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2022.04.29] 민중의 관점에서 삶의 변혁을 고민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 / 정재원 (국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러시아-유라시아학과 교수, 러시아 과학아카데미(학술원) 사회학 연구소 박사)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659 현실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한 후 어떤 면에서는 그동안 진보좌파 운동을 짓누르고 있던 교조적이고 원리주의적인 경향이 약화되고, 이론이 아닌 현실적인 사회의 진보를 이루는 합리적인 사회 운동이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사회를 짓눌러 왔던 레드 콤플렉스가 옅어졌음에도 한국의 진보좌파세력은 심각할 정도로 민중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한 진정한 이유에 대한 논의를 회피한 채, 여전히 최대 강령적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중간은 없는 한국 특유의 관념적인 진보좌파적 사회운동은 청년과 비정규 노동자들을 비롯한 진보좌파들의 지지 세력이 될 수 있는 사회집단들의 대안이 아니라, 이들의 사회적 보수화, 극우화 현상에 일조하고 있다. 두껍지 않은 책자지만, 놀라울 정도로 저자는 현재 많은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 핵심적인 사안들을 모두 다루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 등으로 분열되고 분화돼 온 노동계급의 문제, 기후 위기 시대 마르크스주의와 여성주의, 생태주의 등의 접목을 시도한 저자의 작업은 다른 유사한 연구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차별화된 점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를 살펴보면서도 과감하게 마르크스의 주장에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금기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던 혁명 시대 레닌의 글과 실천에 대해서도 비판적 관점에서 파격적인 주장도 시도한다. 저자는 위험한 반동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진보좌파의 잘못된 경향들에 간접적이지만 강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 저자는 어떠한 계기들로 인해 굳건했던 사상적 기조와 파괴적 결별을 하게 되는 경험으로 많은 것을 깨달은 듯 보인다. 이로 인한 분노와 배신감, 슬픔으로 좌절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러한 경험을 편견과 정치적 고려가 아닌 진실과 정의를 좇아 새로운 혁신의 계기로 삼았다. 무엇보다 이론적 고민뿐 아니라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 마침내 교차하고 연속된, 그리고 중첩된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의 결과이자 새로운 고민의 시작을 보여 준다. 저자는 변화하는 현실을 더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변혁하려면 정치적, 이론적 혁신이 중요하다는 인식하에서 전통의 충실한 고수가 아니라 돌아보기와 비판적 재평가가 더 나은 발전의 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적 혁신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억압과 차별을 든다. 사회의 변혁을 논하는 데에 있어서 과감하게 생산 현장에서의 착취가 가장 중요하고 따라서 조직 노동자들의 산업 행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전통적 논리를 노동, 혁명사, 젠더, 환경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관점은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를 혁신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그는 정치적 혁신의 주요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서 더욱더 철저하고 일관된 반대를 위해 상호교차성 이론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착취와 억압이 교차하면서 만들어 내는 구체성을 바탕으로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사회변혁은 아래로부터 노동대중 자신의 집단적이고 자주적인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최대의 민주적인 자기해방과정이어야 한다는 오랜 원칙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정통에 대한 집착과 강조를 넘어서 모든 경계를 넘는 이단적 상상력과 접근방식을 강조하면서도 투쟁과 쟁점의 분리, 단절이 아닌 그것의 연속과 교차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글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착취와 억압과 소외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위계를 설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경직된 접근이 투쟁과 연대의 확장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좌파 운동의 자족적 고립을 자초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글 곳곳에서 사회주의적 대안의 여전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회변혁은 민주주의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를 연속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면서도 동시에 착취와 억압과 소외로부터의 해방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연속적이면서도 교차하는 과정으로서 사회변혁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를 분리시키고 단계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곳곳에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중심이고 우선인지를 미리 정해 놓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와 투쟁을 연결하고 결합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구체적인 전략, 전술의 강조점을 찾아 나갈 것’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기조는 사회변혁으로서 사회주의적 과제나 대안의 상정과 모순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한 장을 할애해서 과감하게 레닌 시기의 소련에 대한 비판을 시도할 만큼 비판적 분석의 기조를 보여 주었는데, 이러한 기조 하에서 현실사회주의체제 실패 이후의 사회주의적 대안 논의에 있어 근본적으로 전환적인 고민이 있어야 하며, 대안은 반드시 한국적 현실에 기반한 융통성 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 운동과 계급 문제에 있어서 저자는 과감하게 기존 일부 좌파들의 분석을 비판하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소통, 노동계급 중심성의 확장, 차별과 억압에 맞서는 진정성의 정치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기조가 투쟁 주체 확대 등 기본적으로 ‘저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이제는 변혁을 위한 저항의 조직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는 변혁 이후의 이러한 원칙들의 실제 실현 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연구하는 것이 훨씬 더 저자가 추구하는 방향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 변혁이 실패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뿐 아니라, 언제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를 혁명을 상정하기 이전에 민중을 위한 최소한의 진보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논의를 다룬 장은 중요한 가치를 갖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무자비한 사냥을 벌인 검-언-정 카르텔의 폭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이 사건 이후 전통적인 자본권력과 정당 중심의 정치권력 외에도 관료권력과 언론권력 등 다양한 비선출 권력의 지배 문제가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이 장은 매우 중요한 논쟁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근본적 변혁은 물론 그 어떤 최소한의 온건한 개혁조차 사회의 모든 단위에서 강하게 저지하며, 진보좌파가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도 변혁을 좌절시킬 수 있는 반동적 힘이 강력히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통합진보당 탄압에 대한 일반 민중들은 물론 운동 사회의 무관심과 방조, 심지어 적대적인 경향은 현실사회주의에서의 착취와 억압을 기반으로 한 운동이 국경을 넘어서서는 저항 운동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 준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당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이제는 자본주의의 특수하고 특정한 국면이나 부분적 특성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속성 그 자체가 된 시대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으며, 설사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 체제 자체의 변혁을 상정한 논의를 넘어선 논의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명확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적으로 거부되지 못했던 이유, 나아가 자본주의가 건재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근본적 변혁과는 거리가 멀어도 최소강령이라도 개혁이 실제 민중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저자는 사회주의의 변질을 몇 가지 원칙으로부터의 이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이에 기초하여 여전히 근본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거대담론을 논하고 있을 때, 한국 사회에서의 극우파들의 준동과 각종 혐오가 만연한 사회는 방치되고 있다. 불만 있는 청년층과 하층노동자들의 극우화에 주목하되 이들의 정치적 선택을 중심으로 극우화를 판단하지 말고 사회적 반동화의 한 부분으로 보고 세대론 등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심각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중도 자유주의 정치 세력을 불가피하게 지지하는 진보적 노동대중을 부르주아 정당 자체와 동일시하며 적대시하는 기존의 엘리트주의적 운동은 자신들만의 관념적으로 급진적인 정치적 논쟁만 넘치게 할 뿐,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반동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을 위한 레닌 비판도 사회변혁과 민주주의의 관계, 사회운동과 변혁조직의 민주적 건설과 운영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진정한 교훈은 더 이상 자본주의 변혁이 생산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나 노동자계급 다수의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서 실제 경제의 복잡한 문제들을 간과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없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변혁은 아래로부터 노동대중 자신의 집단적이고 자주적인 행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최대의 민주적인 자기 해방 과정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하지만 과연 현실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연구가 향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고찰을 기반으로 한 탓에 환경과 여성문제를 다룬 두 장은 안타깝게도 한국적 현실이라는 맥락에서의 비판적 검토와 분석보다는 마르크스주의 내에서의 가능성 혹은 한계성을 중심으로 다소 이론적인 차원에서의 비판으로 남아 있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이 주제와 관련해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저자는 아마도 본 저서에서는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두 영역의 운동 모두 충분히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의 합리적 핵심들에 기반할 수 있으며,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의 혁신 속에서 그 한계의 극복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논쟁을 시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겪었던 과거와의 파괴적 단절 중 하나인 여성 혹은 젠더 문제와 관련해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론과 실천에서의 계승과 한계를 21세기 현 시기, 한국적 실재 속에서 실질적 연속과 교차의 지점들을 향후 새로이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혁명의 유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진정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노동하는 대중’에 속하는 이들만이 아닌 그동안 ‘인간 아닌 인간’으로 살아왔던 최하층 계급 등 주변화된 인민 대중의 삶을 정면으로 문제제기하고 정상화했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이라며 노동의 틀 속으로 여성들을 끌어들여 ‘성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기조는 현실에서는 그동안 변혁 운동에게는 무지와 회피의 영역이었으나 우리의 노동대중, 특히 여성들을 착취하며 사회의 가장 반동적 영역인 성산업과 이를 주도하는 조직폭력집단, 이들과 연계된 각종 기득권카르텔의 문제까지 폭로하고 대안을 찾는 것과 같은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상호성과 교차성의 기조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는 한국 좌파 이념 지형에서는 낯설고 생소하지만 위기를 맞고 있는 진보좌파적 변혁 운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주장들을 항상 제기하고 있다. 본 저서는 저자의 그러한 노력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고 시작에 불과하다. 민중들의 슬픔과 고통을 아파하면서 늘 현장에서 투쟁하고 실천하느라 고단한 상황 속에서도 세계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그 누구보다도 성실히 연구하면서도, 그 근본이 되는 사회변혁을 위한 이론적 공부와 혁신을 부단히 해 온 저자의 이 작업은 그 어떤 저명한 지식인의 글에 비해서도 훨씬 더 큰 울림을 준다. 민중은 배경에 있을 뿐인 이론 논쟁이 아닌 진정한 민중의 관점에서의 민중의 삶의 변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