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문화 다 2022.01.07] 사유(私有)를 넘어 사유(思惟)하기 / 박소영(작가) 기사 원문 보기 :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e_text&ps_boid=314 눈만 돌리면 배달 라이더와 대리운전 기사를 볼 수 있는 세상에서, ‘플랫폼 노동’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플랫폼 기업은 문자 그대로 ‘터’를 깔아 이용자를 모으고, 그 터에서 수요와 공급을 연결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찾고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1인 사업체’로 간주하지만, 이 거래에서 열매를 취하는 것은 플랫폼 기업이다. (노동자는 위험을 떠안는다.) 그뿐인가. 이용자들은 서비스 품질을 평가하고 별점을 남기며 플랫폼에 자발적으로 무형의 가치(정보)를 더한다. 벌이 모은 꿀을 인간이 착취하듯,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자와 네티즌의 활동을 고스란히 포획해 자신들의 이익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이런 온라인의 질서는 오프라인 지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책 『피지털 커먼즈』(갈무리, 2021)에서 저자 이광석은 “디지털 세계의 기술논리가 물질계의 지형”까지 좌우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현실을 ‘피지컬(물질)’과 ‘디지털(비물질)’을 합한 ‘피지털’이라는 낱말로 설명한다. 그는 다수가 만들어낸 활동의 결과물을 플랫폼 기업이 취하는 행태를 ‘수탈’에 비유하며, 이것이 인클로저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어떻게 하면 이런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다중의 커먼즈(공통장)를 회복할 수 있을지 사유해 보자고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커먼즈의 회복만이 인간과 인간 간의 공생은 물론,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도 가능하게 한다. 책 1부는 디지털 인클로저에 대한 경고에서 시작한다. 1부 1장에서 저자는 시민 사회의 정동(정서적 흐름)마저도 데이터로 탈바꿈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오늘날 온라인에서 네티즌의 활동은 댓글 하나, 좋아요 하나까지 모두 ‘가분체 데이터’가 되며, 우리의 생체 정보마저 빅테크 플랫폼의 자원이 된다. 그야말로 삶의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빅데이터’ 역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자본주의 가치는 자가 증식하는 비정형 데이터의 거대한 집적에서 도출된다. 주류 사회는 이를 ‘빅데이터’라 부르며 그것의 잠재 가치를 칭송하느라 바쁘다.”) 1부 2장에서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특성을 살핀다. 저자는 플랫폼 장치가 모든 유무형 자원을 사유화함으로써 인클로저를 가속화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시민 다중이 호혜의 플랫폼을 고안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다. 2부에서는 플랫폼 질서에 대항해 어떻게 하면 대안적인 커먼즈를 구성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3장은 동시대 커먼즈를 돌아보고, 커먼즈를 물질계, 비물질계, 피지털계로 나누어 각각의 층위에 걸친 커먼즈 생태계의 특성을 살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4장에서는 커먼즈 정책을 실험한 사례로 ‘공유도시 서울’을 들고 온다. 저자는 ‘공유도시 서울’이 그 효과 면에서 시민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정도에 머물렀을 뿐, 시민 자율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공생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3부와 4부에서 저자는 플랫폼이라는 키워드를 예술과 생태 문제로까지 밀고 나간다. 3부 5장에서는 카피레프트와 퍼블릭 도메인 등으로 대변되는 복제와 전유 문화를 되살려, 자본주의 저작권 체제에 대항하는 문화 커먼즈를 확장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 지식과 창작 대부분은 인류 공통의 상호 영감의 소산이자 유산으로 봐야” 하는데, 현재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저작권은 저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그의 작업을 자유롭게 창작에 쓸 수 있는 이용자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이어지는 6장에서는 반인클로저의 전통을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찾는다. 오리지널과 원본의 권위에 저항했던 아방가르드의 정신이 커먼즈와 맞닿아있다는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예술을 통해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자 했으며, 제도예술을 뚫고 나가고자 했다. 저자는 아방가르드로 그 범위를 한정했지만, 기실 모든 예술은 앞선 것-주류-에 대한 대항 서사이며, 전복이기도 하다.) 인클로저에서 출발한 논의는 4부에서 생태주의까지 나아간다. 7장에서는 ‘인류세’, ‘자본세’ 담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인류가 어떻게 지구 커먼즈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지, 비인간 존재와 공생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자고 제안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인간 역시 사물처럼 그저 하나의 행위자에 불과하다는 신유물론적 시각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그 영향력 측면에서) 굉장히 특수한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어지는 8장에서는 서구의 그린 뉴딜을 비판하며, 생태-기술-인간이 어떻게 호혜적 공생 관계를 이룰 수 있을지 살펴본다. 또 지구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생태정치학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파괴 욕망을 해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문제의식은 어떻게 이 수탈의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들고 다른 모양으로 바꿔낼 것이냐로 수렴하는 셈이다. 디지털 인클로저에서 시작해 생태정치까지를 꿰는 저자의 솜씨는 놀랍다. 이 책을 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물질 세계와 비물질 세계가 엮이는 방식을 돌아보고, 메타버스가 조종할 가까운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사유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한창 시장을 달구고 있는 NFT에 대해서도, 디지털 이미지에 마저 진품과 가품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자본주의의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려 한다고 비판하는데, 스쳐지나가는 언급이었지만 필자 역시 NFT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책을 읽은 후,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사유(私有)를 넘어 사유(思惟)할 수 있을지, 자본의 인클로저에 대항해 커먼즈의 가치를 세울 수 있을지 탐색하는 것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저자가 진단에 중심을 두고 있기에, 호혜의 공통장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 논의는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가 모든 흐름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 다중이 '어떻게' 진짜 공통장을 형성할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논의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테두리 바깥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일만큼이나 간단치 않을 것이다. 해결책과 방안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언제나 현실을 정확하게 짚는 것이 먼저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이 책이 꼭 필요한 이유다.