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 2022.07.30] 분홍색 팬덤 민족주의, 소분홍(小粉紅)이라는 얼굴을 들여다보다 / 전솔비(시각문화 연구자)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e_text&ps_boid=320 ‘중국 네티즌’은 누구인가? 이 물음은 국내 미디어에서 접해온 여러 이슈에 대한 기억을 불러온다. 특정 연예인이 홍콩 지지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홍콩 독립을 반대하는 중국 팬들로부터 비난받았던 사건, 또 다른 연예인이 활동명으로 ‘마오’라는 이름을 언급한 걸 두고 마오쩌둥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던 사건 등등. 떠오르는 일련의 사건들은 얼핏 사소해 보이는 말과 행동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미 그것의 정당성이나 정치적 올바름, 진위는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진 온라인상에서의 집단적 동요와 후폭풍으로 기억된다. 중국 네티즌이라는 단어에는 어느새 맹목성, 왜곡된 애국심, 국수주의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고착되어있는 듯하다. 이들은 연예인의 언행뿐만 아니라, 최근 대만, 홍콩, 티베트 독립 지지자들과 중국을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온라인 공격을 실행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자신들의 행동을 ‘전투’, ‘원정’, ‘출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출정’은 한국의 팬덤 문화 및 온라인 게임과 유사한 전략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비이성적이거나 세뇌당한 대중 행동이라기보다는 조직적이고 뚜렷한 정치적 목적의식에 따른 움직임에 가깝다는 사실이 관찰된다. 알면 알수록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중국 네티즌’이라는 단어는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유동적이고 다면적인 면을 지니고 있음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알아챌 것이다. 미지의 대상일수록 비난보다 비판적 이해가 필요하다. 알지 못하면 소음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타국의 언어 기저에 깔린 감정구조를 이해하고 소통할 방법을 고민하고자 한다면, 중국 네티즌이라는 모호한 명칭 뒤에 겹친 얼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중국의 인터넷 보급률 증가로 형성된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과 정치적 마찰을 빚은 상대 국가를 비난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 의견을 표출해왔다. ‘분노 청년’(중국어로 ‘펀칭’)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공간에 등장한 이들의 행동은 오프라인 시위로 결집하기도 하며 중국 사회 현실에 대한 생산적인 비판의 가능성과 억압적인 통제하에 흡수될 국수주의적 가능성을 모두 품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세대교체 이후 새롭게 등장하며 중국 신세대 민족주의자의 대명사가 된 ‘소분홍’의 움직임은 분노로만 표출되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소분홍(小粉紅)’(이 이름의 유래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 웹소설 사이트 ‘진장문학성’의 자유게시판 바탕색이 분홍색인데 이 게시판 유저들이 민족주의적 게시물을 많이 올리면서 소분홍의 근거지가 되었다는 설이 가장 일반적이다)은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Z세대이자 인터넷 문화와 모바일 디바이스 기반 소통 방식에 능하고 무엇보다 한류의 열렬한 소비층이다. 이들은 특정 인물의 SNS에 원정하러 가기 전 오픈채팅방으로 전술팀을 꾸리고 역할을 나누어 일사불란하게 전쟁의 무기가 될 이모티콘과 밈을 생산한다. 자칭 ‘전사들’이라고 부르는 대규모 집단은 특정 시각에 방화벽을 넘어가 일시적으로 온라인 공간을 점유하며 상대에게 시각적인 타격감을 주고 행동을 종료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공격의 지배적인 감정은 ‘분노’가 아닌 ‘재미’이며, 혐오 표현보다는 온건하고 은유적인 방식들이 선호된다. 실제적인 현실의 변화보다는 일종의 정신 승리를 지향하는 것, 이것은 양궈빈의 표현에 따르면 ‘셀프 퍼포먼스’에 만족하며 유희와 놀이에 초점을 맞추는 집단행동에 가깝다. ‘맑스주의적인 홍紅과도 구별되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백白과도 구별된다’는 이 책의 설명처럼 소분홍은 ‘아이돌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중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 생산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상적이고 영웅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의미화하는 이들이다. “디바가 출정하면 풀 한 포기도 안 남는다” 이 책은 이러한 소분홍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리는 ‘디바 출정’(2016년 중국의 SNS인 ‘시나 웨이보’에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타이완 독립지지 연예인이라는 고발 글이 올라오며 소속사 JYP의 해명이 이어졌고 쯔위를 공개 지지했던 민진당 주석 차이잉원이 타이완 총통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에 타이완 독립 반대 네티즌들이 분노하면서 바이두 커뮤니티 중 가장 규모가 큰 ‘디바’가 차이잉원의 페이스북에 조직적으로 원정을 가 온라인 행동을 개시한 사건이다. 이 과정은 전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생중계되었다)을 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책의 저자들은 “어떤 원인으로 인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던 청년들이 갑자기 정치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을까?”,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인터넷 민족주의 정치운동에 참여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소분홍이 만들어진 역사적, 문화적 맥락과 이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추구하는 집단적, 혹은 개별적 목적, 그것이 기존의 인터넷 민족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분석한다. 분석의 방식은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를 결합하고 있으며 댓글 분석, 밈 분석, 사용자 인터뷰, 시각적 데이터베이스 구축, 게시판 관찰 등 온라인 공간에 드러난 이미지와 텍스트 분석뿐만 아니라 그것을 생산하는 현실의 주체들을 만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지만 디바 출정으로 대표되는 소분홍의 인터넷 민족주의 운동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혐오’와 ‘과격한 표현’이 아닌 패러디, 유희, 반어법의 텍스트, 그리고 사랑, 미식, 풍경 등의 은유적인 밈 이미지이다. 출정 준비를 위한 오픈채팅방에서 만들어진 행동 수칙 중에는 “욕설 사용금지”, “중국 지도자의 사진 사용 금지”, “일체의 행동은 지휘를 따름” 등이 있었다. 이들이 분노보다는 재미와 장난을 지배적인 감정구조로 삼아 움직였다는 점은 ‘반복되는 댓글의 빈도’, ‘강력한 밈과 그 변형들’ 통계를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류하이룽이 분석하듯 이러한 풍자와 놀이 또한 사이버 민족주의의 표현으로 그 이면에는 헤게모니와 상징적인 폭력이 숨어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타이완은 번체자를 사용하지만 디바 출정의 이미지와 텍스트는 모두 간체자로 되어있다는 점은 이들이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댓글 테러의 방식으로 일방적인 선언만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러한 놀이로서의 인터넷 시위는 홍콩 시위나 타이완 독립운동 등 현실에서의 실질적인 변화와 직결되어야만 하는 운동의 절박성과 비교될수록 ‘잔인한’ 놀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식의 유희 에너지는 실제로 현실에서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에게 거대한 감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장난과 거짓말, 놀이와 유희의 언어 또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위협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가벼움은 합리화될 수 없으며, 이러한 가벼움이 현실에서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질 방향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결코 역사 안에서도 그저 재미있는 놀이로 설득될 수 없을 것이다. 현재는 이 팬덤 민족주의가 중국 국가에 의해 활용, 흡수되는 추세이며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을 목적으로 한 인터넷 출정 활동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정치 참여 방식이 제국주의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위험을 일부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개성 있는 표현을 통해 익명의 애국 공동체를 만들어낸 중국의 청년들이 국가와 아이돌이라는 과도기적 환상을 거쳐 현실에서의 자신을 찾아갈 시기를 기다리며, 그때 나타날 표현은 폐쇄적이고 맹목적인 정체성보다 다양하고 포용적이며 개방적인 정체성을 지향하길 기대한다고 말하며 글을 맺는다. 이 책은 소분홍의 현재 태도에 대해 성급한 부정적인 결론이나 합리화를 하지 않고 ‘팬덤 민족주의’라는 개념과 중국 네티즌이라는 집단을 부정적으로 추상화시키는 대신 현실이라는 지평 위에 발을 딛고 두 손을 움직이며 언어를 만들어내는 존재들로 구체화한다. 이는 이들이 변화한다면 앞으로의 온라인 광장, 온라인 거리, 온라인 집회, 더 나아가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실현될지 모를 긍정적인 힘에 대한 가능성을 유보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를 본보기 삼아 한국의 동시대적 현장 속에서 오프라인의 연장이 되어가는 온라인 공간의 투쟁을 위해 덜 폭력적인 전략을 짜고 더 쌍방향적인 소통을 위한 전술을 상상해보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의 숙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