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023.05.08] 저자가 말하다 / 이름 없는 ‘독립영화’, 영화 언어를 혁신하다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04093 2003년 여름, 나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간 어느 극장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한국 독립영화를 보았다. 평소 영화는 오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 편견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 본 작품들은 평소 내가 신문을 통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사회적 이슈를 다루거나,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영화적 문법으로 내 감각적 경험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나는 한국 독립영화가 사회적 변화를 열망하는 동시에 영화적 형식의 쇄신을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 독립영화는 관객에게 이름 없는 영화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름 없는 영화가 관객의 관심 바깥에 있어서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가리킨다. 극장 개봉을 해도 관객이 보러 가지 않는 영화, OTT에 서비스되어도 추천 목록에 뜨지 않는 영화가 그러하다. 이외에도 영화산업 시스템 바깥에서 만들어졌기에 관객과 만날 기회가 적은 영화, 특히 ‘예술영화·독립영화·실험영화·대안영화’로 분류되는 작품이 이름 없는 영화에 속한다. 이름 없는 영화의 상태는 이방인의 처지와 흡사하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에 따르면, 이방인은 “오늘 와서 내일 가는 그러한 방랑자가 아니라 오늘 와서 내일 머무는 그러한 방랑자”이다. 이방인은 그가 일시적으로 속해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어떤 경향으르도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관객은 한국 독립영화를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방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한편, 한국 독립영화는 이방인에 의해 만들어진, 그리고 이방인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업영화 시스템 바깥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회적으로 안식처가 불분명하거나 그것을 잃어버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한국 독립영화가 사회적 사건에 개입하는 방식에 대해 주로 다룬다. 한국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사회적 이슈가 발발하는 현장에 관찰자·기록자·참여자로 개입한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작품들은 각각 △광주민주화운동 △도시화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미투 △코로나19를 다룬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독립영화에서 현장이 의미하는 범위가 현실의 공간에서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의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발전과 매체 환경의 변화이다. 오늘날 한국 독립영화는 동시대 매체 환경의 변화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물리적 세계와 가상 세계를 두루 매개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개입하고 있다. 이어서 이 책은 한국 독립영화가 미학적인 실험을 통해서 영화 언어를 혁신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 내용은 에세이 영화(essay film)와 포스트 시네마(post-cinema)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 독립영화는 2010년대 중후반 이후로 연출자의 사유를 형상화하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그런 작품들은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감정, 정서, 무의식, 관념과 같이 시각적으로 구체화하기 힘든 것을 주로 다루었다. 이처럼 한국 독립영화 진영 내에서 나타난 새로운 영화에 대한 열망은 포스트 시네마라는 용어를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영화 이후의 영화를 뜻하는 포스트 시네마는 전통적인 영화의 제작, 유통, 상영의 모델이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에 유효했던 영화에 대한 정의와 영화와 관련된 관객의 경험은 오늘날 무의미해지고 있다. 일부 한국 독립영화 감독은 미학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꿈꾸면서 영화의 개념적 변화에 대해 고민한다. 이 책의 독자들 또한 한국 독립영화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내일의 영화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