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 2023.03.24] ‘복합현실’의 시대…가상은 허상 아닌 경험 / 이주봉(국립군산대 미디어문화학과 교수)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02160 얼마 전 흥행에 성공한 「아바타: 물의 길」은 디지털 전환 이후 영화의 현재뿐만 아니라, 그 지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흥미로운(혹은 진부한) 이야기를 넘어, 디지털 이미지가 환기하는 스펙터클한 관객 경험의 진면모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영화를 향유하는 관객의 인터페이스 경험이 CGI 기술을 전면화하는 영상이나, 3D 영화 등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성 영화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이러한 디지털 영화적 현상은, 다양한 대중영화의 일반적 경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간된 영화학자 박선의 『카메라 소메티카』는 이러한 디지털 영화와 이를 수용하는 관객 사이의 관계에 천착하며, 흥미로운 논의점을 던져주는 연구서이다. 저자는 디지털 영화의 관객을 정동적(affective) 관객으로 이해하면서, 이들 미디어 수용자의 태도, 즉 ‘복제 이미지의 신체화’라는 현상이 갖는 영화학적 함의에 대해 천착한다. 그런데 이 책이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가 포스트-시네마의 매체 환경을 배경으로 디지털 영화를, 그리고 그 이미지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를 고찰하면서, 고전회화와 관계를 맺는 영화 작품들을 다룬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정적(靜的)인 고전회화 이미지를 활인화한 영화들을 예시하면서, “관객의 분열하고 유동하는 시선”이 이들 영화 이미지의 예술적 세계와 어떻게 서로 교감하는지를 정밀한 영화 장면 분석을 곁들여 제시한다. 이를 통해서 저자는, 디지털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그 영화 이미지를 단순히 관조적인 태도로 관찰하기 보다는, 그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교유(交遊)하고, 더 나아가 그 이미지 세계를 하나의 현실로 체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저자가 관심을 보이는 지점은 영상 이미지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객의 신체이다. 박선은 “신체와 감각을 동원해 가상 이미지를 체험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경험적 현실의 일부로 전유”하는 시대가 바로 우리 디지털 시대임을 천명한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적 문제의식을 전면화하기 위해, 몸을 지칭하는 ‘소마’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카메라 소메티카(camera somatica)’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 개념과 함께 디지털 시대의 영화 이미지에 대해 “수용자의 인지적‧신체적 반응”이 갖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논증한다. 가상 이미지의 체험 현상이 더 이상 허상이나 상상이 아닌, 수용자의 일상 현실과 상호작용하면서 “경험적 현실의 일부로 전유”되고, 실재의 차원을 획득하는 시대가 디지털 시대라고 한다면, 박선의 논의는 우리 시대의 미디어 경험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사적이다. 디지털 시대의 현실은 더 이상 유일무이한 현실만이 실재로 자리하는 세계가 아닌,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현실들이 실재로 받아들여지는 이른바 ‘복합현실(mixedreality)’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에게 상호작용하고 경험되는 현실로서 가상은 더 이상 현실에 비해 열등한 세계가 아니다. 실제로 디지털 전환 이후의 뉴미디어 시대에 미디어 수용자들은 다양한 의미에서 촉각적으로 교유하는 미디어 인터페이스 경험을 향유한다. 이런 맥락에서 박선의 저작은 디지털 시대의 영화와 관객의 수용 태도, 즉 신체와 이미지의 화학적 결합을 매개하는 영화매체의 본질적인 기능을 탐구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가상현실 담론, 즉 현실과 가상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시대 담론까지도 포함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박선의 책이 영화학적 논의에서 멀어지는 추상적인 논의에 매몰된 그러한 저작은 아니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변화하는 영화의 매체성을, 포스트 시네마 시대의 매체 이미지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를 통해서 규명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고전 영화·매체 이론가들의 사유와 대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뉴미디어의 관객성을 도구 삼아 고전 영화이론의 통찰을 재고”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영화학적 시도는 책의 전반을 아우르는 흐름으로 자리한다. 벤야민의 ‘아우라’, 바르트의 ‘푼크툼’, 바쟁의 ‘완전영화의 신화’ 등과 같은 고전적인 영화/매체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거닝, 보드웰, 브래니건, 캐럴 등 다양한 영화학자의 이론적 논의와도 대결하면서 이루어지는 영화학적 탐색은 디지털 시대 영화학의 위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서 박선의 저작은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인문학의 다양한 분과학문에 대한 포괄적인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이론가의 개념과 그 사유 방식을 디지털 영화의 매체학적 사유를 위해 확장하고, 재해석하면서 그 이론적 층위를 두텁게 한다. 21세기 디지털이 만개한 우리 미디어 시대를 반추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카메라 소메티카』는 여러모로 시의적절한 저작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