. 객체는 본질과 나타남 사이의 균열을 유보함으로써 존속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객체는 객체 자신과 모순될 때 살아간다. 4장 '마술의 죽음'에서는 객체가 끝나는 방식을 다룬다. 객체의 죽음은 객체가 자신의 나타남으로 환원될 때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진다. 객체는 현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죽음의 문턱에 있다. 객체의 시작이 숭고라면, 객체의 끝은 아름다움과 관련이 있다. '결론'에서 모턴은 마술의 생애 주기를 되돌아보며 목적인과 비모순율에 집착하지 않는 기묘한 아리스토텔레스로의 회귀를 제안한다. 부록에는 객체지향 존재론에 관한 티머시 모턴의 논문 '모든 것이 온다'가 한국어판 독자들을 위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